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일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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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위일체론은 초기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를 하느님과 동등하게 숭배하면서도 하느님은 한 분이라는 유대교적 일신론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래리 W. 후르타도는 이 용어를 사용하여 예수를 하느님과 구별되는 인격체로 보면서도, 두 신을 믿는 이신론을 피하려는 1세기 기독교의 신앙 형태를 설명했다. 이위일체론은 니케아 신조 이전의 초기 기독교에서 나타났으며, 성령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는 관점을 포함하기도 했다. 이후 아리우스 논쟁과 준-아리우스주의,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특정 종교 단체에서 이위일체론적 관점이 나타났으며, 삼위일체론과 비교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동방 정교회는 이위일체론에 대해, 기독교인의 신성화와 관련하여 독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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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일체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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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유형 | 기독교 신학 |
하위 유형 | 단일신론 |
관련 종교 | 유대교, 기독교 |
신학적 특징 | |
신격 | 이위일체 (하느님과 말씀) |
성령 | 하느님의 영 |
역사적 맥락 | |
기원 | 기원후 1세기 |
주요 지지자 | 헤르마스, 이레나이오스, 터툴리아누스 |
교리적 내용 | |
하느님의 본질 | 하느님은 유일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 | 하느님의 아들이자 말씀으로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한다. |
성령의 역할 | 하느님의 영으로서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신자들에게 작용한다. |
주요 주장 | |
이위일체론과의 관계 | |
차이점 | 삼위일체론과는 달리 성령을 별개의 위격으로 보지 않는다. |
관련 인물 | |
헤르마스 | 2세기 초 기독교 작가, 그의 저서 "목자"에서 이위일체론적 관점을 제시했다. |
이레나이오스 | 2세기 교부, "이단 반박"에서 말씀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강조했다. |
터툴리아누스 | 3세기 교부, 삼위일체 교리 발전에 기여했지만, 이위일체론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었다. |
2. 초기 기독교 신학과 이위일체론
초기 기독교에서는 하느님과 예수를 구별되는 두 인물로 보면서도, 이 둘을 밀접하게 연결하여 숭배하는 이위일체론적 신앙 형태가 나타났다. 이는 유대교의 일신론 전통을 따르면서도 예수에게 하느님과 동등한 권위를 부여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1]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는 성령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와 예수를 통해 역사하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는 성령이 하느님의 또 다른 인격으로서, 예수 안에 거하며 사람들을 새로운 창조물로 만든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주의가 이단으로 배격된 후,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는 이위일체론, 즉 "준 아리우스주의"를 다루었다. 준 아리우스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창조되었고 하느님과 다른 본성을 가졌다는 아리우스주의는 거부했지만,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라는 니케아 신경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유사하거나 유사한 본질()을 가졌지만, 여전히 종속적인 존재라고 믿었다.[4]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는 준 아리우스주의자들이 아들이 항상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는 정통적인 견해를 가졌지만, 성령을 신성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5]
많은 하나님의 교회 이위일체론자들은 자신들의 기독론 관점이 원래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관점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믿는다. 일부 학자들은 초기 기독교 예배에서 하느님과 예수를 두 인물로 특정했으며, 초기 랍비들이 초기 기독교를 이위일체론으로 간주했다고 지적한다.[2][3]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엘렌 G. 화이트의 영향으로 성령을 "신성의 세 번째 인격"으로 선언하면서 삼위일체론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준 아리우스주의와 유사한 이위일체론적 경향을 보였다.[4]
2. 1. 래리 후르타도의 이위일체론 연구
에든버러 대학교의 래리 W. 후르타도는 초기 기독교의 하느님에 대한 헌신을 설명하기 위해 "이위일체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예수에게 유대교에서 하느님에게만 부여될 수 있는 탁월함을 부여하면서도, 유대교에서처럼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만이 숭배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1]후르타도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과 같이 매우 '높은' 기독론으로 여겨지는 1세기 말 기독교 텍스트에서도 예수에 대한 일관된 연결과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종속 관계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이 예수 헌신을 '이위일체론적' 형태의 일신론이라고 부른 이유라고 설명한다. 즉, 하느님과 예수, 두 개의 구별되는 인물이 있지만, 그들은 두 신의 이신론을 피하기 위해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 관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1]
후르타도는 이위일체론을 니케아 기독교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전 초기 기독교인들이 일신론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제시한다. 그는 예수를 선재적이고, 영원하며, 창조주이시며, 하느님의 권능을 구현하며, 아버지가 그를 통해 계시되고, 그의 이름으로만 아버지가 숭배받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는 "예수에게 주어진 중심적인 위치와... 두 신을 피하려는 그들의 관심은 예수에게 '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일관되게 존경함으로써 원 정통 '이위일체론적' 헌신의 패턴을 형성하는 데 결합한다. 예수는 진정으로 신성한 존재로 존경받는다."라고 설명한다.[1]
후르타도의 견해는 교회의 이해 발달의 이 단계에서 하느님은 인격(아버지)이며 한 존재이고, 예수는 아버지와 구별되며, 하느님과 함께 선재했고,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했지만 그분과 분리된 존재가 되지 않았으므로 하느님(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위일체론적 헌신 패턴에 대한 견해는 하느님의 존재의 통일성과 숭배 대상의 일체성을 상정하며, 이는 유대교의 이전 견해에 공감하며, 또한 삼위일체론에서 계승되는 복수의 동시적 정체성을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발전한 것이며, 이로부터 여러 후속적인 이해가 발생하여 결국 서로 갈등을 겪게 되었다.
후르타도의 영향력 있는 저술 이전에, 이위일체론에 대한 한 고전적인 학문적 이론은 성령이 어떤 의미에서는 아들과 동일하거나 그 안에 고유하게 구현되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헤르마스의 목자''가 이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되기도 한다.
기독교 이위일체론 신학의 고전적 이론은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창조주로 여겼다고 주장한다. 즉, 하느님의 존재의 한 인격으로, 예수 안에도 거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동일한 성령이 사람들에게 주어져 그들을 새로운 창조물로 만들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동일한 희망을 공유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우스 논쟁 당시, 일부 주교들은 일종의 "이원적" 신성에 대한 개념을 옹호했는데, 이는 때때로 "준-아리우스주의"라고 불린다. 마케도니우스파(성령파)는 이 견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며, 일부는 그 당시 준-아리우스파가 주요 이위일체론자들이었으므로 "이위일체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준-아리우스파의 견해는 엄밀히 말하면 일신론적(하나의 존재)이지 않았다. 그들은 말하는 하느님과 창조하는 말씀은 서로 유사하며, 유사한 본질()을 가진 두 존재라고 주장했으며, 니케아가 결국 주장한 것처럼 그들이 동일한 존재이거나, 동일한 본질()을 가진 두 위격이며, 두 위격이 구별된다는 것을 부인했다.
3. 아리우스 논쟁과 준-아리우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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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의 교회와 현대 이위일체론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주의가 배격된 후,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소집되어 이위일체론자들을 "준 아리우스주의자"로 규정했다. 삼위일체가 공식적인 기독교 교리로 확정되자, 이에 반발한 준 아리우스주의자들은 회의에서 퇴장했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창조되었고 하나님과 다른 본성을 가졌다는 아리우스주의 견해()를 거부했지만,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라는 니케아 신경도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유사()하거나 유사한 본질()을 가졌지만, 여전히 종속적인 존재라고 보았다.[4]
4세기 중반,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는 "준 아리우스주의자들은 ... 아들이 항상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는 정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시작도 없이 잉태되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성령을 모독하며, 성령을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신성으로 여기지 않는다."라고 기록했다.[5]
엘렌 G. 화이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이위일체론에 기울어져 있었다고 언급하며, 1897년 성령을 "신성의 세 번째 인격"이라고 선언하는 소책자를 출판했다. 앤드루스 대학교의 게르하르트 판들은 이를 "준 아리우스주의"라고 칭했다.[4]
4. 1. 하나님의 교회 계열 교단의 이위일체론
많은 하나님의 교회 이위일체론자들은 자신들의 기독론 관점이 "원래"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관점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믿는다. 일부 학자들은 "초기 기독교 예배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를 두 인물로 특정했다"라고 언급했으며, 초기 랍비들은 초기 기독교를 이위일체론으로 간주했다는 점을 지적했다.[2][3]1858년 이위일체론적 하나님의 교회 (안식일)가 미국 중서부 미시간 주와 아이오와 주에서 설립되었으며, 이는 1863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창립한 재림교인들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양위일체론은 비교적 소수의 교회 교단에서 지지되었다. 현재 이 신학은 본질적으로 일부 제칠일 하나님의 교회 그룹에서만 유지되고 있다. 오늘날 양위일체론적 관점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 개의 가장 큰 교회 교단은 하나님의 교회(제칠일 안식일) 총회 (다른 하나님의 교회(제7일) 그룹은 단일신론을 유지), 하나님의 연합 교회, 하나님의 살아있는 교회 (후자 두 개는 세계 하나님의 교회에서 유래)이다. 허버트 W. 암스트롱에 의해 설립된 이전에 안식일 준수 세계 하나님의 교회의 분열에서 파생된 다른 여러 그룹들도 하나님의 양위일체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안식일 준수 하나님의 교회들은 예수와 성부의 예배를 지속하며, "복수"의 하나님, 즉 엘로힘(신들)을 예배하는 것은, 오직 성부와 성자만이 참된 하나님인 여러 개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신 존재로서, "엘로힘"이 하나의 가족 단위라는 점에서 일신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교회들의 신봉자들은 부활을 통해 결국 그 가족의 일원이 되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가 지구를 통치하고 올바른 삶의 방식을 가르친 후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이 같은 그룹들은 특정 인간들이 궁극적으로 성부와 예수의 모든 속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 가족"에 들어갈 수 있는 이 인간들은 현재 "다원주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뿐이지만, 예수의 재림 이후, 보편적 화해의 한 형태인 백보좌 심판 동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제공될 것이다.
성경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복수적 정체성인 "엘로힘"은 성부와 말씀 또는 로고스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많은 형제들 중 맏아들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가족에 추가될 무수한 사람들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었다. 이 양위일체론적 관점은 인류가 결국 성령의 권능을 가지고 각자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지만, 성부나 성자와 동등하지는 않다고 가정한다. 양위일체론적 관점의 일부로서, 또한 성경에 명시된 것처럼, 성부가 예수보다 더 위대하다고 믿는다.[6]
4. 2. 허버트 W. 암스트롱과 세계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 이위일체론자들은 자신들의 기독론 관점이 "원래"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관점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믿는다. 일부 학자들은 "초기 기독교 예배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를 두 인물로 특정했다"[2]고 언급했으며, 초기 랍비들은 초기 기독교를 이위일체론으로 간주했다는 점을 지적했다.[3]5. 삼위일체론과의 비교 및 비판
삼위일체론자들은 이위일체론적 관점을 "이신론" 또는 "이원론"이라고 묘사하며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는 이위일체론이 하나님이 여러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인간이 첫 번째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인간"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아버지의 가족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적 관점뿐만 아니라 일원론적 또는 일신론적 관점에서도 다신론의 한 형태로 간주된다.
5. 1. 반 아리우스 이위일체론과 케노시스
반 아리우스 이위일체론자들은 삼위일체론자들이 지지하는 "예수님이 진정으로 인간이셨고 진정으로 하나님이셨다"는 입장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이 성육신 이전에는 하나님(말씀)이셨지만, 완전히 인간(유한)이 되셨으며, 부활 이전에는 하나님의 권능 등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하나님이 아니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권위는 부활 시점이나 그 직후에 그분에게 회복되었다고 믿는다. 그들은 이러한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 가지 주요 주장을 제기한다.# 반 아리우스 이위일체론자들은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시는 동안 자신의 신성을 비우셨다고 믿으며, 케노시스라고 불리는 빌립보서 2장 7절을 인용한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7] 이 구절에 대한 반 아리우스적 관점은 예수님이 "비우신" 것은 그의 신성(예: 하늘에서의 그의 숭고한 지위)을 의미한다고 본다.
# 그들은 예수님이 두 개의 의지와 두 개의 본성을 가졌다는 삼위일체론적 가르침을 부인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 전에 아버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하신 말씀(요한복음 5:19, 30; 8:28)을, 부활 이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기 전까지 모든 신성한 권리를 갖지 못하셨다는 부인으로 본다. (마태복음 28:18).
# 성경은 예수님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유혹을 받으셨다고 주장하며 (히브리서 4:15),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고"라고 주장한다 (야고보서 1:13). 반 아리우스 이위일체론자들은 동일한 인물에 대해 주장할 경우 이러한 주장이 모순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성경은 폐하여지지 못한다" (요한복음 10:35)는 전제하에 예수님은 육신으로 계시는 동안 완전히 하나님이실 수 없었다고 본다.
반 아리우스 이위일체론자들은 육신 안에 계신 예수님은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하나님 말씀)과 같지 않았으며, 부활 이후의 예수님(모든 권위를 가진 완전한 하나님)과도 같지 않았다고 믿는다. 즉, 그는 하나님이셨고, 그 다음에는 완전히 하나님이 아니셨고, 다시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이다.
5. 2. 성령에 대한 관점 차이
삼위일체론자들은 성령이 아들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인격체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그분과 분리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마태복음 28:19-20; 요한복음 16:5-7; 사도행전 1:8, 2:4).[7] 반면 대부분의 이위일체론자들은 성령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능력, 활동, 임재라고 가르치며 (시편 51:11, 누가복음 1:35, 누가복음 11:20/마태복음 12:28), 하나님 안에 별개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으며, 그들이 아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별도의 인격체가 아니라고 본다(마태복음 11:27, 요한1서 1:3).[8]예를 들어, 이위일체론적인 하나님의 교회는 공식적인 기본 신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본질, 생각, 생명, 능력이시다. 그것은 인격체가 아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 내재하며, 온 우주에 걸쳐 그분들로부터 발산된다 (열왕기상 8:27; 시편 139:7; 예레미야 23:24).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1-2; 요한계시록 4:11).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우주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히브리서 1:2-3). 성령은 죄를 회개하고 침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사도행전 2:38-39), 모든 신자들이 '승리자'가 되고 (로마서 8:37; 요한계시록 2:26-27) 영생으로 인도될 수 있는 능력 (사도행전 1:8; 디모데후서 1:6-7)이다."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드리는 기도를 언급하지만, 성령에게 기도하거나 경배하는 내용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에는 "보좌에 앉으신 분"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에 대한 찬양은 있지만, 성령에 대한 언급은 없다. 현대의 이위일체론자들은 이는 성령이 별도의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 성품, 능력, 그리고 활동적인 임재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이위일체론자들은 사데의 멜리토와 폴리갑과 같은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의 진술이 이위일체론적이었다고 믿지만, 대부분의 주류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위일체론자들은 둘 다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만,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언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멜리토의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연설"은 성령이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의 작용임을 시사한다고 지적한다. 이위일체론자들은 바울이 자신이 쓴 모든 책의 시작 부분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존경하지만, 성령에게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삼위일체론자들은 로마서 1:4, 에베소서 1:13, 데살로니가전서 1:5-6, 디모데전서 1:14를 예외로 본다.
성령을 하나님의 인격체, 즉 하나님의 마음으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일부 이위일체론자들은 또한 반 아리우스파의 하위 집단으로서 성령파라고 불렸다.
6. 동방 정교회와 이위일체론
초기 교회에서 기원한 이위일체론자들은 로마서 8장 29절의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신 예수에 대한 가르침이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가족 안에 있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에서는 이러한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삼위일체론자들은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교제에 참여하여 양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며 "신성한 본성에 참여"한다고 믿는다. 다만, 동방 정교회 기독교인들은 "본성"이 어떻게 해석될지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9]
동방 정교회는 기독교인들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뜻, 목적, 성품에 완전히 순응하여,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수준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신이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티모시 웨어는 동방 정교회 신학자로서, 성 아타나시우스의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를 신으로 만들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9] 즉, 인간은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며, 신성한 모습을 얻을 것이고, '두 번째 신'이 되는 것이며, 은혜로 신이 되는 것이다.[9] 이것이 모든 기독교인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표, 즉 테오시스(신격화)를 얻는 것이다.[9]
현대 이위일체론자들은 신격화에 관한 동방 정교회의 이러한 진술에 대해 강하게 동의한다. 오리엔트 정교회의 입장 또한 동방 정교회의 입장과 동일하다. 그러나 그들은 칼케돈 신조의 표현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6. 1. 동방 정교회의 테오시스(신격화)
동방 정교회는 기독교인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뜻, 목적, 성품에 완전히 순응하여,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수준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신이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티모시 웨어는 동방 정교회 신학자로서, 성 아타나시우스의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를 신으로 만들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9] 즉, 인간은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며, 신성한 모습을 얻을 것이고, '두 번째 신'이 되는 것이며, 은혜로 신이 되는 것이다.[9] 이것이 모든 기독교인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표, 즉 테오시스(신격화)를 얻는 것이다.[9]동방 정교회에서 테오시스는 삼위일체론적 하나님의 이해와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성령을 하나님을 담고 전달하는 분으로, 중재자가 아닌 진정한 하나님으로 특별히 강조한다. 특히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령이 영원히 아버지에게서만 나온다고 보며, 필리오케에서처럼 아버지와 아들 모두에게서 나온다고 하는 것은 이위일체론적 일신론, 더 나아가 양신론으로 향하는 것으로 여긴다. 로마 교회는 필리오케를 받아들여 채택하도록 권장했으며, 이는 1054년 동방 정교회와의 분열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형성했다.
또한, 정교회의 테오시스에 대한 관점은 인간이 하나님의 "에너지"와 연합하는 것만을 허용하며, 하나님의 "본질"과는 결코 연합하지 않는데, 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 완전히 초월적인 존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6. 2. 필리오케 논쟁과 이위일체론 비판
이위일체론자들은 초기 교회에서 기원하였으며, 로마서 8:29의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신 예수에 대한 가르침이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라 불리는 가족 안에 있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자들은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교제에 참여하여 양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며 "신성한 본성에 참여"한다고 믿는다.[9]동방 정교회는 기독교인들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뜻, 목적, 성품에 완전히 순응하여,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수준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신이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티모시 웨어에 따르면, 성 아타나시우스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를 신으로 만들기 위함이다'라고 성육신의 목적을 요약했다.[9] 이는 테오시스, 즉 '신격화'를 의미하며, 모든 기독교인의 목표이다.[9]
현대 이위일체론자들은 신격화에 관한 동방 정교회의 진술에 동의한다. 그러나 동방 정교회는 성령을 하나님을 담고 전달하는 분, 중재자가 아닌 진정한 하나님으로 강조하며, 필리오케를 부인하는 것은 이위일체론적 일신론, 또는 양신론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필리오케는 1054년 동방 정교회와의 분열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형성했다. 정교회는 인간이 하나님의 "에너지"와 연합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과는 결코 연합할 수 없다고 본다.
일부 이위일체론자들은 몰몬교와 같이 삼위일체론적 또는 칼케돈 신조가 경건한 믿음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부인한다. 오리엔트 정교회의 입장은 동방 정교회의 입장과 동일하지만, 칼케돈 신조의 표현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참조
[1]
서적
Lord Jesus Christ: Devotion to Jesus in Earliest Christianity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2003
[2]
간행물
The Binitarian Shape of Early Christian Worship
[3]
간행물
Summary of response by Alan F. Segal
[4]
서적
The Doctrine of the Trinity Among Adventists
Biblical Research Institute
1999-06
[5]
서적
The Panarion of Epiphanius of Salamis
EJ Brill
1994
[6]
서적
Mystery of the Ages
https://archive.org/[...]
Dodd, Mead & Company
1985
[7]
서적
Interlinear Greek-English New Testament
Baker Books
1996
[8]
백과사전
Oration on Our Lord's Passion
https://en.wikisourc[...]
T. & T. Clark, Christian Literature Company
2019-04-27
[9]
서적
The Orthodox Church
Penguin Books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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