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유천리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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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부안 유천리 요지(扶安 柳川里 窯址)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에 있는 고려시대 도자기 가마터입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69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7월 28일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위치 및 특징:
- 부안 유천리 요지는 서해 바다와 인접한 구릉에 위치해 있으며, 12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까지 고려청자와 소량의 고려백자를 생산했습니다.
- 이곳에서 제작된 자기는 배를 이용해 개경(현재의 개성)과 전국으로 운송되었습니다.
- 유천리 인근에는 고려 중앙 정부에서 관리했던 변산 재목창이 있어 청자 제작에 필요한 땔감이 풍부했으며, 좋은 자토(瓷土)와 조운로(漕運路)가 있어 청자 제작과 유통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 40여 곳의 가마터가 발견되었으며, 대부분 유천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의 남쪽에 모여 있고, 북쪽 야산 기슭에도 10여 곳이 있습니다.
역사:
- 일제 강점기인 1929년 노모리 켄(野守健)이 처음 발견했습니다.
- 196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2호 가마터 일대 유물 퇴적구 일부를 발굴 조사했습니다.
- 1997년~1998년 박물관 건립 및 요지 정비를 위해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7구역 5기의 가마와 유물 퇴적구를 발굴했습니다.
- 2009년, 2015년, 2018년에 추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가마, 고려 시대 건물지, 유물 퇴적구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출토 유물:
- 최상급 고려청자 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강진 사당리 당전부락 가마터에서 발견되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이며, 백자, 진사백자 종류는 훨씬 양이 많고 다양합니다.
- 접시, 완(밥그릇), 발(대접), 매병(꽃병), 병, 탁잔(술병) 등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가 출토되었습니다.
- 특히 높이 1m 이상의 매병은 크기, 무늬, 제작 기술이 뛰어나 고려 도자기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 '효문(孝文)', '조청(照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도자기가 있어 고려 도자기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의의:
- 부안 유천리 요지는 강진 대구면 가마터와 함께 고려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했던 중요한 유적입니다.
- 고려청자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인 12세기 후반~14세기 전반에 고려청자를 대량으로 생산했던 곳입니다.
- 2011년에는 부안청자박물관이 개관하여 유천리 요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부안 유천리 요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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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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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부안 유천리 요지 |
영문 이름 | Kiln Site in Yucheon-ri, Buan |
유형 | 사적 |
지정 번호 | 69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14번지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신세원 |
면적 | 214,125m2 |
문화재청 ID | 13,0069000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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