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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창군 추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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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능창군 추대 사건은 1615년(광해군 7년)에 신경희 등 일부 서인계 인사들이 선조의 서손인 능창군(이전)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혐의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신경희의 옥사'라고도 불립니다.
사건의 발단 및 전개


  • 배경: 광해군은 의심이 많아 왕위 계승 과정에서 선조의 견제와 신하들과의 대립으로 인해 즉위 후 역모 고변만 있으면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옥사를 일으켰습니다. 능창군은 선조의 서손이자, 인빈 김씨의 소생인 정원군의 아들로, 뛰어난 재능과 용모로 인해 '현공자'라 불리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 발단: 익산의 진사 소명국은 수안군수 신경희와 사이가 틀어지자, 신경희가 윤길 등과 함께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했습니다. 소명국은 신경희 등이 능창군을 추대하여 40년간 치평할 임금이라는 점괘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 전개: 광해군은 이 고변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신경희 등을 체포하고 국문했습니다. 소명국의 진술에 따르면, 신경희, 양시우, 김이강, 김정익, 소문진, 오충갑 등이 능창군 추대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 결과: 신경희는 고문 끝에 옥사하였고, 능창군은 강화도 교동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양시우, 소문진, 김정익, 김이강, 오충갑 등은 유배형을 받았습니다.

사건의 성격 및 영향

  • 사건의 성격: 능창군 추대 사건은 대북파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는 오해도 있으나, 실제로는 이이첨을 비롯한 대북 세력이 역모에 몰린 사건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신경희가 이이첨의 사람이었다는 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전에 신경희가 옥사했다는 점 등은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 영향: 이 사건으로 능창군의 아버지 정원군은 충격으로 사망했고, 능창군의 형인 능양군(훗날 인조)은 복수를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훗날 인조반정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추가 정보

  • 능창군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으며, 자결 방법에 대해서는 음독자살, 아궁이에 불을 때어 죽였다는 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 인조는 즉위 후 능창군을 대군으로 추봉하고, 아버지 정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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