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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밸런타인 데이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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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 밸런타인 데이 학살은 1929년 2월 14일 시카고에서 알 카포네의 부하들이 라이벌 조직인 조지 벅스 모란 일당 7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범인들은 경찰 제복을 위장하고 경찰차를 사용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은 카포네와 모란 간의 밀주 사업 경쟁의 결과로, 톰슨 기관단총을 사용한 총격으로 희생자들은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고 사망했다. 수사 과정에서 프레드 버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결국 이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없었다. 이 사건은 여러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대중문화에 묘사되었으며, 갱스터 시대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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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밸런타인 데이 학살
사건 개요
명칭성 발렌타인 데이 학살
위치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링컨 파크 노스 클라크 스트리트와 웨스트 디킨스 애비뉴의 창고
가해자미상
사용 무기톰슨 기관단총 2정
산탄총 2정
날짜1929년 2월 14일
시간오전 10시 30분
시간대CST (중부 표준시)
유형학살, 총기 난사
사망자7명 (노스 사이드 갱 조직원 5명 및 관련자 2명)
가해자 수4명 (모두 미확인)
추가 정보
신문 기사시카고 트리뷴

2. 학살의 전개

1929년 2월 14일 목요일, 성 밸런타인 데이 오전 10시 30분, 시카고 노스 사이드 링컨 파크 지역 2122 노스 클라크 스트리트에 위치한 차고에서 7명이 살해되었다.[2][3] 이 사건은 알 카포네 측이 라이벌인 조지 "벅스" 모란의 노스 사이드 갱을 제거하기 위해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5]

카포네 측은 모란과 그의 부하들을 유인하기 위해 디트로이트의 퍼플 갱이 공급하는 값싼 위스키 거래를 제안했다. 그러나 사건 당일, 모란은 약속 장소로 가던 중 창고 앞에 경찰 순찰차로 보이는 차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급습으로 오인하여 동료들과 함께 현장을 피했다. 이 때문에 카포네 측 감시자가 모란과 외모 및 옷차림이 비슷했던 앨버트 와인생크를 모란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오전 10시 30분경, 캐딜락 세단 한 대가 창고 앞에 멈췄고, 경찰 제복 차림의 2명과 사복 차림의 2명, 총 4명의 남자가 내렸다. 목격자들은 이들이 경찰 순찰차를 이용했다고 증언했다.

피해자들이 이 벽에 줄을 서서 총에 맞았다.


두 명의 가짜 경찰관은 엽총을 들고 차고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 있던 모란 갱 조직원 5명과 연관자 2명(라인하르트 슈위머, 존 메이) 등 총 7명에게 벽을 향해 일렬로 서라고 명령했다. 이후 사복 차림의 암살범 2명이 톰슨 기관단총 두 자루(20발들이 탄창과 50발들이 드럼 탄창)를 꺼내 이들을 향해 무차별 난사했다. 7명이 모두 바닥에 쓰러진 뒤에도 총격은 계속되었고, 검시관 보고에 따르면 이후 엽총으로 일부 피해자의 얼굴을 추가로 쏘아 심하게 훼손했다.

모브 박물관에 보관된 학살 당시의 탄환 파편


범행 후, 암살자들은 마치 경찰이 범죄자들을 체포해 연행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현장을 빠져나갔다. 사복 차림의 두 남자가 손을 들고 나오고, 제복 차림의 두 남자가 총을 겨누며 뒤따라 나오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시카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프랭크 구센버그는 14발의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살아 있었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경찰의 심문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말하지 않겠다"고 답하며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3시간 후에 사망했다.[4] 창고 안의 다른 생존자는 정비공 존 메이의 개 '하이볼' 뿐이었다.

2. 1. 피해자

이 사건으로 벅스 모란 조직원 6명과 우연히 현장에 있던 민간인 1명, 총 7명이 사망했다.

이름설명
피터 구센버그모란 조직의 최전선 집행자
프랭크 구센버그피터 구센버그의 형제이자 모란 조직의 집행자
앨버트 카첼렉별칭 "제임스 클라크". 모란 조직의 부사령관
아담 헤이어모란 조직의 장부 담당자 및 사업 관리자
라인하르트 슈위머검안사. 경마 도박에 빠져 갱단과 어울리게 되었다.
앨버트 와인셕크세탁소 주인. 모란을 위해 여러 세탁 및 염색 사업을 관리했으며, 사건 당시 모란과 비슷한 옷차림과 외모 때문에 표적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존 메이모란 조직에 임시로 고용된 자동차 정비공


3. 사건의 배경

이 학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카고의 밀주 거래를 둘러싼 알 카포네가 이끄는 사우스사이드 갱과 조지 "벅스" 모란이 이끄는 노스사이드 갱 간의 치열한 경쟁과 반복되는 항쟁에 있었다. 모란은 그의 전임자들이었던 딘 오바니온, 하이미 와이스, 빈센트 드루치 등이 갱단 간의 폭력 사태로 살해된 후 노스사이드 갱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조직을 이끌게 되었다.[7][8]

두 갱단 사이의 갈등은 여러 사건으로 인해 극으로 치달았다. 노스사이드 갱은 카포네 측이 캐나다에서 디트로이트 강을 건너 밀수하던 고가의 위스키를 탈취했으며,[6] 카포네가 운영하던 여러 술집을 점거하고 자신의 영역임을 주장했다. 또한, 노스사이드 갱의 프랭크 구센버그와 그의 형제 피터는 카포네의 부하인 잭 맥거른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더불어 노스사이드 갱은 카포네의 측근이자 지역 이탈리아계 미국 마피아 조직(우니오네 시칠리아나)의 회장이었던 파스콸리노 로로도와 안토니오 롬바르도의 살해에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카포네는 모란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카포네와 그의 부하 잭 "머신건" 맥거언은 모란 일당에게 위장 밀주 거래를 제안하여 그들을 유인 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는 카포네와 협력 관계에 있던 디트로이트 기반의 퍼플 갱의 협조가 있었다. 계획은 1929년 2월 14일, 모란과 그의 부하들을 노스 클라크 스트리트의 SMC 카티지 창고(차고)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이는 퍼플 갱이 디트로이트에서 공급하는 탈취된 위스키를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미끼를 이용한 것이었다. 구센버그 형제는 이날 디트로이트로 가서 탈취된 캐나다 위스키 두 트럭 분량을 받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4. 범행 계획 및 실행

이 학살은 노스 사이드 갱의 두목인 벅스 모란을 제거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플로리다 자택에 있던 알 카포네가 이 학살을 명령한 것으로 널리 추정된다.[5] 계획의 동기는 노스 사이드 갱이 카포네 갱이 캐나다에서 디트로이트 강을 건너 불법으로 밀수하던 값비싼 위스키를 탈취한 것일 수 있다.[6]

모란과 카포네는 수익성 있는 시카고 밀주 거래의 통제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모란은 카포네가 운영하는 시카고 교외의 개 경주장을 습격하고, 카포네가 운영하던 여러 술집을 점령하며 자신의 영역임을 주장했다. 또한, 그해 초 노스 사이더 프랭크 구센버그와 그의 형제 피터는 카포네의 부하 잭 맥거른을 살해하려다 실패했으며, 노스 사이드 갱은 카포네의 가까운 측근이자 지역 이탈리아계 미국 마피아 조직인 우니오네 시칠리아나의 회장이었던 파스콸리노 "패시" 로로도와 안토니오 "스컬지" 롬바르도의 살해에 연루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카포네 측은 모란 일당에게 위장 밀주 거래를 제안하여 그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카포네와 그의 부하 잭 "머신건" 맥거언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사우스사이드 갱과 협력 관계에 있던 디트로이트 기반의 퍼플 갱의 협력을 얻어 실행되었다. 맥거언은 암살 부대로 카포네의 경호원 프레드 "킬러" 버크, 존 스칼리세, 앨버트 안셀미, 조셉 로롤도, 그리고 퍼플 갱의 멤버인 큐웰 형제 등으로 구성된 팀을 조직했다. 일부 자료에서는 토니 아카르도나 샘 지안카나도 가담했다는 설이 있다. 계획의 핵심은 1929년 2월 14일, 모란과 그의 부하들을 노스 클라크 스트리트의 SMC 카티지 창고로 유인하여 살해하는 것이었다. 유인책은 퍼플 갱이 디트로이트에서 공급한 값싼 위스키를 거래한다는 것이었다.

1929년 2월 14일 목요일, 성 밸런타인 데이 오전 10시 30분, 시카고 노스 사이드 링컨 파크 지역 2122 노스 클라크 스트리트의 차고(SMC 운송 회사 창고)에서 학살이 벌어졌다.[2][3] 모란 갱의 조직원 대부분은 약속 시간에 맞춰 창고에 도착했지만, 정작 표적이었던 모란은 늦게 출발하여 현장에 없었다. 그는 동료 테드 뉴베리와 함께 창고 뒤편으로 접근하던 중, 경찰 순찰차(카포네 부하들이 위장한 차량)가 건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즉시 발길을 돌려 인근 커피숍으로 피신했다. 다른 조직원 헨리 구센버그와 윌리 마크스 역시 위장 경찰차를 보고 현장을 벗어나 목숨을 건졌다.

카포네 측 망보는 사람은 모란과 키, 체격, 그리고 그날 입은 옷(같은 색 코트와 모자)까지 비슷했던 앨버트 와인생크를 모란으로 착각하고 암살팀에게 신호를 보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캐딜락 세단이 차고 앞에 멈춰 섰고, 경찰 제복을 입은 두 명과 사복 차림의 두 명, 총 네 명의 남자가 차에서 내려 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짜 경찰관 두 명은 엽총을 들고 차고 뒤편으로 들어가 모란 갱 조직원들과 마침 그곳에 있던 안경사 라인하르트 슈위머, 정비공 존 메이를 발견하고 벽에 일렬로 서도록 명령했다. 곧이어 사복 차림의 암살범 두 명이 톰슨 기관단총 두 정(20발들이 탄창과 50발들이 드럼 탄창)으로 벽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가했다. 그들은 희생자들이 모두 쓰러진 후에도 계속해서 총격을 가했으며, 검시관 보고에 따르면 이후 엽총으로 존 메이와 제임스 클라크(모란의 부관)의 얼굴을 추가로 가격했다.

범행 후,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사복 차림의 암살범들은 손을 들고 나오고, 제복을 입은 두 명의 가짜 경찰이 그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밖으로 끌고 나오는 연극을 벌였다. 이 모습은 마치 경찰이 용의자들을 체포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차고 안에서는 존 메이의 개 "하이볼"을 제외하고는 프랭크 구센버그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는 14발의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있었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후 경찰의 심문에도 범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아무도 나를 쏘지 않았다" 또는 "말하지 않겠소"라고 답하며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3시간 후에 사망했다.[4]

이 학살로 조지 "벅스" 모란의 노스 사이드 갱 조직원 5명(앨버트 카셸렉, 애덤 헤이어, 앨버트 와인생크, 프랭크 구센버그, 피터 구센버그)과 갱과 연관된 라인하르트 H. 슈위머, 존 메이 등 총 7명이 살해되었다. 사건 당시 플로리다에 머물며 알리바이를 확보한 알 카포네와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한 잭 맥거른, 안셀미, 스칼리세 등은 이후 기소되었으나 증거 불충분 등으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결국 이 학살 사건으로 기소되거나 체포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 수사 및 용의자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프랭크 구센버그는 14발의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경찰의 심문에 범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말하지 않겠다"라고 답한 뒤 3시간 후에 사망했다.[4]

이 학살 사건은 대중의 큰 분노를 일으켰고, 이는 전국 범죄 연합의 보스들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다.[10] 사건 며칠 후, 알 카포네는 연방 금지법 위반 혐의로 시카고 대배심에서 증언하라는 소환장을 받았으나,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11]

수사 초기, 경찰은 벅스 모란이 카포네의 디트로이트 기반 주류 운송 경로를 습격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디트로이트의 퍼플 갱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었다. 학살 현장 맞은편 하숙집 주인들은 사건 열흘 전 투숙했던 세 남자에 대해 증언하며 퍼플 갱 멤버들의 사진을 지목했으나, 이후 신원에 대해 망설였다. 경찰은 지목된 인물들을 심문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퍼플 갱, 특히 키웰 형제는 오랫동안 사건 연루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범인들이 경찰 제복을 입었다는 점 때문에 경찰이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1929년 2월 22일, 경찰은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우드 스트리트의 한 차고에서 분해되어 불타고 있는 1927년형 캐딜락 세단을 발견했다. 이 차량은 학살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엔진 번호를 추적한 결과 로스앤젤레스의 제임스 모튼이라는 인물에게 판매된 것으로 드러났다. 차고는 프랭크 로저스라는 이름으로 임대되었는데, 그가 기재한 주소는 클로드 매독스가 운영하던 서커스 카페의 주소였다. 매독스는 카포네 갱, 퍼플 갱,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의 이간 래츠와 연계된 전직 갱스터였다.

경찰은 제임스 모튼이나 프랭크 로저스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지만, 목격자 증언을 통해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했다. 트럭 운전사 엘머 루이스와 교육 위원회 회장 H. 월리스 콜드웰은 사건 직전 현장 근처에서 경찰차와 접촉 사고를 낼 뻔했으며, 앞니가 없는 경찰 제복 차림의 운전자가 손짓으로 그냥 가라고 했다고 동일하게 증언했다. 경찰은 이 인상착의가 이간 래츠의 전 멤버이자 강도 행각 시 경찰 제복을 입는 것으로 알려진 프레드 버크와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버크는 당시 오하이오에서의 강도 및 살인 혐의로 수배 중이었다. 경찰은 또한 파스콸리노 로로도의 동생인 조셉 롤로르도 역시 복수를 위해 범행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경찰은 카포네의 부하인 존 스칼리스, 앨버트 안셀미, 잭 맥거른, 그리고 카포네의 보디가드 프랭크 리오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결국 맥거른과 스칼리스가 학살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카포네는 스칼리스, 안셀미, 그리고 우니오네 시칠리아나의 부회장이었던 조셉 지운타가 자신을 배신할 계획을 꾸민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1929년 5월 이들 세 명을 살해했다. 갱스터 세계의 전설에 따르면, 카포네는 만찬 자리에서 직접 야구 방망이로 이들을 때려죽였다고 전해진다.[12] 잭 맥거른은 증거 불충분으로 살인 혐의가 기각되었고,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주 경계를 넘은 만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되었다.

사건 수사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가 1929년 12월 14일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미시간 주 세인트 조셉에서 프레드 버크(프레데릭 데인이라는 가명 사용)가 음주 운전 단속 중이던 찰스 스켈리 순찰관을 총으로 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켈리 순찰관은 부상으로 사망했고, 버려진 버크의 차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정체가 밝혀졌다. 경찰은 버크의 방갈로를 급습하여 방탄조끼, 32만달러 상당의 도난 채권, 권총, 샷건, 다량의 탄약과 함께 두 정의 톰슨 기관단총을 발견했다. 시카고 경찰은 이 총기들을 넘겨받아 법의학 탄도학 검사를 실시했고, 두 정 모두 성 밸런타인 데이 학살에 사용된 총기임을 확인했다. 특히 한 정은 1년 반 전 뉴욕 시의 폭력배 프랭키 예일 살해 사건에도 사용된 것으로 밝혀져, 버크가 예일 살해범이라는 오랜 의혹을 뒷받침했다. 버크는 1년 넘게 도주하다 미주리의 한 농장에서 체포되었고, 스켈리 경관 살해 혐의로 미시간에서 재판을 받아 종신형을 선고받고 1940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1935년 1월, FBI는 바커 갱 소탕 작전 중 시카고에서 바이런 볼턴을 체포했다. 볼턴은 자신이 프레드 괴츠, 프레드 버크 등과 함께 학살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1928년 말 위스콘신의 한 리조트에서 카포네, 프랭크 니티, 버크, 거스 윙클러, 루이 캠파냐 등과 함께 모란 살해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볼턴에 따르면, 자신과 지미 모란(벅스 모란과 다른 인물)이 망을 보다가 모란으로 착각한 인물을 보고 신호를 보냈으며, 살인팀(버크, 윙클러, 괴츠, 밥 캐리, 레이먼드 너전트, 클로드 매독스)이 예상보다 많은 7명을 발견하고 모두 살해했다고 말했다. 볼턴의 증언은 거스 윙클러의 미망인과 시카고 형사 윌리엄 드러리에 의해 일부 뒷받침되었으나, FBI는 관할권 문제와 용의자 대부분의 사망(버크, 매독스 제외)을 이유로 적극적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볼턴이 언급한 "아메리칸 보이즈" 팀의 실제 학살 가담 여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1995년, 시카고 범죄학자 아서 빌렉은 FBI 문서와 법원 기록 연구를 바탕으로 학살 참가자들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그는 잭 맥거른이 계획을 총괄했으며, 바이런 볼턴, 지미 모란, 지미 맥크리슨이 망을 보고, 토니 아카르도, 프레드 버크, 거스 윙클러, 프레디 괴츠, 로버트 캐리가 살인을 실행했으며, 클로드 매독스가 차량을 조달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전 FBI 요원 윌리엄 로에머가 머레이 험프리스의 도청 기록에서 아카르도가 학살에 연루되었다는 내용을 들었다고 증언하면서 일부 힘을 얻었다.[13][14]

프레드 버크의 미시간 방갈로에서 발견된 두 정의 톰슨 기관단총(일련번호 2347, 7580)은 수사의 핵심 증거가 되었다. 총기 번호 2347은 1924년 일리노이주 매리언의 부 보안관 레스 파머가 구입했으며, 이후 프레드 버크의 손에 들어가 1927년 디트로이트의 밀라플로레스 학살과 프랭키 예일 살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기 번호 7580은 시카고의 총포상 피터 폰 프란치우스가 판매했으며, 여러 경로를 거쳐 카포네 조직과 연계된 제임스 "보조" 슈프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정의 총기는 현재 미시간주 베리엔 카운티 보안관서가 보관하고 있다.

6. 사건의 여파 및 영향

범인들이 경찰 순찰차를 사용하고 경찰관으로 위장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 비록 사건 당시 플로리다에 머물고 있었지만, 알 카포네는 학살의 배후로 널리 지목되었다.[5] 카포네의 부하 잭 "머신건" 맥거언, 존 스칼리세, 앨버트 안셀미 등은 사건 후 기소되었으나 알리바이를 주장하여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결국 이 학살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사건으로 벅스 모란이 이끌던 노스 사이드 갱은 큰 타격을 입고 세력이 약화되어 더 이상 카포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지 못했다. 목표였던 모란은 사건 당일 현장에 늦게 도착하여 목숨을 건졌고, 1957년까지 생존했다.

전미 범죄 및 처벌 박물관에 전시된 학살 현장의 벽돌


이 끔찍한 학살 사건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이전까지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카포네는 순식간에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경찰이 총력을 기울여 카포네를 기소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사건이 발생한 노스 클라크 스트리트 2122번지의 차고 건물은 1967년에 철거되었고, 현재 그 부지는 인접한 양로원의 정원 및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16] 희생자들이 총을 맞았던 북쪽 벽의 벽돌은 캐나다의 한 사업가에게 팔렸다가 여러 전시를 거쳐 현재 일부는 라스베이거스의 마피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개별적으로 판매되었다.[17]

2013년 당시 학살 현장 부지

7. 대중문화 속 성 밸런타인 데이 학살

성 밸런타인 데이 학살은 다음과 같은 작품에서 묘사, 언급 또는 모방되었다.


  •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세계의 수수께끼』 시리즈 제25회 『알 카포네의 암흑의 도시』(히스토리 채널)
  • 『세상에 충격을 준 날(The Days That Shook the World)』 시리즈 제27회 『OK 목장의 결투와 성 밸런타인 데이 학살』(BBC 월드와이드 재팬)

참조

[1] 뉴스 The St. Valentine's Day Massacre http://www.chicagotr[...] 2017-06-28
[2] 뉴스 Slay doctor in massacre http://archives.chic[...] 2017-06-28
[3] 뉴스 Trace killers; lid on city http://archives.chic[...] 2017-06-28
[4] 뉴스 Valentine's Day Massacre http://0-search.ebsc[...] Salem Press Encyclopedia
[5] 웹사이트 The St. Valentine's Day Massacre https://www.chicagot[...] chicagotribune.com 2021-02-26
[6] 서적 Rumrunning and the Roaring Twenties: Prohibition on the Michigan-Ontario Waterway https://books.google[...] Wayne State University Press 2020-10-15
[7] 웹사이트 George 'Bugs' Moran http://www.bugsmoran[...]
[8] 웹사이트 Vincent 'The Schemer' Drucci http://www.myalcapon[...]
[9] 서적 Organized Crime in Miami https://books.google[...]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2020-11-20
[10] 간행물 The "Get Capone" Drive: Print the Legend. H. Holt 2004
[11] 서적 Capone: The Man and the Era
[12] 서적 Some Historical Stories of Chicago https://books.google[...]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2010-10-29
[13] 웹사이트 NEW THEORY ON MASSACRE https://www.chicagot[...] 2022-10-16
[14] 뉴스 CRIMINOLOGIST FINGERS CHICAGO GUNMEN https://www.washingt[...] 2022-10-16
[15] 웹사이트 The Actual Tommy Guns Used in the St. Valentine's Day Massacre https://themobmuseum[...] 2024-01-20
[16] 웹사이트 Blood, Roses & Valentines http://www.prairiegh[...] PrairieGhosts.com 2014-12-30
[17] 웹사이트 St. Valentine's Day Massacre Wall https://themobmuseum[...] themobmuseum.org 2019-06-20
[18] 웹사이트 50 Cent on the 10-Year Anniversary of 'The Massacre' - XXL https://www.xxlmag.c[...] 2024-02-13
[19] 웹사이트 GTA Online Valentine's Day Massacre Special Is Now Available https://www.rockstar[...] Rockstar Games 2024-09-01
[20] 웹사이트 St. Valentine's Day Massacre https://chicagocrime[...] 201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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