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숭 (대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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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숭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어사대부 왕준의 아들이다. 자사, 태수를 거쳐 하남태수를 역임했으며, 건평 3년(기원전 4년) 어사대부로 승진했으나, 외척과의 연루로 인해 대사농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위위, 좌장군을 거쳐 애제 사후 대사공에 임명되었고 부평후에 봉해졌다. 왕망의 집권기에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이듬해 독살당했으며, 아들 왕준은 후한 광무제를 섬겼다.
낭야군 고우현(皋虞縣) 출신으로 어사대부 왕준의 아들이다. 아버지 왕준의 임자로 낭(郞)이 되었고, 자사·태수를 전전하면서 유능한 통치로 평판이 좋았다.
2. 생애
건평 3년(기원전 4년), 하남태수에서 어사대부로 승진하였다. 이때 외척 안성공후[3]의 아내 방(放)이 무고 혐의로 수사를 받았는데, 방과 왕숭의 집안이 인척 관계였기 때문에 애제의 의심을 사 대사농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위위·좌장군을 역임하였고, 애제 붕어 후 왕망이 집권하면서 대사공이 되고 부평후(扶平侯)에 봉해졌다.
원시 2년(2년), 왕망을 피하기 위하여 병을 핑계로 벼슬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이듬해에 부비(傅婢)[4]에게 독살되었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아들 왕준(王遵)은 후한 광무제를 섬겨 중대부가 되었고, 의향후(義鄕侯)에 봉해졌다.
2. 1. 초기 생애 및 관직 생활
낭야군 고우현(皋虞縣) 출신으로 어사대부 왕준의 아들이다. 아버지 왕준의 임자로 낭(郞)이 되었고, 자사·태수를 전전하면서 유능한 통치로 평판이 좋았다.[3]
건평 3년(기원전 4년), 하남태수에서 어사대부로 승진하였다. 이때 외척 안성공후의 아내 방(放)이 무고 혐의로 수사를 받았는데, 방과 왕숭의 집안이 인척 관계였기 때문에, 애제의 의심을 사 대사농으로 좌천되었다.[3]
이후 위위·좌장군을 역임하였다.[3]
2. 2. 중앙 정계 진출
건평 3년(기원전 4년), 하남태수에서 어사대부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외척 안성공후[3]의 아내 방(放)이 무고 혐의로 수사를 받았는데, 방과 왕숭의 집안이 인척 관계였기 때문에 애제의 의심을 사 대사농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위위·좌장군을 역임하였다.
2. 3. 왕망 집권과 죽음
원수 2년(기원전 1년)에 위위가 되었고, 이어서 좌장군으로 옮겼다.[4] 그 해에 애제가 사망하고 평제가 즉위하면서 왕망이 권력을 잡았다. 대사공 팽선이 사임하자 왕숭이 후임 대사공이 되어 부평후(扶平侯)에 봉해졌다.[4]
원시 2년(2년), 왕숭은 왕망을 피하기 위해 병을 핑계로 해임을 요청하여 허락받았다.[4]
원시 3년(3년)에 왕숭은 비에게 독살당했고,[4] 아들 王遵|왕준중국어이 있었지만, 봉국은 몰수되었다.[4]
2. 4. 사후
아들 왕준은 후한 광무제를 섬겨 중대부가 되었고, 의향후(義鄕侯)에 봉해졌다.[4]
참조
[1]
서적
新唐書
[2]
서적
신당서
[3]
문서
왕숭 (왕만숙부)
[4]
문서
안사고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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