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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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번숭은 후한 초기의 인물로, 여모의 난 이후 봉기하여 적미군을 이끌었다. 그는 태산군에서 봉기하여 세력을 확장, 왕망의 신나라에 대항하여 적미군을 결성하고, 경시 정권과 대립했다. 유분자를 옹립하여 장안을 점령했으나, 통치 실패로 몰락했다. 이후 후한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항복했으나, 모반을 일으켜 처형되었다.
번숭은 여모의 난 이후, 서주 낭야군 거에서 1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봉기하여 태산군에서 삼로를 자칭했다. 당시 청주와 서주는 큰 기근과 도적떼가 만연했는데, 이들은 번숭을 용맹한 인물로 여겨 휘하에 들어갔다. 1년 만에 1만 명 이상의 군세를 이루었으며, 방안, 동해군의 서선, 사록, 양음 등도 가담하여 세력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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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처음에는 거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고막(낭야군)을 공격하여 지황 2년 (21년) 탐탕후 전황의 군을 격파했다. 이후 청주에서 약탈을 벌이고 태산으로 돌아갔는데, 이때부터 번숭의 군은 단순한 도적 무리가 아닌 군대로서의 조직과 규율을 갖추게 되었다.
지황 3년(22년), 왕망은 번숭을 토벌하기 위해 경시장군 평균공 렴단과 태사 왕광의 군대를 파견했다. 이때 번숭 등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병사들의 눈썹을 붉게 물들이도록 지시했다. 이로 인해 "적미군"(赤眉軍)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적미군은 렴단과 왕광의 군대를 격파하고, 무염(무염, 동평군)까지 추격하여 렴단을 죽였다[1]。이후 적미군의 일부는 하북으로 분산되었고, 번숭의 군대는 각지를 공략하며 진류군으로 들어가 노성(노성, 노군)을 함락시키고, 복양(복양, 동군)으로 진입했다.
경시 원년(23년) 10월, 경시제(유현)는 낙양으로 천도한 후 사자를 파견하여 번숭에게 항복을 권했다. 번숭은 장수 20여 명만을 데리고 낙양을 방문하여 열후에 봉해졌으나, 영지를 받지 못했다. 부양할 수 없게 된 부하 병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번숭 등은 낙양에서 도망쳐 다시 자군에게 돌아갔다.[1]
적미군은 영천으로 들어가 군대를 둘로 나누었다. 한 군대는 번숭과 팽안이 이끌고 장사(장사, 영천군)와 완(완, 남양군)을 공략했고, 다른 한 군대는 서선, 사록, 양음이 이끌고 양적과 양(양, 영천군)을 공략하여 하남 태수를 참수했다.
적미군은 연전연승했지만, 병사들은 피폐해져 동쪽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번숭 등은 동쪽으로 돌아가면 군대가 와해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장안으로 진공하기로 결정했다.
적미군은 갱시군을 격파하고 화음(홍농군)에 도달했다. 여기서 종군하고 있던 무당이 트랜스 상태에서 유씨 종족을 천자로 옹립하라고 말했고, 갱시제에게 살해당한 방망의 동생 방양이 유씨 종실의 자를 옹립하여 군의 정통성을 확보할 것을 권했다. 적미군 제장들은 협의하여, 가장 혈통이 가까운 자 셋 중에서 제비를 뽑기로 한 결과, 같은 해 6월, 유분자를 황제로 옹립하고, 건세 원년으로 칭했다. 번숭은 용맹함으로 두령이 되었지만, 읽고 쓰는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문적 소양이 있었던 서선에게 승상 지위를 넘겨주고, 자신은 어사대부에 취임했다.
같은 해 9월, 적미군은 갱시제에게 반역한 장앙 등의 도움을 받아 장안을 함락시키고, 갱시제를 항복시켜 그 정권을 멸망시켰다.
건세 3년(27년), 번숭 등은 등우의 군대를 각지에서 격파하며 필사적으로 동쪽으로 도주했지만, 효저(효저, 홍농군 몠지현)에서 풍이가 이끄는 후한 군대에 대패했다. 번숭 등은 의양(의양, 홍농군)으로 도주했지만, 여기서 광무제가 이끄는 한나라 대군에 정면을 막히고, 마침내 서선 이하 30명과 함께 상반신을 벗고 항복했다.[1]
그 후, 번숭은 낙양에서 처자식과 함께 거주했지만, 그해 여름, 방안과 함께 모반을 일으켜 주살되었다.[1]
2. 1. 초기 활동
여모의 난 이후, 서주 낭야군 거에서 1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봉기하여 태산군에서 삼로를 자칭했다. 당시 청주와 서주는 큰 기근과 도적떼가 만연했는데, 이들은 번숭을 용맹한 인물로 여겨 휘하에 들어갔다. 1년 만에 1만 명 이상의 군세를 이루었으며, 방안, 동해군의 서선, 사록, 양음 등도 가담하여 세력이 더욱 커졌다.
처음에는 거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고막(낭야군)을 공격하여 지황 2년 (21년) 탐탕후 전황의 군을 격파했다. 이후 청주에서 약탈을 벌이고 태산으로 돌아갔는데, 이때부터 번숭의 군은 단순한 도적 무리가 아닌 군대로서의 조직과 규율을 갖추게 되었다.
2. 2. 적미군 결성
지황 3년(22년), 왕망은 번숭을 토벌하기 위해 경시장군 평균공 렴단과 태사 왕광의 군대를 파견했다. 이때 번숭 등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병사들의 눈썹을 붉게 물들이도록 지시했다. 이로 인해 "적미군"(赤眉軍)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적미군은 렴단과 왕광의 군대를 격파하고, 무염(無鹽, 동평군)까지 추격하여 렴단을 죽였다[1]。이후 적미군의 일부는 하북으로 분산되었고, 번숭의 군대는 각지를 공략하며 진류군으로 들어가 노성(魯城, 노군)을 함락시키고, 복양(濮陽, 동군)으로 진입했다.
2. 3. 경시정권과의 대립
경시 원년(23년) 10월, 경시제(유현)는 낙양으로 천도한 후 사자를 파견하여 번숭에게 항복을 권했다. 번숭은 장수 20여 명만을 데리고 낙양을 방문하여 열후에 봉해졌으나, 영지를 받지 못했다. 부양할 수 없게 된 부하 병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번숭 등은 낙양에서 도망쳐 다시 자군에게 돌아갔다.[1]
적미군은 영천으로 들어가 군대를 둘로 나누었다. 한 군대는 번숭과 팽안이 이끌고 장사(長社, 영천군)와 완(宛, 남양군)을 공략했고, 다른 한 군대는 서선, 사록, 양음이 이끌고 양적과 양(梁, 영천군)을 공략하여 하남 태수를 참수했다.
적미군은 연전연승했지만, 병사들은 피폐해져 동쪽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번숭 등은 동쪽으로 돌아가면 군대가 와해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장안으로 진공하기로 결정했다.
2. 4. 유분자 옹립과 장안 점령
적미군은 갱시군을 격파하고 화음(홍농군)에 도달했다. 여기서 종군하고 있던 무당이 트랜스 상태에서 유씨 종족을 천자로 옹립하라고 말했고, 갱시제에게 살해당한 방망의 동생 방양이 유씨 종실의 자를 옹립하여 군의 정통성을 확보할 것을 권했다. 적미군 제장들은 협의하여, 가장 혈통이 가까운 자 셋 중에서 제비를 뽑기로 한 결과, 같은 해 6월, 유분자를 황제로 옹립하고, 건세 원년으로 칭했다. 번숭은 용맹함으로 두령이 되었지만, 읽고 쓰는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문적 소양이 있었던 서선에게 승상 지위를 넘겨주고, 자신은 어사대부에 취임했다.
같은 해 9월, 적미군은 갱시제에게 반역한 장앙 등의 도움을 받아 장안을 함락시키고, 갱시제를 항복시켜 그 정권을 멸망시켰다.
2. 5. 장안 통치와 몰락
번숭 등은 등우의 군대를 각지에서 격파하며 필사적으로 동쪽으로 도주했지만, 효저(弘農郡 몠지현)에서 풍이가 이끄는 한나라 군대에 대패했다. 번숭 등은 의양(弘農郡)으로 도주했지만, 여기서 광무제 등이 이끄는 한나라 대군에 정면으로 막혀, 마침내 서선 이하 30명과 함께 육탄(상반신을 벗고)하여 항복했다.
2. 6. 후한과의 전투 및 최후
건세 3년(27년), 번숭 등은 등우의 군대를 각지에서 격파하며 필사적으로 동쪽으로 도주했지만, 효저(弘農郡 몠지현)에서 풍이가 이끄는 후한 군대에 대패했다. 번숭 등은 의양(弘農郡)으로 도주했지만, 여기서 광무제가 이끄는 한나라 대군에 정면을 막히고, 마침내 서선 이하 30명과 함께 상반신을 벗고 항복했다.[1]
그 후, 번숭은 낙양에서 처자식과 함께 거주했지만, 그해 여름, 방안과 함께 모반을 일으켜 주살되었다.[1]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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