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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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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는 145년 3월부터 4월까지 루키우스 포블리콜라 프리스쿠스와 함께 보좌 집정관을 지냈다. 그는 루키우스 푼다니우스 라미아 아일리아누스와 루필리아의 아들이었으며,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파우스티나의 딸 아우렐리아 파딜라와 결혼했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고르디아누스 1세의 아내 파비아 오레스틸라가 실바누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이를 부정하며 고르디아누스의 아내가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손녀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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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
기본 정보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의 집정관 이중 그림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의 집정관 이중 그림
이름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
로마자 표기Lūcius Plautius Lāmia Silvānus
출생1세기
사망1세기
가족플라우티우스 씨족
아버지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어머니라르티아
형제자매플라우티아 우르굴라닐라
배우자도미티아 롱기나
자녀루키우스 아일리우스 라미아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경력
집정관80년

2. 생애

실바누스는 루키우스 푼다니우스 라미아 아일리아누스와 그의 부인 루필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실바누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대 파우스티나의 딸인 아우렐리아 파딜라 (135년 사망)와 혼인했다고 한다.[5] 그는 145년에 루키우스 포블리콜라 프리스쿠스와 함께 보좌 집정관을 지냈다.[4]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고르디아누스 1세의 아내인 파비아 오레스틸라가 실바누스의 후손인 그녀의 아버지 풀부스 안토니누스를 통해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후손이었다고 주장한다.[6] 그러나 현대 역사가들은 이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보며, 고르디아누스 1세의 아내는 그리스 출신의 소피스트이자 집정관, 가정 교사이던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손녀라고 여긴다.

2. 1. 집정관 경력

그는 145년 3월부터 4월까지 눈미디움 기간 동안 루키우스 포블리콜라 프리스쿠스를 동료 집정관으로 둔 보좌 집정관이었다.[4]

2. 2. 가계

실바누스는 루키우스 푼다니우스 라미아 아일리아누스와 그의 부인 루필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2]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실바누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대 파우스티나의 딸인 아우렐리아 파딜라 (135년 사망)와 혼인했다고 한다.[5]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고르디아누스 1세의 아내인 파비아 오레스틸라가 실바누스의 후손인 그녀의 아버지 풀부스 안토니누스를 통해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후손이었다고 주장한다.[3] 그러나 현대 역사가들은 이 정보가 잘못되었다고 부정하며, 고르디아누스 1세의 아내는 그리스 출신의 소피스트이자 집정관, 가정 교사이던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손녀라고 여긴다.

3. 역사적 기록의 진위 논란

《아우구스탄 연대기》에서는 고르디아누스 1세의 아내인 파비아 오레스틸라가 실바누스의 후손인 그녀의 아버지 풀부스 안토니누스를 통해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3] 그러나 현대 역사가들은 이 이름과 정보가 허위라고 간주하며, 고르디아누스 1세의 아내가 그리스 출신 소피스트이자 집정관, 가정교사였던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손녀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참조

[1] 서적 Die Fasti consulares der Regierungszeit des Antoninus Pius, eine Bestandsaufnahme seit Géza Alföldys Konsulat und Senatorenstand Bonn 2013
[2] 서적 Lives of the Later Caesars Penguin 1976
[3] 서적
[4] 서적 Die Fasti consulares der Regierungszeit des Antoninus Pius, eine Bestandsaufnahme seit Géza Alföldys Konsulat und Senatorenstand Bonn 2013
[5] 서적 Lives of the Later Caesars Penguin 1976
[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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