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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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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부길은 일제강점기, 1950년대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극작가, 작사가, 영화배우이다. 오천초등학교, 충남대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제국대학교 철학과, 도쿄 도요 음악전문학교를 중퇴했다. 1953년 《처녀뱃사공》, 1956년 《시골버스 여차장》 등의 가요 작사 활동을 했으며, 1956년 영화 《인생역마차》에 출연하고, 1958년 영화 《안개 낀 서귀포》에서 주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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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부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윤부길
한자 표기尹富吉
출생일1912년 12월 31일
출생지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보령군
사망일1957년 6월 8일
사망지대한민국 경기도 인천시
직업작사가
극작가
성악가
뮤지컬배우
연극 배우
희극인
영화 배우
활동 기간1933년~1957년
학력일본 도쿄 도요 음악전문학교 성악학과 중퇴
종교개신교(장로회)
친척정경신(차자부)
형제자매2남 6녀 중 차남이자 셋째 (누나 1명, 형 1명, 누이동생 5명)
배우자박씨 부인(사별), 고향선(재혼)
자녀2남 2녀 (장남 윤영기, 장녀 윤수현, 차남 윤항기, 차녀 윤복희)
웹사이트윤부길

2. 생애

윤부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충남보령오천보통학교충남대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제국으로 건너가 제국대학교 철학과와 도쿄 도요 음악전문학교 성악학과에 입학했으나 모두 중퇴하였다.

그는 여러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로 활동했으며, 특히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가사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한국 전쟁 직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처녀 뱃사공과 시골버스 여차장 등이 있다. 이 곡들은 각각 가수 황정자와 심연옥이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1956년 영화 《인생역마차》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 배우로도 활동을 시작했다.[1] 그러나 이듬해인 1957년 6월 8일, 경기도 인천의 요양원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작이 된 영화 《안개 낀 서귀포》는 사후인 1958년에 개봉되었다.

가족으로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2남 2녀를 두었다. 두 번째 부인인 무용수 고향선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 윤항기와 차녀 윤복희는 각각 싱어송라이터와 가수 겸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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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대중가요 작사 활동

윤부길은 여러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로도 활동했다. 그의 작사 활동은 주로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소재로 삼았다.

  • '''처녀 뱃사공''' (1953년 작,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9월, 윤부길은 자신이 이끌던 유랑극단 '부길부길쑈'와 함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이동하던 중 나룻배를 타게 되었다. 이때 20대 여성이 뱃사공인 것을 보고 그 사연을 물었다. 여성은 1950년 한국 전쟁에 징집된 오빠 박기준(전쟁 중 전사)의 소식이 끊기자, 두 여동생 박말순과 박정숙이 교대로 나룻배를 저어 생계를 잇고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윤부길은 이 사연을 바탕으로 "낙동강 강바람이 치맛폭을..."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썼고, 당시 싱어송라이터였던 한복남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한복남이 작곡하고, 그의 노래 《오동동 타령》으로 인기를 얻은 가수 황정자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1956년, 윤부길은 어느 시골 지역에서 버스를 타다가 여성 차장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여성 차장은 자신의 남편(또는 애인)이 군대 운전병으로 복무 중이라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윤부길은 "오라이 스톱 마지막 버습니다..."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썼다. 작곡은 《처녀 뱃사공》에서 함께 작업했던 한복남에게 다시 의뢰했다. 노래는 한복남이 작곡한 《전화 통신》(1956년 작)을 남백송과 함께 불렀던 가수 심연옥(가수 백년설의 부인)이 불렀다.

  • '''나룻배 처녀''' (1960년 작, 하기송 작곡, 최숙자 노래)

1956년, 윤부길은 어느 강가에서 나룻배를 젓는 처녀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듣고 노랫말을 지었다. 이 노랫말에 맞는 작곡가를 찾아 노래로 만들려 했으나, 1957년 6월 8일 경기도 인천의 요양원에서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발표되지 못했다. 그의 사후, 서울 마포 자택에 보관되어 있던 노랫말을 한복남의 장남인 작곡가 하기송(본명 한기호)이 발견하여 곡을 붙였다. 이 곡은 1960년에 가수 최숙자가 불러 발표되었다.

2. 3. 영화 활동

윤부길은 1956년 영화 《인생역마차》에 마현정 역(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 배우로 데뷔하였다.[1] 그러나 이듬해인 1957년 6월 8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생전에 주연으로 촬영했던 두 번째 영화 《안개 낀 서귀포》(감독: 임한림)는 그의 사후인 1958년 3월 8일에 개봉되었으며, 이 영화는 윤부길의 유작이 되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서재홍 역을 맡았다.

2. 4. 가족 관계

윤부길은 두 번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1933년 5월 31일 밀양 박씨 여성과 첫 결혼을 하였으나, 1939년 3월 11일 사별하였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장남 윤영기(1935년생)와 장녀 윤수현(1937년생)을 얻었다.

1940년 3월 13일, 무용가 최승희의 수제자로 알려진 무용수 고향선(본명 성경자, 창녕 성씨, 1923년 11월 15일 ~ 1952년 10월 29일)과 재혼하였다. 고향선과의 사이에서는 차남 윤항기(1943년생)와 차녀 윤복희(1946년생)를 두었다. 윤항기는 싱어송라이터로, 윤복희는 가수 겸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윤부길의 자녀가 윤항기와 윤복희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윤부길은 1952년 10월 29일, 두 번째 부인 고향선과도 병으로 사별하였다.

친손자로는 윤항기의 외동아들이자 CCM 그룹 《큐브(Cube)》 출신의 CCM 가수 겸 음악가, 대학 교수인 준 주노(본명 윤준호, 1975년생)가 있다.

3. 학력

4. 작품 목록

윤부길은 영화 배우이자 작사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4. 1. 영화 출연작


  • 1956년 《인생역마차》 ... 마현정 역(단역) - 영화 데뷔 작품.[1]
  • 1958년 《안개 낀 서귀포》 ... 서재홍 역(주연) - 윤부길이 1957년 6월 8일 사망한 후, 이듬해인 1958년 3월 8일에 개봉된 유작이다.

4. 2. 가요 작사

윤부길은 여러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적인 작사 작품과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 '''처녀 뱃사공 (1953년 작)'''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9월, 윤부길은 유랑극단 '부길부길쑈'를 이끌고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공연을 마친 뒤 나룻배를 타게 되었다. 이때 20대 여성이 뱃사공인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여성은 1950년 전쟁에 참전한 오빠(박기준)의 소식이 끊기자, 두 여동생(박말순, 박정숙)과 함께 교대로 나룻배를 저어 생계를 잇고 있다는 애절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윤부길은 이 사연을 바탕으로 ‘낙동강 강바람이 치맛폭을...’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지었고, 작곡가 한복남에게 곡을 의뢰했다. 이 노래는 당시 《오동동 타령》으로 인기를 얻은 가수 황정자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 '''시골버스 여차장 (1957년 작)'''

1956년, 윤부길은 어느 시골 버스를 타고 가다가 여성 차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에게 사연을 묻자, 여성 차장은 남편(또는 연인)이 군대 운전병으로 복무 중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윤부길은 ‘오라이 스톱 마지막 버습니다...’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지었다. 《처녀 뱃사공》을 함께 작업했던 한복남에게 다시 곡을 의뢰했고, 가수 백년설의 부인이기도 한 심연옥이 노래를 불렀다.

  • '''나룻배 처녀 (1960년 작)'''

1956년, 윤부길은 한 강가에서 나룻배를 모는 처녀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노랫말을 지었다. 이 노랫말에 맞는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려 했으나, 1957년 윤부길이 갑작스럽게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성 상태로 남게 되었다. 윤부길 사후, 그의 집에 보관되어 있던 이 작사 노랫말을 한복남의 아들인 작곡가 하기송이 발견하여 작곡했고, 1960년 가수 최숙자가 노래를 불러 발표했다. 이 곡은 윤부길 사후에 발표된 유작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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