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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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대아찬(大阿飡)은 신라 시대의 관직 등급 중 하나입니다. 다음은 대아찬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대아찬의 정의 및 특징:
- 신라 17관등 중 제5등에 해당하며, '대아간(大阿干)'이라고도 불립니다.
- 아찬(阿飡)의 상위 관등이며, 파진찬(波珍湌)의 아래 관등입니다.
- 520년(법흥왕 7년) 율령 반포 때 제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진골(眞骨) 이상만이 오를 수 있었으며, 진골만이 참여할 수 있는 화백회의(和白會議)에 참석할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 집사부(執事部)의 중시(中侍)가 될 수 있었습니다.
- 자주색(紫色) 공복(公服)을 입었습니다.
대아찬의 다른 이름:
- 한아찬(韓阿飡)
- 한찬(韓粲)
- 대아간(大阿干)
- 대아찬(大阿餐) - 최치원의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
대아찬 관련 추가 정보:
-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 시대에 제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520년(법흥왕 7년) 율령 반포와 함께 제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 처음으로 대아찬 관등이 추증된 것은 418년에 사망한 박제상입니다.
- 대아찬으로서 활동한 첫 사례는 525년 사벌주 군주로 임명된 이등(伊登)입니다.
- 6두품은 아찬까지 승진할 수 있었지만, 대아찬에는 오를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제약은 6두품의 불만을 야기했고, 나말여초(羅末麗初) 시기 6두품이 호족 세력 및 신왕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 발해 건국 후, 신라는 대조영에게 대아찬 관직을 하사했습니다. 이는 신라가 외부 세력에게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대아찬 관등을 준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대아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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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등 정보 | |
품계 | 17등급 중 제5위 |
신라 기준 | 진골 |
백제 기준 | 달솔 |
고구려 기준 | 대형 |
개요 | |
설명 | 신라의 관등 중 하나이다. |
역할 | 병부령 또는 위화부령 등을 지냈다. |
비고 | 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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