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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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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민지(閔漬, 1248년 ~ 1326년)는 고려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용연(龍涎), 호는 묵헌(默軒), 시호는 문인(文仁)입니다.
주요 활동:


  • 과거 급제: 1266년(원종 7년) 18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 관직: 원종,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대에 걸쳐 여러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 전중시사(殿中寺史) (1280년, 충렬왕 6년)
  • 전리정랑(典理正郎) (1288년, 충렬왕 14년)
  • 예빈윤(禮賓尹) (1290년, 충렬왕 16년): 세자(훗날의 충선왕)의 사부
  • 첨의정승(僉議政丞)으로 치사 (충선왕 즉위년)
  • 외교 활동:
  • 충렬왕 16년(1290년), 세자를 수행하여 원나라에 갔을 때 교지(交趾, 베트남) 정벌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여 군사 동원 대신 사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는 방안을 제시, 한림직학사(翰林直學士)의 직을 받았습니다.
  • 일본 원정의 불필요함을 역설하여 전함 건조를 중지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 충선왕이 토번(吐蕃)으로 유배되었을 때, 그의 귀환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 저술 활동:
  • 1317년(충숙왕 4년)에 고려 왕조에 관한 역사서인 《본국편년강목(本國編年綱目)》을 저술했습니다.
  • 《세대편년절요(世代編年節要)》를 편찬했습니다.
  • 그의 시문은 증손 민자복(閔子復)에 의해 《묵헌선생집(默軒先生集)》으로 묶였습니다.

평가:

  • 이제현은 민지를 고려 후기 대표적 문인 관료로서 이규보와 김구에 비견되는 외교문서 작성의 책임자라고 평가했습니다.
  • 뛰어난 문장가로, 특히 외교 문서 작성에 능했습니다.
  • 말년에 원로 관료로서 국가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사서 편찬에 힘썼습니다.


민지는 무신정권기에 위축되었던 역사서 편찬이 충렬왕부터 충선왕대에 이르러 다시 활발해지는 데 기여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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