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나가 다카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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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쓰나가 다카히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시도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해 간사이 국제 대학을 졸업하고, 2012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다. 2013년 데뷔하여 구원과 선발을 오가며 활약했고, 2018년에는 100홀드를 달성했다. 2022년 은퇴 후 2023년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의 육성 투수 코치 겸 2군 투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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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나가 다카히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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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이름 | 마쓰나가 다카히로 |
원어 이름 | 松永 昂大 |
로마자 표기 | Matsunaga Takahiro |
선수 정보 | |
출생일 | 1988년 4월 16일() |
출생지 | 가가와현 오카와군 사누키시 |
신장 | 175cm |
체중 | 82kg |
포지션 | 투수 / 코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연도 | 2012년 |
드래프트 순위 | 1순위 |
프로 경력 | |
선수 | 지바 롯데 마린스 (–) |
코치 | 지바 롯데 마린스 (-) |
NPB 경력 | |
첫 출장 (날짜) | 2013년 3월 29일 |
마지막 출장 (날짜) | 2020년 7월 31일 |
소속 리그 | NPB |
데뷔 팀 | 지바 롯데 마린스 |
마지막 팀 | 지바 롯데 마린스 |
통산 성적 (2020 시즌 종료 기준) | | 승패: 16승 15패 | 평균 자책점: 2.91 | 탈삼진: 238 | 세이브: 1 | 홀드: 135 |
등번호 | |
선수 시절 | 79 |
코치 시절 | 79 |
국가대표 경력 | |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 2018년 미일 야구 |
기타 정보 | |
baseball-reference.com | Takahiro Matsunaga Japanese League Statistics & History |
2. 프로 입단 전
가가와현 오가와 군 시도 정(현재의 사누키시)에서 태어나 시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지역 소년 야구 팀에 들어가 야구를 시작했다.[5] 시도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어 3학년 때 에이스로 현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6]
2012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후지나미 신타로를 추첨에서 놓친 오릭스 버펄로스와 지바 롯데 마린스가 마쓰나가를 1순위로 지명, 추첨 결과 지바 롯데가 교섭권을 획득했다.[12] 11월 30일 계약금 1억엔, 연봉 1500만엔에 성과급을 더하는 조건으로 가계약했으며 등번호는 28번으로 정해졌다.
2023년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의 육성 투수 코치 겸 2군 투수 코치를 맡고 있다.[45][46] 등번호는 '''79'''이다.
사이드 스로에 가까운 쓰리 쿼터 좌완 투수로, 평균 140km대 초중반, 최고 151km의 직구와 대각선으로 날카롭게 휘는 슬라이더가 주무기이다.[48]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이후 투수 한 우물만 팠다.
마쓰나가 다카히로는 가가와현 오가와 군 시도 정(현재의 사누키시) 출신으로, 시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시도 중학교 시절에는 연식 야구부 에이스로 활약하며 현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다카마쓰 상업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 가을부터 에이스로 활약, 추계 현 대회와 시코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전국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다카마쓰 상업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 가을부터 에이스로 활약하며 추계 현 대회 준우승,[7] 추계 시코쿠 대회 8강에 진출했다.[8] 이듬해 춘계 현 대회에서도 준우승했고, 시드 2위로 참가한 하계 현 대회에서는 3라운드에서 탈락하며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9]
간사이 국제 대학 진학 후 1학년 봄부터 공식 경기에 출전했다. 3학년 봄 사카키바라 료, 이하라 마사키가 빠진 후 주전 투수가 되어 봄·가을 모두 MVP를, 4학년 때는 봄·가을 모두 최우수 투수상을 받았다. 특히 4학년 가을에는 리그 기록에 1승 모자란 8승을 올렸다. 한신 대학 리그 통산 42경기 23승 3패, 방어율 1.14, 257탈삼진을 기록했다.
대학 졸업 후 오사카 가스에 입사했다. 2011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예선 9경기 중 7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팀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2012년 팀은 예선 탈락했지만, 구몬 가쓰히코와 함께 파나소닉 보강 선수로 본선에 진출, 8강에 공헌했다. 같은 해 8월 31일 오사카 가스 야구부원 및 OB들의 집단 도박이 발각되어 활동 자숙 처분을 받았지만, 마쓰나가는 도박에 연루되지 않았다.[10]
3. 프로 선수 시절 (지바 롯데 마린스)
2013년 개막 1군에 합류하여,[12] 3월 29일 오릭스 버펄로스전에서 프로 첫 등판,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프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 이후 마무리 마스다 나오야에게 연결하는 셋업맨으로 기용되어, 4월 25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에서 프로 첫 승리[13], 8월 8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프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14] 8월 중순 시점에서 리그 2위의 홀드 포인트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선발 투수 부족으로 인해 8월 30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프로 첫 선발 등판하여 5이닝 1실점으로 호투[15]하며, 그대로 선발 투수로 전향했다. 6번의 선발 등판에서 2승 무패, 방어율 2.57로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었고, 시즌을 통해 맹활약하며 팀의 3년 만의 A클래스 진입에 기여했다. 58경기(선발 6경기) 등판에서 4승 1패 28홀드 1세이브, 방어율 2.11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오프에 22.5억엔 증액된 추정 연봉 37.5억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6] 11월에는 대만에서 열린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17]
2014년은 셋업맨으로 개막부터 등판을 거듭했지만 구원 실패가 잦아[18] 개막부터 23경기 등판에서 4홀드에 그쳤고, 6월 15일에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7월 3일 소프트뱅크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1군 복귀 후 릴리프로 돌아와 홀드를 쌓았지만, 왼쪽 팔꿈치 관절 주위염으로 8월 6일에 다시 등록 말소[19]되었다. 9월 4일에 다시 1군에 복귀했지만[20] 같은 달 21일에 등록 말소되어[21] 시즌을 마쳤다. 이 해에는 46경기(선발 1경기) 등판에서 4승 3패 12홀드, 방어율 3.27의 성적을 남겼고, 오프에 1.5억엔 증액된 추정 연봉 39억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2]
2015년은 3년 연속 개막 1군에 합류했지만, 개막부터 23경기 등판에서 방어율 6.19로 부진하여 5월 29일에 등록이 말소되었다. 8월 20일에 다시 출장 선수 등록이 되자[23] 재승격 후 18경기에서 단 1실점으로 회복세를 보였고, 최종적으로 방어율을 3.72까지 끌어올렸다. 이 해에는 41경기 모두 릴리프 등판하여 13홀드를 기록, 오프에 800만엔 증액된 추정 연봉 47억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4]
2016년에도 개막 1군에 합류하여, 개막부터 13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7월에 들어 3이닝에서 8사사구로 제구 난조에 빠져 7월 30일에 등록 말소. 8월 21일에 1군 복귀하여[25] 시즌 종료까지 불펜의 한 축을 담당했다. 53경기 등판에서 3승 무패 10홀드, 방어율 3.46의 성적을 남겼고, 오프에 1000만엔 증액된 추정 연봉 57억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6]
2017년은 5년 연속 개막 1군에 합류했지만 개막부터 7경기에서 방어율 10점대로 부진, 4월 27일에 등록 말소[27]되었다. 5월 31일에 1군으로 재승격하자 회복세를 보이며, 셋업맨을 맡았다. 50경기 등판에서 1승 3패 18홀드, 방어율 3.22의 성적을 남겼고, 오프에 300만엔 증액된 추정 연봉 60억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28]
2018년은 개막부터 셋업맨을 맡았고, 7월 20일 오릭스전에서 통산 100홀드를 달성[29]했다. 한 번도 등록 말소되지 않고 시즌을 마쳤고, 자기 최다인 60경기에 등판. 2승 5패 26홀드, 방어율 3.15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오프에 1000만엔 증액된 추정 연봉 70억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30] 11월에 개최되는 일본-미국 야구에 멤버로 합류했지만, 어깨에 이상이 있어 출전을 고사하게 되었다.[31]
2019년은 7년 연속 개막 1군에 합류했지만, 왼쪽 팔꿈치 염증으로 5월 30일에 등록 말소[32]되었다. 6월 28일에 1군 복귀하여, 7월에는 10경기 8⅓이닝을 던져, 7홀드, 방어율 0.00으로 호투했지만[33], 왼쪽 어깨 통증으로 9월 9일에 다시 등록 말소되어[34]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두 번의 부상으로 46경기 등판에 그쳤지만, 2승 3패 25홀드, 방어율 2.60의 성적으로 오프에 500만엔 증액된 추정 연봉 75억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35]
2020년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막이 6월이 되었지만, 왼쪽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아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개막 1군에 들지 못했다. 7월 21일에 1군으로 승격했고, 8월 8일에 국내 FA권을 획득했지만[36] 같은 달 10일에 등록 말소. 이후에도 왼쪽 팔꿈치 컨디션 불량에 시달려 1군 등판이 없어 시즌을 마쳤고, 프로 입단 후 최소인 5경기 등판에 그쳤다. 오프 12월 3일에 국내 FA권을 행사할 것을 발표했다.[37]
2021년 1월 27일에 현상 유지인 추정 연봉 75억엔으로 롯데와 재계약하여 잔류하는 것이 발표되었다.[38][39] 스프링 캠프 첫날부터 불펜에 들어가는 등 조정을 계속했지만, 3월 1일의 오픈전을 마지막으로 2군 훈련이 되었고, 이후 레귤러 시즌에서는 왼쪽 어깨의 누적 피로가 원인으로 1군, 2군 모두 등판이 없었다.[40] 11월 26일에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41] 12월 17일에 육성 선수로 재계약했다. 등번호는 '''138'''[42]이다.
2022년, 7월 30일에 다시 지배하 등록되었다. 등번호는 이전과 같은 '''28'''번이다. 그러나 결국 이 해에도 1군, 2군 모두 한 번도 등판 기회가 없었고, 시즌 종료 후인 10월 6일, 같은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는 것이 발표[43]되었다. 11월 20일, 팬 감사제에서 은퇴 행사가 열렸다.[44]
4. 은퇴 이후
5. 플레이 스타일
6. 상세 정보
간사이 국제 대학 진학 후에는 1학년 봄부터 공식 경기에 출전, 3학년과 4학년 때 뛰어난 성적으로 MVP와 최우수 투수 상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사회인 야구팀 오사카 가스에 입사하여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예선에서 활약했다. 2012년에는 팀 동료들과 함께 파나소닉의 보강 선수로 본 대회에 진출, JFE 서일본과의 경기에서 좋은 투구를 선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오사카 가스 야구부의 도박 사건이 발생하여 활동 자숙 처분을 받기도 했다.
2012년 드래프트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에 1순위로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 계약금은 1억엔, 연봉은 1500만엔이었다. 프로 첫 해인 2013년에는 중간 계투와 선발을 오가며 맹활약, 팀의 A클래스 진입에 기여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1군에서 활약하며 셋업맨으로 자리 잡았지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20년에는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5경기 등판에 그쳤다. 시즌 후 FA 권리를 행사했지만, 2021년 롯데와 재계약했다. 그러나 왼쪽 어깨 부상으로 인해 1군과 2군 모두 등판하지 못하고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후 육성 선수로 재계약했지만, 2022년에도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2023년부터는 롯데의 육성 투수 코치 겸 2군 투수 코치를 맡고 있다.
수상 경력 및 기타 정보
6. 1. 통산 투구 기록
살보
살실
책병
살수비율 2013 롯데 58 8 11 1 1 .950 2014 46 6 21 0 2 1.000 2015 41 2 6 1 1 .889 2016 53 0 7 2 0 .778 2017 50 4 8 2 0 .857 2018 60 2 10 0 1 1.000 2019 46 1 9 0 0 1.000 2020 5 0 0 0 0 ---- 통산 359 23 72 6 5 .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