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은 앙주 공작, 부르봉 공작 등의 작위를 가진 인물로, 프랑스 왕위 계승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BNP 파리바에서 근무했다. 정치적으로는 군주제를 지지하며, 프랑코 재단의 명예 회장직을 맡는 등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마리아 마르가리타 바르가스 이 산타에야와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으며,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BNP 파리바 - 파리 마스터스
파리 마스터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매년 열리는 실내 하드 코트 테니스 대회로, ATP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에 속하며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참가하여 노바크 조코비치가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권위 있는 대회이다. - BNP 파리바 - 포르티스
포르티스는 AMEV와 VSB 그룹의 합병으로 시작하여 AG 보험과의 합병을 거쳐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기반의 금융 그룹으로 성장했으나, ABN AMRO 인수 후 재정 위기를 겪으며 국제 금융 위기 속에서 부분 국유화된 후 자산 매각 및 분할되어 2010년 해체, 아게아스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투렌 공작 - 샤를 7세
샤를 7세는 백년 전쟁 시기에 프랑스를 통치했으며, 잔 다르크의 도움으로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프랑스를 재건했으나 아들과의 갈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 투렌 공작 - 샤를 5세
샤를 5세는 백년 전쟁 시기 섭정으로 즉위하여 에티엔 마르셀의 반란과 자크리의 난을 진압하고 잃었던 영토를 회복했으며, 상비군과 관료층을 확립하여 프랑스 절대왕정의 기초를 다졌다. - 앙주 공작 - 펠리페 5세
프랑스 왕족 출신인 펠리페 5세는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사 단절로 왕위를 계승하여 스페인을 통치하며 중앙 집권화 정책과 개혁을 추진하고 유럽 내 전쟁에 개입했으나, 스페인은 영토 상실과 쇠퇴를 겪었다. - 앙주 공작 - 루이 2세 당주
앙주 공작 루이 1세의 아들인 루이 2세 당주는 앙주 가문의 유산을 상속받아 프로방스 백작이 되었고 나폴리 왕국 계승권을 주장하며 경쟁했으나 왕위 획득에는 실패했으며, 엑상프로방스에 대학교를 설립하고 프랑스 궁정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루이스 알폰소 곤살로 빅토르 마누엘 마르코 데 보르본 이 마르티네스-보르디우 |
작위 | 앙주 공작 (더 보기) |
왕위 계승 | 정통주의 프랑스 왕위 요구자 |
통치 | 1989년 1월 30일 – 현재 |
통치 형태 | 왕위 주장 |
선임자 | 앙주와 카디스 공작 알폰소 |
후임자 | 루이스 |
후임 형태 | 후계자 |
배우자 | 마리아 마르가리타 바르가스 산타엘라(2004년 11월 5일 결혼) |
자녀 | 외제니 공주 루이스 알폰소 엔리케 |
왕가 | 부르봉 왕가 |
아버지 | 앙주와 카디스 공작 알폰소 |
어머니 | 카르멘 마르티네스-보르디우 |
출생일 | 1974년 4월 25일 |
출생지 | 스페인 마드리드 |
종교 | 가톨릭 교회 |
가계 | |
프랑스 왕가 (정통주의) | 앙주 공작 앙주 여공작 마담 로열 부르고뉴 공작 베리 공작 투렌 공작 앙주 공작 부인 |
추가 왕족 |
2. 생애
1974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의 차남인 세고비아 공작 하이메 데 보르본의 장남, 카디스 공작 알폰소 데 보르본 이 담피에레이다. 어머니는 제2대 프랑코 여공작 마리아 델 카르멘 마르티네스-보르디우 이 프랑코로, 그녀는 스페인 총통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외손녀이다. 따라서 루이스 알폰소는 프랑코 총통의 증손자가 된다.
1975년 조부 하이메가 사망하자 아버지 알폰소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알퐁스 2세'를 자처하고 앙주 공작 칭호를 사용했다. 루이스 알폰소는 1981년 아버지로부터 투렌 공작에 서임되었고, 1984년 형 프란시스코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부르봉 공작 칭호를 받았다.
1989년 아버지 알폰소가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스키 사고로 사망하면서, 루이스 알폰소는 정통파가 지지하는 프랑스 왕위 계승자 '루이 20세'이자 앙주 공작이 되었다. 그러나 카디스 공작 칭호는 1987년 스페인 정부가 세습 불가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리세 프랑세 드 마드리드 등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주로 스페인에 거주하며 프랑스를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2004년 11월, 베네수엘라 출신의 마리 마르그리트 바르가스 산타엘라와 결혼하여 슬하에 1녀 3남을 두었다. 당시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왕족들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는 루이스 알폰소가 부르봉 왕가의 방계임에도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 것을 국왕이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부부는 2005년부터 베네수엘라에서 살기 시작했다.
2006년 어머니 마리아 델 카르멘의 세 번째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는 어머니의 유명인으로서의 생활 방식과, 루이스 알폰소가 존경했던 어머니의 전 남편 장 마리 로시와의 이혼에 대한 불만 때문으로 전해진다.
2010년 11월, 기존의 정통파 조직인 부르봉가 협회 참여를 중단하고 새로운 조직인 '앙주 공작 연구소'(Institut Duc d'Anjoufra)를 설립했으나, 2015년 이를 해산하고 다시 부르봉가 협회에 합류했다.
2014년 8월 25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명예 시민 칭호를 받았다.
2018년 3월, 조모 카르멘 프랑코가 사망하자 그녀가 맡았던 프란시스코 프랑코 국립재단의 명예 의장직을 이어받았다. 그는 증조부인 프랑코 총통을 폄하하려는 페드로 산체스 정부의 정책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2. 1. 유년 시절

루이스 알폰소는 마드리드에서 알폰소 데 보르본, 앙주와 카디스 공작과 그의 아내 마리아 델 카르멘 마르티네스-보르디우 이 프랑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장손녀였다. 아버지 알폰소는 당시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던 하이메 데 보르본의 아들로, 지지자들 사이에서 도팽으로 여겨졌으며, 가칭으로 "부르봉 공작"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1975년 3월 20일 조부 하이메가 사망하자, 아버지 알폰소는 부르봉 왕가의 수장이자 프랑스 왕위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며 "앙주 공작"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9]
루이스 알폰소의 부모는 1982년에 별거했고, 1986년 가톨릭교회에서의 혼인 무효 판결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이후 두 차례 시민 결혼을 통해 재혼했으며, 루이스 알폰소에게는 의붓 형제자매들(마틸다(사망), 마렐라, 프레데릭, 신시아 로시)이 생겼다.
1984년 2월 7일, 루이스 알폰소의 형 프란시스코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사고는 아버지가 운전 중이었으며, 루이스 알폰소도 동승하여 부상을 입었으나 아버지보다는 덜 심각했다.[10] 형의 사망으로 루이스 알폰소는 프랑스 정통 왕위 계승자들에 의해 아버지의 상속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1981년 9월 19일 아버지로부터 투렌 공에 서임되었고, 형의 사망 후인 1984년 9월 27일에는 부르봉 공작이라는 추가 칭호를 받았다.[10]
그러나 1987년, 스페인 정부는 카디스 공작과 같은 왕가 관련 칭호는 해당 인물의 평생 동안만 유효하며 세습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 조치로 루이스 알폰소는 아버지의 그란데 지위를 상속받지 못하게 되었다.[10]
루이스 알폰소는 마드리드의 프랑스계 학교인 리세 프랑세 드 마드리드에 다녔다.
2. 2. 교육
루이스 알폰소는 이중 언어 학교인 콜레주 몰리에르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이곳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리세 프랑세 드 마드리드를 다닌 후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1991년에는 CUNEF 대학교에 입학하여 국제 금융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에는 BNP 파리바 마드리드 지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루이스 알폰소는 여러 언어에 능통하여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도 일부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1]2. 3. 프랑스 왕위 계승 주장
루이스 알폰소의 아버지 알폰소 데 보르본은 1975년 그의 아버지 세고비아 공작 하이메가 사망하자, 부르봉 왕가의 수장이자 프랑스 왕위의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며 '앙주 공작'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9] 알폰소는 당시 프랑스 왕위 주장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도팽으로 여겨졌다.
1984년 2월 7일, 루이스 알폰소의 형 프란시스코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루이스 알폰소는 정통 왕위 계승자들에 의해 아버지의 상속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같은 해 9월 27일 아버지로부터 부르봉 공작이라는 추가 칭호를 받았다.[10]
1989년 1월 30일, 아버지 알폰소 공작이 미국 콜로라도주 베일 근처에서 스키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루이스 알폰소는 일부 카페 왕조 구성원들에게 '부르봉 가문의 수장'(Chef de la Maison de Bourbon|셰프 드 라 메종 드 부르봉프랑스어)으로 인정받았으며[10][13], 아버지의 스페인 공작 작위는 계승하지 않았으나 프랑스 왕위 계승권과 함께 앙주 공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그는 정통주의 운동 지지자들에게 폐지된 프랑스 왕위의 정당한 왕위 요구자로 여겨진다.[10] 1994년,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스키 리조트를 소유한 베일 어소시에이티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1억 5천만 페세타를 받았다.[10]
루이스 알폰소는 스페인 시민권 외에도, 그의 친할머니인 엠마뉘엘 드 댕피에르가 프랑스 시민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10] 그는 마드리드 프랑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10] IESE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마드리드에 있는 프랑스 은행 BNP 파리바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펠리페 5세가 위트레흐트 조약에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포기한 문제는[31] 정통 왕위 계승주의자(레지티미스트)와 오를레앙주의자(오를레아니스트) 사이의 오랜 논쟁거리이다. 정통 왕위 계승주의자들은 프랑스 왕위 계승은 살리카법에 따라 결정되며, 어떤 조약도 이를 변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루이스 알폰소는 프랑스 왕위 계승자로서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1992년 8월 25일에는 루이 9세가 건설한 도시 에그모르트의 명예 시민 칭호를 받았다.[30] 1994년 6월 16일에는 루이 16세가 미국 독립 전쟁을 지원한 것을 기려, 프랑스 신시내티 협회의 정회원이 되었다.[15] 2010년 12월에는 프랑스 혁명 이후 사라진 앙리 4세의 머리를 생드니 대성당에 재매장하기 위해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하여 승낙을 받았으나, 이후 정권이 바뀌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되면서 이 요청은 거부되었다. 2017년에는 샤를 10세를 포함한 조상들의 유해가 현재 안치된 코스타니제비차 수도원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샤를 10세의 유해를 다른 프랑스 군주들과 함께 생 드니 대성당에 안치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었다.[16] 2021년에는 러시아의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다.[17]
한편, 루이스 알폰소는 어머니 카르멘 마르티네스-보르디우를 통해 외증조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작위인 프랑코 공작 작위와 그란데 지위의 상속자였으나, 2022년 스페인의 민주 기억법 시행으로 해당 작위는 폐지되었다.[14]
2. 4. 결혼과 가족
루이스 알폰소는 2003년 11월, 사업가 빅토르 바르가스의 딸인 마리 마르그리트 바르가스 산타엘라와 약혼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2004년 11월 5일 카라카스에서 민사 결혼식을 올렸고, 다음 날인 11월 6일 도미니카 공화국 라 로마나에서 종교적 결혼식을 올렸다. 스페인 왕가의 일원은 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공식적인 이유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당시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사촌인 루이스 알폰소의 프랑스 왕위 계승 주장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루이스 알폰소가 결혼 초대장에 "앙주 공작" 칭호를 사용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루이스 알폰소와 마리아 마르가리타는 2005년부터 베네수엘라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2006년 루이스 알폰소는 어머니 마리아 델 카르멘의 세 번째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어머니의 셀러브리티적인 생활 방식과, 자신이 존경했던 어머니의 전 남편 장 마리 로시와의 이혼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네 명의 자녀가 있다.
- 첫째 딸 외제니(Eugénie)는 2007년 3월 5일 마이애미의 마운트 시나이 메디컬 센터에서 태어났다. 외제니는 같은 해 6월 파리 주재 교황 대사관에서 포르투나토 발델리 교황 사절에게 세례를 받았다. 대부모는 부르봉-파르마의 샤를 에마뉘엘 공과 그의 아내 콘스탄스이다. 프랑스 정통 왕위 계승자들은 그녀를 프랑스 국왕의 장녀에게 전통적으로 부여되는 칭호인 Eugénie, Madame Royalefra로 인정한다.[1] 스페인에서는 Doña Eugenia de Borbón y Vargasspa로 불린다.[1]
- 쌍둥이 아들 루이스(Louis)와 알폰소(Alfonso)는 2010년 5월 28일 뉴욕에서 태어났다.[24] 쌍둥이는 같은 해 9월 5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대리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에게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루이스에게 부르고뉴 공작(duc de Bourgognefra) 칭호를, 알폰소에게 베리 공작(duc de Berryfra) 칭호를 수여했다. 장남 루이스는 도팽 Louis de Bourbonfra으로서 정통파가 인정하는 차기 프랑스 왕위 계승자로 여겨진다. 스페인에서 쌍둥이는 각각 Don Luis de Borbón y Vargasspa와 Don Alfonso de Borbón y Vargasspa로 불린다.[1]
- 넷째 아들 앙리(Henri)는 2019년 2월 1일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로부터 투렌 공작(duc de Tourainefra) 칭호를 받았다.[25]
3. 정치 활동
루이스 알폰소는 자신을 군주주의자로 규정하며 입헌 군주제를 지지하고,[18] 스페인 보수 정당 복스와 연계되어 있다. 그는 동성 결혼과 동성 입양에 반대하는 등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보인다.[19]
2018년에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국립 재단의 명예 회장직을 맡았으며,[20] 증조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유해 이장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는 등 프랑코 정권과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활동을 했다. 또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 지지,[21] 제13차 세계 가족 회의 연설[22] 등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3. 1. 군주제 옹호

루이스 알폰소는 자신을 군주주의자라고 밝히면서도 "공화주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는 국왕이 도덕적 권위를 가지며 외교 대사, 통합적 인물, 국가 역사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입헌 군주제를 지지한다.[18] 그는 스페인의 보수 정당인 복스와 연관되어 있으며, 당 대표인 산티아고 아바스칼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동성 결혼과 동성 입양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19]
2018년 3월, 그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국립 재단의 명예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자리는 그의 할머니인 카르멘 프랑코, 프랑코 공작 부인이 2017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맡았던 직책이다.[20] 같은 해 7월 15일, 그는 전몰자의 계곡 기념관에서 스페인 독재자였던 증조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지지자들을 이끌었다. 이는 스페인 사회주의 정부가 마드리드 인근 바실리카에서 프랑코의 유해를 이장하려는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그는 또한 사회주의 총리 페드로 산체스의 사임을 요구하는 change.org 청원을 시작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했으며,[21] 이후 제13차 세계 가족 회의에서 연설하며 "기독교 사회"로의 회귀를 촉구했다.[22]
3. 2. 사회적 보수주의
루이스 알폰소는 스스로를 군주주의자라고 밝히면서도 "공화주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는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외교 대사 역할을 하며, 국민 통합의 상징이자 국가 역사를 상기시키는 존재로서 국왕이 있는 입헌 군주제를 지지한다.[18] 그는 스페인의 보수 정당인 복스와 관련이 있으며, 당 대표인 산티아고 아바스칼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그는 동성결혼과 동성 입양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19]
2018년 3월, 루이스 알폰소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국립 재단의 명예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자리는 그의 할머니인 카르멘 프랑코, 프랑코 공작 부인이 2017년 12월 사망하기 전까지 맡았던 직책이다.[20] 같은 해 7월 15일, 그는 전몰자의 계곡 기념관에서 스페인 사회주의 정부가 마드리드 인근 바실리카에서 독재자였던 증조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유해를 이장하려는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끌었다. 이 시위는 프랑코 지지자들이 주도한 '스페인을 위한 운동'의 일환이었으며, 그는 사회주의 총리 페드로 산체스의 사임을 요구하는 change.org 청원을 시작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했으며,[21] 이후 제13차 세계 가족 회의에서 연설하며 "기독교 사회"로의 회귀를 촉구했다.[22]
3. 3. 프랑코 재단과의 관계
루이스 알폰소는 2018년 3월, 프란시스코 프랑코 국립 재단의 명예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자리는 그의 할머니인 카르멘 프랑코, 프랑코 공작 부인이 2017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맡았던 직책이다.[20]
같은 해 7월 15일, 그는 전몰자의 계곡 기념관에서 증조부이자 스페인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지지자들을 이끌고 시위를 벌였다. 이는 당시 페드로 산체스가 이끄는 스페인 사회주의 정부가 프랑코의 유해를 마드리드 근처의 바실리카에서 이장하려는 계획에 반대하는 '스페인을 위한 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는 또한 사회주의 총리 페드로 산체스의 사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을 시작하기도 했다. 루이스 알폰소는 산체스 정권이 증조부인 프랑코 총통을 폄하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스페인 보수 정당인 복스와 연관되어 있으며, 당 대표 산티아고 아바스칼과 가까운 친구 관계이다. 그는 스스로를 군주주의자라고 밝히면서도 "공화주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국왕이 도덕적 권위와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는 입헌 군주제를 지지한다.[18] 또한 동성결혼과 동성 입양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19]
4. 논란
루이스 알폰소의 프랑스 왕위 계승권 주장은 그의 조상인 펠리페 5세가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다는 점 때문에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31] 정통주의자(Legitimists)들은 살리카 법전에 따른 왕위 계승 원칙은 조약으로 변경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루이스 알폰소의 계승권을 지지한다. 반면, 오를레앙주의자(Orleanists)들은 펠리페 5세의 계승권 포기가 유효하다고 보아, 현재 오를레앙 가문의 수장인 파리 백작 장을 정당한 계승자로 간주하며 루이스 알폰소의 주장에 반대한다. 이러한 대립은 프랑스 왕정복고를 지지하는 파벌 사이의 오랜 갈등 요소이다.
4. 1. 프랑스 왕위 계승 분쟁
1989년 1월 30일 아버지가 미국 콜로라도주 베일 근처에서 스키 사고로 사망하자, 루이스 알폰소는 일부 카페 왕조 구성원들에게 '부르봉 가문의 수장'(Chef de la Maison de Bourbon프랑스어)으로 인정받았다.[10][13] 그는 아버지의 스페인 공작 작위 대신 앙주 공작 작위를 받았으며, 정통주의 운동 지지자들에게 폐지된 프랑스 왕위의 정당한 왕위 요구자로 여겨진다.[10] 그는 스페인 시민권 외에도 아버지의 할머니인 엠마뉘엘 드 댕피에르를 통해 프랑스 국적도 가지고 있다.[10]루이스 알폰소의 프랑스 왕위 계승권 주장은 펠리페 5세가 위트레흐트 조약에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포기한 것[31]과 관련하여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정통 왕위 계승주의자(레지티미스트)들은 프랑스 왕위 계승은 살리카 법전에 따라 결정되며, 어떠한 조약도 이를 변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오를레앙주의자(오를레아니스트)들은 펠리페 5세의 계승권 포기가 유효하다고 본다.
루이스 알폰소는 프랑스 왕위 계승자로서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1992년 8월 25일, 그는 루이 9세가 건설한 도시인 에그모르트의 명예 시민 칭호를 당시 시장이었던 르네 자노로부터 받았다.[30] 1994년 6월 16일에는 루이 16세의 미국 독립 전쟁 지원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 신시내티 협회의 정회원이 되었으며,[15] 이 협회에서 루이 16세의 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15]
또한 그는 프랑스 왕가의 역사 보존에도 관심을 보였다. 2010년 12월, 프랑스 혁명으로 유실된 앙리 4세의 머리를 찾아 생드니 대성당에 재매장하기 위해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하여 승낙을 받았으나, 이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이 계획은 거부되었다. 2017년에는 샤를 10세를 포함한 조상들의 유해가 현재 안치된 코스타니제비차 수도원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일부에서 왕의 유해를 다른 프랑스 군주들과 함께 생 드니 대성당으로 이장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었다.[16]
5. 작위
루이스 알폰소의 아버지 알폰소 데 보르본은 세고비아 공작 하이메가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는 것을 지지하는 이들에 의해 도팽으로 여겨졌으며, 1975년 하이메가 사망하자 알폰소는 스스로 부르봉 왕가의 수장이자 프랑스 왕위 계승자임을 선언하고 '앙주 공작' 칭호를 사용했다.[9]
1989년 1월 30일, 아버지 알폰소 공작이 미국 콜로라도주 베일에서 스키 사고로 사망하자, 루이스 알폰소는 일부 카페 왕조 구성원들에게 '부르봉 가문의 수장'(Chef de la Maison de Bourbon프랑스어)으로 인정받았다.[10][13] 그는 아버지의 스페인 공작 작위는 계승하지 않았으나,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앙주 공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이에 따라 정통주의자들은 그를 프랑스의 정당한 왕위 요구자로 간주한다.[10] 1994년, 루이스 알폰소는 아버지가 사망한 스키 사고와 관련하여 리조트 소유주인 베일 어소시에이티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1억 5천만 페세타를 받았다.[10]
루이스 알폰소는 어머니 마리아 델 카르멘 마르티네스-보르디우 이 프랑코를 통해 스페인의 프랑코 공작 작위와 그란데 지위를 상속받을 예정이었으나, 스페인의 민주 기억법 시행으로 해당 작위는 폐지되었다.[14] 이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관련된 유산을 청산하려는 민주화 이후 스페인 사회의 노력을 반영한다.
또한, 루이스 알폰소는 프랑스 신시내티 협회에서 루이 16세의 대표 자격으로 인정받았다.[15] 그는 아버지의 할머니인 엠마뉘엘 드 댕피에르를 통해 프랑스 국적도 취득하여 이중 국적자가 되었다.[10]
현재 루이스 알폰소가 보유하거나 주장하는 주요 칭호는 다음과 같다.
칭호 | 비고 |
---|---|
앙주 공작 | 정통주의자 계열 프랑스 왕위 요구자로서 사용 |
부르봉 공작 | |
(명목상) 프랑스 왕 및 나바라 왕 | 루이 20세(Louis XX)로 칭함 |
(명목상) 예루살렘 왕 | |
부르봉 왕가 당주 | |
몰타 기사단 명예 헌신의 대십자 법정 관리 | Balì Gran Croce di Onore e di Devozione del Sovrano Militare Ordine di Maltait |
한편,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놓고 경쟁 관계에 있는 오를레앙파의 수장 파리 백작 겸 프랑스 공작 앙리는 2004년 자신의 조카 샤를-필리프에게 '앙주 공작' 칭호를 수여했다. 또한 앙리는 루이스 알폰소가 '앙주 공작' 칭호와 프랑스 왕실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위법이라며 프랑스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현대 프랑스가 공화국이므로 왕위 관련 칭호 분쟁은 사법부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다. 이로 인해 '앙주 공작' 칭호는 루이스 알폰소와 샤를-필리프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프랑스 법무성은 루이스 알폰소를 스페인 왕족의 일원으로 간주하여 '전하'(Altesse Royale프랑스어) 칭호로 호칭하는 반면, 스페인 내에서는 '각하'(Excelentísimo Señores)로 불린다.
현재 스페인 헌법은 왕위 계승권을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의 직계 후손에게만 한정하고 있어 루이스 알폰소는 공식적인 스페인 왕위 계승 서열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직계 후손의 대가 끊어질 경우, 스페인 의회가 새로운 국왕을 선출할 수 있으며, 이때 루이스 알폰소나 특정 인물을 배제하는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부 프랑코주의자들은 여전히 루이스 알폰소를 스페인의 정당한 국왕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6. 가계도
루이스 알폰소는 1974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의 차남인 하이메 데 보르본(세고비아 공작)의 장남, 알폰소 데 보르본 이 담피에르(카디스 공작)이다. 어머니는 마리아 델 카르멘 마르티네스-보르디우 이 프랑코(제2대 프랑코 여공작)로, 그녀는 총통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외동딸인 카르멘 프랑코(초대 프랑코 여공작)의 딸이다. 따라서 루이스 알폰소는 부계로는 스페인 보르본 왕가의 후손이며, 모계로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증손자가 된다.
번호 | 이름 |
---|---|
1 |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
부모 | |
2 | 알폰소 데 보르본 이 담피에르 (앙주 및 카디스 공작) |
3 | 카르멘 마르티네스-보르디우 |
조부모 | |
4 | 인판테 하이메 (세고비아 공작) |
5 | 엠마누엘 드 당피에르 |
6 | 크리스토발 마르티네스-보르디우 (빌라베르데 후작 10세) |
7 | 카르멘 프랑코 (프랑코 공작 부인 1세) |
증조부모 | |
8 | 알폰소 13세 (스페인 국왕) |
9 | 바텐베르크 공녀 빅토리아 유제니 |
10 | 로제 드 당피에르 (산 로렌초 누오보 공작 2세) |
11 | 비토리아 루스폴리 데이 프린치피 디 포조 수아사 |
12 | 호세 마리아 마르티네스 이 오르테가 |
13 | 마리아 데 라 에스페란사 보르디우 이 바스카란 (아르질로 백작 부인 7세) |
14 | 프란시스코 프랑코 |
15 | 카르멘 폴로 (메이라스 영부인 1세) |
참조
[1]
서적
Etat présent de la Maison de Bourbon
Le Léopard d'or
2020
[2]
문서
His name is given as "Prince Louis Alphonse of Bourbon and Martínez-Bordiú, Duke of Anjou" by Olga S. Opfell in ''Royalty who Wait: The 21 Heads of Formerly Regnant Houses of Europe'' (2001), p. 11.
[3]
서적
Queen Victoria's Descendants. Princess Beatrice
Rosvall Royal Books
1997
[4]
서적
La Descendanace de Marie-Therese de Habsburg Reine de Hongrie and Boheme. Maison royale regnante d'Espagne
ICC/Nouvelle Imprimerie Laballery
1999
[5]
서적
The Descendants of King George I of Great Britain. The Descendants of Princess Anne, The Princess of Orange
Clearfield, Baltimore
2002
[6]
서적
Louis XX: Contre-enquête sur la monarchie
1986
[7]
서적
Royalty Who Wait: The 21 Heads of Formerly Regnant Houses of Europe
McFarland & Company
[8]
문서
Isabel II: Los Espejos de la Reina
2004
[9]
간행물
Prince Henri Philippe Pierre Marie d'Orléans et autres c. Prince Alphonse de Bourbon
Gazette du Palais, Tribunal de grande instance de Paris (1re Ch.)
1990-03-08
[10]
간행물
Les Manuscrits du CEDRE V, Le Royaume d'Espagne III
Cercle d'Etudes des Dynasties Royales Europėennes (CEDRE)
1992
[11]
서적
Royalty who Wait: The 21 Heads of Formerly Regnant Houses of Europe
[12]
문서
"L'heraldique capetienne en 1976"
Nouvelles Editions latines
1977
[13]
간행물
Genealogisches Handbuch des Adels, Fürstliche Häuser, Band XV. Spanien
C.A. Starke Verlag
1997
[14]
학술지
Ley 20/2022, de 19 de octubre, de Memoria Democrática
https://www.boe.es/b[...]
Agencia Estatal Boletín Oficial del Estado
2022-10-20
[15]
뉴스
L'Amérique en pince pour les Bourbons
null
2002-05-28
[16]
뉴스
Francoski princ Burbonski želi, da njegovi predniki ostanejo pokopani na Kostanjevici
http://www.rtvslo.si[...]
RTV Slovenija
2017-02-19
[17]
뉴스
After 100 years, a royal wedding in Russia evokes days of the czars
https://bdnews24.com[...]
2021-10-02
[18]
웹사이트
Louis de Bourbon - Les descendants du Roi-Soleil
https://www.parismat[...]
2010-06-20
[19]
웹사이트
Manifeste de Mgr le duc d'Anjou au sujet du mariage pour tous | Alliance Royale | Le parti politique royaliste
http://www.alliancer[...]
2021-09-22
[20]
웹사이트
Franco legacy: Luis Alfonso de Borbón becomes 'king' of the Franco faithful {{!}} In English {{!}} EL PAÍS
https://elpais.com/e[...]
[21]
뉴스
Did You Know? The Tale of the three Frenchmen who still lay claim to the throne
https://www.thelocal[...]
2019-02-05
[22]
웹사이트
The Present Battle
https://europeancons[...]
2019-04-17
[23]
웹사이트
Emanuela de Dampierre, a cuchillo contra Carmen Martínez-Bordíu
http://www.elsemanal[...]
Elsemanaldigital.com
2011-11-29
[24]
웹사이트
Los Duques de Anjou anuncian el nacimiento de sus hijos Luis y Alfonso
http://noticias.terr[...]
Noticias.terra.es
2011-11-29
[25]
웹사이트
Je suis heureux, avec Marie-Marguerite, de vous annoncer la naissance d'Henri, notre quatrième enfant, aujourd'hui à 13:05 GMT. Il pèse 4,200 kg et mesure 53 cm. La maman et le bébé se portent bien. Nous remercions tous ceux qui s'associent à cette naissance par la prière.
https://twitter.com/[...]
2019
[26]
서적
Louis XX: Contre-enquête sur la monarchie
1986
[27]
서적
Royalty Who Wait: The 21 Heads of Formerly Regnant Houses of Europe
McFarland & Company
[28]
서적
Queen Victoria's Descendants. Princess Beatrice
Rosvall Royal Books
1997
[29]
뉴스
Luis Alfonso de Borbón becomes ‘king’ of the Franco faithful
https://elpais.com/e[...]
2018-09-20
[30]
웹사이트
Aigues-Mortes : le prince Louis de Bourbon célèbre Saint Louis
http://www.midilibre[...]
[31]
웹사이트
유트레히트 조약(1713)(역사 문서 국역 프로젝트)
http://www.h4.dion.n[...]
2007-11-15
[32]
뉴스
"Eres nuestro rey": por qué los ultras aclaman a Luis Alfonso en plena crisis en Zarzuela
https://www.elespano[...]
2019-12-2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