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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루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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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이지 루솔로는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미래주의 음악가로, 최초의 소음 예술가로 여겨진다. 그는 1913년 《소음의 예술》 선언문을 통해 산업 혁명이 복잡한 소리에 대한 감수성을 길렀다고 주장하며, 전통적인 멜로디 음악의 한계를 지적하고 소음 음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루솔로는 인토나루모리라는 소음 발생 장치를 발명하고, 이를 활용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공연을 시도했으나, 청중의 반대에 직면했다. 그의 인토나루모리는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그의 선구적인 시도는 노이즈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루솔로는 회화 작품도 다수 남겼으며, 그의 이름을 딴 전자 음악상도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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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루솔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루이지 루솔로 (1916년경)
루이지 루솔로, 1916년경
본명루이지 루솔로
출생1885년 4월 30일
출생지포르토그루아로, 이탈리아
사망1947년 2월 4일
사망지라베노 몸벨로, 이탈리아
활동 기간1901년–1947년
음악 경력
장르미래주의 음악
실험 음악
아방가르드 음악
소음 음악
직업작곡가
화가
맞춤 악기 제작자

2. 생애

루이지 루솔로는 베네토 지방 포르토그루아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라티차나의 교회 악장이었고, 형제들 또한 음악가였다. 형 안토니오 역시 미래주의 음악을 작곡했다. 1901년 루솔로는 밀라노로 이주하여 브레라 미술관을 자주 방문하였고,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초기 작품에서는 점묘 기법을 사용하여 도시와 산업 풍경을 환상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미래파 운동에 동참하여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1913년 3월 11일, 루솔로는 논문 "소음 예술(''L'arte dei rumori'')"을 발표하며 전자 음악의 선구적인 이론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또한 공연에 사용될 수 있는 "소음"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악기인 인토나루모리를 발명하고 제작했다. '인토나루모리'라는 명칭은 "조율"과 "소음"을 결합한 것으로, "조율된 소음 기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인토나루모리의 원본은 소실되었다. 이후 1986년 아키야마 구니하루가 남겨진 특허 자료 등을 바탕으로 8종을 복원하였다.

1941년부터 1942년까지 루솔로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고전적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화풍을 선보였다. 1947년, 그는 바레세현의 체로 디 라베노에서 생을 마감했다.

바레세현의 루솔로-플라테라 재단은 루솔로를 기리기 위해 매년 전자 음악 작곡 콩쿠르를 개최하고 있다. :fr:루이지 루솔로 전자 음악상은 전자 악기 분야에서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로 손꼽힌다.

2. 1. 초기 생애와 예술 활동

루이지 루솔로와 그의 조수 우고 피아티가 1913년 밀라노의 작업실에서 인토나루모리(소음 기계)와 함께 있는 모습


루이지 루솔로는 아마도 최초의 소음 예술가였을 것이다.[2][3] 1913년 선언문 《소음의 예술(L'Arte dei Rumori)》에서 그는 산업 혁명이 현대인에게 더 복잡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루솔로는 전통적인 멜로디 음악이 제약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소음 음악을 미래의 대체재로 보았다.[4]

루솔로는 인토나루모리라는 소음 발생 장치를 설계하고 제작하여, 소음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다. 1917년 《그란 콘체르토 푸투리스티코》 공연은 청중의 강력한 반대와 폭력에 직면했는데, 이는 루솔로 자신이 예측했던 바였다.

그의 인토나루모리는 남아 있지 않다. 일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괴되었고, 다른 일부는 분실되었다.[5] 이후 악기의 복제품이 제작되어 공연되었다. (인토나루모리 페이지 참조)

루솔로의 작품은 현대 노이즈 음악과는 거의 유사점이 없지만, 그의 선구적인 창작물은 이 범주에 속하는 여러 장르의 진화에 필수적인 단계로 간주된다.[6][7] 많은 예술가들이 현재 루솔로의 선언문에 익숙하다.[8]

thumb, 1920]]

베네토 지방 포르토그루아로 출신으로, 아버지는 라티차나의 교회 악장이었다. 형제들도 음악가가 되었고, 그 중 형 안토니오는 미래주의 음악을 작곡했다. 1901년 밀라노로 이주하여 브레라 미술관에 자주 드나들었으며,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처녀작에서는 점묘 기법을 사용하여 도시와 산업계를 환상적으로 묘사했다. 미래파 운동을 신봉하여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에게 가까이서 사사했다.

1913년 3월 11일, 논문 "소음 예술(''L'arte dei rumori'')"을 발표하여 전자 음악의 최초 이론가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실연용 특제 악기 인토나루모리를 발명 및 제작했다. 인토나루모리는 "조율"과 "소음"의 합성어로 "조율된 소음 기계" 정도의 의미이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토나루모리의 원본은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으나, 1986년 아키야마 구니하루가 남겨진 특허 자료 등을 바탕으로 8종을 복원했다. 루솔로는 최초의 노이즈 아티스트로 여겨지기도 한다.

2. 2. 미래주의 운동 참여와 《소음의 예술》

루이지 루솔로는 최초의 소음 예술가로 여겨진다.[2][3] 그는 1913년 선언문 《소음의 예술(L'Arte dei Rumori)》에서 산업 혁명으로 인해 현대인들이 더 복잡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루솔로는 전통적인 멜로디 음악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했고, 소음 음악을 미래의 대체재로 보았다.[4]

루솔로는 인토나루모리라는 소음 발생 장치를 설계하고 제작하여, 소음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연주했다. 1917년 그의 《그란 콘체르토 푸투리스티코》 공연은 청중의 강한 반대와 폭력을 일으켰다.

인토나루모리, 1920


그의 인토나루모리 악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괴되거나 분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5] 이후 악기의 복제품이 제작되어 공연되었다. (인토나루모리 참조).

루솔로의 작품은 현대 노이즈 음악과는 거의 유사점이 없지만, 그의 선구적인 창작물은 여러 장르의 진화에 필수적인 단계로 간주된다.[6][7] 많은 예술가들이 현재 루솔로의 선언문에 익숙하다.[8]

그는 1901년 밀라노로 가서 브레라 미술관에 자주 다니고,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 작업에 참여하였다. 미래파 운동을 신봉하여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에게 가까이서 사사했다.

1913년 3월 11일, 논문 "소음 예술(''L'arte dei rumori'')"을 발표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현재는 전자 음악의 최초 이론가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실연용으로 "소음"을 낼 수 있는 특제 악기 인토나루모리를 발명하고 제작했다. 인토나루모리라는 이름은 "조율"과 "소음"의 합성어로 "조율된 소음 기계" 정도의 의미이다. 불행하게도 인토나루모리의 원본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1986년 아키야마 구니하루에 의해 남겨진 특허 자료 등을 바탕으로 8종이 복원되었다. 루솔로를 최초의 노이즈 아티스트로 보는 시각도 있다.

2. 3. 인토나루모리 발명과 음악 활동



thumb, 1920]]

루이지 루솔로는 최초의 소음 예술가로 여겨진다.[2][3] 그는 1913년 선언문 《소음의 예술(L'Arte dei Rumori)》에서 산업 혁명으로 인해 현대인들이 더 복잡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루솔로는 전통적인 멜로디 음악이 제약적이라고 생각했고, 소음 음악을 미래의 대체재로 보았다.[4]

루솔로는 "소음"을 낼 수 있는 특제 악기 인토나루모리를 발명하고 제작했다. 인토나루모리라는 이름은 "조율"과 "소음"의 합성어로 "조율된 소음 기계" 정도의 의미이다. 그는 이것으로 소음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연주 활동을 했다. 1917년 그의 《그란 콘체르토 푸투리스티코》 공연은 청중의 강한 반대와 폭력을 마주했다.

인토나루모리의 원본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소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5] (1986년 아키야마 구니하루에 의해 남겨진 특허 자료 등을 바탕으로 8종이 복원되었다).

루솔로의 작품은 현대 노이즈 음악과는 거의 유사점이 없지만, 그의 선구적인 창작물은 이 범주에 속하는 여러 장르의 진화에 필수적인 단계로 평가받는다.[6][7] 많은 예술가들이 현재 루솔로의 선언문에 익숙하다.[8]

2. 4. 파시즘과의 관계

루솔로는 다른 많은 미래주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파시즘과 자주 연관된다. 그는 파시스트 선언(1919)을 공동 저술한 미래주의 예술가이자 시인인 F. T. 마리네티와 관계를 맺었으며, 무솔리니 정부가 후원하는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했다.[9] 그의 전기 작가 루치아노 케사는 일부 학자들이 루솔로의 파시즘 관련성을 지우려 시도했지만, 1933년 이탈리아로의 영구적인 귀환과 그 이후의 저작물들은 무솔리니 정권에 대한 수용과 충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10][11]

2. 5. 후기 생애와 작품 활동

루이지 루솔로는 아마도 최초의 소음 예술가였을 것이다.[2][3] 1913년 선언문 《소음의 예술(L'Arte dei Rumori)》에서 그는 산업 혁명이 현대인에게 더 복잡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루솔로는 전통적인 멜로디 음악이 제약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소음 음악을 미래의 대체재로 구상했다.[4]

루솔로는 인토나루모리라고 불리는 다수의 소음 발생 장치를 설계하고 제작했으며, 이를 가지고 연주할 소음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다. 그의 《그란 콘체르토 푸투리스티코》(1917) 공연은 루솔로 자신이 예측했던 대로 청중의 강력한 반대와 폭력에 직면했다.

그의 인토닝 악기 중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일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파괴되었고, 다른 일부는 분실되었다.[5] 이후 악기의 복제품이 제작되어 공연되었다. (인토나루모리 참조)

루솔로의 작품은 현대 노이즈 음악과는 거의 유사점이 없지만, 그의 선구적인 창작물은 이 범주에 속하는 여러 장르의 진화에서 필수적인 단계로 간과될 수 없다.[6][7] 많은 예술가들이 현재 루솔로의 선언문에 익숙하다.[8]

1941년부터 1942년까지 화가로 복귀하여 "고전적 모더니즘"이라고 칭하는 화풍으로 그렸다. 1947년, 바레세현의 체로 디 라베노에서 사망했다.

바레세현의 루솔로=플라테라 재단에 의해 루솔로를 기념하여 전자 음악 작곡 콩쿠르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fr:루이지 루솔로 전자 음악상은 전자 악기 분야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 중 하나이다.

2. 6. 형 안토니오 루솔로와의 협업

안토니오 루솔로는 루이지의 형이자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작곡가였다. 그는 루이지의 원본 인토나루모리를 사용한 두 곡을 녹음했는데, 1921년에 제작된 축음기 녹음에는 '코랄레'와 '세레나데'라는 작품이 있었다. 이 곡들은 기존의 오케스트라 음악과 소음 기계의 소리를 결합한 것이었으며, 루이지 루솔로의 소음 음악에 대한 유일하게 남아있는 동시대 사운드 녹음이다.[12]

3. 작품

루이지 루솔로는 회화와 음악 분야에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특히 그는 소음 예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13년 3월 11일, 루이지 루솔로는 논문 "소음 예술(''L'arte dei rumori'')"을 발표하여 전자 음악의 최초 이론가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소음"을 낼 수 있는 특제 악기 인토나루모리를 발명 및 제작했다. 인토나루모리는 "조율"과 "소음"의 합성어로 "조율된 소음 기계" 정도의 의미이다. 그러나 인토나루모리의 원본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소실되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3. 1. 회화

3. 2. 음악

안토니오 루솔로는 루이지의 형이자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작곡가로, 루이지의 원본 인토나루모리를 사용한 두 곡의 녹음을 제작했다. 1921년에 제작된 축음기 녹음에는 '코랄레'와 '세레나데'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는 기존의 오케스트라 음악과 소음 기계의 소리를 결합한 것이다. 이 녹음은 루이지 루솔로의 소음 음악에 대한 유일하게 현존하는 동시대 사운드 녹음이다.[12] 1914년 4월, 루솔로와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는 '인토나루모리'를 포함한 최초의 미래주의 음악 콘서트를 열었고, 이로 인해 소동이 벌어졌다.[13] 이 콘서트 프로그램은 4개의 '소음 네트워크'로 구성되었다.[14]

thumb, 1920]]

1901년 밀라노로 간 루이지 루솔로는 브레라 미술관에 자주 다니며,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그의 처녀작에서는 점묘 기법을 사용하여 도시와 산업계를 환상적으로 그려냈다. 그는 미래파 운동을 신봉하여 미래주의자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에게 가까이서 사사했다.

1913년 3월 11일, 루이지 루솔로는 논문 "소음 예술(''L'arte dei rumori'')"을 발표하여 전자 음악의 최초 이론가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소음"을 낼 수 있는 특제 악기 인토나루모리를 발명 및 제작했다. 인토나루모리는 "조율"과 "소음"의 합성어로 "조율된 소음 기계" 정도의 의미이다. 그러나 인토나루모리의 원본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소실되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루솔로를 최초의 노이즈 아티스트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바레세현의 루솔로=플라테라 재단은 루솔로를 기념하여 매년 전자 음악 작곡 콩쿠르를 개최하고 있으며, 루이지 루솔로 전자 음악상은 전자 악기 분야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 중 하나이다.

4. 유산과 영향

루이지 루솔로는 아마도 최초의 소음 예술가였을 것이다.[2][3] 1913년 그가 발표한 선언문 《소음의 예술(L'Arte dei Rumori)》은 산업 혁명이 현대인에게 더 복잡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루솔로는 전통적인 멜로디 음악이 제약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소음 음악을 미래의 대체재로 구상했다.[4]

루솔로는 인토나루모리라고 불리는 다수의 소음 발생 장치를 설계하고 제작했으며, 이를 가지고 연주할 소음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다. 그의 《그란 콘체르토 푸투리스티코》(1917) 공연은 루솔로 자신이 예측했던 대로 청중의 강력한 반대와 폭력에 직면했다. 그의 인토나루모리 중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일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파괴되었고, 다른 일부는 분실되었다.[5] 이후 악기의 복제품이 제작되어 공연되었다. (인토나루모리 참조).

루솔로의 작품은 현대 노이즈 음악과는 거의 유사점이 없지만, 그의 선구적인 창작물은 이 범주에 속하는 여러 장르의 진화에서 필수적인 단계로 간과될 수 없다.[6][7] 많은 예술가들이 현재 루솔로의 선언문에 익숙하다.[8]

바레세현의 루솔로=플라테라 재단에 의해 루솔로를 기념하여 전자 음악 작곡 콩쿠르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루이지 루솔로 전자 음악상은 전자 악기 분야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 중 하나이다.

참조

[1] 서적 Luigi Russolo, Futurist: Noise, Visual Arts, and the Occul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2-03-31
[2] 문서 Futurism and Musical Notes, Daniele Lombardi discusses the French composer Louis Carol-Bérard (1881–1942); a pupil of Isaac Albéniz, Carol-Bérard is said to have composed a Symphony of Mechanical Force's in 1910 – but little evidence as emerged thus far to establish this assertion.
[3] 웹사이트 Luigi Russolo, "The Art of Noises" http://www.unknown.n[...]
[4] 서적 Luigi Russolo, Futurist: Noise, Visual Arts, and the Occul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2
[5] 간행물 The Noise Instruments of Luigi Russolo 1981-01-01
[6] 서적 Noise/Music: A History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7
[7] 웹사이트 László Moholy-Nagy in 1923 recognized the unprecedented efforts of the Italian Futurists to broaden our perception of sound using noise. In an article in Der Sturm #7, he outlined the fundamentals of his own experimentation: "I have suggested to change the gramophone from a reproductive instrument to a productive one, so that on a record without prior acoustic information, the acoustic information, the acoustic phenomenon itself originates by engraving the necessary Ritzschriftreihen [etched grooves]." He presents detailed descriptions for manipulating discs, creating "real sound forms" to train people to be "true music receivers and creators" http://ubu.com/paper[...] UbuWeb 1994
[8] 서적 Luigi Russolo, Futurist: Noise, Visual Arts, and the Occul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2
[9] 웹사이트 Luigi Russolo's Cacophonous Futures https://publicdomain[...] 2023-02-10
[10] 서적 Luigi Russolo, futurist: noise, visual arts, and the occul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2
[11] Youtube Luciano Chessa: 'Russolo's Antifascism Revisited' + performance: 'La Battaglia Di Adrianopoli' https://www.youtube.[...] 2024-01-17
[12] 서적 Modernism and Music: An Anthology of Sourc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13] 서적 Music of the Twentieth-century Avant-garde: A Biocritical Sourcebook https://books.google[...] Greenwood Publishing Group
[14] 문서 The Art of Noise 1913
[15] 문서 Futurism and Musical Notes, Daniele Lombardi discusses the French composer Louis Carol-Bérard (1881–1942); a pupil of Isaac Albéniz, Carol-Bérard is said to have composed a Symphony of Mechanical Force's in 1910 – but little evidence as emerged thus far to establish this assertion.
[16] 웹사이트 Luigi Russolo, "The Art of Noises" http://www.unknown.n[...] 2023-06-29
[17] 서적 A Dictiona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Oxford University Press
[18] 서적 A Dictiona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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