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흥업성당 대안리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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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주 흥업성당 대안리공소는 1900년대 초에 지어진 목조 가구식 한옥 성당 건축물로, 교회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 1892년 르 메르 신부 재직 시 공소가 건립되었으나 위치는 불분명하며, 현재의 공소는 1900년에서 1906년 사이에 지어져 1910년 뮈텔 주교에 의해 축성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조선인민군 막사로, 이후에는 미군 구호물자 배급처로 사용되었다. 1950년대에 지붕을 기와로 개조했다가 초가로 복원되었고, 1970년대에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변경되었으며, 1986년에는 벽 보수와 창호 교체 공사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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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흥업성당 대안리공소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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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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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원주 흥업성당 대안리공소 |
유형 | 국가등록문화재 |
번호 | 140 |
지정일 | 2004년 12월 31일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흥업면 승안동길 216, 외 1필지 (대안리) |
시대 | 대한제국시대 |
소유자 | (재)천주교원주교구유지재단 |
수량 | 1동, 1층 건축면적 73.92m2 |
지도 | 대한민국 |
꼬리표 | 원주 흥업성당 대안리공소 |
문화재청 | 79,01400000,32 |
2. 연혁
1892년 르 메르 신부가 공소를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의 공소는 1900년에서 1906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10년 11월 12일 뮈텔 주교에 의해 축성되었다. 『원동 100년사』에 따르면, 1910년경 신부방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관리자 증언에 따르면 1950년대에 2칸을 증축했고, 그중 마지막 칸을 1970년대에 수리했다고 한다. 이는 『원동 100년사』에 나오는 지붕 개수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2. 1. 건립 초기
1900년대 초 목조 가구식 한옥 성당 건축물로, 교회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 1892년 르 메르 신부 재직 시 공소를 건립하였다고 하지만 위치를 알 수 없다. 현재의 공소는 1900년에서 1906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10년 11월 12일 뮈텔 주교가 축성하였다. 이후 1950년대에 지붕을 기와로 개조하였으나 하중을 견디지 못하여 다시 초가로 삼았고, 1970년대에 슬레이트로 바꾸었다.2. 2. 한국전쟁과 그 이후
뮈텔 주교가 건립한 목조 한옥 성당으로, 한국 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막사로, 전쟁 후에는 미군 구호물자 배급처로 사용되었다.2. 3. 지붕 개조 역사
1950년대 양대석 신부 재임 시절, 초가 지붕을 기와로 개조하였으나, 지붕 하중이 커져 다시 초가로 복원하였다. 1970년대에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하였다. 1986년 3월에는 벽 보수공사와 함께 창호를 알루미늄 창호로 교체하였다.3. 건축적 특징
뮈텔 주교가 건립한 목조 한옥 성당으로, 한국 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막사로, 전쟁 뒤에는 미군 구호물자 배급처로 사용되었다. 내부 공간은 회중석과 제단으로 구성된 강당, 제의실, 주 출입구 전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의실 출입문 앞쪽에 고해를 위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원주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00년대 공소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4.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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