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켈런은 1939년 랭커셔주 번리에서 태어난 영국의 배우이다. 1961년 연극 무대에 데뷔하여, 1970년대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로열 내셔널 극장에서 활동하며 영국 연극계의 주요 인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에서 매그니토 역,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간달프 역을 맡아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는 또한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LGBT 권리 단체 스톤월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1979년 대영 제국 훈장, 1991년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2008년 컴패니언 오브 아너에 서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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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켈런은 1939년 5월 25일 랭커셔주 번리에서 토목 기사이자 평신도 설교자인 데니스 머레이 매켈런과 마저리 로이스 서트클리프 사이에서 태어났다.[7]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위건으로 이주하여 12세까지 살았으며, 아버지의 승진 후 볼턴으로 이주했다.[18][8]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경험은 그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8]
볼턴 스쿨(남학생 부문)에 다녔으며,[16]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연극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세 살 때 맨체스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된 《피터 팬》을 가족과 함께 관람했다.[18]
1958년, 18세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 캐서린스 칼리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다.[21]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 마르로우 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3년 동안 23편의 연극에 출연했다.[22][23][24]
3. 배우 경력
이언 매켈런은 1961년 코벤트리의 벨그레이드 극장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한 사람》의 로퍼 역으로 전문 무대에 데뷔했다.[22][24] 4년간 지역 순회극장에서 활동한 후, 《향기로운 꽃》으로 웨스트엔드에 처음 출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22] 1965년 로런스 올리비에의 국립극장 단원이 되어 치체스터 페스티벌에서도 활동했다. 1969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리처드 2세》와 《에드워드 2세》를 통해 획기적인 연기를 선보였다.[25]
1970년대에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로열 내셔널 극장에서 자주 공연하며 영국 연극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1976년 《맥베스》에서 주디 덴치와 함께 주연을 맡아 호평을 받았으며, 《오델로》의 이아고 역을 맡아 수상했다.[22] 1979년 브로드웨이 이전 공연 《아마데우스》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 역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토니상 연극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27][28]
맥켈런(안토니오 살리에리)과 제인 시무어(콘스탄체 모차르트)가 1981년경에 출연한 ''아마데우스''
1981년 영화 《사랑의 사제》에서 작가 D. H. 로렌스를 연기했다. 1986년 안톤 체호프의 희곡 《풋사과》 부활 공연으로 브로드웨이에 복귀했다. 1989년 영화 《스캔들》에서 존 프로푸모 역을 연기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리처드 3세》 세계 순회 공연에 출연하여 리처드 3세 역을 맡아 로런스 올리비에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33] 1993년 영화 《식스 디그리스 오브 세퍼레이션》에 출연했다. 1995년 영화 《리처드 3세》로 각본가 데뷔를 했으며, 주연을 맡아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고, 유럽 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8년 영화 《신들과 괴물들》에서 제임스 웨일 역을 연기하여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2000년 영화 《엑스맨》에서 매그니토 역을 맡아 이후 시리즈에도 출연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간달프 역을 맡아 미국 배우 조합상 영화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2006년 BBC 시리즈 《엑스트라즈》에 출연하여 프라임타임 에미상 코미디 시리즈 부문 게스트 배우상 후보에 올랐다. 2007년 영화 《스타더스트》의 내레이션을 맡았으며, 《황금 나침반》에서 이오렉 바이르니손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2009년 패트릭 스튜어트와 함께 《고도를 기다리며》 부활 공연에 출연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호빗》 3부작 영화에서 간달프 역을 다시 맡았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ITV 시트콤 《비셔스》에서 프레디 손힐 역으로 출연했다. 2015년 영화 《미스터 홈즈》에서 노년의 셜록 홈즈 역을 연기하여 호평을 받았다. 2017년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실사 영화에서 코그스워스 역을 맡았다. 2019년 헬렌 미렌과 함께 미스터리 스릴러 《더 굿 라이어》에 출연했고, 같은 해 영화 《캣츠》에서 구스 더 씨어터 캣 역을 맡았다.
맥켈런은 1961년 코벤트리의 벨그레이드 극장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한 사람》의 로퍼 역으로 첫 전문 무대에 섰다.[22][24] 4년간 지역 순회극장에서 활동한 후, 《향기로운 꽃》으로 웨스트엔드에 첫 출연하여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22] 1965년에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국립극장단 올드 빅의 단원이 되어 치체스터 페스티벌에서도 활동했다. 프로스펙트 극장단과 함께 맥켈런은 1969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 (리처드 코트렐 연출)와 크리스토퍼 말로의 에드워드 2세 (토비 로버트슨 연출)를 통해 획기적인 연기를 선보였는데, 후자는 동성애자였던 에드워드의 끔찍한 죽음을 묘사한 것에 대한 항의를 불러일으켰다.[25]
1970년대 맥켈런은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로열 내셔널 극장에서 자주 공연하며 영국 연극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는 여러 셰익스피어 주요 배역을 맡았다. 1976년 맥켈런은 스트랫퍼드에서 주디 덴치와 함께 "흥미진진하고... 특별한" 연출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주인공을 맡았고, 트레버 넌이 연출한 수상작에서 《오델로》의 이아고 역을 맡았다.[22] 1979년 맥켈런은 피터 셰퍼의 연극 《아마데우스》 브로드웨이 이전 공연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 역으로 찬사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연극 평론가 프랭크 리치는 맥켈런의 연기에 대해 "맥켈런 씨의 훌륭한 연기에서 살리에리의 광기에의 추락은 거의 뼈를 깎는 듯한 공포의 어두운 음표로 묘사되었다"라고 썼다.[27] 맥켈런은 이 연기로 연극 부문 최우수 남우주연상 토니상을 수상했다.[28]
1986년, 그는 안톤 체호프의 첫 번째 희곡인 『풋사과(Wild Honey)』의 부활 공연에 킴 캐트럴과 케이트 버튼과 함께 브로드웨이로 돌아왔다. 1989년 그는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의 《오델로》 공연에서 이아고 역을 맡았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그는 호평받는 《리처드 3세》의 세계 순회 공연에 출연하여 리처드 3세 역을 맡았다. 그의 연기로 그는 로런스 올리비에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33]
2007년 그는 트레버 넌 감독의 연출로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리어 왕》과 《갈매기》 공연에 복귀했다. 2009년에는 런던의 헤이마켓 극장(Haymarket Theatre)에서 션 매티어스 감독의 연출로 패트릭 스튜어트와 함께 매우 인기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 부활 공연에 출연했다.[49][50]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매켈런과 스튜어트는 브로드웨이(Broadway)의 코트 극장(Cort Theatre)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해롤드 핀터의 《인간의 땅》를 더블 캐스팅으로 공연했다.
맥켈런은 1966년 BBC의 ''데이비드 코퍼필드'' 각색에서 주인공 데이비드 코퍼필드 역을 맡아 텔레비전 드라마에 처음으로 출연하였으며, 첫 방영 당시 1200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했다. 1960년대 후반 재방송된 후, 이 시리즈의 마스터 비디오테이프는 삭제되었고, 산발적으로 남아있는 4편(3, 8, 9, 11화)만이 텔레레코딩으로 남아 있는데, 그중 3편에는 성인 데이비드 역의 맥켈런이 등장한다.[26]
1993년에는 친구 아미스테드 모핀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도시 이야기』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같은 해, HIV 발견에 관한 동명의 소설 밴드가 연주했다를 바탕으로 한 HBO 텔레비전 영화 『밴드가 연주했다』에 출연했다. 게이 권리 운동가 빌 크라우스를 연기한 맥켈런은 케이블ACE상 영화 또는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프라임타임 에미상 미니시리즈 또는 영화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39]
1995년에는 케이트 베킨세일, 루퍼스 시웰, 스티븐 프라이가 주연한 BBC 텔레비전 코미디 영화 『냉정한 위안 농장』에 출연했다. 이듬해 그는 HBO 제작 텔레비전 영화 『라스푸틴: 운명의 어두운 종』(1996)에서 라스푸틴 역의 앨런 릭먼과 함께 차르 니콜라이 2세 역을 맡았다. 이 연기로 맥켈런은 프라임타임 에미상 한정 시리즈 또는 영화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골든 글로브상 시리즈, 미니시리즈 또는 텔레비전 영화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엑스트라: 스타에게 다가가라!』에서 게이 연출가를 연기하여 프라임타임 에미상 코미디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프리즈너》에서 넘버 투 역을 맡았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비셔스》에서 프레디 손힐 역을 맡았다. 2015년에는 《더 드레서》에 출연했다.
4. 사생활
1964년, 매켈런은 볼턴의 역사 교사였던 브라이언 테일러와 연인 관계를 시작했다.[173] 이 관계는 8년간 지속되었으며 1972년에 끝났다. 그들은 런던에서 함께 살았고, 매켈런은 배우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1978년, 매켈런은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션 매시어스를 만나 새로운 연인 관계를 시작했다. 이 관계는 1988년까지 이어졌다. 매시어스는 이후 2009년 매켈런이 감독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하기도 했다.
매켈런은 무신론자이다.[174]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생선을 제외한 육식을 하지 않는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175] 2006년, 매켈런은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176] 그는 2012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경계할 필요는 없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으므로 치료가 필요 없다"고 밝혔다.[177]
2013년, 매켈런은 《엑스맨》 시리즈에 함께 출연했던 패트릭 스튜어트와 써니 오젤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178][179]
5. 사회 활동
매켈런은 1988년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커밍아웃한 이후,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101] 그는 영국 의회에서 동성애를 "...마치 가짜 가족 관계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28조항)이 심의 중이었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21][102][103] 그는 이 법안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으며, 이 시기에 대해 "그 캠페인에 제가 참여한 것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초점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13]
2003년 맨체스터 유로프라이드에서의 매켈런
매켈런은 영국의 LGBT 권리 로비 단체 스톤월의 공동 설립자이다.[112] 또한 LGBT 역사의 달,[111]프라이드 런던, 옥스퍼드 프라이드, GAY-GLOS, LGBT 재단[6] 및 FFLAG의 후원자이다.[109] 1994년 게이 게임즈 폐막식에서 "저는 이안 매켈런 경이지만, 세레나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13]
2006년에는 영국의 2007년 LGBT 역사의 달 사전 출시 행사에서 연설하며, 그 조직과 설립자인 수 샌더스를 지지했다.[111] 2007년에는 젊고 노숙하며 힘든 LGBT 사람들에게 지원을 제공하는 단체인 알버트 케네디 트러스트의 후원자가 되었다.[112] 2011년에는 모스크바 시장 세르게이 소비야닌을 동성애 퍼레이드를 허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겁쟁이"라고 비판했다.[117]
매켈런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전 세계 동성애자들의 법적·사회적 평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히며, 다른 문제들보다 LGBT 인권 운동에 집중하고 있음을 강조했다.[108]
매켈런은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0년 4월, 그는 에이지 UK를 지원하는 TV 광고에 출연했다.[119] 2011년 3월에는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자선 크리켓 경기에서 심판을 맡았다.[120][121] 또한, 어린이 병원과 요양 시설에서 연극을 제작하고 공연하는 단체인 온리 메이크 빌리브의 명예 이사회 멤버이다.[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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