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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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희는 영제 시대 회계군 태수의 딸로, 소제 유변의 후궁이었다. 동탁에 의해 소제가 폐위되자, 유변은 죽음을 앞두고 당희에게 춤을 추게 하고 노래를 부르며 마지막을 함께 했다. 이후 당희는 이각에게 포로로 잡혔으나, 굴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고, 헌제의 존경을 받아 홍농왕비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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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희 | |
---|---|
기본 정보 | |
배우자 | 유변, 홍농왕 |
인물 정보 | |
이름 | 당희 (唐姬) |
아버지 | 당모 (唐瑁) |
작위 | 홍농왕비 (弘農王妃) |
생몰년도 | 미상 |
활동 시기 | 190년대 추정 |
2. 생애
당희는 영천군 출신(潁川郡; 현재의 쉬창 근처, 허난성)으로, 아버지 탕마오(唐瑁)는 영제 시대(재위 168년 ~ 189년)에 회계군의 태수를 지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당희는 영제의 장남이자 뒤를 이은 황제인 소제(少帝)의 후궁이 되었다.
189년 5월 13일 영제가 사망한 후, 유변은 5월 15일 새로운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해 9월 28일 군벌 동탁에 의해 폐위되었고, 그의 이복 동생인 유협(헌제)으로 교체되었다. 폐위된 소제는 홍농왕(弘農王)으로 불리며 가족과 함께 가택 연금되었다.
190년 봄, 군벌 연합은 동탁의 통치로부터 한나라 중앙 정부를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동탁 토벌전을 시작했다. 동탁은 군벌들이 유변을 명분으로 삼아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여, 190년 3월 6일 부하 이유에게 홍농왕을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유변은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천도가 변하니 나는 어찌 이리 어려움을 겪는가!
:만승의 자리 버리고 변방으로 물러나네.
:역신에게 핍박받아 목숨이 연장되지 못하니,
:이제 너를 떠나 영원한 세상으로 가리라!
2. 1. 소제와의 만남과 이별
189년 동탁이 소제를 폐위하여 홍농왕으로 강등시키고, 이듬해 의병이 일어나자 이유를 시켜 짐새의 독을 마시게 하였다. 홍농왕은 마시기를 거부했으나 억지로 독을 마시게 되었다. 이에 홍농왕은 당희 및 궁녀들과 작별하는 술자리를 열었다. 술잔이 돌자 홍농왕은 슬피 노래하며 당희에게 춤을 추라고 했고, 당희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노래했다. 홍농왕은 당희에게 왕비의 몸이니 다른 관리나 백성의 아내가 되지 말고 자존심을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독약을 마셨다.그 뒤 당희는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아버지 당모가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나중에 이각이 장안을 함락시키고 군대를 풀어 약탈할 때 당희를 사로잡았다. 이각은 당희를 자신의 첩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당희는 완강히 거부하였으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가후가 이 사실을 알고 헌제에게 알렸다. 헌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며 조서를 내려 당희를 궁으로 맞아들이고, 홍농왕비(弘農王妃)로 봉했다.
2. 1. 1. 소제와 당희의 노래
唐姬|당희중국어는 소제가 폐위된 후 함께 술을 마시며 이별가를 불렀다. 소제는 슬픈 노래를 부르며 당희에게 춤을 추라고 했다. 당희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꼈고,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네,
:황제의 몸이 되니,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슬프네.
:삶과 죽음의 길이 갈라지니, 이제부터 서로 다름을 보네,
:아, 홀로 남겨진 내 마음 속의 슬픔이여!
노래가 끝나자, 소제는 당희에게 왕비의 몸이니 다른 관리나 백성의 아내가 되지 말고 자존심을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독약을 마셨다.
2. 2. 절개와 저항
189년 동탁이 소제를 폐하여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시켰다가 이듬해 의병이 일어나자, 동탁은 낭중령 이유를 시켜 홍농왕에게 짐새의 독을 마시게 하였다. 홍농왕은 마시기를 거부했으나 억지로 독을 마시게 되었다. 이에 홍농왕은 당희 및 궁녀들과 작별하는 술자리를 열었다. 술잔이 돌자 홍농왕은 슬피 노래하며 당희에게 춤을 추라고 했다. 당희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노래했다. 홍농왕은 당희에게 "왕비의 몸이니 다른 관리나 백성의 아내가 되지 말고 자존심을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독약을 마셨다. 그 뒤 당희는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아버지 당모가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당희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나중에 이각이 장안(長安)을 함락시키고 이각의 군대가 동관(關東) 지역을 약탈할 때 당희를 사로잡았다. 이각은 당희를 자신의 첩으로 삼으려 했지만, 당희는 완강히 거부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후 상서 가후가 이 사실을 알고 상소를 올려 헌제에게 알렸다. 헌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며 조서를 내려 당희를 궁으로 맞아들이고, 농원을 설치해 주었으며, 시중에게 지절(持節)을 보내 홍농왕비(弘農王妃)로 봉했다.
2. 3. 홍농왕비로의 복권
이각이 장안을 함락시키고 군대를 동관(關東) 지역으로 보내 약탈할 때 당희는 사로잡혔다. 이각은 당희를 자신의 첩으로 삼고자 했지만, 당희는 완강히 거부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나중에 상서 가후(賈詡)가 이 사실을 알고 상소를 올려 헌제에게 알렸다. 헌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며 조서를 내려 당희를 맞이하고 농원을 설치해 주었으며, 시중에게 지절(持節)을 보내 홍농왕비(弘農王妃)로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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