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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리 독포도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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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바리 독포도주 사건은 1961년 3월 미에현 나바리시에서 열린 농촌생활 개선 구락부 총회에서 포도주를 마신 여성 5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포도주에서 농약이 검출되었고, 오쿠니시 마사루가 체포되어 범행을 자백했으나, 재판 과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고,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되었다. 오쿠니시는 재심을 청구했으나 여러 차례 기각되었으며, 2015년 사망했다. 이 사건은 여러 차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오쿠니시의 유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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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리 독포도주 사건
사건 개요
이름명장 독 포도주 사건
공식 명칭(공식 명칭 없음)
장소일본: 미에현나바리시 가쓰오 76번지 가야하라 지구 공민관 가쓰오 분관 (현재는 존재하지 않음)
위도34° 39′ 07.4″ N
경도136° 03′ 43.7″ E
표적(정보 없음)
날짜1961년 3월 28일
시간
시간대일본 표준시
요약술자리에서 제공된 포도주에 농약이 섞여 있어, 이를 마신 여성 17명이 집단 중독되었고, 그 중 5명이 사망함.
현상금(정보 없음)
원인(정보 없음)
수단와인에 농약 (니카린 T)을 혼입
공격 측 인원(정보 없음)
무기(정보 없음)
사상자사망: 마을 주민 여성 5명
부상: 마을 주민 여성 12명
행방불명(정보 없음)
피해자(정보 없음)
손해(정보 없음)
범인오쿠니시 마사루 (사건 당시 35세, 억울한 누명이라는 지적 있음)
혐의(정보 없음)
동기삼각관계 정리
관여(정보 없음)
방어(정보 없음)
대응오쿠니시를 체포 및 기소
사죄(정보 없음)
보상(정보 없음)
배상(정보 없음)
형사 소송사형 (집행되지 않고 옥사)
영향일본 변호사 연합회 (일변련)은 억울한 누명을 호소하며, 재심을 지원하고 있음.
오쿠니시의 가족은 사건 후, 주민들로부터 마을의 따돌림을 당해 마을을 쫓겨남.
유족회(정보 없음)
피해자 모임(정보 없음)
관할미에현 경찰 수사 1과・나바리 경찰서 (수사)
쓰 지방 검찰청 (제1심)・나고야 고등 검찰청 (항소심・재심 청구)
관련 판례
사건명살인, 동 미수
사건 번호쇼와 44(아)2560
재판 년월일1972년 (쇼와 47년) 6월 15일
판례집집형 제184호 637쪽
재판 요지제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에 대해, 항소 재판소가 사실 조사를 거쳐 오른쪽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스스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 및 이 경우, 오른쪽 항소심 판결에 대해, 상소에서 사실 오인 등을 다툴 길이 막혀있는 것은, 헌법 31조 내지 40조 또는 그 정신에 반하는 것이 아님.
법정명제1소법정
재판장이와타 마코토
배석 판사오스미 겐이치로, 후지바야시 마스미, 시모다 다케조, 기시 모리히토
다수 의견전원 일치
의견(없음)
반대 의견(없음)
참조 법조헌법 31조, 형소법 400조 단서, 형소법 405조
URL대법원 판례 검색 시스템
사망 정보
사망일2015년 10월 4일
향년89세 (1926년 1월 14일 출생)

2. 사건 경과

1961년 3월 28일, 미에현 나바리시 쿠즈오 지구에서 농촌생활 개선 구락부 총회가 열렸다. 이 모임에서 포도주를 마신 여성 17명이 급성 중독 증세를 보였고, 그중 5명이 사망했다. 수사 결과, 포도주에 농약이 혼입된 것으로 밝혀졌다.[49]

수사 당국은 모임 회원 남자 세 명을 중요 참고인으로 조사했는데, 그중 한 명인 오쿠니시 마사루의 아내와 내연녀가 모두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 당국은 "삼각관계를 한꺼번에 해소하려고 한 것이 범행 동기"라고 추정하여 오쿠니시를 추궁했다. 오쿠니시는 4월 3일 범행을 자백하고 미에현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체포 직후 범행을 부인했다.[7]

2. 1. 사건 발생 당시의 정황

1961년 3월 28일, 미에현 나바리시 쿠즈오 지구의 공민관 쿠즈오 분관(현재는 존재하지 않음)에서 지구 농촌생활 개선 구락부 총회가 열려 남자 12명과 여자 20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남자는 청주, 여자는 포도주를 마셨는데, 포도주를 마신 여자 17명이 급성 중독 증상을 보여 5명이 숨졌다.[49]

사건 당시 쿠즈오 마을은 오락거리가 부족한 시골이었으며, 모임에서 열리는 연회는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49]

3. 재판 경과

오쿠니시 마사루는 체포 후 범행을 자백했다가 번복하여 무죄를 주장했다. 1964년 12월 23일, 지방재판소는 목격자 증언에서 도출된 범행 시각과 오쿠니시의 자백 사이의 모순을 인정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나고야 고등재판소에 항소했다.

1969년 9월 10일,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오쿠니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오쿠니시는 최고재판소에 상고했다.

1972년 6월 15일, 최고재판소는 상고를 기각했다.

3. 1. 1심: 쓰 지방 법원

1961년 6월 16일에 쓰 지방 법원에서 제1심 첫 공판이 열렸지만, 오쿠니시는 기소장의 공소 사실 중 삼각 관계나 농약 구입, 행사장으로의 포도주 운반 등의 사실은 인정했지만, 범행은 전면 부인했다.[10] 그 이후,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은 "동기", "독물 투입 기회의 유무"에 대해 다투어 왔다.[11]

1964년 12월 23일에 제1심 판결 공판이 열렸고, 쓰 지방 법원 (오가와 준 재판장[21])은 검찰 측의 사형 구형을 기각하고, '''오쿠니시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11] 쓰 지방 법원은 판결 이유에서, 자백의 임의성은 부정하지 않았지만, 목격 증언에서 도출되는 범행 시각이나, 증거로 제시된 포도주 뚜껑의 상황 등과 오쿠니시의 자백 사이에 모순을 인정하여, 검사가 제시한 물적 증거·정황 증거를 거의 전면적으로 기각한 뒤,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오쿠니시를 무죄로 했다.[11] 폐정 후, 오쿠니시는 구치소였던 미에 형무소에서 석방되었다.[12]

3. 2. 2심: 나고야 고등 법원

1964년 12월 23일, 1심 재판부는 오쿠니시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이에 불복하여 나고야 고등재판소에 항소했다.[11] 항소심은 1965년 11월 20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15번의 공판이 열렸고,[14] 1969년 7월 16일에 종결되었다.[13]

1969년 9월 10일, 나고야 고등 법원 형사 제1부(우에다 고조 재판장, 사이토 히사시·후지모토 타다오 배석 판사)는 1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오쿠니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14] 나고야 고등 법원은 목격 증언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범행 가능 시간이 있었다고 판단했으며, 뚜껑에 남은 치흔 감정 결과도 신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변호인 측 감정인인 니혼 대학 치과대학 조교수는 뚜껑에 남은 흔적으로 범인의 치흔을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오쿠니시는 판결에 불복하여 최고재판소에 상고했다.[14]

3. 3. 3심: 일본 최고 재판소

1972년 6월 15일, 최고재판소 제1 소법정 (이와타 마코토 재판장)은 나고야 고등재판소의 사형 판결에 대한 오쿠니시의 상고를 기각했다.[16][17] 판결 정정 신청도 같은 해 7월 4일 기각되어,[18] 다음 날인 7월 5일 오쿠니시의 사형이 확정되었다.[19][20]

최고재판소에 따르면,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려 1심의 무죄 판결이 항소심에서 파기되어 사형 판결이 확정된 사건은, 현행 형사 소송 제도가 발족한 이래 처음이었다.[16]

4. 재심 청구

오쿠니시 마사루는 사형 확정 판결 이후 지속적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그리고 1988년에 제기된 5번의 재심 청구는 모두 기각되었다.[48] 1993년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이의신청을 기각했고, 변호인단은 최고재판소에 특별 항고했지만 1997년 기각되었다. 1998년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제6차 재심 청구를 기각했고, 1999년 이의신청도 기각되었다. 2002년 최고재판소는 변호단의 특별항고를 기각했다.[48]

2013년, 오쿠니시는 하치오지 의료형무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48] 2014년 기준으로 일본 최고령 사형수였다.

4. 1. 1차 ~ 6차 재심 청구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88년 5차례에 걸쳐 재심 청구가 있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19] 1980년 9월 청구 심사에서 최초의 현장 검증이, 1986년 6월 청구 심사에서 최초의 증인 심문이 이루어졌다. 1988년 12월 14일, 나고야 고등재판소 형사 제1부(야마모토 타쿠 재판장)는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19]

1993년 3월 31일, 나고야 고등재판소 형사 제2부(모토요시 쿠니오 재판장)는 제1부 결정에 대한 변호인 측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20] 1993년 4월 변호단이 최고재판소에 특별항고했지만, 1997년 1월 28일, 최고재판소 제3소법정(오노 마사오 재판장)은 특별항고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22] 같은 해에 제5차 재심 청구를 했지만, 같은 해에 나고야 고등재판소에서 청구 기각 결정이 나왔다. 1998년 10월,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제6차 재심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변호단이 이의신청을 했지만, 1999년 9월에 나고야 고등재판소가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고, 2002년 4월에는 최고재판소가 해당 결정에 대한 변호단의 특별항고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4. 2. 7차 재심 청구

2002년 4월 10일 변호단은 나고야 고등재판소에 제7차 재심 청구를 제기했다.[48] 2005년 4월 5일, 나고야 고등재판소(제1형사부, 고이데 준이치 재판장)는 재심 개시를 결정하고, 동시에 사형 집행 정지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새로운 증거로는 왕관을 손상시키지 않고 개봉하는 방법이 발견된 점, 자백에서 백포도주에 혼입되었다고 하는 농약(니카린T, 유기 인계 살충제, TEPP (테프)제의 일종)이 붉은 액체라는 것이 판명된 점, 남은 와인의 성분으로 보아 농약 종류가 자백과 모순되는 점, 이전의 치아 자국 감정에 오류가 발견된 점 등이 인정되었다.

2006년 4월 8일, 검찰 측은 니카린 T는 석출된 흰색 액체 물질이 회수되지 않았고 사건 당시에는 흰색 액체와 붉은색 액체가 혼합되어 유통되었다는 등의 이의를 신청했다. 이를 받아들여 12월 26일, 나고야 고등법원(제2형사부, 가도노 히로시 재판장)은 재심 개시 결정을 취소했다.

2007년 1월 4일, 변호 측은 최고재판소에 특별항고했다. 2010년 4월 5일, 최고재판소는 범행에 사용된 독물에 관해 "과학적 지견에 기초하여 검토했다고 할 수 없으며, 추론 과정에 오류가 있을 의혹이 있다. 사실이 해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23] 재심 개시 결정을 취소한 나고야 고등재판소 결정을 심리 부진으로 파기하고, 심리를 나고야 고등재판소로 환송했다.[24]

2012년 5월 25일, 나고야 고등법원(시모야마 야스오 재판장)은 '수사 단계에서의 피고인의 자백에 신빙성이 높다'고 간주하여 검찰 측의 이의 신청을 인정, 재심 개시 취소를 결정했다. 5월 30일, 피고인 변호인 측은 최고재판소에 특별항고를 제기했다.[31]

2013년 10월 16일, 최고재판소 제1소법정(사쿠라이 류코 재판장)은 나고야 고등재판소의 재심 취소 결정을 지지하고, 제7차 재심 청구에 관한 특별항고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33]

4. 3. 8차 재심 청구 이후

2013년 11월 5일, 변호인단은 나고야 고등법원에 제8차 재심을 청구했다.[33] 그러나 2014년 5월 28일, 나고야 고등법원 형사 제1부는 "모든 증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더라도 확정 판결에 합리적인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라며 청구를 기각했다.[34] 2015년 1월 9일, 제8차 재심 청구 이의 심사에서도 같은 고등법원 형사 2부는 1부의 결정을 지지하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34]

2015년 5월 15일, 나고야 고등법원에 제9차 재심 청구를 신청했다.[34] 같은 날, 최고재판소에 대한 특별항고를 취하했는데, 변호단은 오쿠니시 마사루의 병세를 고려하여 새로운 증거를 조기에 심리받기 위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34]

오쿠니시 마사루는 2015년 10월 4일 오후 0시 19분, 폐렴으로 인해 하치오지 의료 형무소에서 사망했다.[3][4] 오쿠니시의 사망으로 인해, 2015년 10월 15일, 나고야 고등법원은 제9차 재심 청구 심리를 종료했다.[34]

2015년 11월 6일, 오쿠니시의 여동생이 나고야 고등법원에 제10차 재심을 청구했다.[39] 2017년 12월 8일 나고야 고등법원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고,[40] 2024년 1월 29일 최고재판소는 특별항고를 기각하여 판단이 확정되었지만, 재판관 한 명이 재심을 개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일련의 재심 청구에서 처음으로 최고재판소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다.[40]

2020년 10월 28일, 포도주 병마개 봉함지에서 제조 단계와 다른 풀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재감정 결과가 나고야 고등법원에 새로운 증거로 제출되었다. 변호인단은 봉함지가 다시 붙여진 것이 명백하며, 진범의 위장 공작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35] 2021년 10월 27일에는 전문가 의견서 등을 새로운 증거로 제출했다.[35] 그러나 2022년 3월 3일, 나고야 고등법원은 변호인단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고 재심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36]

5. 지역 사회의 반응

사건 당시 쿠즈오 마을은 오락거리가 부족한 시골이었고, 총회 때 열리는 연회는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중 발생한 끔찍한 사건은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오쿠니시가 체포되자 범인이 잡혔다는 안도감에 오쿠니시의 가족을 돕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쿠니시가 범행을 부인하면서 가족들은 지역 사회로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집에 돌을 던지거나, 피해자 유족들이 몰려가 사과를 강요하기도 했다. 이러한 괴롭힘으로 가족은 쿠즈오를 떠났고, 공동묘지에 있던 오쿠니시 가문의 무덤도 파헤쳐졌다.

쿠즈오 마을은 당시 인구 1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만약 오쿠니시가 무죄라면, 진범이 마을 안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지역 사회는 다시 혼란에 빠질 것을 두려워했다. 그 결과 쿠즈오 마을에서는 오쿠니시의 무죄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49]

6. 오쿠니시 마사루

1926년 1월 14일, 사건의 무대가 된 미에현 나바리시 가쓰라오 지구에서 태어났다.[5][6][7]

1940년고등소학교를 졸업한 후, 산구 급행 전철(산큐)에 입사했다.[7] 산큐는 후에 간사이 급행 철도(관급)를 거쳐, 현재의 긴키 닛폰 철도(긴테츠)의 루트가 된 철도 회사이다. 오쿠니시는 지역에서 "키가 큰 미남"으로 평판이 좋았고[8], 후에 사건으로 사망한 오쿠니시의 아내도 긴테츠 나바리역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오쿠니시 부부는 일부 친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설득하여 결혼했고, 1남 1녀의 아이를 낳았다.[7]

7. 사망자

사건으로 인해 오쿠니시의 아내와 애인을 포함하여 총 5명의 여성이 사망했다. 사망자들의 연령은 사건 당시 나이 기준이다.

이름나이비고
여성 130세「미나의 회」 회장의 아내, 오쿠니시의 옆집
여성 234세오쿠니시의 아내
여성 325세전 「미나의 회」 회장
여성 436세
여성 536세오쿠니시의 애인


8. 영상 작품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제목방송사방송 일자비고
NNN 다큐멘터리 "심판의 무게 나바리 독포도주 사건의 반세기"주쿄 TV2006년 11월 26일
클로즈업 현대 "흔들리는 사형 판결 ~ 검증・나바리 독포도주 사건 ~"NHK 종합 텔레비전2010년 4월 8일[42]
독과 해바라기 ~ 나바리 독포도주 사건의 반세기 ~도카이 TV2010년 6월 19일내레이션: 나카다이 타츠야[43]
약속 ~ 나바리 독포도주 사건 사형수의 생애 ~도카이 TV2012년 6월 30일
텔레멘터리 "비원 ~ 재심의 문과 증거 공개 ~"TV 아사히, 메~텔레 나고야 TV 방송2015년 1월 27일
두 명의 사형수도카이 TV2016년 1월
다큐멘터리 극장 제11작 잠자는 마을 ~ 나바리 독포도주 사건 57년째의 진실 ~도카이 TV2018년 4월 1일내레이션: 나카다이 타츠야[47], 2019년 2월 영화화.


참조

[1] 서적 下級裁判所刑事裁判例集
[2] 간행물 殺人・同未遂被告事件 TKCローライブラリー 1969-09-10
[3] 뉴스 名張毒ぶどう酒事件 奥西勝死刑囚 病死 89歳、冤罪訴え再審請求中 https://web.archive.[...] 中日新聞社 2018-12-10
[4] 뉴스 名張毒ブドウ酒事件の奥西死刑囚が死亡 再審請求中 http://www.asahi.com[...] 朝日新聞社 2016-03-17
[5] 간행물 昭和44年(あ)第2560号 昭和47年6月15日判決 最高裁判所
[6] 判例 第7次再審請求審における第二次特別抗告審決定 2013-10-16
[7] 뉴스 奥西死刑囚死亡 半世紀 無罪訴え続け 再審の扉 開かれないまま 2015-10-05
[8] 뉴스 翻弄 名張事件が問うもの(上) 奥西死刑囚死亡 獄中の恐怖 半世紀 2015-10-05
[9] 웹사이트 2006年12月26日:名古屋高裁の名張毒ブドウ酒事件再審開始決定の取消決定要旨 https://web.archive.[...]
[10] 뉴스 【津】毒ブドウ酒事件公判開く 奥西、犯行を否認 弁護側、六点を追及 1961-06-16
[11] 뉴스 【津】毒ブドウ酒事件 津地裁 奥西被告に無罪判決 “証拠が不十分” 1964-12-23
[12] 뉴스 【津】「毒ブドウ酒事件」3年ぶり判決 “無罪”にどよめく法廷 奥西に感動の色 隠せぬ複雑な空気 津地裁 1964-12-23
[13] 뉴스 毒ブドウ酒事件 控訴審が結審 判決は九月十日 1969-07-17
[14] 뉴스 名張毒ブドウ酒事件控訴審 “無罪”破棄、奥西に死刑 名高裁判決 自供、信用できる 証拠の取捨に誤り 「歯型」を黒と断定 1969-09-10
[15] 뉴스 毒ブドウ酒事件控訴審 「死」に立ちすくむ奥西 青ざめ 手ふるえ 白から黒へ 傍聴席、声なし 1969-09-10
[16] 뉴스 名張毒ブドウ酒事件 奥西の死刑確定 最高裁判決 1972-06-15
[17] 判例 1972-06-15
[18] 간행물 刑事雑(全) > 判決訂正申立 > 事件番号:47(み)8 事件名:殺人、同未遂 被告人名又は申立人氏名 奥西 勝 裁判月日:〔昭和47年〕7・4 法廷:一 結果:棄却 原本綴丁数:1 最高裁判所事務総局 1972-07
[19] 判例 第5次再審請求審における決定 1988-12-14
[20] 判例 第5次再審請求審の異議申立審決定 1993-03-31
[21] 뉴스 異様な喜びにわく地元 11年余の恨みが爆発 丘の墓地へ報告の列 1972-06-15
[22] 判例 第5次再審請求審の特別抗告審決定 https://www.courts.g[...] 1997-01-28
[23] 뉴스 名張毒ぶどう酒事件、差し戻し 奥西元被告の死刑再審請求 https://web.archive.[...] 全国新聞ネット 2010-04-06
[24] 뉴스 最高裁、再審判断を高裁に差し戻し 名張毒ブドウ酒事件 http://www.asahi.com[...] 朝日新聞社 2010-04-06
[25] 뉴스 名張毒ぶどう酒事件:再審の可能性…最高裁が差し戻し http://mainichi.jp/s[...] 毎日新聞社 2010-04-06
[26] 뉴스 『証拠調べ最小限に』 「毒ぶどう酒」最高裁、異例の注文 http://www.tokyo-np.[...] 中日新聞社 2010-04-07
[27] 웹사이트 第7次再審請求最高裁決定についての弁護団声明(10.4.6) http://www.enzaibous[...]
[28] 웹사이트 名張毒ぶどう酒事件第7次再審請求最高裁決定についての会長声明 http://www.nichibenr[...] 日弁連 201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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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웹사이트 "家政婦のミタ"がグランプリで5冠! 東京ドラマアウォード2012発表 https://www.cinemato[...] シネマトゥデイ 2012-10-23
[46] 뉴스 仲代達矢「名張毒ぶどう酒事件」えん罪主張 http://www.sanspo.co[...] 産経デジタル 201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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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서적 魔の時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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