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춘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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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종춘은 대한제국의 관료 출신으로, 1897년 강원도 관찰부 주사, 1902년 황해도 관찰부 주사를 역임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앞두고 이완용에게 한일 병합을 촉구하는 장서를 보냈으며, 국민동지찬성회 간사로 활동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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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 이씨 - 이범렬
이범렬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시국사건 판결 논란으로 사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여 제1차 사법파동의 중심인물이었으며,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대한변호사협회 헌법재판 연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덕수 이씨 -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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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종춘 (관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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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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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전주 이씨 |
호 | 남헌(南軒) |
생애 | |
출생 | 1885년 10월 25일 |
사망 | 1956년 1월 28일 |
가족 관계 | |
배우자 | 정부인 안동 김씨 |
자녀 | 5남 3녀 |
학력 | |
최종 학력 | 보성전문학교 법과 졸업 |
주요 경력 | |
기타 정보 |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1963년) |
2. 생애
이종춘은 생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대한제국의 관료였다. 정6품 관직을 지냈으며, 1897년 강원도 관찰부 주사, 1902년 황해도 관찰부 주사를 역임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앞두고 이완용에게 한일 병합을 추진하라는 장서를 보내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다. 국민동지찬성회 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급 관리 출신이었던 이종춘은 한일 병합 이후에도 특별한 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2. 1. 대한제국 관료 시절
1897년 강원도 관찰부 주사를 지냈고, 1902년에는 황해도 관찰부 주사를 역임했다.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앞두고 김사정 등과 연명하여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장서를 보냈다. 당시 일진회를 이끄는 송병준과의 경쟁으로 일진회의 합방청원에도 머뭇거리는 이완용을 질타하고 한일 병합을 조속히 추진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곧이어 조직적인 합방청원 운동을 위해 이범찬과 서창보 등이 일진회의 재정 지원을 받아 결성한 국민동지찬성회에 가담했다. 이범찬이 회장, 서창보가 부회장을 맡은 국민찬성동지회에는 간부급으로 세 명의 간사가 있었고, 이종춘과 김사정, 조덕하가 간사를 맡았다.
2. 2.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앞두고 김사정 등과 연명하여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장서를 보냈다. 당시 일진회를 이끄는 송병준과의 경쟁으로 일진회의 합방청원에도 머뭇거리는 이완용을 질타하고 한일 병합을 조속히 추진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곧이어 조직적인 합방청원 운동을 위해 이범찬과 서창보 등이 일진회의 재정 지원을 받아 결성한 국민동지찬성회에 가담했다. 이범찬이 회장, 서창보가 부회장을 맡은 국민찬성동지회에는 간부급으로 세 명의 간사가 있었고, 이종춘과 김사정, 조덕하가 간사를 맡았다.
이범찬이나 서창보보다 직급이 낮은 하급 관리 출신이었던 이종춘은 한일 병합 성사 후에도 별다른 포상을 받지 못했고, 덕수 이씨 가문의 명예만 더럽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2. 3. 친일반민족행위자 규정 및 평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앞두고 김사정 등과 연명하여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장서를 보냈다. 당시 일진회를 이끄는 송병준과의 경쟁으로 일진회의 합방청원에도 머뭇거리는 이완용을 질타하고 한일 병합을 조속히 추진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곧이어 조직적인 합방청원 운동을 위해 이범찬과 서창보 등이 일진회의 재정 지원을 받아 결성한 국민동지찬성회에 가담했다. 이범찬이 회장, 서창보가 부회장을 맡은 국민찬성동지회에는 간부급으로 세 명의 간사가 있었고, 이종춘과 김사정, 조덕하가 간사를 맡았다.
이범찬이나 서창보보다 직급이 낮은 하급 관리 출신이었던 이종춘은 한일 병합 성사 후에도 별다른 포상을 받지 못했고, 덕수 이씨 가문의 명예만 더럽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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