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측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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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육지측량부(陸地測量部)는 일본 제국 육군 참모본부 소속의 측량 기관이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설립 배경 및 목적: 일본은 부국강병과 외국 침략을 위한 군사 작전을 위해 지도가 필수적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이에 따라, 1871년 병무성 내에 육군참모국이 설치되었고, 기밀 탐지, 첩보 활동, 지도 제작 및 지지서 편찬을 담당했습니다.
- 역할 및 활동: 육지측량부는 일본 근대 지도의 총본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초기에는 내무성이 지도 제작을 주도했지만, 1888년 육지측량부가 발족되면서 군부가 지도 제작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육지측량부는 국내외 지도 제작을 담당했으며, 특히 외국 침략을 위한 군사지도(외방도) 제작에 주력했습니다.
- 한국과의 관계: 1895년, 일본 참모본부 육지측량부는 한반도에 측량대를 파견하여 측량을 실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의 저항이 있었으며, 백범 김구 선생이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 장교를 살해한 치하포 사건(1896)도 발생했습니다. 육지측량부는 1904년 서울 일대의 지형 측량을 실시했고, 1909년부터 1917년 사이에는 한반도 남한 지역의 지형도를 제작했습니다. 또한,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도구역일람도(1936, 1941년 발행)에는 울릉도와 독도(죽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 조직: 육지측량부는 참모본부 소속으로, 삼각측량과, 지형측량과, 지도과의 3개 과로 구성되었습니다.
- 해체 및 후신: 일본군이 해체된 후, 육지측량부의 기능은 현재의 국토지리원으로 이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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