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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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고려 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계승하여 조선 시대에 건립된 석탑이다. 늦어도 1493년에 건립되어 1628년에 중수되었으며, 왕실의 발원으로 세워졌다. 기단부는 불상대좌 양식, 탑신부는 목조건축 양식, 상륜부는 팔작기와지붕 형태를 보여주는, 조선 시대 유일의 팔각오층석탑이다. 1957년과 1970년 해체 수리 과정에서 불상이 발견되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지역의 뛰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며,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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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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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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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南陽州 水鐘寺 八角五層石塔)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1808 |
지정일 | 2013년 9월 4일 |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로433번길 186-0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수종사 |
문화재청 ID | 12,18080000,31 |
추가 정보 (구 유형문화재 정보) | |
문화재 분류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구) | 22 |
지정일 (구) | 1972년 5월 4일 |
해제일 (구) | 2013년 10월 23일 |
문화재청 ID (구) | 21,00220000,31 |
2. 역사
수종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조선 세조 5년(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이나 북한 지역 향산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과 같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 초기 석탑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탑의 형태는 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불상의 팔각연화대좌와 같은 형식의 기단이 올려져 있다. 팔각 대석의 각 면을 2등분하여 장방형의 액(額)을 새기고 그 안에 안상(眼象)을 표현하였다. 같은 형태의 안상은 기단의 받침과 탑신 받침에도 통일되게 새겨져 있다. 기단부는 상대 앙련석과 하대 복련석에 16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연판(蓮瓣)에는 고려 중기부터 유행했던 화려한 꽃머리 장식이 새겨져 있고, 팔각 중대석에는 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隅柱)가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 5층의 탑신 역시 팔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가 새겨져 있고 옥개석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 기둥, 옥개받침 등은 목조 건축을 석재로 옮긴 모습을 잘 나타낸다.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이 조각된 복발과 보주가 올려져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어 조선시대에 건립되었으며, 출토된 사리장엄과 명문을 볼 때 왕실 발원의 석탑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기단부는 불상대좌의 양식이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며, 상륜부는 팔작기와지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현재까지 조사된 조선시대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이다. 건립연대가 확실하고, 각 부재가 완전하게 유지된 조선시대 유일의 팔각오층석탑으로서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충분하다.
2. 1. 건립 배경
석탑은 원래 사찰 동편의 능선 위에 세워져 있었으며, 이 위치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모이는 양수리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여 경관이 우수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1957년 해체수리 때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상이 발견되었고, 1970년 이전 때에는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발견되었다.함께 발견된 기록을 통해 이 불상들 가운데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1479)가 발원하여 조성하고, 성종의 후궁들이 1493년에 납입했다고 하는 불상 2구(석가여래 1구와 관음보살 1구)와 인목대비의 발원으로 조성된 금동불·보살상들, 1628년에 조각승 성인(性仁)이 조성한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이 확인되어, 석탑 건립의 하한은 1493년이며 1628년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다.
2. 2. 중수 및 이전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1957년 해체 수리 시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상이 발견되었고, 1970년 이전 시에는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발견되었다.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석탑 건립의 하한은 1493년이며 1628년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석탑은 원래 사찰 동편의 능선 위에 세워져 있었으며, 이 위치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모이는 양수리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우수한 곳이었다. 현재는 석조부도, 소형석탑과 함께 대웅전 옆으로 옮겨져 있다.
3. 구조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이나 북한 지역 향산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과 같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 초기 석탑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지대석 위에 팔각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불상의 팔각연화대좌와 같은 형식의 기단을 올렸다. 5층의 탑신, 옥개석,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3. 1. 기단부
지대석 위에 팔각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불상의 팔각연화대좌와 같은 형식의 기단을 올렸다. 팔각 대석 각 면을 2등분하여 장방형 액(額)을 새기고 그 안에 안상(眼象)을 표현하였다. 기단 받침과 탑신 받침에도 같은 형태의 안상이 새겨져 있다. 상대 앙련석과 하대 복련석에는 16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고, 연판에는 고려 중기부터 유행한 화려한 꽃머리 장식이 새겨져 있다. 팔각 중대석에는 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隅柱)가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3. 2. 탑신부
5층의 탑신 역시 팔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고 옥개석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 기둥, 옥개받침 등은 목조 건축을 석재로 옮긴 모습을 잘 나타낸다.3. 3. 상륜부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이 조각된 복발과 보주가 올려져 있다.[1]4. 특징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이나 북한 지역 향산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과 같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 초기 석탑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1957년 해체수리 시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상이 발견되었고, 1970년 이전 시에는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발견되었다.[1]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서는 명빈 김씨(?-1479)가 발원 조성하고, 성종의 후궁들이 홍치 6년(1493)에 납입했다고 하는 불상 2구(석가여래 1구와 관음보살 1구)와 인목대비(정의대왕대비)의 발원으로 조성된 금동불·보살상들, 숭정원년(1628)에 화원[조각승] 성인(性仁)이 조성한 금동비로자나불좌상(대좌바닥에 명문음각)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석탑 건립의 하한은 1493년이며 1628년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다.[1]
탑의 형태는 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불상의 팔각연화대좌와 같은 형식의 기단이 올려져 있다. 팔각 대석의 각 면을 2등분하여 장방형의 액(額)을 새기고 그 안에 안상(眼象)을 표현하였다. 같은 형태의 안상은 기단의 받침과 탑신 받침에도 통일되게 새겨져 있다. 기단부는 상대 앙련석과 하대 복련석에 16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연판(蓮瓣)에는 고려 중기부터 유행했던 화려한 꽃머리 장식이 새겨져 있고, 팔각 중대석에는 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隅柱)가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 5층의 탑신 역시 팔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가 새겨져 있고 옥개석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 기둥, 옥개받침 등은 목조 건축을 석재로 옮긴 모습을 잘 나타낸다.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이 조각된 복발과 보주가 올려져 있다.[1]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어 조선시대에 건립된 석탑으로 출토된 사리장엄과 명문을 볼 때, 건립 연대는 늦어도 1493년에 건립된 이래 1628년에 중수했음을 알 수 있으며, 왕실 발원의 석탑임도 확인된다. 기단부는 불상대좌의 양식이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며, 상륜부는 팔작기와지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런 형식은 현재까지 조사된 조선시대에 조성된 석탑 중 유일하다.[1]
이처럼 건립 연대가 확실하고, 각 부재가 완전하게 유지된 조선시대 유일의 팔각오층석탑으로서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1]
5. 의의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어받아 조선시대에 건립된 석탑이다. 출토된 사리장엄과 명문을 통해 1493년에 건립되었고 1628년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왕실 발원으로 제작된 석탑이기도 하다. 기단부는 불상 대좌 양식, 탑신부는 목조 건축 양식, 상륜부는 팔작지붕 형태로,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형태이다. 이러한 형식은 현재까지 조사된 조선시대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이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건립 연대가 명확하고, 각 부재가 완전하게 보존된 조선시대 유일의 팔각오층석탑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된다. 왕실 발원으로 제작된 점과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형태는 조선 초기 불교 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참조
[1]
간행물
경기도문화재 지정 해제 고시
http://www.gg.go.kr/[...]
경기도지사
2013-10-23
[2]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http://gwanbo.korea.[...]
문화재청장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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