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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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악양은 위나라의 장군으로, 중산국 정벌에 큰 공을 세웠다. 위 문후의 신임을 얻어 장군이 되었으며, 중산국과의 전쟁에서 아들이 죽어 국이 된 것을 먹는 굳은 결의를 보여주었다. 기원전 408년 3년에 걸친 전쟁 끝에 중산국을 정복했으나, 위 문후는 악양의 충성심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악양의 출신과 가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악양은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굳은 결의로 중산국을 정복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잔혹함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3]
[1]
서적
사기 권80 악의열전
2. 생애
2. 1. 등용
악양은 위 문후의 대신이었던 적황의 추천으로 장군이 되었다.[2]
2. 2. 중산국 정벌
위나라의 장군 악양은 중산국을 공격하였다. 당시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는데, 중산국의 왕이 그를 죽여 시신을 삶아 국으로 만들어 악양에게 보냈다. 그러나 악양은 막하(幕下)에 앉아 그 국물을 모두 마셔버림으로써 자신의 굳은 결의를 드러냈다. 이 일로 악양은 후대에도 칭송을 받게 되었다.[3]
기원전 408년 악양은 3년에 걸친 전쟁 끝에 중산국을 정복하였다.[4] 악양이 위나라로 돌아와 공을 논하였는데, 위 문후는 악양을 비방하던 상소문이 한 상자나 쌓여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악양은 수차례 절을 올리며 머리를 조아리고 "이는 신(臣)의 공이 아니라 주군(主君)의 힘 덕분이옵니다."라고 하였다.[5]
한편, 악양이 아들을 삶은 국물을 마셔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위 문후는 이에 감탄하며 도사찬(覩師贊)에게 "악양이 나 때문에 자기 아들의 고기를 먹었구나."라고 하였다. 그러자 도사찬은 "그 아들의 고기까지 먹을 정도이니, 누구의 고기인들 먹지 못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후 위 문후는 중산국을 정복한 악양에게 상을 내리면서도 내심 그를 의심했다고 한다.[6]
2. 3. 말년
위 문후는 악양을 중산국의 옛 도읍인 영수에 봉했다. 악양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의 후손들 또한 대대로 영수에 살았다.[7] 악양이 죽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3. 평가
기원전 408년, 악양은 3년에 걸친 전쟁 끝에 중산국을 정복하였다.[4] 악양이 위나라로 돌아와 공을 논하였는데, 위 문후가 그에게 그동안 악양을 비방하던 상소문이 한 상자나 쌓여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악양은 "이는 신(臣)의 공이 아니라 주군(主君)의 힘 덕분이옵니다."라 답하며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냈다.[5]
한편, 위 문후는 악양이 아들을 삶은 국물을 마셔버렸다는 소식에 감탄하면서도, "그 아들의 고기까지 먹을 정도이니, 누구의 고기인들 먹지 못하겠습니까?"라며 악양을 의심하는 모습을 보였다.[6] 위 문후는 악양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권력 투쟁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참조
[2]
서적
사기 권44 위세가
[3]
서적
전국책 권22 위책1 〈악양위위장이공준산〉
[4]
서적
전국책 권33 중산책 〈악양위위장〉
[5]
서적
사기 권15 육국연표
[6]
서적
사기 권44 위세가
[7]
서적
사기 권80 악의열전
[8]
서적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9]
서적
전국책 권4 진책2 〈진무왕위감무〉
[10]
서적
전국책 권22 위책1 〈악양위위장이공준산〉
[11]
서적
한비자 권22 설림편上
[12]
서적
사기 권80 악의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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