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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압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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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역 압사 사고는 1960년 1월 26일 설날 이틀 전에 서울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이다. 귀향 인파가 몰린 가운데, 열차 증차와 개찰 지연으로 인해 승객들이 좁은 계단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31명이 사망하고 49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으로 과도한 표 발급, 승객들의 무리한 개찰, 안전 관리 소홀 등이 지목되었다. 사고 이후 서울역장과 여객주임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되었으며, 서울역장은 무죄, 여객주임은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1960년 10대 뉴스에 선정되었으며,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서울시장의 체육시설 개조 계획 발표와 철도청의 열차 증편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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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압사 사고
사고 개요
사건서울역 압사 사고
날짜1960년 1월 26일
시간23시 45분 (KST)
위치서울역
원인철도 운영 미숙, 기상 악화, 군중 운집
최초 보고자대한민국 철도청 서울역
피해 상황
사망자31명
부상자49명

2. 사고 경위

1960년 1월 26일 오후 11시 45분경 서울역목포호남선 완행열차를 타려던 승객들이 서울역 3번 계단에서 집단으로 넘어진 사건이다. 구정 이틀 전, 귀성객들이 서울역에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열차 증편 및 개찰 지연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2. 1. 발생 과정

1960년 1월 26일 구정 이틀 전, 이른 아침부터 다른 지역으로 귀향하려는 승객들이 서울역에 몰려 역 구내와 광장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평소보다 3배가량 많은 3,926명이 열차표를 예매했고[1], 이날 오후 10시 50분에 출발하는 서울역목포호남선 601편 완행열차는 차량을 8량에서 18량으로 증차하였다. 이에 원래 발차 35분 전인 10시 15분에 개찰할 예정이었으나 차량 증차로 인해 출발 5분 전인 10시 45분에 개찰을 시작하였다. 열차가 먼저 출발한 것을 우려한 탑승객들은 개찰구에서 무리하게 뛰어나갔고, 먼저 타려는 승객들이 폭이 좁은 4·5번 플랫폼 전용 3번 계단으로 무질서하게 몰려들면서 승객 한 명이 앞으로 쓰러지자 연쇄적으로 후속 승객들이 밀려 넘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31명이 압사하고 49명이 부상을 입었다.

2. 2. 사고 원인

수사 당국은 1960년 1월 27일, 당일 서울역 관계자가 객차 1량당 최대 수용 인원이 80명인데 비해 각 객차당 평균 200장, 도합 3,000장의 표를 발급하여 급히 증차를 한 점[4], 많은 승객을 한꺼번에 개찰한 점, 열차의 정원을 초과하여 표를 판매한 점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였다.[5]

서울역장은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한꺼번에 개찰을 하였으며, 기차 출발이 지연된다는 점을 여러 번 안내방송으로 고지하였고, 혼잡을 덜기 위해 부녀자들을 먼저 내보냈다고 해명했다. 또한 열차표를 산 사람이 전부 타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임시 편성을 준비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5]

3. 인명 피해

최종적으로 31명이 압사하고 41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되었다.[3] 사망자들은 서울철도병원에 안치되었으며, 부상자들은 세브란스병원, 서울적십자병원,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분산 수용되어 입원 후 치료를 받았다.[2]

사망자 대부분은 짐을 든 부녀자들이었다.[2]

4. 사고 여파

사고 직후 70여 명의 역무원들과 다른 사건에 출동 중이던 경찰관 30여 명이 즉시 현장에 투입되어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2] 김일환 교통부 장관 등 교통부 관료들이 현장 수습을 지휘하였다.[2] 서울역에는 사고대책본부가 설치되었고, 다음 날인 27일 오후 3시 교통부 앞 광장에서 사망자 합동 위령제를 치르고 유가족에게 시신을 인계하고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사고로 열차를 타지 못한 승객 2,300명은 다음 날 0시 2분경 출발하는 임시 열차에 탑승하였고, 나머지 승객들은 새벽 2시 3분경 출발하는 임시 열차를 이용하였다.[2]

국회 교통체신위원회는 당일 긴급위원회를 열고 최인규 내무부 장관을 불러 사건 경위와 경찰 수사에 대한 서면 보고를 받고, 교통부 내부 인사 조치를 요구하였다.[6]

4. 1. 사법 처리

1월 28일 오전 서울지검은 서울역 압사 사고와 관련하여 서울역 구내의 사건 현장을 답사하고, 서울역장과 서울역 여객주임 두 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우선 입건하였다.[3]

2월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2월 1일 서울지검이 서울역장과 서울역 여객주임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신청한 구속영장을 집행하였으며, 이날 밤 11시 서울서대문경찰서에 수감되었다.[7] 이후 4월 1일 치러진 공판에서 서울역장에게는 무죄, 서울역 여객주임에게는 금고 1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8]

4. 2. 사회적 영향

이 사건은 당시 한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 국내 10대 뉴스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11] 4.19 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임흥순 서울특별시장은 동대문운동장효창운동장, 장충체육관의 개조 계획을 발표하였고,[9] 철도청 당국은 2월 10일부터 호남선 열차 증편을 시행한다고 밝혔다.[10]

참조

[1] 뉴스 "[내일] 1월 26일…'서울역 귀성객 압사' 31명 사망 (1960)" http://news.jtbc.joi[...] JTBC 2016-01-25
[2] 뉴스 慘! 서울驛構內서集團壓死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01-27
[3] 뉴스 서울驛長등立件搜査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01-28
[4] 뉴스 國鐵의 紀綱解弛와 서울驛構內의 大慘事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01-28
[5] 뉴스 驛長으로부터 事故經緯聽取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01-28
[6] 뉴스 特別調査團을構成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01-28
[7] 뉴스 서울驛長旅客主任拘束令狀을執行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02-02
[8] 뉴스 "<서울驛集團壓死事件>前驛長에無罪言渡"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04-01
[9] 뉴스 큰行事때면 항상危險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01-29
[10] 뉴스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02-02
[11] 뉴스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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