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코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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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월터 코널리는 미국의 배우로, 1916년부터 1935년까지 브로드웨이 연극 22편에 출연했다. 1914년 무성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1932년부터 본격적인 할리우드 경력을 시작하여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코널리는 주로 분노한 사업 거물이나 신문 기자 역할을 맡았으며,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대지》(1937), 《허클베리 핀의 모험》(1939)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1932년부터 1938년까지 라디오 드라마 《찰리 찬》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했다. 코널리는 1940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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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코널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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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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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월터 코널리 |
출생일 | 1887년 4월 8일 |
출생지 |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
사망일 | 1940년 5월 28일 (향년 53세)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
직업 | 영화, 연극, 라디오 배우 |
활동 기간 | 1914년–1939년 |
배우자 | 네다 해리건 (1921년 결혼) |
자녀 | 1명 |
2. 생애
월터 코널리는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세인트 자비에르 칼리지와 신시내티 음악 대학을 졸업하고 아마추어 극단에서 활동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아일랜드 더블린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연기를 포기하려 했으나, 애비 극장 방문을 통해 연기 열정을 되찾았다.[1] 미국 귀국 후 연극 ''The Woman of Bronze''에서 호평을 받았다.[3][4]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다 할리우드 영화계에 진출, 조연과 주연을 오가며 활약했다. 라디오 드라마 ''찰리 찬''의 주인공으로도 활동했다.[6] 1940년 뇌졸중으로 사망, 신시내티 신 시저프 묘지에 안장되었다.[7]
2. 1. 초기 생애
신시내티에서 월터 조셉 코놀리와 엘라 버크 사이에서 태어난 코놀리는 세인트 자비에르 칼리지와 신시내티 음악 대학을 다녔으며, 아마추어 극단에서 지역적으로 활동했다.[1] 몇 년 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해병대에서 복무한 후, 미국으로 바로 돌아가는 대신 아일랜드를 방문하여 더블린 대학교에서 연극 관련이 아닌 여러 강좌를 수강했는데, 이는 직업을 완전히 포기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1] 그러나 애비 극장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코놀리의 연기 열정이 되살아났고,[1] 미국으로 돌아온 지 4개월 만에[2] 코놀리는 마가렛 앤글린 등과 함께 폴 케스터가 각색한 앙리 키스테메이커의 연극 ''The Woman of Bronze''에서 그의 연기를 칭찬받았다.[3][4]2. 2. 경력
코널리는 1916년부터 1935년까지 루이지 피란델로의 ''작가를 찾는 여섯 등장인물'', 안톤 체호프의 ''바냐 삼촌'' 리바이벌 작품을 포함하여 22편의 브로드웨이 연극에 출연한 성공적인 무대 배우였다.[5] 1914년 ''표시된 여자'', 1915년 ''군인의 맹세'' 등 두 편의 무성 영화에 출연했으며, 첫 유성 영화는 1930년 ''행복한 재회''였다. 1932년부터 할리우드 영화 경력을 시작하여 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코널리는 주로 분노한 사업 거물이나 신문 기자, 여성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클라크 게이블과 클로데트 콜베르가 출연한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워너 백스터와 마이아나 로이가 출연한 ''브로드웨이 빌''(1934), 윌리엄 파월과 로이가 출연한 ''모함받는 여자''(1936) 등이 대표적이다. 폴 무니 주연의 ''대지''(1937)에서는 쓸모없는 삼촌, ''허클베리 핀의 모험''(1939)에서는 미키 루니가 연기한 허클베리 핀이 만나는 사기꾼 중 한 명으로 출연했다. ''옌 장군의 쓴 차''(1933)에서는 옌 장군의 미국인 고문 역할을 맡았다.
RKO의 ''공포의 남자 연맹''(1937)에서 네로 울프 역, 진저 로저스와 함께 출연한 ''5번가 소녀''(1939), 그리고 마지막 영화인 ''위대한 빅터 허버트''(1939)에서 빅터 허버트 역을 맡는 등 주연을 맡기도 했다.
1932년부터 1938년까지 NBC 라디오에서 ''찰리 찬''의 모험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6]
2. 3. 사망
코널리는 1940년 5월 28일 뇌졸중[1]으로 베벌리힐스에서 사망했으며, 신시내티의 신 시저프 묘지에 안장되었다.[7]3. 출연 작품
월터 코널리는 영화, 연극, 라디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1914년 ''표시된 여자''와 1915년 ''군인의 맹세'' 등 두 편의 무성 영화에 출연했으며, 1930년 ''행복한 재회''를 통해 유성 영화에 데뷔했다.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주로 분노한 사업가나 신문 기자, 여성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클라크 게이블과 클로데트 콜베르가 출연한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워너 백스터와 마이아나 로이가 출연한 ''브로드웨이 빌''(1934), 윌리엄 파월과 마이아나 로이가 출연한 ''모함받는 여자''(1936) 등이 대표적이다. 폴 무니가 출연한 ''대지''(1937)에서는 쓸모없는 삼촌 역을, ''허클베리 핀의 모험''(1939)에서는 사기꾼 '왕'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옌 장군의 쓴 차''(1933)에서는 옌 장군의 미국인 고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주로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RKO의 ''공포의 남자 연맹''(1937)에서는 네로 울프 역, 진저 로저스와 함께 출연한 ''5번가 소녀''(1939)에서는 주연을 맡았다. 마지막 영화는 ''위대한 빅터 허버트''(1939)로, 빅터 허버트 역할을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