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나르의 아들들의 사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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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그나르의 아들들의 사트르는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그의 아들들의 이야기로, 라그나르가 스웨덴과 덴마크의 왕이 된 후 린드웜을 물리치고 토라 보르가르흐요르트와 결혼하고, 아슬라우그와 재혼하여 뼈 없는 이바르, 우바, 흐비체르크, 눈 속의 뱀 시구르드 등 여러 아들을 얻는 내용이다.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스칸디나비아를 정복하고, 에위스테인 벨리와의 갈등을 겪으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잉글랜드를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이바르는 앨라에게 복수하고 요크를 점령하며, 잉글랜드에 정착하여 분할 통치를 시작한다. 라그나르 사후, 그의 아들들은 스칸디나비아와 잉글랜드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위 계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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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르의 아들들의 사트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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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등장과 초기 생애
시구르드 흐링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스비아인과 데인인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라그나르가 아직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여러 외국의 왕들은 그가 왕국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고 그의 영토를 넘보기 시작했다.[1] 이러한 위기 속에서 라그나르는 이후 영웅적인 행적과 결혼을 통해 점차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져나가게 된다.
2. 1. 토라 보르가르효르트와의 결혼
시구르드 흐링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스비아인과 데인인의 왕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라그나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여러 외국의 왕들은 그가 자신의 영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왕국의 일부를 차지하려 했다.라그나르의 봉신 중 한 명으로 예탈란드의 야를인 헤라두르(Herruðr)가 있었다. 그에게는 토라 보르가르효르트(Þóra Borgarhjǫrtr)라는 매우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헤라두르는 딸에게 작은 린트부름(lindworm, 일종의 용)을 선물로 주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린트부름은 무섭게 자라나 토라가 거주하는 탑을 거대한 몸으로 휘감아 버렸다. 린트부름은 매일 소 한 마리를 먹이로 받아먹으며,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하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탑에 접근하지 못하게 위협했다. 결국 헤라두르는 숨블(sumbl, 연회)에서 이 린트부름을 처치하는 용감한 남자에게 자신의 딸 토라를 아내로 주겠다고 공표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라그나르는 베스테르예틀란드로 향했다. 그는 털로 만든 바지에 타르를 바르고 그 위에 모래를 뿌려 특수한 방호복을 준비했다. 창 한 자루만을 들고 린트부름에게 다가가자, 괴물은 맹독을 내뿜었다. 라그나르는 방패와 자신이 준비한 털옷으로 독을 막아냈고, 재빨리 창을 던져 린트부름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어 마침내 괴물을 쓰러뜨렸다. 이후 그는 뱀의 머리를 베어 사람들에게 자신이 괴물을 처치했음을 알렸다.
이 용맹한 행동 덕분에 라그나르는 약속대로 토라와 결혼할 수 있었으며, 이를 계기로 예탈란드를 기반 삼아 흩어진 자신의 왕국을 다시 통합하고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라그나르와 토라 사이에서는 에리크(Eiríkr)와 아그나르(Agnarr)라는 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고, 아들들이 아직 어렸을 때 토라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 2. 아슬라우그와의 만남과 결혼

라그나르는 첫 아내 토라와의 사이에서 에이리크(Eiric)와 아그나르(Agnarr)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몇 년 뒤 토라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라그나르는 란달린(Randalin)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아슬라우그와 재혼하였다. 아슬라우그는 영웅 시구르드와 발키리 브륀힐드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라그나르와 아슬라우그는 슬하에 이바르 힌 베이늘라우시, 흐비트세르크 라그나르손, 시구르드 오름 이 아우가 세 아들을 낳았다.
3.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들과 그들의 활약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아슬라우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 특히 이바르 힌 베인라우시, 뵤른 야른시다, 흐비트세르크 라그나르손, 시구르드 오름 이 아우가 등은 장성하여 아버지의 명성에 걸맞은 전사가 되고자 했다. 그들은 스칸디나비아 각지를 정복하며 세력을 넓혔고, 이 과정에서 스웨덴의 에위스테인 벨리 왕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복형제인 에이리크와 아그나르의 죽음 및 복수 과정은 하위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아들들이 자신의 도움 없이 복수를 이룬 것에 라그나르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아들들보다 더 위대한 전사임을 증명하고자 단 두 척의 크나르만으로 잉글랜드를 정복하려 했다. 아내 아슬라우그는 잉글랜드 해안에는 랑스킵이 더 적합하다며 만류했지만, 라그나르는 듣지 않고 베스트폴에서 건조한 거대한 크나르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향했다.
잉글랜드에 상륙한 라그나르는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으나, 노섬브리아 왕국의 앨라 왕이 이끄는 대군에게 패배했다. 아슬라우그가 만들어 준 마법의 저고리 덕분에 처음에는 해를 입지 않았으나, 결국 사로잡혀 저고리가 벗겨진 뒤 뱀 구덩이에 던져져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아들들은 복수를 위해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공했다. 이들 중 가장 지략이 뛰어났던 이바르는 섣불리 싸우기보다 외교적 수단을 사용했다. 그는 앨라 왕에게 아버지의 목숨값(웨르겔드)으로 소 한 마리 가죽으로 덮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요구했다. 앨라 왕이 이를 수락하자, 이바르는 소가죽을 가늘고 길게 잘라 넓은 지역을 둘러쌌고, 그곳에 도시를 건설하여 잉글랜드 공략의 교두보로 삼았다. 이곳이 훗날 요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바르는 주변 잉글랜드 군주들과 동맹을 맺으며 세력을 키웠다.
충분한 준비가 되자 이바르는 형제들과 함께 앨라 왕을 공격했다. 과거 이바르와 동맹했던 많은 앵글로색슨 군주들은 결국 동족의 편에 섰지만,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앨라 왕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앨라 왕을 잔혹한 블로도른 형벌에 처했다.
이후 이바르는 그의 선조들(이바르 인 비드파드미, 시구르드 흐링그)이 다스렸던 잉글랜드 북동부 지역의 왕이 되었으며, 에드문드 순교왕을 살해하고 그의 영토까지 차지했다.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웨일스, 프랑스, 이탈리아까지 원정하여 루나 시를 약탈하기도 했다.
스칸디나비아로 돌아온 아들들은 정복한 영토를 나누어 가졌다.
아들 | 주요 통치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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뵤른 야른시다 | 웁살라와 스웨덴 |
시구르드 오름 이 아우가 | 셸란, 스코네, 할란드, 아그데르, 비켄 일부, 린데스네스, 오플란 주 대부분 |
흐비트세르크 라그나르손 | 레이드고탈란드(유틀란트), 뤼초프단넨베르크 |
시구르드 오름 이 아우가는 앨라의 딸 블라에야(Blaeja)와 결혼하여 하르타크누트를 낳았다. 하르타크누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늘날 덴마크 지역의 상당 부분을 다스렸으나, 노르웨이의 비켄에서는 반란이 일어나 영토를 잃었다. 하르타크누트의 아들인 고름은 역사적으로 실존이 확인된 최초의 덴마크 군주로 여겨지지만, 사가에서는 조상들만큼 현명하지는 못했다고 평가된다.
3. 1. 스칸디나비아 정복 활동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성장하여 아버지의 명성에 걸맞게 위세를 떨치고자 여러 지역으로 원정을 떠났다. 그들은 셸란, 레이드고탈란드, 고틀란드, 욀란드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작은 섬들을 차례로 정복하며 세력을 넓혔다. 아들들 중 가장 뛰어나고 지략이 뛰어난 이바르가 이들의 지도자 역할을 맡았으며, 덴마크의 레이레에 근거지를 마련했다.한편, 라그나르는 아들들의 세력이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경계하여 에이스타인 벨리를 스웨덴의 왕으로 세우고, 아들들로부터 스웨덴을 지키도록 명했다. 어느 여름, 라그나르가 발트해 지역에서 약탈 활동을 벌이는 동안, 그의 아들 에릭과 아그나르는 함대를 이끌고 스웨덴의 멜라렌 호로 들어갔다. 그들은 감라 웁살라에 사자를 보내 에이스타인 왕에게 회담을 요청했고, 에이스타인이 자신들의 봉신이 될 것과 그의 딸 보르힐드를 에릭의 아내로 내어줄 것을 요구했다.
에이스타인은 스웨덴의 부족장들과 이 문제를 논의한 끝에, 에릭과 아그나르의 요구를 거부하고 그들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스웨덴 군대는 수적으로 우세했으며, 이어진 격렬한 전투 끝에 아그나르는 전사하고 에릭은 생포되었다.
에이스타인은 전투 후 평화를 원하여 에릭에게 자신의 딸과의 결혼은 물론, 원하는 만큼의 웁살라 외드(스웨덴 왕실의 재정을 지원하는 영지)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에릭은 패배의 치욕 속에서 더 이상 살기를 원치 않는다며, 전사자들의 시신 위에 창을 세워 자신을 꿰뚫어 죽여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 소식이 셸란에 있던 아슬라우그와 그녀의 다른 아들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즉시 죽은 형제들의 복수를 다짐했다. 아슬라우그는 스스로를 '란달린'이라 칭하며 1,500명의 전사를 이끌고 육로로 진격했고, 그녀의 아들들은 함선을 이끌고 스웨덴으로 향했다. 오랜 전투 끝에 에이스타인 왕은 죽음을 맞이했고, 에릭과 아그나르의 복수는 이루어졌다.
3. 2. 에위스테인 벨리와의 갈등
라그나르는 아들들이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경계하여, 에위스테인 벨리를 스웨덴의 왕으로 임명하고 아들들로부터 스웨덴을 지키도록 하였다.어느 여름, 라그나르가 발트해 지역에서 약탈을 벌이는 동안 그의 아들 에릭과 아그나르는 멜라렌 호로 향했다. 그들은 감라 웁살라에 있는 에위스테인에게 사자를 보내 만남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에위스테인에게 자신들의 봉신이 될 것과 그의 딸 보르힐드를 에릭의 아내로 내어줄 것을 요구했다. 에위스테인은 스웨덴 족장들과 상의한 끝에, 이 요구를 거부하고 에릭과 아그나르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에위스테인의 군대와의 격렬한 전투 끝에, 아그나르는 전사하고 에릭은 포로로 사로잡혔다. 에위스테인은 평화를 원하여 에릭에게 자신의 딸 보르힐드와의 결혼과 원하는 만큼의 웁살라 외드(스웨덴 군주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왕실 영지 네트워크)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에릭은 이러한 패배 이후 삶을 이어갈 수 없다며, 전사자들 위에 세워진 창끝에 자신을 꿰뚫어 죽여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 소식이 셸란에 있는 아슬라우그와 그녀의 아들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죽은 형제들의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아슬라우그는 자신을 란달린(Randalin)이라 칭하며 1,500명의 전사를 이끌고 육로로 진격했고, 그녀의 아들들은 함대를 이끌고 스웨덴으로 향했다. 오랜 전투 끝에 에위스테인은 전사했고,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마침내 에릭과 아그나르의 복수를 이루었다.
4.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잉글랜드 원정과 죽음
아들들이 아버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에 버금가는 명성을 쌓자, 라그나르는 자신이 아들들보다 더 위대한 전사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특히 아들들이 스웨덴에서 멋대로 내전을 벌이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복수한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는 단 두 척의 크나르만으로 잉글랜드를 정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왕비 아슬라우그는 잉글랜드 해안선을 랑스킵 없이 크나르만으로 공략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만류했지만, 라그나르는 듣지 않았다.
라그나르는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하여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그러나 노섬브리아 왕국의 왕 앨라는 이 소식을 듣고 라그나르의 군대를 압도하는 대군을 동원하여 맞섰다. 전투 결과 라그나르는 패배하고 포로로 잡혔다. 그는 아슬라우그가 만들어 준,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는 마법의 저고리를 입고 있었으나, 결국 뱀 구덩이에 던져져 최후를 맞이했다. 뱀들이 저고리 때문에 그를 물지 못하자, 앵글인들이 저고리를 벗긴 후에야 뱀에 물려 죽었다고 전해진다. 라그나르의 죽음은 이후 그의 아들들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복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4. 1. 잉글랜드 원정의 배경과 과정
노섬브리아의 왕 앨라는 라그나르의 군대가 약탈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대규모 군대를 소집하여 격파했다. 라그나르는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는 비단 재킷을 입고 있었으나, 결국 포로로 잡혀 뱀 구덩이에 던져졌다. 뱀들이 옷 때문에 그를 물지 못하자, 영국인들은 그의 옷을 벗겼고 라그나르는 뱀에 물려 죽음을 맞이했다.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잉글랜드를 공격했다. 그러나 아들 중 이바르는 영국 군대의 규모가 너무 크다고 판단하여 전투를 망설였으며, 패배하여 빈손으로 돌아갈 것을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이바르는 잉글랜드에 남아 앨라 왕에게 베르겔드(배상금)를 요구하며, 형제들에게 보여줄 보상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바르는 앨라 왕에게 교묘한 제안을 했는데, 소 가죽 하나로 덮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소 가죽을 매우 가늘고 긴 끈으로 잘라내어, 당시 노섬브리아의 수도였던 요크의 기존 요새를 둘러쌀 만큼 넓은 지역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바르는 잉글랜드 내 여러 부족장들과 동맹을 맺으며 세력을 키웠다.
기반을 다진 이바르는 형제들에게 다시 잉글랜드를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전투가 벌어지자 이바르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잉글랜드 부족장들은 라그나르의 아들들 편에 서서 싸웠다. 결국 앨라 왕은 포로로 사로잡혔고,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복수로 그에게 피의 독수리 형벌을 집행했다.
4. 2. 앨라와의 전투와 최후
노섬브리아의 왕 앨라는 라그나르 군대의 약탈 소식을 듣고 압도적인 군세를 소집하여 라그나르의 군대를 격파했다. 당시 라그나르는 아슬라우그가 만들어 준 비단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어떤 무기로도 이를 뚫을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그는 포로로 사로잡혀 뱀 구덩이에 던져졌다. 그러나 뱀들이 그의 몸을 물지 못하자, 영국인들은 라그나르의 옷을 벗겼고, 그제서야 뱀들이 그를 물어 죽였다.5. 라그나르의 아들들의 복수와 잉글랜드 정착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는 크나르 두 척만으로 잉글랜드를 정복하려 했으나, 노섬브리아 왕국의 앨라 왕이 이끄는 압도적인 군대에 패배하였다.[1] 라그나르는 아슬라우그가 만들어 준 마법의 저고리 덕분에 상처를 입지 않았으나, 결국 사로잡혀 뱀 구덩이에 던져졌다. 뱀들이 저고리를 물지 못하자 앵글인들은 저고리를 벗겼고, 그제야 라그나르는 뱀에 물려 사망했다.[1]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잉글랜드를 침공했다. 그러나 장남 이바르는 잉글랜드 군세가 강력하다고 판단하여 즉각적인 전투를 피했다. 그는 패배할 경우 고향으로 도망쳐야 할 상황을 우려하여 신중한 접근을 택했다.[1] 이바르는 앨라 왕에게 아버지의 목숨값으로 소 한 마리 가죽으로 덮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요구했다. 앨라 왕이 이를 수락하자, 이바르는 소가죽을 매우 가늘고 길게 잘라내어 넓은 지역을 둘러쌌고, 그곳에 도시를 건설할 기반을 마련했다. 이 도시는 훗날 요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1] 이바르는 이 거점을 중심으로 잉글랜드 내 여러 세력과 동맹을 맺으며 영향력을 키웠고, 마침내 많은 군장들이 이바르와 그의 형제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되었다.[1]
기반을 다진 이바르는 형제들에게 앨라 왕을 공격할 것을 촉구했다. 전투가 벌어지자 이바르는 형제들의 편에 섰고, 이전에 동맹을 맺었던 앵글인 군장들 다수도 이바르를 지지했다. 결국 앨라 왕은 패배하여 사로잡혔고,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그를 블로도른 형벌에 처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했다.[1]
이후 이바르는 그의 선조들(이바르 인 비드파드미, 시구르드 흐링그 등)이 다스렸던 잉글랜드 북동부 지역의 왕이 되었다.[1] 또한 그는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의 에드문드 순교왕을 고문하여 살해하고 그의 영토를 차지하였다.[1]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웨일스, 프랑스, 이탈리아까지 원정하여 노략질을 계속했으며, 이후 스칸디나비아로 돌아가 정복한 영토를 나누었다.[1]
6.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사후의 스칸디나비아와 잉글랜드
노섬브리아 왕국의 앨라 왕은 군대를 동원하여 잉글랜드를 침략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를 격파하고 사로잡았다. 라그나르는 뱀 구덩이에 던져져 죽음을 맞이했다.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잉글랜드를 공격하고자 했다. 그러나 장남 이바르는 잉글랜드 군대의 규모를 보고 신중한 접근을 택했다. 그는 앨라 왕에게 아버지의 목숨값(웨르겔드)으로 소 한 마리 가죽으로 덮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요구했다. 앨라 왕이 이를 수락하자, 이바르는 소가죽을 길게 잘라 넓은 지역을 둘러싸 땅을 확보하고 그곳에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곳이 오늘날의 요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바르는 이 거점을 기반으로 잉글랜드 내에서 영향력을 키웠고, 여러 군장들과 동맹을 맺었다.
세력을 충분히 확보한 이바르는 형제들과 함께 앨라 왕을 공격했다. 이바르와 동맹을 맺었던 많은 앵글인 군장들이 이바르 편에 서면서 앨라 왕은 패배하고 사로잡혔다.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앨라 왕을 블로도른 형벌에 처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이루었다.
이후 이바르는 그의 선조들이 다스렸던 잉글랜드 북동부 지역의 왕이 되었고, 에드문드 순교왕을 고문하여 살해하고 그의 영토까지 차지했다.
라그나르의 아들들은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웨일스, 프랑스, 이탈리아까지 원정하여 루나에 이르렀다. 스칸디나비아로 돌아온 아들들은 정복한 영토를 나누어 가졌다.
아들 | 분배받은 영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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뵤른 야른시다 | 웁살라와 스웨덴 |
시구르드 오름 이 아우가 | 셸란섬, 스코네, 할란드, 아그데르, 비켄, 린데스네스, 오플란 주 대부분 |
흐비트세르크 | 레이드고탈란드, 뤼초프단넨베르크 |
시구르드 오름 이 아우가는 앨라 왕의 딸 블라에야(Blaeja)와 결혼하여 아들 하르타크누트를 낳았다. 하르타크누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셸란섬, 할란드 등 오늘날 덴마크 지역을 다스렸으나, 비켄에서 반란이 일어나 노르웨이 지역은 잃었다. 하르타크누트의 아들은 고름으로, 그는 역사적으로 실존이 확인되는 최초의 덴마크 군주로 여겨진다. 고름은 강인했지만 조상들만큼 현명하지는 못했다고 평가된다. 이후 사트르는 잉글랜드, 덴마크, 노르웨이의 왕위 계승 역사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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