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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진자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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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카기 진자부로는 일본의 시민 과학자이자 원자력 반대 운동가로,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탈원전을 주장했다. 그는 원자력자료정보실을 설립하여 원자력 정책을 비판하고, 플루토늄의 위험성을 알리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1995년에는 지진 시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예견했으며, 2000년 대장암으로 사망한 후 그의 유지를 기려 시민과학 기금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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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진자부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97년의 다카기 진자부로
1997년의 다카기 진자부로
본명다카기 진자부로 (高木 仁三郎)
출생1938년 7월 18일
출생지마에바시시, 군마현
사망2000년 10월 8일 (향년 62세)
사망지도쿄도
직업핵화학자
국적일본
수상바른 생활상
학력
출신 학교도쿄 대학 이학부 화학과 졸업
경력
근무지도쿄 대학
기타 정보
웹사이트바른 생활상 웹사이트

2. 생애

다카기 진자부로는 어린 시절 에스페란토에 관심을 가졌고, 미야자와 겐지 문학을 애호했다.[3] 군마 대학 교육학부 부속 중학교 동급생으로 SF 작가 도요타 아리쓰네가 있었다. 『다카기 진자부로 저작집』 등 다수의 저서를 나나쓰모리 서관에서 간행했으며, 당시 사장인 나카자토 히데아키는 다카기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신도쿄 국제공항(현 나리타 국제공항) 건설 반대 운동에도 참여했다.[4]

2011년 7월, TV 아사히의 『선데이 프론트라인』에서 소년기부터 학자의 길을 거쳐 시민 과학자로서 원자력 문제에 반생을 바친 다카기를 회고하는 특집이 방송되었다.[5]

2. 1. 초기 생애

아버지는 개업 의사였다. 어린 시절 별명은 "진자"였으며 에스페란토에 관심을 가졌다.[3]

미야자와 겐지 문학을 좋아했다. 군마 대학 교육학부 부속 중학교 시절 동급생으로 SF 작가 도요타 아리쓰네가 있다.

2. 2. 학문 및 연구 활동


  • 1961년, 일본원자력사업(일본원자력사업종합연구소 핵화학 연구실)에 근무하였다.
  • 1965년, 도쿄 대학 원자핵 연구소 조수가 되었다.
  • 1969년, 도쿄도립대학 이학부 조교수가 되었다.
  • 1972년, 막스 플랑크 핵물리 연구소 객원 연구원이었다.
  • 1973년, 도쿄도립대학을 퇴직하였다.
  • 1974년, 플루토늄 문제를 생각하는 자주 그룹 "플루토늄 연구회"를 조직하였다.
  • 1975년, 원자력자료정보실 전담 담당자가 되었고, 이후 대표를 맡았다.
  • 1988년, 반원전 운동 전국 집회 사무국장이었다.
  • 1992년, 다다 요코 반권력 인권상을 수상하였다.
  • 1993년, 산케이 아동출판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 1997년, 라이트 라이블리후드상을 수상하였다.
  • 2000년, 도쿄도 주오구의 세이로카 국제병원에서 대장암으로 사망(향년 62세)[2]
  • 2001년, 그의 뜻을 기려 다카기 진자부로 시민과학 기금이 NPO 법인화되었다.

2. 3. 탈원자력 운동

다카기 진자부로는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해 자유로운 입장에서 분석하고 제언하기 위해, 원자력 업계로부터 독립된 싱크탱크인 원자력자료정보실을 설립하여 대표를 맡았다.

그는 원자력 발전의 지속 불가능성과 플루토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특히 지진 발생 시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예견하고 지진 대비책의 필요성을 호소했으며, 탈원전을 주장하며 탈원자력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다.[4]

원자력 발전에 대한 불안감과 관심이 높아진 1980년대 말에는 매스미디어에서도 자주 발언했다.

2. 4. 수상 및 사망


  • 1992년, 다다 요코 반권력 인권상을 수상했다.[2]
  • 1993년, 산케이 아동출판 문화상을 수상했다.[2]
  • 1997년, 라이트 라이블리후드상을 수상했다.[2]
  • 2000년, 도쿄도 주오구의 세이로카 국제병원에서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2세)[2]
  • 2000년 12월, 그의 유지를 기려 다카기 진자부로 시민과학 기금이 설립되었고, 이듬해 2001년에 NPO 법인화되었다.[2]

3. 지진과 원자력 재해에 대한 경고

다카기 진자부로는 1995년 일본물리학회지에 기고한 글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원자력 재해 위험성을 경고했다.[6] 그는 지진으로 외부와의 연락, 전력, 물 공급이 장기간 끊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빠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후쿠시마 제1원전의 노후화와 집중 입지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후 실제로 여러 원자력 발전소에서 외부 전원 문제, 비상 발전기 고장 등 멜트다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고들이 발생하면서, 다카기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3. 1.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의 연관성

1995년 일본물리학회지에 기고한 『핵 시설과 비상사태: 지진 대책 검증을 중심으로』[6]에서 다카기 진자부로는 '지진'과 '쓰나미'가 덮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원자력 재해'를 예견하며,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지진으로 인해 외부와의 연락 및 전력, 물 공급이 장기간 끊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후쿠시마 제1원전의 노후화로 인한 내진성 저하를 지적하며, '''1995년 당시''' 이미 '폐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후쿠시마 하마도리 지역의 원전 '집중 입지'에 대해서도 큰 지진 발생 시 대처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다카기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상황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 지진과 쓰나미 동시 발생
  • 원자로 용기나 1차 냉각수 주 배관의 직접적 손상이 없더라도 급수 배관 파단, 긴급 노심 냉각 계통 파괴, 비상용 디젤 발전기 기동 실패 등이 겹칠 경우 멜트다운 및 대량의 방사능 방출 가능성
  • 노후 원전이 강진에 노출될 경우 '공통 원인 고장'(하나의 원인으로 여러 기기가 동시 고장)으로 인한 냉각재 상실 사고 발생 가능성
  • 원전 부지 내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시설 및 집중 입지(후쿠시마 하마도리, 후쿠이현 와카사, 니가타현 가시와자키,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 등)의 위험성
  • '원전은 지진에 안전하다'는 낙관론에 기반한 국가 및 전력 사업자의 안일한 대처
  • 통상산업성과 사업자 모두 원전 안전성 재검토 및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교훈을 외면
  • '원전은 파괴되지 않는다'는 명분 아래 원전 피해 발생 시 긴급 대응 체계 및 노후 원전 대책 마련 부족
  •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한 원전 안전 및 방재 대책 논의 필요


이후 이바라키현 도카이 제2원전에서 외부 전원 및 비상 발전기 장애, 미야기현 오나가와 원전에서 외부 전원 차단으로 인한 연료 풀 냉각 중단, 2005년 가동된 아오모리현 히가시도리 원전에서 외부 전원 차단 및 비상용 디젤 발전기 연료 누출 등 멜트다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다카기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4. 저술 활동 및 시민 과학 운동

다카기 진자부로는 『다카기 진자부로 저작집』(전 12권) 등 다수의 저서를 나나쓰모리 서관에서 간행했다. 나나쓰모리 서관의 나카자토 히데아키 사장(당시)은 다카기에게 가르침을 받았다.[3]

신도쿄 국제공항(현 나리타 국제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에도 참여했다.[4]
주요 저서

출판 연도제목출판사비고
1976년현대의 박물지 플루토늄의 불꽃현대 교양 문고
1979년과학은 변한다 거대 과학에 대한 비판동양경제신보사
1980년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의 충격 1979년 3월 28일 그리고…사회사상사
1981년지금, 평상복 차림의 과학자로서 생각하는 것얼터너티브를 생각하는 회
1981년위기의 과학아사히 신문사
1981년미·소 핵전쟁이 일어난다면이와나미 서점니시자와 노부마사와 공저
1981년플루토늄의 공포이와나미 신서ISBN 400420173X
1982년원소 소사전이와나미 주니어 신서
1982년나의 내면의 생태학 사는 장소에서의 변혁농산어촌 문화 협회
1983년핵 시대를 살아간다 생활 사상으로서의 반핵고단샤 현대 신서
1984년나에게서 보면후쿠인칸 서점가타야마 겐과 공저
1984년소수파의 힘을 재검토한다일본은 이걸로 괜찮은가! 시민 연합
1985년단위 소사전이와나미 주니어 신서
1985년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쿠스이샤
1986년과학과의 사귐가와이 출판
1986년에너지를 생각한다이와사키 서점
1986년숲과 마을의 사상 대지에 뿌리내린 문화로나나츠모리 서관마에다 토시히코와 공저
1986년체르노빌 최후의 경고나나츠모리 서관
1986년유럽 반원전 여행원자력 자료 정보실
1986년원전 사고 일본에서는?이와나미 북릿2011년 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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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과학은 변한다 거대 과학에 대한 비판현대 교양 문고
1987년당신을 덮치는체르노빌 계속 퍼져나가는 방사능 오염우주는 끝없는 회사
1987년포기에서 희망으로 사는 장소로부터의 운동나나츠모리 서관하나자키 코헤이와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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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미야자와 겐지를 둘러싼 모험 물과 빛과 바람의 생태학사회사상사ISBN 4390603892
1996년몬주 사고가 향하는 곳은?이와나미 북릿
1998년이대로라면 「20년 후의 에너지」는 이렇게 된다카탈로그 하우스
1998년MOX 종합 평가나나츠모리 서관
1999년시민의 과학을 목표로아사히 신문사
1999년시민 과학자로서 산다이와나미 신서
2000년젊은이들이 본 20년째의 스리마일 섬 원전원자력 자료 정보실이즈 히데에와 공저
2000년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일본을 멸망시키는 아홉 개의 주박코분샤→고단샤+α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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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다카기 진자부로 셀렉션이와나미 현대 문고


4. 1. 시민 과학

다카기는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해 자유로운 견지에서 분석 및 제언을 하기 위해, 원자력 업계에서 독립한 싱크탱크인 원자력자료정보실을 설립하여 대표를 맡았다.[3]

원자력 발전의 지속 불가능성, 플루토늄의 위험성 등에 대해 경고했다. 특히 지진 시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예견하고 지진 시 대책의 필요성을 호소했으며, 탈원전을 주장하며 탈원자력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불안감과 관심이 높아진 1980년대 말에는 매스미디어에서의 발언도 많았다.

2011년 7월, 『선데이 프론트라인』(TV 아사히)에서 소년기부터 학문의 길을 거쳐 시민 과학자로서 원자력 문제에 반생을 바친 다카기를 회고하는 특집이 편성되었다.[5]

참조

[1] 웹사이트 Jinzaburo Takagi (Japan) http://www.rightlive[...] Right Livelihood Award 2011-02-19
[2] 웹사이트 史上初の大調査 著名人100人が最後に頼った病院 あなたの病院選びは間違っていませんか https://gendai.media[...] 現代ビジネス 2011-08-17
[3] 서적 市民科学者として生きる 岩波新書 1999
[4] 웹사이트 鼎談 高木仁三郎さんを追悼して 2 三里塚の出会い http://www1.jca.apc.[...] 2010-11-03
[5] 방송 2011-07-03
[6] 논문 核施設と非常事態 : 地震対策の検証を中心に https://doi.org/10.1[...] 日本物理学会
[7] 웹인용 鼎談 高木仁三郎さんを追悼して 2 三里塚の出会い http://www1.jca.apc.[...] 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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