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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 (레슬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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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일은 1990년대 북한의 레슬링 선수이다. 1991년 세계 주니어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고, 1991년 세계 선수권 대회 은메달, 1992년 아시아 레슬링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은퇴 후에는 체육 행정가와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조선레슬링협회 서기장을 역임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공훈체육인, 인민체육인,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2006년 국제 레슬링 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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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 (레슬링 선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올림픽 오륜
올림픽 오륜
개인 정보
이름김일
로마자 표기Gim Il
한글 표기김일
한자 표기金日
개정 로마자 표기Gim Il
매큔-라이샤워 표기Kim Il
예일 표기Kim Il
공식 로마자 표기Kim Il
출생일1971년 7월 25일
출생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시
신장158cm
체중54kg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수 정보
종목레슬링
세부 종목자유형
체급라이트플라이급
소속팀압록강체육단
은퇴1996년
올림픽 성적
1992 바르셀로나자유형 -48kg 금메달
1996 애틀랜타자유형 -48kg 금메달
세계 선수권 대회 성적
1991 바르나자유형 -48kg 은메달
아시아 선수권 대회 성적
1992 테헤란자유형 -48kg 금메달
1993 울란바토르자유형 -48kg 금메달
1996 샤오산자유형 -48kg 금메달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성적
1991 프리에비자자유형 -48kg 금메달
기타 정보
FILA 명예의 전당 헌액9명의 새로운 회원 (연도 미확인)
데이터베이스 올림픽 링크Il Kim Olympic medals and stats
레슬링 명예의 전당 박물관 링크Nine New Members Inducted into the FILA Hall of Fame

2. 선수 경력

김일은 1992년 하계 올림픽1996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48kg급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3][4]

1997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98년 김형직사범대학 체육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갔으며 2001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체육기술련맹 중경기처 레슬링협회 부원을 시작으로 체육 행정가 및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이후 조선레슬링협회 부서기장을 거쳐 2009년 서기장으로 승진했다.

2014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정계에도 진출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공훈체육인, 인민체육인, 로력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또한 2006년에는 국제 레슬링 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1. 초기 생애 및 입문

김일은 1971년 평양 서성구역에서 태어났다. 평양남교중학교 재학 중 레슬링에 입문했으며, 서성구역청소년체육학교을 졸업한 후 압록강체육단 레슬링팀에 입단했다.[3]

199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었다. 그 해 7월 체코슬로바키아 프리에비자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국제 경기에 처음 출전했고 자유형 -48kg급에서 대한민국의 박용만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4]

같은 해에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10월 불가리아 바르나에서 열린 199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소련의 부가르 오루제프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2. 2. 국제 대회 경력

199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7월 체코슬로바키아 프리에비자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국제 경기에 처음 출전했고, 자유형 -48kg급에서 대한민국의 박용만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4]

같은 해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0월 불가리아 바르나에서 열린 199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는 소련의 부가르 오루제프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2년 3월에는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알렉산드르 메드베디 국제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4월에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1992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몽골의 체렝바타링 호스바야르를 꺾고 우승했다.

같은 해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2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예선에서 오루제프, 쿠바의 알도 마르티네스, 독일의 라이너 호이가벨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에서는 대한민국의 김종신을 4-1로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인 1993년 4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1994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호스바야르를 다시 꺾고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 대회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레슬링 대표팀이 국제 대회에 불참하면서 김일 역시 한동안 국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96년 4월 중국 샤오산시에서 열린 1996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며 3년 만에 국제 대회에 복귀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몽골의 루브상이싱 세르겔렝바타르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8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199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스웨덴의 파리보르스 베사라티,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예프테니, 대한민국의 정순원을 모두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에서 아르메니아의 아르멘 므크르치얀을 꺾고 올림픽 2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3. 은퇴 후

1997년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학업과 체육 행정 및 지도자 활동을 병행했으며, 정치에도 참여하였다.[3] 이러한 활동과 선수 시절의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칭호와 국제적인 명예를 얻었다.[3]

3. 1. 체육행정가 및 지도자

1997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98년 김형직사범대학 체육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갔다. 2001년 대학을 졸업하고 체육기술련맹 중경기처 레슬링협회 부원으로 활동하며 체육행정가 및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조선레슬링협회 부서기장을 거쳐 2009년에는 서기장으로 승진했다.

2006년에는 국제 레슬링 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4년에는 정계에 진출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레슬링 선수 및 지도자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공훈체육인, 인민체육인,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3. 2. 정치 활동

2014년에는 정계에 진출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4. 업적 및 평가

김일은 1991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자유형 -48kg급에서 대한민국의 박용만을 꺾고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다.[4] 같은 해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참가한 1991년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서는 소련의 부가르 오루제프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2년에는 1992년 아시아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같은 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2년 하계 올림픽 자유형 -48kg급 결승에 진출하여 대한민국의 김종신을 4-1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듬해인 1993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1993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몽골의 호스바야르를 꺾고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이 대회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레슬링 대표팀이 국제 대회에 불참하면서 김일도 국제 대회에서 모습을 감췄다.

1996년 4월 중국 샤오산시에서 열린 1996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면서 3년 만에 국제 대회에 복귀했다. 그는 몽골의 루브상이싱 세르겔렝바타르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8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199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스웨덴의 파리보르스 베사라티,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예프테니, 대한민국의 정순원을 모두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에서 아르메니아의 아르멘 므크르치얀을 꺾고 다시 한 번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7년 현역에서 은퇴했고 1998년에 김형직사범대학 체육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나갔다. 200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체육기술련맹 중경기처 레슬링협회 부원을 시작으로 체육행정인,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조선레슬링협회 부서기장을 거쳐 2009년에 서기장으로 승진했다.

2014년에는 정계에 진출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레슬링인으로서의 활동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공훈체육인, 인민체육인,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2006년에는 국제 레슬링 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Il Kim Olympic medals and stats http://www.databaseo[...] databaseOlympics.com 2006-11-13
[2] 웹사이트 Nine New Members Inducted into the FILA Hall of Fame The National Wrestling Hall of Fame and Museum 2006-11-13
[3] 뉴스 북한 레슬링 영웅 김일, 후진양성에 매진 중 https://www.tongilne[...] 통일뉴스 2015-10-28
[4] 뉴스 박용만 아쉬운 「은」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199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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