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와키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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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와키누정은 일본 도치기현에 존재했던 정으로, 현재는 오야마시에 통합되었다. 1889년 구와촌과 기누촌이 성립되었고, 1956년 두 촌이 합병하여 구와키누촌이 되었다. 1960년 촌장 선거에서 202명이 입후보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61년 정으로 승격되었으나, 1965년 오야마시에 편입되어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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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키누정 | |
---|---|
기본 정보 | |
자치체 명칭 | 구와키누정 |
한자 표기 | 桑絹町 |
가나 표기 | くわきぬまち |
구분 | 정 |
소속 광역자치단체 | 도치기현 |
군 | 시모쓰가군 |
폐지일 | 1965년 9월 30일 |
폐지 사유 | 편입 합병 |
폐지 상세 | 구와키누정 → 오야마시 |
현재의 자치체 | 오야마시 |
인구 | 16,905명 |
인구 조사 시점 | 1960년 10월 1일 |
소재지 | 시모쓰가군 구와키누정 오아자 하가와 139-2 |
지리 | |
인접 자치체 | 도치기현: 오야마시, 도치기시, 시모쓰가군고쿠분지마치, 가와치군미나미카와치무라, 하가군니노미야마치 이바라키현: 유키시, 시모다테시 |
2. 지리
구와키누 정에는 키누가와, 다가와, 오모이가와, 스가타가와 등 여러 하천이 흐른다.
2. 1. 주요 하천
기누가와, 다가와, 오모이가와, 스가타가와3. 역사
1889년 정촌제 시행으로 구와 촌과 기누 촌이 성립되었다. 1956년 9월 30일에는 두 촌이 합병하여 구와키누 촌이 되었고, 1961년 7월 1일에는 정으로 승격하여 구와키누 정이 되었다.[1]
1960년 4월 29일 촌장 선거에서는 분촌을 둘러싼 갈등으로 202명이 입후보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유의미한 득표를 한 후보는 3명뿐이었는데, 1위는 4036표를 얻어 당선된 스가누마 료타, 2위는 2454표, 3위는 1156표였다. 나머지 190명은 0표를 받았다. 당시 정촌의 수장 선거에는 공탁금이 필요하지 않아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1][2]
1965년 9월 30일, 구와키누 정은 오야마시에 편입되었다.[1]
3. 1. 구와촌과 기누촌의 성립 (1889년)
1889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으로 구와 촌과 기누 촌이 각각 성립하였다. 구와 촌은 하네가와 숙 등 12개 촌이, 기누 촌은 후쿠라 촌 등 8개 촌이 합병하여 만들어졌다.[1]3. 1. 1. 구와촌
1889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으로 하네가와 숙, 미나미한다 촌, 이이즈카 신덴, 삼배가와기시 촌, 기자와 촌, 아라이 촌, 데이 촌, 하치가타 촌, 히가시야마다 촌, 기타이다 촌, 가야하시 촌, 무카이노 촌이 합병하여 '''구와 촌'''이 성립하였다.[1]3. 1. 2. 기누촌
1889년 4월 1일 - 정촌제 시행으로 후쿠라 촌, 다카하시 촌, 야나 촌, 나카가와라 촌, 나카지마 촌, 노부시마 촌, 노부시마 신덴, 다가와 촌이 합병하여 '''기누 촌'''이 성립하였다.3. 2. 구와키누촌의 합병과 촌장 선거 (1956년 ~ 1960년)
1956년 9월 30일, 구와촌과 기누촌이 합병하여 구와키누촌이 되었다.[1] 1960년 4월 29일 촌장 선거에서는 분촌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202명이라는 이례적인 수의 후보자가 난립했다. 이는 당시 촌장파와 대립하던 진영에서 대량으로 후보를 등록했기 때문이며, 가족 구성원 전체가 입후보하는 등의 특이한 사례도 있었다.[1]3. 2. 1. 1960년 촌장 선거의 특이성
1960년 4월 27일에 실시된 촌장 선거에서는 무려 202명이 입후보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분촌을 둘러싸고 촌장 측과 대립하던 진영에서 대량으로 후보를 낸 결과였다. 심지어 한 가족 4명 전원이 입후보하는 경우도 있었다.[1] 후보들의 연령대도 다양하여, 84세 노인부터 25세 2개월 청년까지 출마했다.[1]그러나 유의미한 득표를 한 후보는 3명뿐이었다. 1위는 4036표를 얻어 당선된 스가누마 료타였고, 2위 후보는 2454표, 3위 후보는 1156표를 얻었다.[1] 나머지 후보들 중 9명은 1표에서 3표를 얻는 데 그쳤고, 190명은 0표를 받았다.[1]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는 당시 정촌의 수장 선거에는 공탁금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2] 공탁금 제도가 없어 후보 난립을 막을 수 없었던 점은, 당시 대한민국의 초기 지방선거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민주주의 선거 제도 초기 단계의 과도기적 혼란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 3. 구와키누정 승격과 오야마시 편입 (1961년 ~ 1965년)
1961년 7월 1일 - 구와키누촌이 정으로 승격하여 구와키누정이 되었다.[1]1965년 9월 30일 - 구와키누정이 오야마시에 편입되면서 소멸하였다.[1]
참조
[1]
서적
「ヤバい選挙」第2章 267人もの立候補者が出た村長選
新潮新書
2020
[2]
법률
공직선거법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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