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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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영희는 1964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 영화감독이다. 그녀는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뉴스쿨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으로 데뷔하여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등을 수상했으며, 영화 《가족의 나라》로도 여러 상을 받았다. 그녀는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경험과 가족,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 외에도 극단 배우, 라디오 진행자, 저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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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양영희 |
한글 | 양영희 |
로마자 표기 | Yang Yeong-hui |
출생일 | 1964년 11월 11일 |
출생지 |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이쿠노구 |
국적 | 조선적 → 대한민국 |
직업 | 영화 감독, 인터뷰 진행자, 방송 해설가 |
활동 기간 | 1995년 - 현재 |
소속사 | WAHAHA 본점 |
학력 | 고려대학교 도쿄 뉴스쿨 대학교 - 미디어 연구 석사 학위 |
가족 | |
배우자 | 알려진 정보 없음 |
가족 | 알려진 정보 없음 |
영화 작품 | |
주요 작품 | 디어 평양 사랑하는 소나 가족의 나라 |
수상 내역 | |
베를린 국제 영화제 | 최우수 아시아 영화상 2006년 『디어 평양』 국제 아트 시어터 연맹상 2012년 『가족의 나라』 |
TAMA 영화제 | 최우수 신진 감독상 2012년 『가족의 나라』 |
2. 생애 및 경력
양영희는 1964년 11월 11일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이쿠노구에서 재일 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9] 그녀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한국 식민 통치 동안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의 후손들이 많은 일본 내 한국인 소수 민족 공동체에 속한다. 양영희의 부모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 간부였으며, 아버지는 북한으로부터 훈장을 받을 정도로 열성적인 활동가였다.[10] 양영희는 어릴 때부터 조선학교에서 민족 교육을 받았다.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부모는 세 오빠를 귀환 사업으로 북한에 보냈다.[11] 오빠들은 북한에서 가정을 꾸렸지만,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았다.[11] 막내 오빠는 양영희가 귀국 사업, 총련, 재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무렵 감시인과 함께 일본에 왔다가 갑자기 북한으로 돌아가게 되어 화를 낸 적이 있다.[11]
도쿄의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후[12],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했다.[13] 그 후 극단 배우와 라디오 진행자로도 활동했다.[13] 1995년부터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14]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뉴욕에 머물렀다.[15] 뉴스쿨 대학교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학부 미디어 연구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16] 2004년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17] 도쿄의 고려대학교와 뉴스쿨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미디어 연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1] 그녀는 3개 국어에 능통하다.
2005년,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을 발표했다.[17] 이 영화는 2006년 선댄스 영화제 월드 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과 제56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NETPAC상을 수상했다.[1] 이 영화는 아버지와의 어려운 관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아버지는 조선인총연합회(약칭 "총련")의 영향력 있는 멤버였다. 총련은 그녀에게 ''디어 평양''을 통해 북한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서면 사과를 요구했지만, 양영희는 이를 거부했다.[2]
북한 애국자의 딸로 성장했지만, 양영희는 10대 후반에 평양으로 보내진 세 오빠와 달리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아버지의 결정은 아들이 일본에서 북한 소년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을 면하게 해주려는 선의에서 비롯되었지만, 가족을 찢어지게 했다.[1] 그녀의 세 오빠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재일 한국인 친북 단체가 시작한 프로젝트에 따라 북한으로 귀환한 약 9만 명의 사람들 중 일부이다.[3]
양영희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처음 북한을 방문했고, 이후 여러 번 방문하여 조카 손아를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다큐멘터리 ''수나, 또 다른 자아''는 북한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을 기리는 작품이다.[1]
양영희는 ''디어 평양''을 촬영한 후 ''수나''에 집중하다가 2006년 공식적으로 북한 입국이 금지되었다.[1]
그녀의 첫 장편 영화 ''우리 학교''는 뇌종양 치료를 위해 3개월간 일본을 방문한 오빠 성호와의 눈물겨운 재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2012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C.I.C.A.E. 파노라마 영화상을 수상했다.[4][5] 또한 안도 사쿠라에게 여우주연상, 이우라 아라타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겨주었고, 2012년 블루 리본 상에서 각본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6] 2013년 2월 "제8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의 일본 대표로 선정되었다.[18]
양영희는 지난 15년간 영화를 공개한 후에도 여전히 오빠들의 안전을 두려워하지만, 가족에 대한 영화 제작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3]
그녀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 《디어 평양》 (2006년) - 감독, 각본, 촬영
- 《사랑하는 소나》 (2009년) - 감독, 각본, 촬영
- 《가족의 나라》 (2012년) - 감독, 각본
- 《수프와 이데올로기》 (2021년) - 감독, 각본, 내레이션
기타 활동으로, 더 인터뷰 ~톱 러너의 초상~ (2014년, BS 아사히)에서 인터뷰어로 활동했고,[20][21] 마음의 시대 "오모니의 섬 나의 고향 ~영화감독 양영희~" (2022년 10월 30일, NHK E 텔레 )에 출연했다.[22] 마츠모토 히데오 정보 발견 코코다케(2011년 - 2012년, 닛폰 방송)에서 목요일 파트너를 맡았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양영희는 1964년 11월 11일 오사카부 오사카시 이쿠노구에서 재일 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9] 부모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 간부였으며, 아버지는 북한으로부터 훈장을 받을 정도로 열성적인 활동가였다.[10] 양영희는 어릴 때부터 조선학교에서 민족 교육을 받았다.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부모는 세 오빠를 귀환 사업으로 북한에 보냈다.[11] 오빠들은 북한에서 가정을 꾸렸지만,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았다.[11]도쿄의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후[12],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했다.[13] 그 후 극단 배우와 라디오 진행자로도 활동했다.[13] 1995년부터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14]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뉴욕에 머물렀다.[15] 뉴스쿨 대학교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학부 미디어 연구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16] 2004년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17]
2. 2. 영화감독으로서의 활동
양영희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 영화감독이다. 도쿄의 고려대학교와 뉴스쿨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미디어 연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1] 그녀는 3개 국어에 능통하다.그녀의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은 2006년 선댄스 영화제 월드 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과 제56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NETPAC상을 수상했다.[1] 이 영화는 아버지와의 어려운 관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아버지는 조선인총연합회(약칭 "총련")의 영향력 있는 멤버였다. 총련은 그녀에게 ''디어 평양''을 통해 북한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서면 사과를 요구했지만, 양영희는 이를 거부했다.[2]
북한 애국자의 딸로 성장했지만, 양영희는 10대 후반에 평양으로 보내진 세 오빠와 달리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아버지의 결정은 아들이 일본에서 북한 소년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을 면하게 해주려는 선의에서 비롯되었지만, 가족을 찢어지게 했다.[1] 그녀의 세 오빠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재일 한국인 친북 단체가 시작한 프로젝트에 따라 북한으로 귀환한 약 9만 명의 사람들 중 일부이다.[3]
양영희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처음 북한을 방문했고, 이후 여러 번 방문하여 조카 손아를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다큐멘터리 ''수나, 또 다른 자아''는 북한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을 기리는 작품이다.[1]
양영희는 ''디어 평양''을 촬영한 후 ''수나''에 집중하다가 2006년 공식적으로 북한 입국이 금지되었다.[1]
그녀의 첫 장편 영화 ''우리 학교''는 뇌종양 치료를 위해 3개월간 일본을 방문한 오빠 성호와의 눈물겨운 재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2012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C.I.C.A.E. 파노라마 영화상을 수상했다.[4][5] 또한 안도 사쿠라에게 여우주연상, 이우라 아라타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겨주었고, 2012년 블루 리본 상에서 각본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6]
양영희는 지난 15년간 영화를 공개한 후에도 여전히 오빠들의 안전을 두려워하지만, 가족에 대한 영화 제작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3]
그녀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 《디어 평양》 (2006년) - 감독, 각본, 촬영
- 《사랑하는 소나》 (2009년) - 감독, 각본, 촬영
- 《가족의 나라》 (2012년) - 감독, 각본
- 《수프와 이데올로기》 (2021년) - 감독, 각본, 내레이션
2. 3. 기타 활동
- 더 인터뷰 ~톱 러너의 초상~ (2014년, BS 아사히)에서 인터뷰어로 활동했다.[20][21]
- 마음의 시대 "오모니의 섬 나의 고향 ~영화감독 양영희~" (2022년 10월 30일, NHK E 텔레 )에 출연했다.[22]
- 마츠모토 히데오 정보 발견 코코다케(2011년 - 2012년, 닛폰 방송)에서 목요일 파트너를 맡았다.
3. 작품 세계
양은 "재일 한국인만 고생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오빠는 평양에 있고 자신은 재일로서 고생했지만, 남편으로부터의 DV 경험도 없고 부모님도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거기서 고생해 온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 다른 것을 짊어지고 있다. 영화관이 많이 있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데 보지 않는 젊은이가 많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목숨 걸고 보고 있는데, 발각되면 처벌이 엄격한데도 다른 나라의 생활을 알고 싶어하고, 정치로 인해 찢어진 가족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19].
2012년 12월의 토크쇼에서는 『가족의 나라』는, 양의 실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영화에서는 북한으로 건너간 오빠가 혼자 나오지만 실제로는 3명이다. 막내 오빠가 일본에서 3개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특별하고 드문 허가를 받았지만, 잘 모르는 사이에 3개월이 지나기 전에 돌아갔다"라고 말했다. 영화에 대해 "거의 실화이며, 북한에서 병을 앓고 있어도 실제 오빠들은 지금도 살아있다. 영화로 만들지 않은 장남은 조울증을 앓고 2009년에 세상을 떠났다"라고 관객에게 말했다. 양 감독은 북한의 조직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사죄문을 쓰라"는 협박을 받았던 과거가 있으며 "무엇에 대해, 누구에게 사죄해야 하는지 몰랐다", "정부나 단체가 뭔가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사죄문 대신 『사랑하는 소나』를 만들었다"라고 말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북한에 입국이 금지된 일도 이야기했다. "언젠가 오빠들과 함께, 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믿고 있다. 가족을 만날 수 없는 것은 외롭지만, 작품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결심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공식적인 문제아로서 유명해지고 싶다. 제 이름이 알려져서 전 세계 사람들이 작품을 보게 됨으로써, '저 가족에게 손을 대는 것은 그만두자'라고 생각하게 되어야 가족을 지킬 수 있다." "계속 취재를 받고, 영화제에도 가능한 참여해서, 현지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라고 마음을 말했다. 객석에 있던 재일 한국인 3세의 젊은 여성에게 "조선적 여권은 힘들지만, 여행할 수 있는 나라는 많이 있다. 국적에 고민하기보다는, 다양한 나라를 방문해서 친구를 만들고 공부하고, 그 후에 국적을 생각하면 된다. 그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18].
3. 1. 주요 주제
양영희는 "재일 한국인만 고생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라고 말하며,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경험과 더불어 다양한 개인적 경험을 언급했다. 평양에 있는 오빠와 달리, 양영희는 남편으로부터의 DV 경험은 없었으며 부모님 사이도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서 고생해 온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 다른 것을 짊어지고 있다"라며 개인의 다양한 경험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19].양영희는 영화에 대한 열정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강조했다. 영화관이 많은 일본에서 영화를 보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비판하며, 북한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목숨 걸고 보는 현실을 통해 다른 나라의 생활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를 언급했다[19].
2012년 12월 토크쇼에서 양영희는 『가족의 나라』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영화에는 북한으로 건너간 오빠가 한 명만 나오지만 실제로는 세 명이라고 밝혔다. 막내 오빠가 일본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았지만, 3개월이 지나기 전에 돌아간 사연을 공개했다. 또한, 영화 내용이 거의 실화이며, 북한에서 병을 앓고 있는 오빠들이 지금도 살아있다고 덧붙였다. 영화로 만들지 않은 장남은 조울증을 앓다가 2009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18].
양영희는 북한 조직으로부터 "사죄문을 쓰라"는 협박을 받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무엇에 대해, 누구에게 사죄해야 하는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정부나 단체가 뭔가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사죄문 대신 『사랑하는 소나』를 만들었다"라고 밝히며, 이로 인해 북한 입국이 금지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영희는 "언젠가 오빠들과 함께, 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믿고 있다"라며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18].
양영희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가족을 만날 수 없는 것은 외롭지만, 작품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결심했다"라며, "공식적인 문제아로서 유명해지고 싶다. 제 이름이 알려져서 전 세계 사람들이 작품을 보게 됨으로써, '저 가족에게 손을 대는 것은 그만두자'라고 생각하게 되어야 가족을 지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18].
3. 2. 작품 목록
3. 2. 1. 영화
3. 2. 2. 저서
4. 논란 및 비판
5. 평가
양영희는 영화 《가족의 나라》로 여러 상을 수상했다. 2013년 제67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제64회 요미우리 문학상에서 희곡·시나리오 부문을 수상했다. 같은 해, 제22회 일본 영화 비평가 대상 신인 감독상과 오사카 시네마 페스티벌 감독상을 받았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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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nterview with Yang Yong-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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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Homeland' director testifies about tragedy of ethnic Koreans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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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on ethnic Koreans' plight selected for showing at Osc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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ヤン・ヨンヒ (映画監督) - 映画「かぞくのくに」について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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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ひと〉「かぞくのくに」がヒットした在日映画監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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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かぞくのくに』ヤン・ヨンヒ監督インタ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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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社会 - 朝・日に生き別れた家族の絆描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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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現者」として世界を目指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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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ヤン・ヨンヒ】北朝鮮にいる姪っ子を10年以上追いかけた「愛しのソ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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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しきソナ』 ヤン・ヨンヒ監督インタ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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ヤン・ヨンヒ - 自分の言葉で拓く勇気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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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ンタビュアー
BS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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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インタビュー相手:綾戸智恵、桃井かおり、山田太一 (脚本家)|山田太一、石丸次郎、宮崎美子、坂東三津五郎 (10代目)|坂東三津五郎、原一男、福本清三、加藤登紀子、落合務、野田秀樹、テリー伊藤、加山雄三、辻口博啓、おすぎ、クリス・ハート|クリスハート、塚本晋也、岩代太郎、桂由美、中村玉緒、川中美幸、杉良太郎、石丸幹二、竹中直人、大和田伸也、里見浩太朗、藤竜也、稲川淳二、新沼謙治、白石加代子、矢野浩二、花總まり、鳥塚亮、松原智恵子、長嶺ヤス子、財津和夫、寺島進、稲川素子、吉田鋼太郎|吉田綱太郎、浅野忠信、高島礼子、真瀬樹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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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モニの島 わたしの故郷〜映画監督・ヤンヨン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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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曜日のパートナーは・・・ヤン・ヨンヒ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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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映画コンクール、大賞は周防正行監督『終の信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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読売文学賞、多和田葉子氏らに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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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坂桃李、主演男優賞に「高揚している」 第22回日本映画批評家大賞授賞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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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양영희 감독, <씨네21>의 <경계도시2> 보도 관련 기고문 보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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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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