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4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레온 4세는 750년 콘스탄티누스 5세와 치차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하자르인 어머니로 인해 '하자르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751년에 공동 황제로 지명되었고, 775년 아버지의 사망 후 황제가 되었다. 재위 기간 동안 결핵을 앓았으며, 이복 형제들의 반란 음모를 겪었지만, 칸 텔레릭의 망명과 결혼을 통해 불가리아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아랍 국경 도시의 포로들을 트라키아로 이주시키는 등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았으며, 아바스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레온 4세는 780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가 황위를 계승하고 이리니가 섭정이 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780년 사망 - 혜공왕
혜공왕은 신라 36대 왕으로, 재위 기간 동안 잦은 반란과 정치적 혼란을 겪었으며 김지정의 난으로 살해당해 무열왕계 직계 왕통이 단절되었다. - 하자르 - 타만반도
타만 반도는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에 위치하며, 고대에는 그리스 식민 도시와 여러 민족의 지배를 거쳐 러시아 제국에 귀속되었고, 2018년 고대 그리스 악기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 하자르 - 케르소네소스
케르소네소스는 기원전 5세기 도리아인들이 크림반도에 건설한 고대 그리스 식민 도시로, 로마와 비잔틴 제국을 거치며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현재는 유적지로 보존되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개발 압력과 정치적 논란으로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750년 출생 - 아부 누와스
아부 누와스는 8세기 압바스 왕조 시대의 아랍 시인으로, 술과 소년애를 주제로 한 파격적인 시를 통해 명성을 얻었으며, 아랍 문학사에서 새로운 시풍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750년 출생 - 교황 레오 3세
레오 3세는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재임한 로마 출신 교황으로, 카롤루스 대제와의 협력을 통해 서로마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고 교황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반대파의 테러 시도와 필리오케 논쟁 속에서도 교회를 이끌었다.
레온 4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칭호 | 로마인의 황제 |
재위 기간 | 775년 9월 14일 – 780년 9월 8일 |
대관식 | 751년 6월 6일 |
대관식 종류 | 대관식 |
선임 황제 | 콘스탄티누스 5세 |
후임 황제 | 콘스탄티누스 6세와 이리니 (섭정) |
배우자 | 이리니 |
자녀 | 콘스탄티누스 6세 |
왕조 | 이사우리아 왕조 |
아버지 | 콘스탄티누스 5세 |
어머니 | 치차크 |
출생일 | 750년 1월 25일 |
사망일 | 780년 9월 8일 (30세) |
이사우리아 왕조 | |
연대기 | 레오 3세 (717–741) 콘스탄티누스 5세와 공동 통치 (720–741) 콘스탄티누스 5세 (741–775) 레오 4세와 공동 통치 (751–775) 아르타바스도스 찬탈 (741–742) 니키포로스와 공동 통치 (741–742) 레오 4세 (775–780) 콘스탄티누스 6세와 공동 통치 (776–780) 콘스탄티누스 6세 (780–797) 이리니 섭정 (780–790) 이리니 공동 통치 (792–797) 이리니 (797–802) |
이름 | |
그리스어 | Λέων Δʹ ὁ Χάζαρος |
그리스어 (로마자 표기) | Leōn IV ho Khazaros |
2. 생애
레온 4세는 750년 1월 25일 콘스탄티누스 5세와 그의 첫 번째 부인 치차크 사이에서 태어났다.[1] 그의 어머니가 하자르인이었기 때문에 '하자르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2] 751년 공동 황제로 지명되었고,[1] 775년 9월 14일 황제가 되었다.[3][4]
레온은 결핵을 앓고 있었고,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는 어렸다. 776년 레온은 콘스탄티누스를 카이사르로 지명하고 후계자로 선언했다. 니케포로스와 크리스토포로스는 레온을 상대로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되었으나, 레온은 이들을 사면하고 다른 공모자들을 케르손으로 추방했다.[2][1][5]
776년에서 777년 사이,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칸 텔레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하여 레온 앞에서 세례를 받고 황후 아테네의 이레네의 친척과 결혼했다. 레온은 아버지의 재정착 정책을 이어받아 아랍 국경 도시의 포로들을 트라키아의 새 군사 기지에 이주시켰다.
2. 1. 초기 생애와 즉위
레온 4세는 750년 1월 25일에 콘스탄티누스 5세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이자 기독교식 이름 이레네를 받은 치차크 사이에서 태어났다.[1] 그의 어머니가 하자르인이었기 때문에 '하자르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2] 751년에 공동 황제로 지명되었으며,[1] 775년 9월 14일 콘스탄티누스 5세가 제1차 불가리아 제국과의 전쟁 중에 사망한 후 황제가 되었다.[3][4]레온은 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이는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가 어리다는 점과 겹쳐 이복 형제인 니케포로스와 크리스토포로스가 왕위를 노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776년 레온이 콘스탄티누스를 카이사르로 지명하고 후계자로 선언하면서 이들의 희망은 꺾였다. 직후 니케포로스와 크리스토포로스는 레온에 대한 음모가 발각되었으나, 여론의 처형 요구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이들을 사면하고 다른 공모자들과 함께 케르손으로 추방했다.[2][1][5]
776–777년에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칸 텔레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하여 레온 앞에서 세례를 받고, 황후 아테네의 이레네의 친척과 결혼했다. 이는 레온 재위 기간 동안 비잔틴 제국과 불가르족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760년에서 775년 사이에 레온의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5세가 불가르족을 상대로 성공적인 군사 작전을 수행하여 평화로운 상태를 구축한 덕분이었다.
레온은 아버지의 재정착 정책을 이어받아 아랍 국경 도시(게르마니케아, 멜리테네, 테오도시우폴리스)의 포로들을 트라키아에 새로 건설된 군사 기지 또는 요새(''카스트라'')로 이주시켰다.
2. 2. 통치
레온 4세는 775년 9월 14일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5세가 제1차 불가리아 제국과의 전쟁 중 사망하면서 황제가 되었다.[5] 레온은 즉위 당시 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가 어리다는 점과 함께 레온의 이복형제들인 니케포로스와 크리스토포로스가 황위를 노리게 되었다.776년, 레온 4세는 콘스탄티누스 6세를 공동 황제로 임명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하면서 이복형제들의 야망을 꺾었다. 이 직후 니케포로스와 크리스토포로스는 레온을 상대로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되었다. 여론은 이들을 처형하라고 요구했지만, 레온은 이들을 사면하고 몇몇 다른 공모자들을 케르손으로 추방했다.
2. 2. 1. 대외 관계
776–777년에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칸 텔레릭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하여 레온 앞에서 세례를 받고, 황후 아테네의 이레네의 친척과 결혼했다.[1] 이는 레온 재위 기간 동안 비잔틴 제국과 불가르족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760년에서 775년 사이에 레온의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5세가 그들을 상대로 성공적인 군사 작전을 수행하여 평화로운 상태를 구축한 것에 기인한다.[1]레온은 아버지의 재정착 정책을 이어받아 아랍 국경 도시(게르마니케아, 멜리테네, 테오도시우폴리스)에서 포로들을 트라키아에 새로 건설된 군사 기지 또는 요새(''카스트라'')로 이주시켰다.[2]
아바스 왕조의 알마흐디는 776년 직접 군대를 이끌고 비잔틴 제국을 침공했다.[3] 이에 비잔틴 제국은 778년 여러 테마의 군대로 이루어진 병력을 이끌고 시리아를 침공하여 보복했다.[4] 이 군대에는 다음의 테마가 포함되었다.
테마 | 지휘관 |
---|---|
옵시키온 테마 | 그레고리오스 |
아나톨리아 테마 | 아르타바스도스 |
아르메니아크 테마 | 카리스테로트제스 |
부켈라리안 테마 | 타차테스 |
트라케시안 테마 | 미카엘 라차노드라콘 |
미카엘 라차노드라콘은 한동안 게르마니케이아를 포위했다가 포위를 풀고 ( 테오파네스 고백자에 따르면, 뇌물을 받고 그랬다고 한다.) 주변 시골을 습격하여 많은 시리아 정교회 신자들을 트라키아로 강제 이주 시켰다.[3] 아바스군은 라차노드라콘이 습격하는 동안 그를 공격했지만, 여러 비잔틴 군대에 의해 결정적으로 패배했다. 이 전투에서 군대를 이끈 비잔틴 장군들은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왔을 때 개선식을 거행했다. 779년 레온 4세는 소아시아에 대한 아바스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4]
2. 2. 2. 후계 문제와 사망
레온 4세는 결핵으로 인한 격렬한 열병으로 780년 9월 8일에 사망했다.[1] 당시 9세였던 콘스탄티노스 6세가 새로운 황제가 되었고, 이리니가 섭정이 되었다.참조
[1]
서적
AM 6241
https://archive.org/[...]
[2]
서적
Scritti Storici E Numismatici
https://books.google[...]
Centro Italiano di Studi sull'Alto Medioevo
2001
[3]
백과사전
Leo IV Byzantine emperor
https://www.britanni[...]
[4]
서적
井上、p. 116
[5]
서적
井上、p. 11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