가와고에노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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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와고에노아마는 무사시국의 호족 가와고에 시게요리의 아내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아들 요리이에의 유모로 활동했다. 딸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정실이 되었으나, 요리토모와 요시츠네의 갈등으로 가와고에 가문은 몰락하여 남편과 아들이 처형되었다. 이후 요리토모는 가와고에노아마에게 가와고에 영지를 돌려주었고, 그녀는 영지를 다스리며 가문 재건의 기반을 마련했다. 관련 작품으로는 시노 아야코의 소설 『별이 빛나는 밤의 귀자모신』과 1979년 NHK 대하드라마 『풀이 타오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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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와고에노아마 | |
|---|---|
| 기본 정보 | |
![]() | |
| 이름 | 가와고에노아마 |
| 본명 | 불명 |
| 별명 | 오무로노 쓰보네 (小室局) |
| 생몰년 | 생년 미상 - 고안 4년 8월 14일 (1284년 9월 25일) |
| 다른 이름 | 가와고에 히라노마쓰도노노 쓰보네 (河越平沼殿局) |
| 가족 관계 | |
| 아버지 | 호조 도키마사 |
| 어머니 | 불명 |
| 남편 | 가와고에 시게요리 |
| 자녀 | 가와고에 모토토키 |
| 인물 정보 | |
| 신분 | 가마쿠라 막부의 유력 고케닌 가와고에 씨의 부인 |
| 활동 시기 | 가마쿠라 시대 |
| 상세 정보 | |
| 묘소 |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 렌게인 |
2. 생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에 거점을 둔 지 3년째인 주에이 원년(1182년) 8월 12일, 호조 마사코를 어머니로 둔 요리토모의 적남이 태어나 히키 요시카즈의 저택에서 유모에게 젖을 물리는 의식을 거행했다.
겐랴쿠 원년(1184년) 9월 14일, 요리토모의 명으로 딸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정실로 상락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요리토모와 요시츠네의 관계가 악화되어 요시츠네가 역모를 일으키자, 가와고에 씨는 친척으로 연좌되었다. 분지 원년(1185년) 10월 23일, 적남 시게후사가 쇼초 주 인 낙경 공양 수행원에서 제외되었고, 11월 12일, 가와고에 시게요리는 소유지를 몰수당했다. 이후 요리토모의 명으로 시게요리와 시게후사 모두 주살되었고, 히키니 차녀는 출가했다.
분지 3년(1187년) 10월 5일, 요리토모는 시게요리의 유족을 불쌍히 여겨 과부가 된 가와고에노아마에게 가와고에 씨 본령인 가와고에쇼를 주었다. 현지 묘슈나 백성들이 가와고에노아마의 지배에 따르지 않는다는 풍문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장원의 업무와 잡무는 모두 가와고에노아마의 명에 따르도록 명하였다.
가와고에쇼는 이후 시게요리의 차남 시게토키가 계승했다.
2. 1. 가와고에 시게요리와의 결혼, 그리고 요리이에 유모
가와고에노아마는 무사시국 유력 호족 가와고에 시게요리와 결혼하여 아들 시게후사를 낳았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거병하여 가마쿠라에 거점을 마련한 지 3년째인 주에이 원년(1182년) 8월 12일, 호조 마사코를 어머니로 둔 요리토모의 적남 (후의 요리이에)가 탄생했고, 히키 요시카즈(히키노아마의 양자)의 저택에서 유모로 불려가 처음 젖을 먹이는 의식을 치렀다.[1]겐랴쿠 원년(1184년) 9월 14일, 요리토모의 명으로 딸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정실로 상경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요리토모와 요시츠네의 관계가 악화되어 요시츠네가 모반을 일으키자, 가와고에 씨는 인척으로서 연좌되었다. 분지 원년(1185년) 10월 23일, 적남 시게후사가 쇼초 주 인 낙경 공양의 수행병에서 제외되었고, 11월 12일, 가와고에 시게요리는 소유지를 몰수당했다. 이후 요리토모의 명으로 시게요리와 시게후사 모두 참살되었고, 히키노아마의 차녀는 출가했다.[1]
2. 2. 요리토모-요시츠네 형제 갈등의 여파
겐랴쿠 원년(1184년) 9월 14일, 요리토모의 명에 따라 가와고에노아마의 딸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정실이 되었다.[1]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요리토모와 요시츠네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요시츠네가 요리토모에 대항하여 거병하자 가와고에 가문은 요시츠네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연좌되었다.[1] 분지 원년(1185년) 10월 23일, 가와고에노아마의 장남 시게후사는 쇼초쥬인 낙경공양 수행원에서 제외되었고,[1] 11월 12일에는 남편 시게요리가 영지를 몰수당한 후 요리토모의 명으로 처형당했다.[1] 가와고에노아마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1]2. 3. 가와고에 영지 회복과 가문 재건
분지 3년(1187년) 10월 5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가와고에 시게요리의 유족을 불쌍히 여겨, 남편을 잃은 가와고에노아마에게 가와고에 씨의 본래 영지인 가와고에 장원(가와고에쇼)을 주었다.[1] 요리토모는 현지의 유력 농민(묘슈)이나 백성들이 가와고에노아마의 지배에 따르지 않는다는 소문에, 앞으로 장원의 업무와 잡무는 모두 가와고에노아마의 명에 따르도록 명령했다.[1]키무라 시게미츠는 분지 원년(1185년)에 시게요리의 노모가 가와고에 장원을 맡아 어린 손자를 지토로 삼아 지배 체제를 실현하려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분지 3년에 요리토모가 가와고에노아마에게 장원 관리 업무(장무)와 잡무 모두를 일임했다고 지적했다.[1]
가와고에 장원은 이후, 시게요리의 차남 시게토키가 계승했다.[1]
3. 관련 작품
가와고에노아마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는 시노 아야코의 소설 『별이 빛나는 밤의 귀자모신』(슈에이샤 문고, 2021년)과 1979년 NHK 대하드라마 풀이 불탄다가 있다. 풀이 불탄다에서는 핫토리 타에코가 가와고에 준코 역을 연기했다.[1]
3. 1. 소설
시노 아야코의 소설 『별이 빛나는 밤의 귀자모신』(슈에이샤 문고, 2021년)이 있다.[1]3. 2. TV 드라마
1979년 NHK 대하드라마인 풀이 불탄다에서 핫토리 타에코가 가와고에 준코 역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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