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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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규혁은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1994년부터 2014년까지 6번의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1997년 10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2001년 1500m에서도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며 세계적인 단거리 스프린터로 이름을 알렸다. 2007년과 2008년, 2010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이 대회 3회 우승을 달성했다. 2014년 동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했으며, 은퇴 후에는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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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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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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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출생일 | 1978년 3월 16일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신장 | 1.75 m |
체중 | 75 kg |
배우자 | 손담비 (2022년 결혼) |
종목 정보 | |
종목 | 스피드 스케이팅 |
메달 정보 | |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 | |
2007 하마르 | 금메달 (스프린트) |
2008 헤이렌베인 | 금메달 (스프린트) |
2010 오비히로 | 금메달 (스프린트) |
2011 헤이렌베인 | 금메달 (스프린트) |
2012 캘거리 | 은메달 (스프린트) |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 |
2011 인첼 | 금메달 (500 m) |
2008 나가노 | 은메달 (500 m) |
2009 리치먼드 | 은메달 (500 m) |
2007 솔트레이크시티 | 동메달 (1000 m) |
동계 유니버시아드 | |
1997 무주-전주 | 은메달 (500 m) |
1997 무주-전주 | 동메달 (1500 m) |
동계 아시안 게임 | |
2003 아오모리 | 금메달 (1000 m) |
2003 아오모리 | 금메달 (1500 m) |
2007 창춘 | 금메달 (1000 m) |
2007 창춘 | 금메달 (1500 m) |
1999 강원 | 은메달 (1000 m) |
2007 창춘 | 은메달 (500 m) |
2011 아스타나-알마티 | 은메달 (팀 추월) |
2011 아스타나-알마티 | 동메달 (1500 m) |
2. 내력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가 모두 빙상 선수로 활동한, 빙상 가족 출신이다. 그의 부친 이익환은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으며, 1998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였으며, 모친 이인숙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 등에서 활동했으며[12] 현재 전국스케이팅연합회 회장이다.[13] 그의 동생 이규현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서 1998년 동계 올림픽과 2002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었고, 현재는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빙상인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이규혁은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에 두각을 나타냈다. 리라초등학교 재학 때부터 빙상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신사중학교 재학 중 주니어 국가대표로 뽑혀 1992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종합 21위에 올랐다. 그는 만 15세의 어린 나이인 1993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1994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 500m에서 36위, 1000m에서 32위에 올랐다.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1996년/1997년 시즌부터 시니어 무대에서도 세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1997년 12월 1000m에서 1분 10초42로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였다. 그의 세계 신기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이 경신하기는 했으나, 그는 세계적인 단거리 스프린터로 주목받아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도 유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500m에서 8위, 1000m에서 13위에 올랐다. 그 후 1998년~2000년 사이 이규혁은 월드컵 레이스에서 B그룹으로 강등되는 등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2000년/2001년 시즌에 이규혁은 다소 회복되어 월드컵에서 한 차례 우승하였으며,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 500m 5위, 1000m 4위에 오르는 등 세계 상위권에 다시 다가섰다. 이 시즌 후반부인 2001년 3월 16일 그는 1500m에서 1분 45초20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여 주목을 받았다. 자신감을 회복한 이규혁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02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메달 획득에 큰 기대를 걸었다. 2001년/2002년 시즌 월드컵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보였고, 1500m에서는 세계 신기록 보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페이스 조절 난조로 500m·1000m·1500m에서 각각 5위·8위·8위로 입상권에만 들었을 뿐 메달은 따지 못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후 이규혁은 월드컵에서 하위권에 처지는 등 심각한 노메달 후유증을 겪었다[14].
또한 이 무렵부터 그는 동계 올림픽 동메달 이상, 동계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시 주어지는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해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15]. 그는 일본 아오모리에서 열린 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 참가, 1000m와 1500m에서 2관왕에 오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훈련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는 2002년~2005년 사이에는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2개를 딴 것을 빼면 세계 무대에서는 대부분 중하위권에 머무는 등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 후에 그가 다시 세계 상위권에 오른 것은 2005년/2006년 시즌부터이다. 이 시즌에서 월드컵 대회에서 몇 차례 세계 상위권에 올랐고,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4위를 차지하여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2006년 동계 올림픽에서도 다시 메달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4번째로 출전한 동계 올림픽에서 그는 500m에서 17위로 처졌으나, 1000m에서는 3위와 0.05초차로 4위에 올랐다.
동계 올림픽 다음 시즌인 2006년/2007년 시즌, 그는 국제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성적을 올렸다. 이 시즌, 500m와 1000m에서 5차례나 우승하였으며, 1000m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고,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우승했으며,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5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2009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이 유력시되었으나, 둘째날 1000m 마지막 경기 중 넘어지는 바람에 3회 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0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우승,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대회를 세 차례나 우승하였다. 이규혁은 2009년/2010년 시즌에도 꾸준히 세계 상위권에 머물려서 자신이 마지막 도전이 될 거라고 말한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유력한 메달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500m에선 15위, 1000m에선 9위를 기록하면서 또 다시 메달과의 인연을 맺지 못하고 국가대표팀 후배 모태범이 500m 금메달, 1000m 은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2010년 동계 올림픽 직후 은퇴를 고려했으나 현역으로 좀 더 활동하기[16]로 한 이규혁은 2011년, ISU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2010년에 이어 종합우승을 했다.[17] 500m 1차 2차 시기에서 모두 1위에 올랐고, 1000m에서는 6위를 기록했으나 500m와 1000m 기록 합산으로 종합 1위에 올랐다. 이로써 이규혁은 ISU 스프린트선수권에서 역대 4번 우승했다. 현재까지 ISU 스프린트선수권에서 4회 이상 우승한 기록을 가진 남자 선수는 미국의 에릭 하이든, 벨라루스의 이고리 젤레좁스키,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과 대한민국의 이규혁, 단 4명뿐이다.
2013년/2014년 시즌에도 이규혁은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년 이상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14년 동계 올림픽 출전권도 얻었다. 이규혁이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올림픽 참가 횟수가 6회에 달하여, 대한민국의 스포츠 선수 중에서 통산 올림픽 참가 횟수가 가장 많게 된다.[18] 그러나 선수로써 사실상 마지막으로 참가한 올림픽이었으나 네덜란드의 높은 벽과 적지 않은 나이, 기량으로 인해 올림픽 메달 획득에는 끝내 실패하고 만다. 이규혁은 1994년부터 동계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꾸준히 참가하였지만, 끝내 올림픽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4년 동계 올림픽 1000m 경기를 마치고 그는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2014년 4월 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은퇴식을 갖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19]
2. 1. 선수 경력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가 모두 빙상 선수로 활동한, 빙상 가족 출신이다. 그의 부친 이익환은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으며, 1998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였으며, 모친 이인숙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 등에서 활동했으며[12] 현재 전국스케이팅연합회 회장이다.[13] 그의 동생 이규현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서 1998년 동계 올림픽과 2002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었고, 현재는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빙상인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이규혁은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에 두각을 나타냈다. 리라초등학교 재학 때부터 빙상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신사중학교 재학 중 주니어 국가대표로 뽑혀 1992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종합 21위에 올랐다. 그는 만 15세의 어린 나이인 1993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1994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 500m에서 36위, 1000m에서 32위에 올랐다.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1996년/1997년 시즌부터 시니어 무대에서도 세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1997년 12월 1000m에서 1분 10초42로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였다. 그의 세계 신기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이 경신하기는 했으나, 그는 세계적인 단거리 스프린터로 주목받아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도 유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500m에서 8위, 1000m에서 13위에 올랐다. 그 후 1998년~2000년 사이 이규혁은 월드컵 레이스에서 B그룹으로 강등되는 등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2000년/2001년 시즌에 이규혁은 다소 회복되어 월드컵에서 한 차례 우승하였으며,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 500m 5위, 1000m 4위에 오르는 등 세계 상위권에 다시 다가섰다. 이 시즌 후반부인 2001년 3월 16일 그는 1500m에서 1분 45초20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여 주목을 받았다. 자신감을 회복한 이규혁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02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메달 획득에 큰 기대를 걸었다. 2001년/2002년 시즌 월드컵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보였고, 1500m에서는 세계 신기록 보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페이스 조절 난조로 500m·1000m·1500m에서 각각 5위·8위·8위로 입상권에만 들었을 뿐 메달은 따지 못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후 이규혁은 월드컵에서 하위권에 처지는 등 심각한 노메달 후유증을 겪었다[14].
또한 이 무렵부터 그는 동계 올림픽 동메달 이상, 동계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시 주어지는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해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15]. 그는 일본 아오모리에서 열린 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 참가, 1000m와 1500m에서 2관왕에 오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훈련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는 2002년~2005년 사이에는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2개를 딴 것을 빼면 세계 무대에서는 대부분 중하위권에 머무는 등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 후에 그가 다시 세계 상위권에 오른 것은 2005년/2006년 시즌부터이다. 이 시즌에서 월드컵 대회에서 몇 차례 세계 상위권에 올랐고,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4위를 차지하여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2006년 동계 올림픽에서도 다시 메달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4번째로 출전한 동계 올림픽에서 그는 500m에서 17위로 처졌으나, 1000m에서는 3위와 0.05초차로 4위에 올랐다.
동계 올림픽 다음 시즌인 2006년/2007년 시즌, 그는 국제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성적을 올렸다. 이 시즌, 500m와 1000m에서 5차례나 우승하였으며, 1000m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고,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우승했으며,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5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2009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이 유력시되었으나, 둘째날 1000m 마지막 경기 중 넘어지는 바람에 3회 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0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우승,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대회를 세 차례나 우승하였다. 이규혁은 2009년/2010년 시즌에도 꾸준히 세계 상위권에 머물려서 자신이 마지막 도전이 될 거라고 말한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유력한 메달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500m에선 15위, 1000m에선 9위를 기록하면서 또 다시 메달과의 인연을 맺지 못하고 국가대표팀 후배 모태범이 500m 금메달, 1000m 은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2010년 동계 올림픽 직후 은퇴를 고려했으나 현역으로 좀 더 활동하기[16]로 한 이규혁은 2011년, ISU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2010년에 이어 종합우승을 했다.[17] 500m 1차 2차 시기에서 모두 1위에 올랐고, 1000m에서는 6위를 기록했으나 500m와 1000m 기록 합산으로 종합 1위에 올랐다. 이로써 이규혁은 ISU 스프린트선수권에서 역대 4번 우승했다. 현재까지 ISU 스프린트선수권에서 4회 이상 우승한 기록을 가진 남자 선수는 미국의 에릭 하이든, 벨라루스의 이고리 젤레좁스키,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과 대한민국의 이규혁, 단 4명뿐이다.
2013년/2014년 시즌에도 이규혁은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년 이상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14년 동계 올림픽 출전권도 얻었다. 이규혁이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올림픽 참가 횟수가 6회에 달하여, 대한민국의 스포츠 선수 중에서 통산 올림픽 참가 횟수가 가장 많게 된다.[18] 그러나 선수로써 사실상 마지막으로 참가한 올림픽이었으나 네덜란드의 높은 벽과 적지 않은 나이, 기량으로 인해 올림픽 메달 획득에는 끝내 실패하고 만다. 이규혁은 1994년부터 동계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꾸준히 참가하였지만, 끝내 올림픽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4년 동계 올림픽 1000m 경기를 마치고 그는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2014년 4월 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은퇴식을 갖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19]
:''- = 불참''
:''NC# = 최종 순위에 진출하지 못함''
2. 1. 1. 초기 생애 및 주니어 시절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빙상 선수로 활동한, 빙상 가족 출신이다. 그의 부친 이익환은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으며, 1998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였으며, 모친 이인숙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 등에서 활동했으며[12] 현재 전국스케이팅연합회 회장이다.[13] 그의 동생 이규현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서 1998년 동계 올림픽과 2002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었고, 현재는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빙상인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이규혁은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에 두각을 나타냈다. 리라초등학교 재학 때부터 빙상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신사중학교 재학 중 주니어 국가대표로 뽑혀 1992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종합 21위에 올랐다. 그는 만 15세의 어린 나이인 1993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1994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 500m에서 36위, 1000m에서 32위에 올랐다.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1996년/1997년 시즌부터 시니어 무대에서도 세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1997년 12월 1000m에서 1분 10초42로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였다. 그의 세계 신기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이 경신하기는 했으나, 그는 세계적인 단거리 스프린터로 주목받아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도 유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500m에서 8위, 1000m에서 13위에 올랐다. 그 후 1998년~2000년 사이 이규혁은 월드컵 레이스에서 B그룹으로 강등되는 등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2000년/2001년 시즌에 이규혁은 다소 회복되어 월드컵에서 한 차례 우승하였으며,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 500m 5위, 1000m 4위에 오르는 등 세계 상위권에 다시 다가섰다. 이 시즌 후반부인 2001년 3월 16일 그는 1500m에서 1분 45초20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여 주목을 받았다.
|섬네일|이규혁의 경기 모습]]
이규혁은 1992년 13세의 나이로 ISU 주최 대회에 데뷔하여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바르샤바에서 출전했다. 그는 결승 거리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사말로프 합계에서 49명의 선수 중 21위, 대한민국 선수 중 2위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도 출전했지만, 다시 예선 탈락했으며, 봉주현이 1,500m에서 실격되면서 순위가 두 단계 상승하여 한국 선수 중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1994년 시즌, 이규혁은 15세의 나이로 1994년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시즌 초반 4번의 월드컵 경기에 출전했다. 그의 최고 성적은 다보스에서 500m에서 36명 중 21위를 기록한 것이었지만, 월드컵 포인트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올림픽에서 이규혁은 500m 36위, 1,000m 3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캘거리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이규혁은 처음으로 결승 거리에 진출하여 종합 4위를 기록했으며, 동메달리스트와 0.098점 차이였다.
이규혁은 또한 1995년과 1996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4위를 기록했는데, 초반 세 거리에서 밥 데 용과 마크 놀과 같은 장거리 전문 선수들에게 선두를 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95년 세계 종합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선발되었으며, 500m에서 4위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결승 거리에 진출하지 못해 20위로 대회를 마쳤다. 그러나 1996년 선수권 대회에서는 500m 주니어 세계 기록을 36.59초로 단축했지만, 제레미 워더스푼이 2주 후 0.01초 더 단축했다.
그의 월드컵 순위는 1996년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다가 메데오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8위로 처음 10위권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종합 20위권에 들지 못했다.
주니어 선수로서 네 번째 국제 시즌에서 이규혁은 500m 우승을 차지한 후 세계 종합에서 21위를 기록했으며, 1997년 8번의 월드컵 출전에서 이규혁은 1,000m에서 세 번이나 10위권에 진입했다. 그는 심지어 전주에서 열린 레이스에서 우승자 게라르트 판 벨데에 0.15초 뒤져 시상대에 올랐다. 이로 인해 그는 1,000m 월드컵에서 종합 15위로 올라섰지만,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나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2. 1. 2. 국가대표 경력 및 세계 기록 경신
이규혁은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는 모두 빙상 선수 출신이다. 부친 이익환은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였고, 1998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모친 이인숙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 등에서 활동했으며[12] 현재 전국스케이팅연합회 회장이다.[13] 동생 이규현은 1998년 동계 올림픽과 2002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현재 코치로 활동 중이다.빙상인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이규혁은 리라초등학교 때부터 빙상 신동으로 불렸고, 신사중학교 재학 중 주니어 국가대표로 뽑혀 1992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21위에 올랐다. 만 15세인 1993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1994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 500m에서 36위, 1000m에서 32위를 기록했다. 고려대학교에 진학한 후, 1996년/1997년 시즌부터 세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1997년 12월 1000m에서 1분 10초42로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최초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비록 이 기록은 곧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에 의해 깨졌지만, 그는 세계적인 단거리 스프린터로 주목받아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500m에서 8위, 1000m에서 13위를 기록했다. 1998년부터 2000년 사이, 이규혁은 월드컵 레이스에서 B그룹으로 강등되는 등 슬럼프를 겪었다.
2000년/2001년 시즌, 이규혁은 월드컵에서 한 차례 우승하고,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 500m 5위, 1000m 4위에 오르며 세계 상위권에 다시 근접했다. 2001년 3월 16일, 1500m에서 1분 45초20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며 주목받았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02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큰 기대를 모았으나, 페이스 조절 난조로 500m·1000m·1500m에서 각각 5위·8위·8위로 입상권에만 머물렀다. 올림픽 후, 이규혁은 월드컵에서 하위권에 처지는 등 노메달 후유증을 겪었다.[14]
동계 올림픽 동메달 이상, 동계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시 주어지는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해 선수 생활 중단 위기에 놓였으나,[15] 일본 아오모리에서 열린 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1000m와 1500m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는 세계 무대에서 대부분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2005년/2006년 시즌부터 다시 세계 상위권에 올랐다. 월드컵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4위를 차지하며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06년 동계 올림픽에서 메달을 기대하게 했다. 4번째 올림픽에서 500m는 17위에 그쳤지만, 1000m에서는 3위와 0.05초 차이로 4위에 올랐다.
2006년/2007년 시즌, 500m와 1000m에서 5차례 우승, 1000m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 우승,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1000m 동메달을 획득하며 최고의 성적을 냈다. 2008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우승했고,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9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는 둘째 날 1000m 경기 중 넘어져 3회 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2010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이 대회를 세 차례 우승했다.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500m 15위, 1000m 9위를 기록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10년 동계 올림픽 이후 은퇴를 고려했으나, 현역 연장을 결정,[16] 2011년 ISU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2010년에 이어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17] 500m 1, 2차 시기 모두 1위, 1000m 6위를 기록하며 종합 1위에 올랐다. 이로써 ISU 스프린트선수권에서 역대 4번 우승한 선수가 되었다. 현재까지 4회 이상 우승한 남자 선수는 미국의 에릭 하이든, 벨라루스의 이고리 젤레좁스키,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 대한민국의 이규혁뿐이다.
2013년/2014년 시즌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년 이상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2014년 동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규혁은 6회 올림픽 출전으로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 중 통산 올림픽 참가 횟수가 가장 많다.[18] 그러나 2014년 동계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1000m 경기를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2014년 4월 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은퇴식을 가졌다.[19]
이 기간 동안 이규혁은 500m와 1,000m 경기에만 출전하는 전형적인 단거리 선수였다. 1,500m에서 세계 기록을 세웠지만, 2002년까지는 월드컵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1997-98 월드컵에서 이규혁은 1,000m에서 11위, 500m에서 16위로 향상되었고, 캘거리에서 1분 10.42초의 세계 기록으로 월드컵 경주에서 우승하며 첫 번째 세계 기록을 세웠다.
:''- = 불참''
:''NC# = 최종 순위에 진출하지 못함''
2. 1. 3. 올림픽 도전과 좌절
이규혁은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부모 모두 빙상 선수 출신이다. 1993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994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 500m에서 36위, 1000m에서 32위를 기록했다. 1997년 12월 10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며 세계적인 단거리 스프린터로 주목받았으나,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500m 8위, 1000m 13위에 그쳤다.2001년 3월 15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2002년 동계 올림픽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를 높였으나, 500m·1000m·1500m에서 각각 5위·8위·8위에 머물렀다. 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2관왕에 오르며 병역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후 세계 무대에서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06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1000m에서 4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500m 15위, 1000m 9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14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 중 최다 올림픽 참가 횟수(6회)를 기록했으나, 결국 올림픽 메달 획득에는 실패하고 은퇴했다.
년도 | 동계 올림픽 |
---|---|
1994 | 500m 36위 1000m 32위 |
1998 | 500m 8위 1000m 13위 |
2002 | 500m 5위 1000m 8위 1500m 8위 |
2006 | 1000m 4위 500m 17위 |
2010 | 500m 15위 1000m 9위 |
2014 | 메달 없음 |
2. 1. 4. 전성기와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 제패
서울특별시에서 부모가 모두 빙상 선수로 활동한, 빙상 가족 출신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익환은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며, 모친 이인숙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 등에서 활동했으며[12] 현재 전국스케이팅연합회 회장이다.[13] 그의 동생 이규현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활동했다.빙상인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이규혁은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에 두각을 나타냈다. 1996년/1997년 시즌부터 시니어 무대에서도 세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1997년 12월 1000m에서 1분 10초42로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였다.[14] 그의 세계 신기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이 경신하기는 했으나, 그는 세계적인 단거리 스프린터로 주목받았다. 그 후 1998년~2000년 사이 이규혁은 월드컵 레이스에서 B그룹으로 강등되는 등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2000년/2001년 시즌에 이규혁은 다소 회복되어 월드컵에서 한 차례 우승하였으며,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 500m 5위, 1000m 4위에 오르는 등 세계 상위권에 다시 다가섰다. 이 시즌 후반부인 2001년 3월 16일 그는 1500m에서 1분 45초20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여 주목을 받았다.[15] 그러나 올림픽에서 페이스 조절 난조로 500m·1000m·1500m에서 각각 5위·8위·8위로 입상권에만 들었을 뿐 메달은 따지 못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후 이규혁은 월드컵에서 하위권에 처지는 등 심각한 노메달 후유증을 겪었다.
2002년~2005년 사이에는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2개를 딴 것을 빼면 세계 무대에서는 대부분 중하위권에 머무는 등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 후에 그가 다시 세계 상위권에 오른 것은 2005년/2006년 시즌부터이다.
동계 올림픽 다음 시즌인 2006년/2007년 시즌, 그는 국제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성적을 올렸다. 이 시즌, 500m와 1000m에서 5차례나 우승하였으며, 1000m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고,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우승했으며,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5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2009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이 유력시되었으나, 둘째날 1000m 마지막 경기 중 넘어지는 바람에 3회 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0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우승, 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대회를 세 차례나 우승하였다.
2010년 동계 올림픽 직후 은퇴를 고려했으나 현역으로 좀 더 활동하기[16]로 한 이규혁은 2011년, ISU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2010년에 이어 종합우승을 했다.[17] 500m 1차 2차 시기에서 모두 1위에 올랐고, 1000m에서는 6위를 기록했으나 500m와 1000m 기록 합산으로 종합 1위에 올랐다. 이로써 이규혁은 ISU 스프린트선수권에서 역대 4번 우승했다. 현재까지 ISU 스프린트선수권에서 4회 이상 우승한 기록을 가진 남자 선수는 미국의 에릭 하이든, 벨라루스의 이고리 젤레좁스키,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과 대한민국의 이규혁, 단 4명뿐이다.
2. 1. 5. 마지막 올림픽과 은퇴
2010년 동계 올림픽 직후 은퇴를 고려했으나 현역으로 좀 더 활동하기[16]로 한 이규혁은 2011년, ISU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2010년에 이어 종합우승을 했다.[17] 500m 1차 2차 시기에서 모두 1위에 올랐고, 1000m에서는 6위를 기록했으나 500m와 1000m 기록 합산으로 종합 1위에 올랐다. 이로써 이규혁은 ISU 스프린트선수권에서 역대 4번 우승했다. 현재까지 ISU 스프린트선수권에서 4회 이상 우승한 기록을 가진 남자 선수는 미국의 에릭 하이든, 벨라루스의 이고리 젤레좁스키, 캐나다의 제러미 워더스푼과 대한민국의 이규혁, 단 4명뿐이다.2013년/2014년 시즌에도 이규혁은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년 이상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14년 동계 올림픽 출전권도 얻었다. 이규혁이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올림픽 참가 횟수가 6회에 달하여, 대한민국의 스포츠 선수 중에서 통산 올림픽 참가 횟수가 가장 많게 된다.[18] 그러나 선수로써 사실상 마지막으로 참가한 올림픽이었으나 네덜란드의 높은 벽과 적지 않은 나이, 기량으로 인해 올림픽 메달 획득에는 끝내 실패하고 만다. 이규혁은 1994년부터 동계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꾸준히 참가하였지만, 끝내 올림픽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4년 동계 올림픽 1000m 경기를 마치고 그는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2014년 4월 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은퇴식을 갖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19]
2. 2. 방송 활동
2. 2. 1. 예능
- 2010년 KBS2 《승승장구》
- 2011년 SBS 《강심장》
- 2011년 SBS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
- 2014년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 2014년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 2014년 KBS2 《우리동네 예체능》
- 2014년 JTBC 《냉장고를 부탁해》
- 2015년 KBS2 《해피투게더》
- 2015년 MBC 《세바퀴》
- 2016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
2022 | 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 | 출연 | 손담비와 함께 | [8] |
2. 2. 2. 드라마
- 2014년~2015년 SBS 《피노키오》 - 이규혁 역 (특별출연)
3. 개인사
이규혁은 2022년 5월 13일 배우 손담비와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4] 두 사람은 2021년 9월부터 교제를 시작했다.[5][6]
4. 기록
4. 1. 개인 최고 기록
종목 | 기록 | 장소 | 날짜 | 비고 |
---|---|---|---|---|
500m | 34.26 | 유타 올림픽 오벌, 솔트레이크시티 | 2009년 12월 11일 | |
1000m | 1:07.51 | 유타 올림픽 오벌, 솔트레이크시티 | 2007년 3월 10일 | 세계 종목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
1500m | 1:45.20 | 올림픽 오벌, 캘거리 | 2001년 3월 15일 | 전 세계 기록 |
3000m | 3:54.30 | 올림픽 오벌, 캘거리 | 2001년 10월 27일 | |
5000m | 7:07.61 | 올림픽 오벌, 캘거리 | 1996년 3월 10일 | 1996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
10,000m | 15:32.67 | 지치부 미즈 파크, 지치부 | 1992년 12월 19일 | 14세 |
출처: SpeedskatingResults.com[10]
4. 2. 세계 기록
참조
[1]
뉴스
Koele Finse favoriet danst op sprintnummers
http://www.nrc.nl/sp[...]
NRC
2006-01-2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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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ime best performances as of 06–07–01
http://web.telia.com[...]
2007-03-10
[3]
웹사이트
이승훈·이규혁, IHQ와 전속 계약…"좋은 성적으로 보답할 것" [공식입장]
https://entertain.na[...]
2021-09-28
[4]
웹사이트
"[전문] 손담비, 공효진·정려원 '손절설'에 '좋은 날에 터무니없는 말 많네' [TEN★]"
https://entertain.na[...]
2022-05-15
[5]
웹사이트
"[단독]손담비, 5세 연상 전 국가대표 이규혁과 열애 중"
https://entertain.na[...]
JTBC
2021-12-02
[6]
웹사이트
손담비·이규혁 3개월째 열애…친구에서 연인으로
https://entertain.na[...]
Asia Economy
2021-12-02
[7]
웹사이트
관상가 예언 적중…손담비♥이규혁, 결혼 2년 만 임신 "내년 4월 출산" [공식입장](전문)
https://m.entertain.[...]
MyDaily
2024-09-26
[8]
웹사이트
손담비♥이규혁, '동상이몽2' 합류… 러브스토리→신혼 일상 공개
https://entertain.na[...]
Sports Kyunghyang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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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Kyou-hyuk on SpeedSkatingNews.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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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Lee Kyou-hy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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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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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peedskat[...]
2012-08-29
[12]
뉴스
빙속 이규혁 “4전5기, 이번엔 다를 겁니다”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9-12-18
[13]
뉴스
동시 방송된 '가장 기쁜 김연아와 가장 슬픈 이규혁'
http://www.mydaily.c[...]
마이데일리
2010-02-28
[14]
뉴스
-월드컵빙속- 이규혁, 심각한 올림픽 후유증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2-03-04
[15]
뉴스
"<빙속 이규혁, 태극마크 10년 한을 푼다>"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2-12-03
[16]
뉴스
"<이규혁, 팀 추월 출전...'마지막 金' 도전>"
http://osen.mt.co.kr[...]
OSEN
2011-02-06
[17]
뉴스
"<이규혁, 세계 스프린트선수권 우승…건재 과시>"
http://news.sbs.co.k[...]
SBS
2011-01-24
[18]
뉴스
‘세계 스프린트 출전’ 이규혁 “이제부터 시작이다” - 일간스포츠
http://isplus.live.j[...]
[19]
뉴스
이규혁 은퇴 "올림픽 6회 연속 진출 기록, 금메달과 안 바꿔"
http://sports.news.n[...]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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