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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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제강소는 영국 기업인 비커스, 암스트롱 휘트워스와 미쓰이 그룹의 투자로 1907년 설립된 일본의 기업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야마토에 장착할 세계 최대 크기의 함포 포신을 제작했으며, 1945년 연합군의 공격으로 무로란 공장에서 200명이 사망했다. 주요 사업 분야는 원자로 압력 용기, 플라스틱 가공 기계, 일본도 제작 등이며, 방위 장비 개발에도 참여한다. 2001년에는 순손실을 기록했으나 이후 실적이 개선되었으며, 2020년에는 사업 자회사인 일본제강소M&E주식회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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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강소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회사명 | 주식회사 일본제강소 |
영문 회사명 | The Japan Steel Works, Lt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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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 1907년 11월 1일 (창업), 1950년 12월 11일 (설립) |
본사 위치 | 일본 도쿄도 시나가와구 오사키 1-11-1 게이트 시티 오사키 웨스트 타워 |
사업 내용 | 기계 철강 산업 기계 전력 기기 화학 플랜트 방위 기기 |
산업 | 산업 기계 |
대표자 | 사토 이쿠오 (대표이사 사장), 마쓰오 도시오 (대표이사 사장), 데구치 준이치로 (대표이사 부사장) |
종업원 수 | 연결 5,329명 (2022년 3월 기준), 단독 1,767명 (2022년 3월 기준), 연결 4,804명 (2013년 3월 기준) |
상장 정보 | 도쿄 증권거래소 프라임: 5631 나고야 증권거래소 1부: 5631 후쿠오카 증권거래소: 5631 삿포로 증권거래소: 5631 |
닛케이 225 | 구성 종목 |
약칭 | 日本製鋼 (닛폰세이코) 日鋼 (닛코) JSW 아암 |
공식 웹사이트 | 일본제강소 공식 웹사이트 |
재무 정보 | |
자본금 | 197억 37백만 엔 |
매출액 | 연결 2,175억 27백만 엔 (2020년 3월), 23억 4600만 미국 달러 (2012년 회계연도) |
영업이익 | 연결 187억 9백만 엔 (2020년 3월) |
순이익 | 연결 95억 34백만 엔 (2020년 3월), 8,804만 미국 달러 (2012년 회계연도) |
순자산 | 연결 1,324억 92백만 엔 (2020년 3월) |
총자산 | 연결 2,971억 73백만 엔 (2020년 3월) |
생산 제품 | |
제품 | 철 및 강철 제품 화학 기계 원자력 발전 관련 기계 압력 용기 플라스틱 사출 성형 기계 수지 제조 및 가공 기계 유압 장비 |
주요 주주 | |
주요 주주 정보 | 상세 정보는 관련 항목 참조 |
관련 회사 | |
관련 회사 정보 | 상세 정보는 관련 항목 참조 |
관련 인물 | |
관련 인물 | 이토 히로부미 마쓰카타 마사요시 이노우에 가쿠고로 야마우치 만주지 단 다쿠마 히가시이즈미 유타카 (전 부사장) |
2. 역사
일본제강소는 1907년 홋카이도탄광기선 주식회사와 영국의 암스트롱 휘트워스(Sir W.G.Armstrong, Whitworth and Co., Ltd.), 비커스(Vickers Sons and Maxim, Ltd.)의 합작 투자로 설립되었다.[3]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야마토에 장착할 당시 세계 최대 크기의 함포 포신을 제작하기도 했다. 1945년 연합군의 공격으로 무로란에 있는 본 공장 근로자 200명이 사망하였다.[4]
태평양 전쟁 패전 후 1950년 기업재건정비법에 따라 구 일본제강소는 해산되었고, 새로운 주식회사 일본제강소가 설립되었다. 새 회사는 무기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소, 화학 플랜트 등에 사용되는 특수 단조품, 주조품, 플라스틱·마그네슘 사출 성형기 및 각종 산업 기기를 제조하고 있다. 전차와 함정의 화포 및 발사 시스템 등 방위 장비 제조도 계속하고 있다.
수도고속도로공단의 의뢰를 받아 수도고속도로 에도바시 분기점의 곡선 도로 교량 주조에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11]
제작소로는 무로란, 히로시마, 요코하마가 있으며, 과거에는 도쿄, 가시마 공장, 우쓰노미야(후의 싱어닛코), 아카바네 작업소, 와니시 공장(현 일본제철 무로란 제철소)이 있었다.
본사 기능은 도쿄도 치요다구 유라쿠초와 후추시에 나뉘어 있었으나, 2007년 시나가와구의 게이트시티 오사키로 이전했다.
2. 1. 설립 배경 (1907년 이전)
일본 제국 해군(이하 해군)과의 관계와 최초로 영국으로부터 외국 자본을 유치한 점은 일본제강소의 설립 배경에 있어 중요한 특징이다.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홋카이도탄광기선의 전무이사였던 이노우에 각고로는 제철업이 근대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철도 국유화에 따른 매각 이익을 바탕으로 홋카이도에 제철 사업을 시작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토 히로부미, 마쓰가타 마사요시 등 원로에게 협력을 요청했다.[12] (일본제강소 무로란 제작소의 영빈관인 수이센각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쓴 "일본제강소" 휘호가 남아 있다.)
한편, 해군 역시 러일 전쟁 경험을 통해 무기 국산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위해 선진국의 기술 도입을 추진하고 있었다. 쿠레 진수부의 야마우치 만스지 중장이 이 계획에 참여하면서(현역 장관이 민간 기업의 고문이 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무기 국산화를 위한 제강 사업 창업이 빠르게 구체화되었다. 초기에는 이노우에가 오이와케산 석탄으로 만든 코크스와 쿠치야나이 등지에서 생산된 철광석을 이용한 고로 제철 및 제강을 계획했으나, 해군 측의 설득으로 제강과 무기 제조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노우에의 염원이었던 제철 사업은 1909년 홋카이도탄광기선 린세이 제철장 설립으로 이어져 현재의 일본제철 무로란 제철소가 되었다.
해군은 영국의 암스트롱-휘트워스(Sir W.G.Armstrong, Whitworth and Co., Ltd.)사로부터 군함과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진 기술 도입을 위해 야마우치는 홋카이도탄광기선에 이 회사를 소개하고, 일영 합작 사업을 권유했다.[12] 여기에 영국 비커스(Vickers Sons and Maxim, Ltd.)사가 참여하면서 일본제강소를 무로란에 설립하기로 결정되었다.
무로란이 일본제강소 설립지로 선정된 배경에는, 원래 무로란에 해군 진수부 설치가 내정되어 군항으로 지정되었으나, 지형적으로 태평양 쪽에서 오는 공격을 방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903년 진수부 설치가 보류되었기 때문이다.( 오미나토 경비부 참조) 이에 따라 사용되지 않던 무로란항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일본제강소는 해군뿐만 아니라 육군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일본군 최대 규모의 시제 41cm 곡사포 포신 제조 등을 담당했다.
2. 2. 초기 역사 (1907년 ~ 1945년)
1907년 홋카이도 탄광기선주식회사(홋카이도 탄광)와 영국의 암스트롱-휘트워스(Armstrong Whitworth)사, 비커스(Vickers)사의 공동 출자로 홋카이도 무로란에 설립되었다.[3] 설립 당시부터 'The Japan Steel Works, Ltd.'라는 영어 표기를 사용했다.해군은 러일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 국산화를 목표로 했고, 이를 위해 선진국 기술 도입이 필요했다. 중의원 의원이자 홋카이도탄광기선 전무이사였던 이노우에 각고로는 제철업이 근대화의 근간이라 생각하고 철도 국유화에 따른 매각 이익을 홋카이도 제철 사업에 투자하려 했다. 이토 히로부미, 마쓰가타 마사요시 등에게 협력을 요청했고, 해군은 쿠레 진수부의 야마우치 만스지 중장을 참여시켜(현역 장관이 민간 기업 고문이 되는 것은 이례적) 무기 국산화를 위한 제강 사업을 빠르게 구체화했다.
당시 해군은 영국의 암스트롱-휘트워스사로부터 군함과 무기를 많이 구입하고 있었는데, 야마우치는 홋카이도탄광기선에 이를 소개하며 합작 사업을 권했다.[12] 여기에 비커스사가 참여하여 일본제강소가 무로란에 설립되었다. 1903년 해군 진수부 설치가 보류되었던( 오미나토 경비부 참조) 무로란항이 활용되었다.
일본제강소는 육군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일본군 최대급 시제 41cm 곡사포 포신 제조 등을 담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야마토에 장착할 당시 세계 최대 크기 함포 포신을 제작했다. 1945년 연합군 공격으로 무로란 본 공장 근로자 200명이 사망했다.[4]
1936년 쇼와 천황이 무로란공장에 행차했다.[13]
2. 2. 1. 일제강점기 한국과의 관계
日本製鋼所|니혼세코쇼일본어 주식은 주식시장 관계자들에 의해 "암(arm)"이라는 약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것은 영국의 암스트롱사와의 자본 관계에서 유래한다. 다른 "일본 세이코(日本セイコウ)"라는 회사명(일본정공(日本精工), 일본정광(日本精鉱))과의 혼동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1]2. 3. 전후 재건과 민수 전환 (1945년 ~ 1950년)
1945년 태평양 전쟁 종전 후, 일본제강소는 민수용 제품 생산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14] 1948년에는 과도경제력집중배제법에 따라 기업 분할 대상 기업으로 지정되었다. 1949년 기업재건정비법에 따른 기업 재편 계획이 인가되어 우쓰노미야 제작소를 파인미싱(후의 싱어일본제강)으로 분리하였다. 같은 해 히로시마 일본제강 노동쟁의가 발생하여 622명의 해고를 둘러싸고 노동자들과 경찰대가 충돌하기도 했다.[14]1950년 기업재건정비법에 따라 (주)구 일본제강소는 해산되고, 새롭게 주식회사 일본제강소가 설립되어 4개 제작소와 1개 작업소 체제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2. 4. 현대 발전과 과제 (1950년 ~ 현재)
1950년 기업재건정비법에 따라 (주)구 일본제강소가 해산되고 새롭게 (주)일본제강소가 설립되었다(4제작소, 1작업소 체제).[14] 한국 전쟁 특수로 아카바네작업소가 설치되었으나, 1961년 폐쇄되었다.1950년대에는 노동 쟁의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1949년 히로시마 일본제강 노동쟁의에서는 622명의 해고를 둘러싸고 노동자들이 경찰대와 충돌했고,[14] 1953년 일본제강 아카바네 노동쟁의, 1954년 일본제강 무로란 노동쟁의가 발발했다.
1976년 이바라키현 가시마군 가미스정에 가시마공장을 설치했으나, 1998년 폐쇄되었다. 1980년 일본제강소병원을 의료법인 사단 일본제강소기념병원(현·사회의료법인 보코이 일본제강소기념병원)으로 분리·독립했다.
2000년대 들어 풍력발전 사업에 진출하여, 2000년 풍력발전용 타워 생산을 개시하고, 2005년 풍력발전용 블레이드 생산을 개시했다. 2006년에는 무로란제작소 구내에 차쓰 풍력발전소를 건설하여 풍력발전(판매) 사업에 진출했으나, 2019년 풍력발전기의 제조판매 사업에서 철수했다(제조는 2016년부터 중지).[15]
2020년 무로란제작소 및 소형재·에너지 사업과 풍력발전기기 보수 서비스 부문, 그리고 그룹회사 4사를 통합하여 사업 자회사인 「일본제강소M&E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같은 날짜에 자회사인 주식회사 명기제작소를 흡수 합병하여 새롭게 제조 거점인 명기제작소로 출범했다.[16]
과거에는 싱어일본제강, 마츠모쿠공업이라는 회사도 존재했으며, 이들은 각각 미국 싱어사와의 합작회사와 그 자회사였다.
또한, 일본제강기계센터, 일본제강검사서비스라는 회사도 과거 무로란제작소 내에 존재했었으나, 2020년 4월 1일부로 일본제강MEC를 존속회사로 하여 흡수합병되어 소멸하고, 일본제강소M&E가 되었다. 2003년에는 경영 악화로 생활협동조합 코프클레어(구 일본제강소생활협동조합)가 파산했다.
3. 주요 사업 및 제품
일본제강은 무기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소, 화학 플랜트에 사용되는 특수 단조품 및 주조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플라스틱 및 마그네슘 사출 성형기, 각종 산업 기기, 방위 장비도 제조한다.
수도고속도로공단의 의뢰를 받아 수도고속도로 에도바시 분기점의 곡선 도로 교량 주조에도 참여한 바 있다.[11]
제작소로는 무로란 (발전용 증기터빈, 원자력용 부재, 화학 플랜트용 철강 제품, 풍력발전용 풍차 블레이드 및 타워), 히로시마 (플라스틱·마그네슘 사출 성형기, 전차 및 함정 화포), 요코하마 (레이저 어닐링 장치 등 전자 기기용 장치)가 있다.
3. 1. 철강 제품
일본제강은 원자로 압력 용기 외에도 플라스틱 가공 기계를 제조하며,[8] 소량의 전통적인 일본도를 계속 제작하고 있다.[4] 또한 10식 전차, 99식 155mm 자주포 등 해군 포병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3. 1. 1. 원자로 압력 용기
일본제강의 고품질 강철 정제 공정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불순물 제거를 위한 아르곤 가스 사용과 강철 경도 향상을 위한 망간, 크롬, 니켈 첨가가 포함된다.[4]일본제강은 전 세계에서 원자로 압력 용기의 가장 큰 단일 부품을 제조하는 다섯 개 회사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4][5] 홋카이도 섬에 위치한 회사 공장에서 원자로용 부품을 생산한다. 2010년 기준 다른 제조업체는 중국에 두 곳, 러시아(Atomenergomash), 프랑스(Framatome)에 각각 한 곳씩 있다.[6] 하지만 일본제강은 용접 없이 단일 부품으로 코어를 제조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이며, 이는 방사선 누출 위험을 줄인다.[7] 회사는 원자로 중심부를 포함하는 강철 압력 용기 단조의 생산량을 기존 4개에서 연간 6개로 늘렸으며, 2013년까지 11개로 증산할 계획이다.[7] 생산 병목 현상으로 인해 전 세계 유틸리티 업체들은 실제 필요 시점보다 수년 전에 수억 달러의 계약금과 함께 주문을 제출하고 있다. 다른 제조업체들은 대체 방법을 사용하여 유사한 제품을 제조하거나 용접을 사용하여 부품을 직접 제조하는 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4] 하지만 용접은 원자로 누출을 야기할 수 있는 취약점이다.
3. 2. 산업 기계
일본제강은 플라스틱 가공 기계를 제조한다.[8] 또한 소량의 전통적인 일본도를 계속 제작하고 있으며,[4] 10식 전차, 99식 155mm 자주포 등 해군 포병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3. 3. 방위 장비
일본제강은 10식전차, 99식 155mm 자주포 등 해군 포병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4] 육군과도 깊은 관계를 맺어, 일본군 최대급인 시제 41cm 곡사포의 포신 제조 등을 담당했다.[4]4. 재무 정보
2001 회계연도에 일본제강소는 1197억엔의 매출과 18.1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02년에는 실적이 개선되어 1290억엔의 매출과 1억엔의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당초 예상했던 1340억엔의 매출과 6억엔의 순이익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8]
2007년 12월 31일까지 9개월 동안 일본제강소는 126억엔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1592억엔으로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19억엔, 경상이익은 212억엔으로 증가했다. 2008년 3월 31일까지의 연간 매출액 전망은 2180억엔으로 변동이 없으며, 연간 순이익 전망치는 150억엔으로 유지했다.[9]
2015년 3월 제89기 유가증권보고서 기준 주요 주주 현황은 다음과 같다.
주주명 | 보유 주식 수 | 지분율 |
---|---|---|
일본 마스터트러스트 신탁은행 | 19,714천 주 | 5.31% |
일본 커스터디은행 | 15,924천 주 | 4.29% |
다이쥬 생명보험 (상임대리인: 일본 커스터디은행) | 14,138천 주 | 3.81% |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 | 12,550천 주 | 3.38% |
미쓰이 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 | 8,824천 주 | 2.38% |
주니퍼 (상임대리인: 미쓰비시 도쿄 UFJ은행) | 8,300천 주 | 2.23% |
미쓰이 스미토모 신탁은행 (상임대리인: 일본 트러스티 서비스 신탁은행) | 8,152천 주 | 2.19% |
NORTHERN TRUST CO. (AVFC) RE-HSD00 (상임대리인: 홍콩상하이은행 도쿄지점) | 6,981천 주 | 1.88% |
씨비뉴욕 오비스 에스아이씨아르비 (상임대리인: 시티은행) | 6,736천 주 | 1.81% |
일본제철 | 6,530천 주 | 1.76% |
5. 사회적 책임 및 논란
일본제강소는 우수한 직원을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의 산업기술단기대학(일반사단법인 일본철강연맹이 1962년 설립)에 파견하여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이는 “제조 현장에서의 지식 창출과 인재의 다기능 육성 정책, 면밀한 능력 개발책의 하나로서, 기업 내 선발을 거쳐 중견 기술자로의 승진으로 이어지는 산업기술단기대학 파견 정책의 실행”이며, 이러한 인재 육성 형태(교육훈련 형태)를 “오프 더 조브 트레이닝(OFF-JT)”이라고 한다.[17]
무로란 제작소(현 일본제강소 M&E)에서는 일본도의 탄도 기술 계승을 목적으로 ‘스이센 탄도소’를 설치하고, 도공을 직원으로 두고 있다.[18]
참조
[1]
웹사이트
Japan Steel Works Annual Report 2013
http://www.jsw.co.jp[...]
2014-03-14
[2]
웹사이트
Corporate Profile
https://www.google.c[...]
2014-03-14
[3]
웹사이트
Official website
http://www.jsw.co.jp[...]
Japan Steel Works, Ltd.
2008-03-14
[4]
웹사이트
Bloomberg exclusive: Samurai-Sword Maker's Reactor Monopoly May Cool Nuclear Revival
https://www.bloomber[...]
2008-03-13
[5]
간행물
New nuclear build – sufficient supply capability?
http://www.neimagazi[...]
2009-03-03
[6]
웹사이트
Heavy Manufacturing of Power Plants
http://www.world-nuc[...]
World Nuclear Association
2010-12
[7]
뉴스
Japan Steel to Sell Parts for 26 Nuclear Reactors
http://www.businessw[...]
2010-06-01
[8]
간행물
Japan Steel Works revises downward earnings for year to March.
http://www.accessmyl[...]
2002-03-20
[9]
웹사이트
Japan Steel Works Ltd. (5631): Stock Quote & Company Profile
http://investing.bus[...]
2011-01-17
[10]
기타
[11]
방송
オリンピックをつくった男 首都高建設に挑んだ男たち
http://www.fujitv.co[...]
2017-01-04
[12]
서적
日本製鋼所百年史
株式会社日本製鋼所
2008
[13]
서적
昭和天皇御召列車全記録
新潮社
2016-09-30
[14]
서적
近代日本総合年表 第四版
岩波書店
2001-11-26
[15]
PDF
当社一部事業の撤退に関するお知らせ
https://www.jsw.co.j[...]
2019-04-24
[16]
웹사이트
名機製作所について
https://www.jsw.co.j[...]
株式会社日本製鋼所
2021-11-16
[17]
웹사이트
日本刀の鍛刀技術を継承する日本製鋼所
https://www.mitsuipr[...]
[18]
웹사이트
瑞泉鍛刀所 室蘭ものづくり
http://www.city.m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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