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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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은 경상남도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간월사지에 있는 불상이다. 머리카락은 소라 모양이며, 얼굴은 둥글고 온화한 인상을 준다. 좁아진 어깨와 U자형 옷주름 등에서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며, 통일신라 말기 불상 조각 양식을 따른다. 울산 지역에서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불상이며, 대좌와 광배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전체 형태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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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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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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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
한자 이름 | 蔚州 澗月寺址 石造如來坐像 |
지정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370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온천4길 15 (등억리) |
시대 | 신라 |
소유자 | 국유 |
참고 | 울주 간월사지 |
2. 상세
2. 1. 머리
2. 2. 얼굴
2. 3. 신체
2. 4. 옷
2. 5. 손 모양
3. 대좌와 광배
3. 1. 대좌
3. 2. 광배
4. 양식적 특징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단정한 입과 긴 눈, 짧은 귀 등의 표현에서 온화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어깨는 좁아지고, 몸은 양감이 줄어든 모습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옷은 얇으며 U자형의 옷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과 신체의 풍만함과 좁아진 어깨 등에서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4. 1. 9세기 불상 특징
4. 2. 통일신라 말기 불상 조각 양식
5. 현황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은 경상남도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의 간월사지에 있다. 약간의 파손은 있지만 비교적 잘 보관되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단정한 입과 긴 눈, 짧은 귀 등의 표현에서 온화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어깨는 좁아지고, 몸은 양감이 줄어든 모습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얇으며 U자형의 옷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과 신체의 풍만함과 좁아진 어깨 등에서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5. 1. 위치
5. 2. 보존 상태
5. 3. 관리
6. 기타
이 불상은 울산지역에서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불상이다. 받침인 대좌(臺座)의 일부와 불상 뒤 원광인 광배(光背)가 없어졌으나, 전체의 형태는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목 윗부분은 떨어져 나간 것을 복원한 것이고, 불당(佛堂)은 1979년에 세운 것이다.[2]
옷은 U자 모양의 계단식 법의(法衣)이다. 손은 왼손을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을 내리어 땅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런 손모양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고 한다. 불상을 모셔둔 대좌(臺座)는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화려한 편이다.[2]
어깨 부분이 약간 좁고, 몸은 풍만하나 양감(量感)이 부족한 통일신라 말기 불상 조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높이는 1.35m이다.[2]
참조
[1]
간행물
문화재청고시제2010-89호(국가지정문화재 보물지정)
http://gwanbo.mois.g[...]
관보(정호)
2010-08-25
[2]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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