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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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발해는 발해 유민이 세운, 발해 부흥 운동 과정에서 건국된 마지막 국가이다. 1116년, 요나라의 동경 유수 소보선을 공격하여 동경성을 장악한 발해 귀족의 후손 고영창이 대원국을 건국하고 황제를 칭하며 융기 원년이라 하였다. 이후 국호를 대발해국으로 고쳤으나, 같은 해 금나라의 공격으로 고영창이 사망하면서 멸망하였다. 대발해 멸망 이후 발해인들은 금나라에서 귀족으로 대우받았으며, 금나라 황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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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발해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현지 이름 | 대발해 |
다른 표기 | 大渤海 |
역사 | |
존속 기간 시작 | 1116년 |
존속 기간 끝 | 1116년 |
이전 국가 | 흥료 |
이후 국가 | 고려 |
수도 | 동경성 |
수도 위치 | 중국 동경 |
언어 | |
공용어 | 발해어 거란어 퉁구스어 |
정치 | |
정부 형태 | 군주제 |
지도자 칭호 | 황제 |
지도자 이름 | 고영창 |
지도 | |
![]() |
2. 역사
1115년 금나라는 1116년 요나라를 정벌하기 전 알로를 시켜 요양을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대발해는 멸망하였다. 대발해는 발해 부흥운동 과정에서 건국된 마지막 나라다.
2. 1. 건국 배경
1115년 요(遼)의 부도(副都)인 동경(東京)의 유수(東京 留守) 소보선(蕭保先)이 엄하고 잔혹해서 변고를 당하자 호부사(戶部使) 대공정(大公鼎)이 곧바로 유수의 일을 대신 맡아보았다.[1]1116년 1월, 발해 귀족의 후손이자 유수의 비장(裨將)인 고영창(高永昌)이 동경 소보처를 토벌하고 옛 발해의 땅인 동경성을 장악했다.[2] 요는 토벌군을 파견해 동경성 탈환을 시도했지만, 고영창은 이를 격퇴하고 대발해 황제에 즉위해 융기(隆基) 원년이라 하였다.[2]
귀덕주(貴德州) 수장(守將) 야율여도(耶律余睹)가 광주발해(廣州渤海)를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고영창에게 귀부하였다.
요 천조제(天祚帝)가 소을설(蕭乙薛)과 고흥순(高興順)을 보내어 고영창을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흥요국 멸망 후, 발해 유민은 독자적인 정권을 잃었지만, 동아시아에서 강대한 세력을 자랑했던 거란족의 쇠퇴에 따라, 여진족과 함께 발해인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1115년, 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금을 건국했다. 완안부의 조상은 발해 왕의 대씨라고 칭하며, 또한 "여진과 발해는 한 가족"이라고 공언하는 등, 문화적으로 미숙했던 여진의 신정권은, 중원 문화에 통달한 발해 출신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2. 2. 건국과 멸망
1115년 요(遼)의 부도(副都)인 동경(東京)의 유수(東京 留守) 소보선(蕭保先)이 엄하고 잔혹해서 변고를 당하자 호부사(戶部使) 대공정(大公鼎)이 곧바로 유수의 일을 대신 맡아보았다.[1]1116년 1월, 발해 귀족의 후손이자 유수의 비장(裨將)인 고영창(高永昌)이 동경 소보처를 토벌하고 옛 발해의 땅인 동경성을 장악했다.[2] 요는 토벌군을 파견해 동경성 탈환을 시도했지만, 고영창은 이를 격퇴하고 대발해 황제에 즉위해 융기(隆基) 원년이라 하였다.[2]
귀덕주(貴德州) 수장(守將) 야율여도(耶律余睹)가 광주발해(廣州渤海)를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고영창에게 귀부하였다.
요 천조제(天祚帝)가 소을설(蕭乙薛)과 고흥순(高興順)을 보내어 고영창을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1115년 건국된 금나라는 1116년 요나라를 정벌하기 전 알로를 시켜 요양을 공격하였다.
대발해는 발해 부흥운동 과정에서 건국된 마지막 나라다. 1116년 1월, 발해 귀족의 후손으로 요나라의 헌상관이었던 고영창이 요나라의 동경유수소보선을 공격하여 동경성(요양)에서 대원국을 건국했다. 거란은 토벌군을 파견하여 동경 탈환을 시도했지만, 고영창은 요나라 군을 격퇴했다. 그 후, 요양에서 국호를 대원국에서 "대발해국"으로 고치고, 황제를 칭하며 연호를 "융기" 원년으로 했다.
같은 해 5월, 금나라의 요양 공격에 패배한 고영창은 금군에 의해 살해되었고, 대발해는 멸망했다.
2. 3. 멸망 이후
1115년, 여진 완안씨의 아골타가 금을 건국했다. 완안부의 조상은 발해 왕의 대씨라고 칭하며, 또한 "여진과 발해는 한 가족"이라고 공언하는 등, 문화적으로 미숙했던 여진의 신정권은 중원 문화에 통달한 발해 출신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했다.[1]1116년 1월, 발해 귀족의 후손이자 유수의 비장(裨將)인 고영창(高永昌)이 동경 소보처를 토벌하고 옛 발해의 땅인 동경성을 장악했다. 요는 토벌군을 파견해 동경성 탈환을 시도했지만, 고영창은 이를 격퇴하고 대발해 황제에 즉위해 융기(隆基) 원년이라 하였다.[1]
귀덕주(貴德州) 수장(守將) 야율여도(耶律余睹)가 광주발해(廣州渤海)를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고영창에게 귀부하였다.[1]
요 천조제(天祚帝)가 소을설(蕭乙薛)과 고흥순(高興順)을 보내어 고영창을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1]
1115년 건국된 금나라는 1116년 요나라를 정벌하기 전 알로를 시켜 요양을 공격하여 대발해는 멸망하였다.[1]
1125년, 금나라는 요 (거란)를 멸망시켰다. 금나라에서 발해인 귀족들은 계속해서 귀족으로 대우받았으며, 대신과 황후를 배출했다. 또한 역대 발해인 왕조의 중심지였던 요양에서는 발해인에 의한 불교 신앙이 지속되었다. 금나라 제4대 황제 해릉왕의 어머니인 대씨는 발해 왕족의 후손이며, 제5대 황제 세종의 어머니인 이씨는 발해 귀족의 후손이었으며, 그 외에도 종실 완안씨와 연관된 발해인들이 존재하여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1]
3. 역대 황제와 연호
4. 한국사와의 관계
1125년, 금나라는 요나라(거란)를 멸망시켰다. 금나라에서 발해인 귀족들은 계속해서 귀족으로 대우받았으며, 대신과 황후를 배출했다. 역대 발해인 왕조의 중심지였던 요양에서는 발해인에 의한 불교 신앙이 지속되었다. 금나라 제4대 황제 해릉왕의 어머니 대씨는 발해 왕족의 후손이며, 제5대 황제 세종의 어머니 이씨는 발해 귀족의 후손이었다. 그 외에도 종실 완안씨와 연관된 발해인들이 존재하여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참조
[1]
서적
고려사, 고려사절요
[2]
웹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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