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입니다. 호는 비연(斐然)이며, 본관은 해주(海州)입니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 피난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일기인 《쇄미록(瑣尾錄)》을 저술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생애 및 활동:
- 어려서 외가인 영동에서 자랐으며, 집은 서울 관동(현재의 명륜동)에 있었습니다.
-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했지만, 아들 오윤겸(吳允謙)이 높은 벼슬에 오르면서 선공감 감역을 지냈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 1591년(선조 24) 처남인 장수현감 이빈(李贇) 등과 함께 영동의 외가를 방문하고 노비의 신공을 받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임진왜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591년 11월부터 1601년 2월까지 약 9년 3개월간의 피난 생활을 기록한 《쇄미록》을 남겼습니다.
저서:
- 쇄미록(瑣尾錄): 오희문이 임진왜란 기간 동안 겪은 일들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총 7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591년 11월 27일부터 1601년 2월 27일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 "쇄미록"이라는 제목은 《시경(詩經)》의 "쇄혜미혜(瑣兮尾兮) 유리지자(遊離之子)"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떠돌이"라는 뜻입니다.
-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 특히 민중들의 생활상과 지방 행정의 실태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임진왜란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난중일기》,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 시기 3대 사찬 사서(개인이 쓴 역사책)로 꼽히며, 대한민국의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기타:
- 오희문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습니다.
- 아들 오윤겸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손자 오달제는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다 청나라에 끌려가 죽은 삼학사(三學士) 중 한 명입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