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남대문로 지하배수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서울시의 근대화 과정과 도시 발달사를 상징하는 유산으로, 근대 토목 기술의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한국은행 사거리에서 을지로입구 방향의 남대문로, 소광통교, 삼각동 구간에 걸쳐 있으며, 1907년에서 1915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류구간과 하류구간으로 나뉘는 남대문로 구간, 석축으로 된 소광통교 구간, 벽돌로 쌓은 삼각동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배수로로 활용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학술적, 기술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서울 중구의 문화유산 - 와룡묘
    와룡묘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으로, 조선 시대에 건립되어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으며, 제갈량상, 관우상, 단군상 등을 모시고 한국 토속 신앙과 결합된 무속 신앙의 형태를 띤다.
  • 서울 중구의 문화유산 - 숭례문
    숭례문은 1398년에 완공된 조선 시대 서울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으나 방화 사건으로 훼손되어 복구되었고, 다양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 보신각
    보신각은 조선 시대 한양 도성의 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던 종루에서 유래하여 고종이 이름을 내린 종각으로, 현재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어 매년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며 한국 전통 범종의 의미를 공유한다.
  •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 낙성대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의 탄생 설화에서 유래된 '별이 떨어진 곳'이라는 뜻의 관악구 지명으로, 안국사, 낙성대 공원, 삼층석탑 등의 유적지가 있으며 역사적 근거에 대한 논란과 함께 서울대학교를 은유하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 토목공학 - 마추 픽추
    페루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마추픽추는 15세기 잉카 제국 시대에 건설되어 80년간 사용된 후 버려진 유적으로, 1911년 하이럼 빙엄 3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후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라 불리며 세계적인 관광 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토목공학 - 환경공학
    환경공학은 인류가 환경 조건을 수정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하수도 시스템에서 비롯되어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와 함께 독립된 학문 분야로 발전했으며, 다양한 학문 분야와 연계되어 있다.
남대문로 지하배수로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이름남대문로 지하배수로
한자 표기南大門路 地下排水路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2가 40-1 외
상세 정보
유형기념물
지정 번호39
지정일2014년 7월 3일
면적1,048.2 m²

2. 지정 사유

서울시의 근대화 과정 및 도시 발달사를 상징하고, 근대 토목사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며, 전국적으로 희귀하게 유존하는 유산이라는 점에서 학술적‧기술적‧문화적 가치가 크다. 아울러 현재까지도 배수로로 활용될 만큼 보존 상태도 양호하므로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한다.[1]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전국적으로 희소한 문화유산이자 서울시의 근대화 과정 및 도시 발달사를 상징하는 유산으로서 중요한 가치와 의의가 있으며, 근대 토목사의 발전 단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어 근대 문화유산의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학술적‧기술적‧문화적 가치가 높다.[1]

3. 구조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한국은행 사거리에서 을지로입구 방향의 남대문로 구간, 소광통교 구간, 삼각동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남대문로 구간은 명동지하상가 공사와 지하철 2호선 공사로 일부 구간이 현대식 하수관으로 바뀌었다. 소광통교 구간은 길이 27.3m, 폭 6m의 석축 구조이며, 석축 사이에는 배수로와 평행한 방향으로 2개의 교각 구조물이 있다. 남쪽 석축면에는 남대문로 구간과 만나는 석재 입구가 있다. 삼각동 구간은 소광통교 구간 북쪽 석축면에 연결되는 배수로로, 길이 약 20m로 추정되며 벽돌로 벽면을 쌓고 화강석으로 천정을 마감했다.[1]

3. 1. 남대문로 구간

한국은행 사거리에서 소광통교까지 약 550m 구간이다. 명동지하상가 공사와 지하철 2호선 공사로 일부 구간은 현대식 하수관으로 교체되었다. 명동지하상가 남쪽의 상류구간과 북쪽의 하류구간으로 나뉘며, 명동지하상가 공사로 현대식 하수관으로 바뀐 약 112m와 지하철 2호선 공사로 현대식 콘크리트 흄관으로 교체된 약 44m를 제외한 약 394m가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1]

3. 1. 1. 남대문로 하류구간

롯데백화점 부근부터 남대문로를 따라 남대문로9길까지이며 소광통교 구간과 98゚의 각도로 만난다. 소광통교 구간과 만나는 60.1m구간에서 상류 쪽 조사 종점의 천정은 지면으로부터 1.24m 아래에 위치하며, 하류 쪽 종점은 지면으로부터 1.15m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바닥의 경사도는 0.73%이다. 소광통교 구간과 만나는 입구는 석재로 축조되어 있으며,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구간 약 44m는 현대식 배수로로 교체되어있고 나머지는 조적식 배수로이다.

관로의 내경은 1.47m이며 상부는 벽돌 37장으로, 하부는 잔자갈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뒷채움 역시 잔자갈 콘크리트로 하였는데, 단면이 노출된 일부의 경우 뒷채움의 두께는 180mm로 측정되었다. 벽돌 규격은 가로 210mm~220mm, 세로 105mm~110mm, 높이 60mm이다.

이 구간에는 배수로 일부분에 구멍을 내어 옆에 별도로 만든 조적식 맨홀이 확인된다. 하부는 벽돌 길이쌓기와 마구리쌓기를 번갈아 박스 형태를 만들었으며, 상부는 말각 천정형식으로 지름을 줄여가며 원형을 만들었다. 하부 맨홀 박스는 820X710mm 규모이며, 벽돌을 이용한 것으로 볼 때 배수로와 조성 시기가 같은 것으로 추정되나, 지선과 점검구의 이어지는 마감 처리가 거칠고 배수로 일부를 파괴하고 만든 것을 볼 때 지선이 완성된 후에 시설하였을 가능성도 있다.[1]

3. 1. 2. 남대문로 상류구간

한진건물 앞에 위치하며 지면에서 1.1m~1.12m 아래에 있다. 관로의 내경은 1.38m이다. 상부는 벽돌 34장으로, 하부는 콘크리트로 조성되었다. 상류와 하류는 같은 지선으로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공법으로 한 이유는 불명이다. 특히 이 두 가지 다른 공법의 배수로가 만나는 구간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는 해당 구간이 명동지하상가로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다.[1]

3. 2. 소광통교 구간

길이 27.3m, 폭 6m의 석축 구조이다. 석축 사이에는 배수로와 평행한 동서 방향으로 2개의 교각 구조물이 벽처럼 세워져 있다. 남쪽 석축면의 남대문로 구간과 만나는 부분에는 석재로 입구를 만들었으며, 북쪽면에는 삼각동에서 이어지는 벽돌식 출수구가 연결되어 있다.[1]

석축은 가로와 세로가 모두 300mm인 견치석을 이용하여 6단을 바른층으로 약 4~5゚ 들여쌓았다. 줄눈은 10mm 내외의 막힌줄눈 형식으로 하였다. 바닥과 천정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석축과 천정이 만나는 모서리는 콘크리트로 약 45゚로 마무리하였다.

배수로와 평행한 동서방향으로 세워진 2개의 콘크리트 교각구조물은 상부 410mm, 하부 230mm 내외이며, 간격은 1.9m~2.09m이다.

석축 남쪽면에는 조적으로 된 남대문로 하류구간과 만나는 입구가 있는데, 석재를 이용하여 원형으로 축조하였다. 총 18개의 사다리꼴로 다듬어진 석재를 이용하였으며 내경은 약 1.53m이다. 석재는 하부폭 248mm~273mm, 상부폭 333mm~336mm, 높이 253mm~297mm이며, 깊이는 547mm~882mm이다. 석재의 뒷길이는 벽돌로 구성된 상부와 만나는 곳은 610mm 내외이며, 콘크리트로 된 하부와 만나는 곳은 860mm 내외로 달리하였으며, 뒤로 기울여 쌓아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다. 홍예석과 벽돌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으로 보아 동일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북쪽면에는 삼각동에서 소광통교로 이어지는 벽돌식 출수구가 연결되어 있으며, 입구의 크기는 가로 259mm, 세로 338mm이다.[1]

3. 3. 삼각동 구간

삼각동 구간은 소광통교 구간 북쪽 석축면에 연결되는 배수로로 길이는 약 20m로 추정된다. 벽면은 벽돌로 쌓았으며, 천정은 화강석으로 마감되어 있다.[1] 배수로 바닥에서 1.22m 높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의 크기는 가로 259mm, 세로 338mm이다. 내부 폭은 400mm, 높이는 벽돌 14장으로 835mm이다.

배수로 벽면은 길이방향과 마구리방향으로 번갈아 쌓아 만들었으며 천정은 석재로 되어 있다. 입구는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있어 최초 축조 당시의 원형을 확인할 수는 없다. 입구 정면에서 좌측으로 360mm 떨어진 지점에 원형 콘크리트관이 있는데, 입구를 보강할때 같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1]

4. 조성 시기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적벽돌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철근 콘크리트관을 사용하기 시작한 1918년 이전, 하수 개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되지 못했던 1915년까지가 조성 시기의 하한선으로 추정된다.[1]

1902년 전후로는 덕수궁 중화전 중건 시기에 석재를 사용한 전통이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1] 그러나 1907년 탁지부 연와(煉瓦, 벽돌)제조소가 설립되고 한성위생회가 등장하면서 적벽돌 배수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1]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1912년에 제작된 지적원도에서 확인되지 않는다.[1] 또한, 전체가 적벽돌로 만들어진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와는 달리 하부 절반에 콘크리트가 사용되어 조성 시기가 더 늦은 것으로 보인다.[1] 따라서 남대문로 지하배수로와 서울광장 지하배수로는 1907년에서 1915년 사이에 조성되었으며, 이 중 서울광장 지하배수로가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1]

5. 역사적 가치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조선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지는 토목 기술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배수로의 윗부분은 붉은 벽돌로, 아랫부분은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하수관이 닳는 것을 막는 기술적 방식을 채택하였다.[1] 이는 1918년 경성 제1기 하수개수공사 이후 서울시 지하배수로에 콘크리트를 보강한 철근 콘크리트관을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붉은 벽돌에서 콘크리트관으로 재료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근대 시기 상하수도 시설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근대 도시 기반 시설로서 상하수도 시설이 가진 토목 기술적, 도시 경관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전국적으로 희귀한 문화유산이며, 서울시의 근대화 과정과 도시 발달사를 상징하는 유산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근대 토목 기술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고, 현재까지도 배수로로 사용되고 있어 근대 문화유산의 활용 사례로도 꼽힌다. 이러한 희소성과 역사적, 기술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