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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조선 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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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릉(寧陵)은 조선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으로, 현재의 위치는 경기도 여주시에 있다. 처음에는 양주에 조성되었으나 석물 문제로 인해 현 위치로 이전되었으며, 능호는 현종에 의해 '영릉'으로 정해졌다. 정자각 뒤에 쌍릉 형식으로 조성되었으며, 효종의 능에는 곡장이 있다. 영릉 재실은 조선시대 재실 건축의 기본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어 보물 제1532호로 지정되었다.

2. 역사

1659년 경기도 양주군(현재 구리시) 건원릉 서쪽에 조성했다가 1673년 석물에 틈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하자 현 위치로 옮겼다. 이때 재실도 함께 옮겨왔다. 처음엔 능호를 익릉(翼陵)이라고 했지만 현종은 미흡하다고 여겨 고치라 명했고 새롭게 영릉(寧陵)이라 했다. 현종이 '영' 자의 뜻을 묻자 신하들이 안녕(安寧)과 같은 뜻이라 하였고 이에 능호를 고쳤다.[1][2] 이후 영릉의 능호가 북송 흠종의 영녕릉(永寧陵)과 같다 하여 반대가 있었으나 송나라의 능호는 모두 '영'(永) 자가 들어가니 '영'(寧) 자 한 자가 겹치는 것을 두고 능호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하여 그대로 결정되었다.[3]

3. 구조

영릉은 정자각 뒤 봉분이 앞뒤로 배치된 쌍릉 형식이다. 앞쪽 봉분은 인선왕후의 능이고 뒤쪽 봉분은 효종의 능이다. 왕비릉에는 곡장이 없고, 왕릉에는 곡장이 있다. 영릉은 쌍릉이지만 지형과 관계없이 앞뒤로 엇비슷하게 배치되어, 처음부터 나란히 놓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석물들은 조선 전기 '국조오례의'에 따라 배치되었다.

3. 1. 재실

재실(齋室)은 제관(祭官)이 휴식을 취하고, 제수를 장만하며 제기를 보관하는 등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 부속 건물이다. 재실 건물들은 외벌대 장대석 기단, 방형 초석, 각주, 민도리 홑처마 집으로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세부 수법에 있어서 짜임새 있게 건립되었다. 안향청, 제기고, 재방, 전사청, 행랑채(대문 포함), 우물 등의 시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4]

또한 경내에는 재향과 관계있는 향나무, 느티나무, 회양목(천연기념물 제495호) 등의 고목이 있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지만, 효종대왕릉(寧陵)의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 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으며 공간 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 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4]

4. 갤러리

참조

[1] 서적 현종실록 1권, 현종 즉위년(1659년 청 순치(順治) 16년) 5월 11일 신미 1번째기사
[2] 서적 현종개수실록 1권, 현종 즉위년(1659년 청 순치(順治) 16년) 5월 11일 신미 2번째기사
[3] 서적 현종개수실록 1권, 현종 즉위년(1659년 청 순치(順治) 16년) 6월 16일 을사 3번째기사
[4] 웹인용 "「여주 효종대왕릉(寧陵)의 재실」보물 지정 예고" https://www.cha.go.k[...] 200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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