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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미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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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나미 히로시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1972년 시즈오카현에서 태어난 그는 준텐도 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하여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99년에는 베네치아로 임대 이적하여 세리에 A에서 활약했으며, 이후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 일본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은퇴 후에는 주빌로 이와타의 감독을 맡아 팀을 J1 리그로 승격시켰으며, 마쓰모토 야마가 FC의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2023년부터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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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미 히로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히로시 나나미
원어 이름名波 浩
로마자 표기Nanami Hiroshi
출생일1972년 11월 28일
출생지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
신장1.77m
포지션미드필더
주발왼발
선수 경력
유소년 클럽시미즈 상업 고등학교 (1988-1990)
순텐도 대학 (1991-1994)
클럽주빌로 이와타 (1995-2008): 301경기 32골
베네치아 (loan) (1999-2000): 24경기 1골
세레소 오사카 (loan) (2006): 13경기 2골
도쿄 베르디 (loan) (2007): 17경기 0골
국가대표일본 (1995-2001): 67경기 9골
총 출장 및 득점355경기 35골
감독 경력
감독 클럽주빌로 이와타 (2014-2019)
마쓰모토 야마가 FC (2021-2022)
현재 직책일본 어시스턴트 매니저 (2023-)
수상
AFC 아시안컵2000 레바논 금메달
AFC 아시안컵 MVP2000년

2. 선수 경력

준텐도 대학 졸업 후 1995년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초기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1997년 J1리그, 1998년 J리그컵, 1998-99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등에 기여하며 3년 연속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999년 이탈리아 세리에 A베네치아로 임대되었으나, 팀의 강등으로 2000년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도 2002년 J1리그, 2003년 천황배 우승에 기여했지만, 2001년 당한 무릎 부상 여파로 점차 출전 기회가 줄었다. 이후 세레소 오사카(2006년), 도쿄 베르디(2007년)에서 임대 생활을 거쳐 2008년 주빌로 이와타로 돌아왔으나, 부상으로 인해 그해 11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나나미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1995년 8월 6일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러 데뷔골을 기록했고, 1996년부터 등번호 10번을 달고 팀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하고 본선 무대에도 출전했으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일본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2001년 무릎 부상 이후 대표팀에서 멀어졌으며, A매치 통산 기록은 67경기 9골이다.[1]

2. 1. 유소년 시절

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축구가 활발한 후지에다시라는 환경과 형들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축구에 열중했다. 이때 히로시는 시간이 나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 축구를 즐겼다. 약간 통통한 체형에 경기 중 동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모습 때문에 별명은 만화 캐릭터인 "자이언"이었다. 밖에서 축구를 할 수 없을 때는 형들과 집 안에서 공을 차며 놀다가 가구를 부수기도 했다.

후지에다 시립 니시마스즈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쉬는 시간마다 축구를 했고, 방과 후에는 빈터나 논, 오테 공원(일명 꼬마 광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공을 찼다. 특히 디에고 마라도나의 플레이에 큰 감명을 받아 왼발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형 유타카를 따라 니시마스즈 축구단의 선수 선발에 참가했다. 당시 코치가 놀랄 정도의 뛰어난 왼발 감각을 보여주었지만, 입단 조건이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었기 때문에 탈락했다. 다음 해인 초등학교 3학년 때 다시 도전하여 입단에 성공했으며, 이때는 기술이 더욱 향상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이미 또래 선수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월반하여 상급생 팀에 소속되었다. 당시 포지션은 왼쪽 윙이었다.

후지에다 시립 니시마스즈 중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 때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본인이 "열광했다"고 회상할 정도로 중학교 대항 경기에서 연승을 거듭했고, 3학년 때는 현 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후지에다 시립 니시마스즈 중학교


시미즈 상업 고등학교 시대에는 오이와 고, 야마다 타카히로, 사쓰카와 료요, 모치즈키 시게요시 등과 함께 활약하며 고교 총체와 다카마도노미야배 전일본 유스(U-18)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순텐도 대학에 입학하여 축구부에 입단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U-23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3경기에 교체 출전했다.

2. 2. 주빌로 이와타 (1995-1999)

준텐도 대학을 졸업한 나나미는 1995년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부터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클럽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선수로 평가받았다. 이 기간 동안 주빌로 이와타는 1997년 J1리그 우승, 1998년 J리그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아시아 무대에서는 1998-99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나나미 개인적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 연속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999년 7월,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 A베네치아로 임대 이적하며 주빌로 이와타에서의 첫 시기를 마무리했다.

2. 3. 베네치아 (1999-2000)

1999년 7월, 나나미는 주빌로 이와타를 떠나 이탈리아 세리에 A베네치아로 임대 이적했다. 베네치아는 이전 시즌 핵심 선수였던 알바로 레코바가 팀을 옮기면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왼발잡이 공격 자원을 찾고 있었고, 나나미를 영입하게 되었다.

세리에 A 개막전인 우디네세와의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필리포 마니에로의 골을 도우며 이적 후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다.[14] 10월 28일에는 코파 이탈리아 페스카라 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이적 후 첫 득점을 올렸다.[15] 리그에서는 2000년 1월 23일, 18라운드 우디네세 전에서 첫 골이자 시즌 유일한 골을 넣었다.[15]

나나미는 리그에서 총 24경기에 출전했지만, 시즌 중 감독 교체 등의 영향으로 꾸준히 선발로 나서지는 못했다. 풀타임을 소화하는 경기가 적었고, 벤치에 머물거나 경기 막판 짧은 시간 동안만 투입되는 경우도 있었다.[15] 팀은 코파 이탈리아에서 준결승까지 올랐으나 라치오에 패해 탈락했고,[15] 리그에서는 16위에 그쳐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계약 조건에 따라 팀이 강등될 경우 팀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나미는 2000년 여름 이탈리아를 떠나 그해 9월 친정팀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했다. 이탈리아에서의 도전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귀국 후 2000년 AFC 아시안컵 대표팀에 발탁되어 "이탈리아 도전에 실패한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일본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는 활약을 펼쳤다.

2. 4. 주빌로 이와타 복귀 (2000-2006)

1999년 7월 이탈리아 세리에 A베네치아로 임대 이적했으나,[14] 팀은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계약상 클럽이 강등되면 퇴단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2000년 9월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했다.

귀국 직후 2000년 AFC 아시안컵 대표팀 멤버로 소집되어 "이탈리아 도전에 실패한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언급했다. 대회에서는 나나미를 중심으로 한 공격진이 성공적으로 기능하며 일본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했고, 나나미 자신도 대회 MVP를 수상했다.

소속팀 주빌로 이와타에서는 2001년에 통칭 'N-BOX'라고 불리는 새로운 포메이션이 성공적으로 기능하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2001년 오른쪽 무릎 반월판 부상을 당해 대표팀에서 장기간 이탈하게 되었다.[15] 부상 회복이 더뎌 한일 월드컵 일본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는데,[15] 본인은 "부상을 당해서 제외된 것이 아니라, 실력이 없어서 제외되었다"며 겸양의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부상 회복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클럽에서는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2002년 J1리그 완전 우승(1st, 2nd 스테이지 모두 제패)과 2003년 천황배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지쿠 감독 취임 후 첫 경기인 자메이카전에 대표팀으로 소집되었으나 (등번호 8번, 10번은 나카무라 슌스케가 착용) 출전 기회는 없었고, 이후 대표팀에 소집되는 일은 없었다.

2006년에는 팀의 젊은 선수 기용을 추진한 야마모토 마사쿠니 감독 아래에서 점차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야마모토 감독 사임 후 취임한 아지우송 감독 체제에서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출전 기회를 찾아 2006년 8월 15일부로, 당시 최하위로 강등 위기에 놓여있던 세레소 오사카로 2007년 1월 31일까지의 기간 한정 임대 이적을 결정했다.

2. 5. 세레소 오사카 (2006)

2006년, 주빌로 이와타에서 야마모토 마사쿠니 감독과 후임 아지우송 감독 체제하에서 출전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다.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2006년 8월 15일, 당시 리그 최하위로 강등 위기에 처해 있던 세레소 오사카로 2007년 1월 31일까지의 기간 한정 임대 이적을 결정했다. 나나미가 합류하기 전 세레소 오사카는 단 1승에 그쳤으나, 그의 합류 이후 팀의 경기력이 향상되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다툴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팀은 최종적으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06년 11월 26일 오미야 전에서 J리그 통산 300경기 출장(역대 23번째)을 달성했다.

2. 6. 도쿄 베르디 (2007)

2007년 1월 16일, 주빌로 이와타에서 당시 J2리그 소속이던 도쿄 베르디 1969로 임대 이적이 발표되었다. 계약 기간은 2007년 2월 1일부터 2008년 1월 31일까지였다. 나나미는 인터뷰 등에서 2007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할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도쿄 베르디에서의 출전 기회가 적어 스스로 '불완전 연소'였다고 느꼈고, 친정팀 주빌로 이와타의 복귀 요청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2007년 12월 8일, 2008년 시즌에는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하여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정했음이 알려졌다.

2. 7. 주빌로 이와타 재복귀 및 은퇴 (2008)

2006년, 주빌로 이와타야마모토 마사쿠니 감독이 젊은 선수 기용을 추진하면서 나나미의 출전 기회는 점차 줄어들었다. 야마모토 감독이 사임하고 아지우송 감독이 부임한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2006년 8월 15일, 당시 리그 최하위로 강등 위기에 처해 있던 세레소 오사카로 2007년 1월 31일까지의 기간 한정 이적을 결정했다. 나나미 합류 후 팀의 경기력은 향상되어 승강전 출전을 다툴 정도였으나, 최종적으로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11월 26일 오미야 아르디자 전에서는 J리그 통산 3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2007년 1월 16일, 주빌로 이와타는 나나미가 도쿄 베르디로 2007년 2월 1일부터 2008년 1월 31일까지의 기간 한정 이적을 한다고 발표했다. 시즌 중 인터뷰 등에서 2007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출전 기회가 적어 불완전 연소였다는 점, 그리고 주빌로 이와타 측의 복귀 요청도 있어 현역 생활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2007년 12월 8일, 2008 시즌에는 주빌로 이와타 소속 선수로 복귀한다고 발표되었다.

2008년,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08년 11월 12일,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할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나나미는 1990년대 후반과 21세기 초반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였다.

1995년 8월 6일, 나나미는 교토 시립 니시쿄고쿠 종합 운동 공원 육상 경기장 겸 구기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친선 경기에서 일본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1996년부터는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으며 등번호 10번을 달았다. 같은 해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1996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1997년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활약하며 일본의 사상 첫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프랑스에서 열린 1998년 월드컵 본선에서도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파라과이에서 개최된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도 참가했다.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모든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하여 3골을 기록하며 일본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2001년 무릎 부상을 당한 후로는 더 이상 일본 대표팀에서 뛰지 못했다. 그는 2001년까지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총 67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1][12]

'''주요 출전 대회'''



'''연도별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

연도출전득점
199522
1996131
1997213
1998110
199960
2000123
200120
200200
통산679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No.날짜개최지대전 상대결과경기 개요
1.1995년 8월 6일일본, 교토시코스타리카○ 3-0친선 경기
2.1995년 10월 24일일본, 도쿄사우디아라비아○ 2-1
3.1996년 12월 9일아랍에미리트, 알아인우즈베키스탄○ 4-01996년 AFC 아시안컵
4.1997년 3월 25일오만, 무스카트마카오○ 10-0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5.
6.1997년 11월 1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대한민국○ 2-0
7.2000년 10월 14일레바논, 사이 다사우디아라비아○ 4-12000년 AFC 아시안컵
8.2000년 10월 24일레바논, 베이루트이라크○ 4-1
9.


4. 지도자 경력



연도클럽소속리그전컵 대회
순위승점경기르방 컵천황배
2014이와타J24위119252--
20152위824224108-2회전
2016J113위363481214예선 리그3회전
20176위583416108예선 리그8강
201816위4134101113PO패배8강
201918위1417359PO패배-
2021마츠모토J222위15233614-3회전
2022J34위66342068-2회전
통산일본J1--119373844--
일본J2--74292124--
일본J3--342068--
총 통산--227866576--


4. 1. 주빌로 이와타 (2014-2019)

2014년 9월, 페리클레스 샤무스카의 후임으로 주빌로 이와타 감독으로 취임했다.[17][18] 당시 팀은 J2 리그 소속이었으며 J1 리그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9월 28일 에히메 FC와의 첫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으나[19], 시즌 최종 성적은 4위에 그쳐 자동 승격에 실패했다. J1 승격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는 몬테디오 야마가타에게 후반 추가 시간에 실점하며 패배, 1년 만의 J1 복귀가 좌절되었다. 나나미는 당시 팀 상황에 대해 "개개인의 레벨, 축구의 질은 예상 범위 내였지만,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갈망과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이렇게 희박할 줄은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21]

2015년 시즌에는 마에다 료이치, 야마자키 료헤이 등 공격진의 이탈에도 불구하고[22], 새로 영입된 제이, 아다이우톤, 골키퍼 카민스키 등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과 고바야시 유키, 카와베 슌 같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힘입어 리그 2위를 차지, 3년 만에 J1 복귀를 확정지었다.[23] 나나미는 외국인 선수 영입 시 인성까지 확인하고, 경기 전체 영상을 보며 신중하게 결정했다고 알려졌다.[24]

2016년 시즌에는 J1 리그에서 최종전까지 잔류 경쟁을 벌인 끝에 13위를 기록하며 팀의 최소 목표였던 J1 잔류에 성공했다.[25]

2017년 시즌에는 팀 득점왕이었던 제이가 퇴단했지만, 베테랑 나카무라 슌스케와 카와마타 겐고를 영입했다. 영입 당시 나카무라의 나이(39세)와 카와마타의 전 시즌 부진(5골)으로 우려의 시선도 있었으나[26], 나카무라는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카와마타는 시즌 14골을 기록하며[26]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팀은 11년 만의 5연승[27], 16년 만의 리그 최소 실점 갱신[28] 등 공수 양면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최종 6위로 시즌을 마쳤다.[29]

2018년 시즌은 '톱 5'를 목표로 했으나, 아다이우톤, 무사예프, 나카무라 슌스케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 이탈로 어려움을 겪었다. 득점력이 크게 감소하여(리그 35득점, 리그 최저 2위)[30] 시즌 중 득점왕 경험이 있는 오쿠보 요시토를 영입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최종전에서 가와사키에게 경기 종료 직전 자책골로 패배하며 13위에서 16위로 추락, 5팀이 승점 41점으로 동률을 이뤘음에도 득실차로 인해 J1 승강 플레이오프로 밀려났다.[31] 플레이오프에서 도쿄 베르디를 2-0으로 꺾고 J1 잔류를 확정했다. 나나미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으나[32][33], 구단의 설득으로 2019년 시즌에도 팀을 이끌게 되었다.[34][35] 2019년 1월 12일,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감독직 연임이 발표되었다.[36]

그러나 2019년 시즌에도 팀은 부진을 면치 못해 16라운드 종료 시점 리그 17위로 처졌다. 6월 30일 열린 17라운드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에서 패배한 후, 나나미는 직접 서포터들에게 사임 의사를 전달했으며[37],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37][38] 같은 날 구단과의 계약 해지가 발표되어 퇴임했다.[39]

연도클럽소속리그전컵 대회
순위승점경기르방 컵천황배
2014*이와타J24위119252--
20152위824224108-2회전
2016J113위363481214예선 리그3회전
20176위583416108예선 리그8강
201816위4134101113PO패배8강
2019**18위1417359PO패배-


  • 2014년은 9월부터 취임 (시즌 중 일부)
  • * 2019년은 6월까지 지휘 (17경기)

4. 2. 마쓰모토 야마가 FC (2021-2022)

2021년 6월 21일, J2 리그의 마츠모토 야마가 FC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2021 시즌 J2 리그에서 23경기 3승 6무 14패, 승점 15점으로 최하위인 22위를 기록하며[2]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J3 리그로 강등되었다. 2022 시즌에는 J3 리그에서 34경기 20승 6무 8패, 승점 66점으로 4위를 기록했으나,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구단을 떠났다.

4. 3.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23-)

2023년부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5. 플레이 스타일


  • 같은 고등학교 1년 선배인 후지타 토시야를 존경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그의 플레이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평가한다. "입단 당시 3개 클럽으로부터 오퍼가 있었습니다. 금전적인 면에서는 주빌로 이와타가 가장 낮았지만, 토시야가 있어서 이와타에 들어갔다[45]"고 말했다. 그러나 후지타와의 개인적인 교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의 없으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친한 사람은 동급생인 오이와 고[45]"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경기를 보는 눈"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이며, "현역에서 은퇴하면 축구 잡지에서 채점하는 일을 해볼까 생각한다"거나 "축구 매거진의 채점보다 더 공정하게 볼 수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45]
  • 이탈리아 도전 당시 기자 회견에서 "저에게 부족한 점이 이탈리아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찾으러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기자들의 요구에 즉흥적으로 답한 것이었고, 도전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기자로부터 "부족한 점을 찾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곤란해했다. 이 일화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찾을 리가 없잖아"라고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 감독 취임 후에는 경기 중 큰 소리를 자주 질러 목을 보호하기 위해 물을 자주 마시고 사탕을 먹는다[47]。 이 모습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 TV 프로그램 기획으로 전용 "나나미 사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48]

6. 수상 내역

'''클럽'''



'''국가대표팀'''

6. 1. 클럽

주빌로 이와타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1999년 여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AC 베네치아로 임대 이적했다. 베네치아는 이전 시즌 핵심 선수였던 알바로 레코바의 이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나나미를 영입했다. 세리에 A 개막전인 우디네세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여 필리포 마니에로의 골을 도우며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다.[14] 10월 28일 코파 이탈리아 페스카라전에서는 결승골을 넣어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했다.[15] 2000년 1월 23일, 리그 18라운드 우디네세전에서 리그 첫 골이자 유일한 골을 넣었다.[15] 시즌 동안 리그 24경기에 출전했지만, 감독 교체 등의 영향으로 풀타임 출전 기회는 적었으며, 벤치를 지키거나 짧은 시간만 뛰는 경우도 많았다.[15]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라치오에 패했고,[15] 리그에서는 16위에 그쳐 팀은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계약 조건에 따라 팀이 강등될 경우 팀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기에, 나나미는 일본으로 돌아와 주빌로 이와타에 복귀했다.

이와타 복귀 후, 2001년에는 'N-BOX'라 불리는 새로운 포메이션 아래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같은 해 오른쪽 무릎 반월판 부상을 당해 장기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결국 2002년 FIFA 월드컵 출전도 좌절되었다. 나나미 본인은 "부상 때문에 제외된 것이 아니라 실력이 부족해서 제외된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부상 회복이 더뎠기 때문이었다. 지쿠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인 자메이카전에 소집되었으나 출전하지 못했고, 이후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았다. 클럽에서는 계속해서 주빌로 이와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2002년 J1리그 완전 우승(1st, 2nd 스테이지 모두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006년, 야마모토 마사쿠니 감독이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운영하면서 출전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고, 후임 아지우송 감독 체제에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출전 기회를 찾아 2006년 8월 15일, 당시 리그 최하위로 강등 위기에 처해 있던 세레소 오사카로 팀 재건을 위해 2007년 1월 31일까지 임대 이적을 결단했다. 팀은 최종적으로 강등되었다. 11월 26일 오미야 아르디자전에서 J리그 통산 3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2007년에는 도쿄 베르디 1969로 다시 임대 이적했다.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을 시사하기도 했으나, 출전 기회가 적어 아쉬움이 남았고 이와타의 복귀 요청도 있어 2008년 시즌 주빌로 이와타로 복귀하여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2008년 11월 12일,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클럽 통산 기록'''

시즌클럽등번호리그리그리그컵천황배합계
출장득점출장득점출장득점출장득점
1995주빌로 이와타-J513-20533
199630314110454
199772152021256
19983372030387
1999J1리그15420-174
1999-00SSC 베네치아 (임대)7세리에 A241-71312
2000주빌로 이와타16J1리그51002071
200171714000211
20022415000291
20032735051374
20042935030373
20052612020301
200610040-140
세레소 오사카 (임대)16132-00132
2007도쿄 베르디 1969 (임대)7J2리그170-10180
2008주빌로 이와타16J1리그1303020180
통산 (J1리그)3143448122238437
통산 (J2리그)170-10180
통산 (세리에 A)241-71312
총 통산3553548130343339



'''기타 공식전 기록'''


  • J리그 챔피언십: 4경기 0득점 (1997년 2경기, 1998년 2경기)
  • 일본 슈퍼컵: 3경기 0득점 (1998년 1경기, 2003년 1경기, 2004년 1경기)
  • A3 챔피언스컵: 2경기 0득점 (2003년)


'''AFC 챔피언스리그 기록'''

시즌클럽등번호출장득점
2004주빌로 이와타731
200530
통산61



'''주요 기록'''


  • J리그 첫 출장: 1995년 3월 18일 -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지바전 (이치하라 린카이 경기장)
  • J리그 첫 득점: 1995년 4월 12일 - 가시와 레이솔전 (히타치 가시와 축구장)
  • J리그 통산 300경기 출장: 2006년 11월 26일 - 오미야 아르디자전 (역대 23번째)

6. 2. 국가대표팀

나나미 히로시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동하며 국제 A매치 67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12]

주요 참가 대회는 다음과 같다.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대회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또한 1996년 AFC 아시안컵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고, 1998년과 2000년에는 AFC 올스타 팀에도 선정되었다.

'''연도별 국가대표 출전 기록'''

연도출전득점
199522
1996131
1997213
1998110
199960
2000123
200120
통산679


6. 3. 개인


  • AFC 아시안컵 최우수 선수: 2000
  • AFC 아시안컵 베스트 일레븐: 1996, 2000
  • J리그 베스트 11: 1996, 1997, 1998, 2002
  • J리그 20주년 기념팀
  • J리그컵 뉴 히어로상: 1996
  • AFC 올스타 팀 선정: 1998, 2000


같은 해 여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AC 베네치아로 이적했다. 베네치아는 이전 시즌까지 핵심 선수였던 알바로 레코바가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왼발잡이 공격수를 찾고 있었다. 세리에 A 개막전인 우디네세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여 필리포 마니에로의 골을 도우며 이적 후 첫 도움을 기록했다.[14] 10월 28일, 코파 이탈리아 페스카라전에서는 결승골을 넣어 이적 후 첫 득점에 성공했다.[15] 이듬해 1월 23일, 리그 18라운드 우디네세전에서 리그 첫 골이자 유일한 골을 넣었다.[15] 리그 24경기에 출전했지만, 잦은 감독 교체 등의 영향으로 풀타임 출전은 드물었고, 벤치를 지키거나 짧은 시간만 뛰는 경우도 많았다.[15]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준결승까지 올랐으나 라치오에 패했고,[15] 리그에서는 16위에 그쳐 팀은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계약 조건에 따라 팀이 강등될 경우 팀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기에, 나나미는 일본으로 돌아와 주빌로 이와타에 복귀했다.

복귀 후 아시안컵 대표팀에 발탁되자 "이탈리아 도전에 실패한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회에서 나나미를 중심으로 한 일본 대표팀의 공격은 뛰어난 위력을 발휘하며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나나미 본인도 대회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과거 코파 아메리카에서 나나미를 비판했던 트루시에 감독 역시 그의 활약을 높이 평가했다.

소속팀 주빌로 이와타에서는 2001년, 통칭 'N-BOX'라 불리는 새로운 포메이션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며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1년 오른쪽 무릎 반월판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대표팀에서 이탈해야 했다. 트루시에 감독과 많은 팬들이 월드컵 본선까지 그의 복귀를 기다렸으나, 같은 해 10월 유럽 원정(세네갈, 나이지리아전) 명단에 포함되어 동행했음에도 부상이 재발하여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다시 팀을 떠났다.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 일본 대표팀 최종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나나미 본인은 "부상 때문이 아니라 실력이 부족해서 탈락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부상 회복이 더뎠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지쿠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였던 자메이카전에 대표팀 소집(등번호 8번, 10번은 나카무라 슌스케가 착용)되었으나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고, 이후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았다. 반면 소속팀에서는 꾸준히 주빌로 이와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02년 J리그 완전 우승(1, 2 스테이지 모두 제패)에 크게 기여했다.

2006년에는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운영한 야마모토 마사쿠니 감독 체제에서 출전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고, 야마모토 감독 사임 후 부임한 아지우송 감독 아래에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8월 15일, 당시 리그 최하위로 강등 위기에 처해 있던 세레소 오사카로 2007년 1월 31일까지 임대 이적을 결정했다. 나나미 합류 전까지 단 1승에 그쳤던 세레소 오사카는 그의 합류 이후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다툴 정도로 경기력이 향상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나나미는 11월 26일 오미야 아르디자와의 경기에서 역대 23번째로 J리그 통산 3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2007년 1월 16일, 주빌로 이와타는 나나미가 도쿄 베르디 1969로 2007년 2월 1일부터 2008년 1월 31일까지 임대 이적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축구 잡지 인터뷰 등에서 2007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출전 기회가 적어 만족스럽지 못했고 이와타 측의 복귀 요청도 있어 2007년 12월 8일, "2008 시즌에는 현역 선수로 이와타에 복귀한다"고 발표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8년 11월 12일, 2008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09 시즌 코치직 제안은 거절했지만, "40세 즈음에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주빌로 이와타의 어드바이저를 맡았으며, 2009년 4월 5일부터 TV 아사히의 축구 정보 프로그램 『야베치 FC』에 고정 출연하기 시작했다. 또한 BS 아사히나 스카이 퍼펙트 커뮤니케이션! 등에서 축구 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TV 아사히 중계 시에는 주로 경기장 그라운드 위에서 해설을 진행한다. 2011년 AFC 아시안컵 결승전 중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중계석의 마쓰키 야스타로세르지우 에치고 해설위원이 감정적으로 격앙되는 경우가 많아(일명 '이자카야 중계'), 그라운드에서 침착하고 정확한 분석을 제공하는 나나미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2012년 3월 11일에는 도쿄 베르디 1969 시절 팀 동료이자 도치기 SC 드림 앰버서더인 사토 유스케가 주최한 "3.11 유스케 드림스 메모리얼 게임"에 선수 겸 감독으로 참가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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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Júbilo Iwata https://www.jubilo-i[...]
[3] 문서 Single source here, if player is inactive. If player has not retired, move source next to "Updated" template.
[4] 웹사이트 NANAMI Hiroshi https://web.archive.[...] 2013-09-22
[5] 웹사이트 名波 浩 http://www.jfootball[...] 2020-07-17
[6] 웹사이트 J.League Data Site https://data.j-leagu[...]
[7] 웹사이트 Jリーグ伝説の5チーム。強力な布陣、憎らしいほどに強い…歴史に残る最強のクラブは?【再掲】 https://www.football[...] 2020-07-17
[8] 웹사이트 第83回天皇杯全日本サッカー選手権大会決勝:セレッソ大阪 vs ジュビロ磐田 https://www.jubilo-i[...]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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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웹사이트 ゼロックススーパーカップ:ジュビロ磐田 vs 京都パープルサンガ https://www.jubilo-i[...] 2020-07-17
[11] 웹사이트 2004ゼロックススーパーカップ:横浜F・マリノス vs ジュビロ磐田 https://www.jubilo-i[...]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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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뉴스 名波浩 https://data.j-leagu[...] data.j-league.or.jp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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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웹사이트 Hiroshi Nanami 1999-00 https://www.transfer[...] www.transfermarkt.com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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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웹사이트 J1残留決めた名波監督、自身の進退「今話せることはない」 https://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19-01-15
[34] 웹사이트 磐田、名波監督続投!服部本部長「本人からやると」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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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간행물 2019シーズン 新体制(スタッフ) https://www.jubilo-i[...] ジュビロ磐田 2019-01-12
[37] 웹사이트 6/30(日)川崎戦 試合後 名波浩監督会見 https://www.jubilo-i[...] ジュビロ磐田 2019-06-30
[38] 뉴스 J1磐田名波浩監督が辞任を発表、最下位低迷の責任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9-06-30
[39] 웹사이트 名波 浩監督 退任のお知らせ https://www.jubilo-i[...] ジュビロ磐田 20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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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뉴스 "結果が伴わずに申し訳ない…"サッカーJ3・松本山雅の名波監督が契約満了で退任へ 長野 https://newsdig.tbs.[...] 信越放送
[42] 웹사이트 名波浩氏、森保Jの新コーチ就任へ…前田遼一氏も含め代表スタッフの陣容固まる https://www.yomiuri.[...] 2023-01-17
[43] 웹사이트 サッカー日本代表 名波浩氏と前田遼一氏のコーチ就任発表 https://www3.nhk.or.[...] NHKニュース 20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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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문서 2003年11月に[[ぴあ]]の主催で行われた、[[鈴木秀人]]とのトークライブの際の名波のコメント
[46] 간행물 「週刊サッカーマガジン」2008年12月2日号 2008-12-02
[47] 웹사이트 見ていて飽きない試合中の名波監督。その“イズム”がジュビロに浸透中。 http://number.bunshu[...] 2016-04-09
[48] 웹사이트 試合中になめてほしい!「名波飴を作ろう」 http://www.satv.co.j[...]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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