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징 (조선의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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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권징(權徵, 1538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이원(而遠), 호는 송암(松菴), 시호는 정익(貞翼)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입니다. 찬성사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직 권굉(權硡)입니다.
1562년(명종 17)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병조좌랑, 춘추관 기사관,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1586년(선조 19)에는 형조참판을 거쳐 충청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지냈습니다. 1589년에는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정철(鄭澈)의 실각과 함께 평안도 관찰사로 좌천되었습니다.
임진왜란(1592년) 당시에는 경기도 관찰사로서 임진강 방어에 힘썼으나 패배하였고, 이후 흩어진 군사를 모아 군량미 조달에 힘썼습니다. 또한 권율(權慄) 등과 함께 의병을 규합하여 왜병과 싸웠으며, 1593년 서울 탈환 작전에 참가했습니다.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추진하는 화의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공조판서가 되어 왜병에 의해 파헤쳐진 선릉(宣凌)과 정릉(靖凌)의 보수를 주관하였고, 1594년 병으로 벼슬에서 물러났습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주요 활동:
- 1562년(명종 17) 별시문과 급제
- 병조좌랑, 춘추관 기사관,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 역임
- 1586년(선조 19) 형조참판, 충청도/함경도 관찰사 역임
- 1589년(선조 22) 병조판서
- 임진왜란(1592) 당시 경기도 관찰사, 임진강 방어, 의병 규합
- 1593년 서울 탈환 작전 참가, 명나라의 화의 반대
- 공조판서, 선릉과 정릉 보수
- 사후 영의정 추증
추가 정보:
-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안동권씨 묘역에 위치.
-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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