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 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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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디 피시는 은퇴한 미국의 남자 프로 테니스 선수로,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0년 프로로 전향하여, 2003년 스톡홀름 오픈에서 첫 ATP 단식 우승을 거두고 2004년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1년 세계 랭킹 7위에 올랐으며, ATP 투어 단식 6회, 복식 8회 우승을 기록했다. 2012년 심장 부정맥으로 고생했으며, 이후 불안 장애를 겪으며 2015년 US 오픈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데이비스 컵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으며, 골프 선수로도 활동하며 2020년과 2024년 아메리칸 센추리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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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 피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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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전체 이름 | 마디 심슨 피시 |
국적 | 미국 |
거주지 | 로스앤젤레스 |
출생일 | 1981년 12월 9일 |
출생지 | 미국 미네소타주 이다이나 |
신장 | 1.88m |
플레이 스타일 | 오른손잡이 (양손 백핸드) |
프로 데뷔 | 2000년 |
은퇴 | 2015년 |
통산 상금 | US$7,392,041 |
단식 | |
통산 전적 | 302승 219패 (58.0%) |
통산 타이틀 | 6회 |
최고 랭킹 | 7위 (2011년 8월 15일) |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최고 성적 | 8강 (2007년) |
프랑스 오픈 최고 성적 | 3회전 (2011년) |
윔블던 선수권 대회 최고 성적 | 8강 (2011년) |
US 오픈 최고 성적 | 8강 (2008년) |
ATP 월드 투어 파이널 최고 성적 | 라운드 로빈 (2011년) |
올림픽 최고 성적 | 준우승 (2004년) |
복식 | |
통산 전적 | 136승 105패 (56%) |
통산 타이틀 | 8회 |
최고 랭킹 | 14위 (2009년 7월 6일) |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최고 성적 | 8강 (2005, 2009) |
프랑스 오픈 최고 성적 | 2회전 (2002, 2010) |
윔블던 선수권 대회 최고 성적 | 4강 (2009) |
US 오픈 최고 성적 | 3회전 (2001, 2010) |
단체전 | |
데이비스 컵 | 준우승 (2004년) |
호프먼 컵 | 우승 (2008년) |
메달 | |
올림픽 | 2004 아테네 남자 단식 은메달 |
2. 유년 시절
마디 피시는 테니스 강사인 아버지 톰 피시와 주부인 어머니 샐리 피시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미네소타 에디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4] 1984년, 두 살 때 피시가 베이스라인에서 네트 너머로 테니스 공을 치는 모습이 미니애폴리스의 한 TV 방송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1986년, 피시의 가족은 플로리다 베로 비치로 이사했다.[4] 그는 베로 비치 고등학교에서 10학년을 마쳤고, 이후 고등학교 3학년과 4학년은 플로리다 보카 레이턴에 있는 보카 프렙에서 다녔다. 앤디 로딕, 제시 레빈과 함께 보카 프렙 국제 학교를 다녔으며,[4] 1999년에는 로딕의 가족과 함께 살면서 같은 테니스 및 농구 팀에서 활동했다.[1]
피시는 2000년 프로로 전향하여 챌린저와 퓨처스 서킷에서 활동했다. 2002년부터 데이비스 컵 미국 대표팀 선수로 활동했으며,[1] 2002년 4월 앤디 로딕과 함께 출전한 U.S. Men's Clay Court Championships 복식에서 우승하며 ATP 투어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1]
3. 선수 경력
2003년에는 남자 투어 3개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10월 중순 스톡홀름 오픈에서 로빈 소데를링을 꺾고 투어 첫 단식 우승을 달성하며 세계 랭킹 20위로 마감했다.[1]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는 칠레 대표 페르난도 곤잘레스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니콜라스 마수에게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1] 2005년에는 왼쪽 손목 부상으로 두 번 수술을 받았다.[1]
2006년 4월 US 남자 클레이 코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위르겐 멜처를 꺾고 우승하며 3년 만에 남자 투어 2승을 거두었고,[15] 이후 4대 메이저 대회에도 복귀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2008년 US 오픈 8강에 진출하며, 2007년 호주 오픈 이후 두 번째 4대 메이저 단식 8강 진출을 기록했다.[15]
2010년 애틀랜타 테니스 선수권 대회와 명예의 전당 테니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2011년에는 톱 10에 진입하여 로딕을 제치고 미국 랭킹 1위에 올랐다.[15] 8월에는 자기 최고 랭킹인 7위를 기록했고, ATP 월드 투어 파이널에 처음 출전했지만 라운드 로빈에서 3연패로 탈락했다.[15]
2012년 심장 질환으로 5월에 수술을 받았고, 이후 한동안 대회에 불참했다. 2013년에 복귀했지만 4대 메이저 대회에 모두 불참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2015년 US 오픈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으며, US 오픈 2회전에서 펠리시아노 로페스에게 패하며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3. 1. 주니어
주니어 시절 피시는 단식 58승 25패, 복식 32승 19패를 기록했으며, 1999년 세계 랭킹 14위(복식 19위)까지 올랐다.[1]
3. 2. 2000-2005: 프로 데뷔 및 초기 경력
마디 피시는 2000년에 프로로 전향하여 챌린저와 퓨처스 서킷에서 활동했다. 2002년부터는 남자 테니스 국가 대항전인 데이비스 컵 미국 대표팀 선수로 활동했다.[1]
2002년 4월에는 앤디 로딕과 함께 출전한 U.S. Men's Clay Court Championships 복식에서 우승하며 ATP 투어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1]
2003년에는 남자 투어에서 3개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후, 같은 해 10월 중순의 스톡홀름 오픈에서 로빈 소데를링을 꺾고 투어 첫 단식 우승을 달성했다.[1] 이 해에 피시는 세계 랭킹 20위로 마감했다.[1]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피시는 남자 단식 은메달을 획득했다. 준결승에서 칠레 대표 페르난도 곤잘레스를 꺾었으나, 결승전에서 니콜라스 마수에게 패했다.[1]
2005년에는 왼쪽 손목 부상으로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1]
3. 3. 2006-2011: 부활과 전성기
피시는 2006년 4월 US 남자 클레이 코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위르겐 멜처를 꺾고 우승하며 3년 만에 남자 투어 2승을 거두었다.[15] 같은 해 윔블던부터 4대 메이저 대회에도 복귀하여 2006년 말 최종 랭킹을 47위까지 끌어올렸다.[15] 2007년 호주 오픈에서 8강에 진출했다.[15] 1회전에서 4번 시드 이반 류비치치를 꺾었고, 8강에서 로딕에게 2-6, 2-6, 2-6으로 완패했다.[15]
2008년 US 오픈에서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다. 이는 2007년 호주 오픈 이후 두 번째 4대 메이저 단식 8강 진출이었다.[15] 8강에서 1번 시드 라파엘 나달에게 6-3, 1-6, 4-6, 2-6으로 패했다.[15]
2009년 윔블던 선수권 대회에서 제임스 블레이크와 조를 이뤄 남자 복식 4강에 진출했다.[15] 준결승에서는 2번 시드 다니엘 네스터/네나드 지몬지치 조에 7-5, 6-3, 2-6, 6-7, 8-10으로 역전패했다.[15]
2010년 애틀랜타 테니스 선수권 대회와 명예의 전당 테니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11년 4월, 톱 10에 진입했으며, 로딕을 제치고 미국 랭킹 1위에 올랐다.[15] 윔블던 선수권 대회 8강에서 나달에게 3-6, 3-6, 7-5, 4-6으로 패했다.[15] 8월에는 자기 최고 랭킹인 7위를 기록했고, ATP 월드 투어 파이널에 처음 출전했지만, 라운드 로빈에서 3연패로 탈락했다.[15]
3. 4. 2012-2015: 심장 질환, 불안 장애, 그리고 은퇴
2012년 심장 질환으로 고생하여 5월에 수술을 받았고, 프랑스 오픈에는 불참했다.[6] US 오픈에서는 4회전 로저 페더러와의 경기를 기권했고, 이후 모든 경기에 불참했다. 2013년 3월 BNP 파리바 오픈부터 복귀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2013년 4대 메이저 대회에 모두 불참했다. 랭킹이 100위 이하로 떨어지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15년 US 오픈을 앞두고, 피시는 "이것이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다"라고 밝히며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US 오픈 1회전에서 마르코 체키나토를 6-7(5), 6-3, 6-1, 6-3으로 꺾었으나, 2회전에서 펠리시아노 로페스에게 6-2, 3-6, 6-1, 5-7, 3-6으로 풀세트 접전 끝에 패하며 은퇴 경기를 치렀다.
4. 은퇴 이후
마디 피시는 2015년 US 오픈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경기는 2회전에서 펠리시아노 로페스와의 경기로, 풀세트 접전 끝에 6-2, 3-6, 6-1, 5-7, 3-6으로 패했다.
2019년부터는 짐 쿠리어의 뒤를 이어 데이비스 컵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5. 경기 스타일
마디 피시는 윌슨 BLX 식스. 원 95 18x20 라켓을 사용했으며, 윌슨 내추럴 거트와 룩실론 ALU 파워 스트링을 혼합하여 사용했다. 그가 선호하는 그립은 윌슨 프로 오버그립이었다. 그는 트래비스매튜 의류를 착용했다.[29]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강력한 서브와 안정적인 백핸드였으며, 종종 능숙한 발리 플레이로 네트에서 포인트를 획득했다. 그의 가장 안정적인 샷은 양손 백핸드였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펴서 포인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의 포핸드는 더 일관성이 떨어졌지만, 선수 경력 후반으로 갈수록 향상되었다. 2010년에는 약 92.08kg에서 약 77.11kg으로 30lb-change 감량했다. 이로 인해 피시는 훨씬 더 건강해지고, 빨라지며, 더 긴 랠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6. 개인 생활
2008년 9월, 마디 피시는 유대교 결혼식(가드너는 유대인이다)을 통해 NBC의 ''딜 오어 노 딜''에 출연했던 캘리포니아 변호사이자 "브리프케이스 모델"인 스테이시 가드너와 결혼했다.[31][32] 피시의 친구이자 동료 테니스 선수인 제임스 블레이크가 신랑 들러리를 섰다.[32] 그는 앤디 로딕, 밥 브라이언, 마이크 브라이언과도 좋은 친구이다.
피시는 컨트리 음악 스타 제이크 오웬과 베로 비치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그와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은 베로 비치에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선 단체를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함께 자선 행사를 열기도 했다.
피시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팬이다.[33]
7. 수상 및 업적
אנדי רם|앤디 람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