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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자력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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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원자력 연구소는 1955년 설립된 일본의 원자력 연구 기관으로, 핵연료 확보를 위한 연구와 원자로 및 관련 기술 개발을 수행했다. 초기에는 미국 아르곤 국립 연구소에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이 주도하여 설립되었으며, 여러 연구소와 시설을 통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2005년 10월에는 핵연료사이클개발기구와 통합되어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로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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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자력 연구소

2. 연혁

1955년 원자로 기초 연구를 위해 재단법인 원자력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이듬해인 1956년 일본원자력연구소법에 의해 특수법인 일본원자력연구소가 되었다.[1]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연구 개발이 확장된 시기였다.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1967년 오아라이 연구소 설치.
  • 1968년 JMTR 임계.
  • 1969년 원연 핵융합 토러스 1호(JET-1) 장치를 사용한 플라스마 가둠 실험 성공.
  • 1971년 7월 13일 폐기물 처리장 방사성 폐액 폴리탱크 자연 발화 (외부 유출 없음).
  • 1973년 1월 25일 오아라이 시험로에서 캘리포늄 250, 252 합성 및 검출 성공 발표.
  • 1975년 NSRR 임계.
  • 1985년 나카 연구소, 무츠 사업소 설치 (일본원자력선연구개발사업단 통합).
  • 1987년 JT-60 임계 플라스마 조건 목표 영역 달성.
  • 1992년 JT-60 세계 최고(당시) 플라스마 이온 온도 4.4억도 달성, 원자력선 무츠 실험 항해 종료.
  • 1994년 연료 사이클 안전 공학 연구 시설(NUCEF) 완성.
  • 1995년 간사이 연구소 설치.
  • 1997년 SPring-8 방사광 퍼스트 빔 발생.
  • 1998년 HTTR 임계.[1]


2002년에는 지구 시뮬레이터가 완성되었고, 대강도 양성자 가속기 시설(J-PARC) 건설이 시작되었다. 2005년에는 일본원자력연구소가 폐지되고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로 이행되었다.[1]

국가 방침에 따라 준 국산 에너지 (핵연료 재이용)를 실현하기 위해 고속 증식로 개발이 진행되었지만, 계획 초기 원자력 연구소는 고용주와 노동자 간 의견 차이로 인해 고속 증식로 개발 계획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동력로·핵연료 개발 사업단(핵연료 사이클 개발 기구를 거쳐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로 통합)가 설립되었다.[1]

2. 1. 설립 초기 (1955년 ~ 1960년대)

1955년 일본의 소수 연구자들이 미국 아르곤 국립 연구소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일본으로 가져갈 지식을 습득하였다. 토리카이 킨이치는 그러한 연구자 중 한 명이었으며, 후에 JAERI의 회장이 되었다. 귀국 후, 이바라키현 도카이에 원자력 연구 시설이 설립되었다.[1]

1950년대에는 전후 일본의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별 전력 회사가 원자로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1955년 9월, JAERI는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으며, 1956년 5월에는 준정부 기업으로 설립되었다. 핵연료 확보를 위해 핵연료공업도 설립되었다. 곧 새로운 발전소 건설이 시작되었고, 그 중 첫 번째인 도카이 발전소가 1966년에 가동을 시작했다.[1]

일본 최초의 원자로가 된 JRR-1


일본 원자력 연구의 여명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전후 일본 정부의 원자력 추진 정책에 따라, 1955년 이후 미국 아르곤 국립 연구소에 유학한 기술자들이었다. 후에 원자력 연구소 오아라이 연구소 소장이 되는 토리카이 킨이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아르곤 유학생들이 귀국 후 이바라키현 도카이 촌의 일본원자력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원자력 평화 이용 연구를 시작하여, 일본 최초의 원자로를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1]

당시 급증하던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일본은 발전 원자로의 도입을 결정했지만, 당시 일본에는 국산 원자로를 개발할 기술이 없어, 각 전력 회사는 해외산 원자로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원자로의 기초 연구를 위해, 1955년 (쇼와 30년) 11월 30일에 재단법인 원자력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1956년 (쇼와 31년) 5월에 제정된 일본 원자력 연구소법에 의거하여, 재단법인을 계승하는 형태로 특수 법인 일본원자력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또한, 거의 동시기에, 핵연료 확보를 위한 원자 연료 공사와, 각 전력 회사가 원자력 발전을 운영하기 위한 일본원자력발전도 설립되었다.[1]

2. 2. 연구 개발 확장기 (1960년대 ~ 1990년대)

1960년 JRR-2가 임계에 도달했다.[1]

1962년에는 JRR-3가 임계에 도달했는데, 이는 국산 1호 원자로였다.[1]

1963년 다카사키 연구소가 설치되었고, 동력 시험로(JPDR)의 첫 발전이 성공했다.[1]

1965년 JRR-4가 임계에 도달했다.[1]

1967년 오아라이 연구소가 설치되었다.[1]

1968년 JMTR이 임계에 도달했다.[1]

1969년 원연 핵융합 토러스 1호(JET-1) 장치를 사용한 플라스마 가둠 실험에 성공했다.[1]

1971년 7월 13일 폐기물 처리장에 보관하고 있던 방사성 폐액이 든 폴리탱크가 자연 발화했으나, 외부로의 방사성 물질 유출은 막았다.[1]

1973년 1월 25일 오아라이의 시험로에서 캘리포늄 250, 252의 합성 및 검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1]

1975년 NSRR이 임계에 도달했다.[1]

1985년 나카 연구소와 무츠 사업소가 설치되었고, 무츠 사업소는 일본원자력선연구개발사업단을 통합했다.[1]

1987년 JT-60이 임계 플라스마 조건 목표 영역을 달성했다.[1]

1992년 JT-60은 세계 최고(당시) 플라스마 이온 온도 4.4억 도를 달성했고, 원자력선 무츠의 실험 항해가 종료되었다.[1]

1994년 연료 사이클 안전 공학 연구 시설(NUCEF)이 완성되었다.[1]

1995년 간사이 연구소가 설치되었다.[1]

1997년 SPring-8에서 방사광 퍼스트 빔이 발생했다.[1]

1998년 HTTR이 임계에 도달했다.[1]

원자력 연구소에서는 원자로 종합 연구, 최첨단 핵융합로 연구, 의료 및 농업 분야의 방사선 응용, 그리고 이들의 기초 연구 등 폭넓은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되었다.[1]

2. 3. 통합 및 이후 (2000년대 ~ 현재)

2005년 10월, 핵연료사이클개발기구와 일본원자력연구소가 통합되어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가 되었다.[1]

3. 조직 및 사업

일본원자력연구소는 원자력선 '무쓰' 관련 사업을 담당했던 사업소 한 곳과 연구소 다섯 곳을 두고 원자로와 원자로 연료에 관한 연구와 실험을 하였다. 또한 전기출력 100 MWe 인 일본의 핵잠수함 원자로 MRX도 이 연구소에서 개발되었다. 그 밖에 일본원자력연구소에서는 의료 및 농업에 응용되는 방사선 연구도 함께 진행하였다.


  • 도카이 연구소: 연구용 원자로(JRR1~4), 안전성 연구 시설, 가속기 시설 등을 이용하여 폭넓은 연구 개발 및 기초 연구, 기반 기술의 개발을 실시하였다.
  • 다카사키 연구소: 방사선 이용 연구 개발 등을 실시. 이온 조사 연구 시설(TIARA)을 갖추고 있었다.
  • 오아라이 연구소: 재료 시험로(JMTR)를 이용한 원자로용 연료 및 재료 개발. 고온 공학 시험 연구로(HTTR)를 이용한 원자력 에너지 이용의 다양화(열화학 수소 제조 등)에 대해서도 연구를 실시하였다.
  • 나카 연구소: 핵융합로의 실현에 기여하기 위해, 임계 플라즈마 시험 장치(JT-60)에서의 실험을 실시. 국제 열핵융합 실험로(ITER)의 준비 활동 등에 참여하였다.
  • 무츠 사업소: 원자력선 무츠에 관한 사업 종료 후, 해수 순환 및 방사성 물질 등의 이행의 조사·검토 등을 실시하였다.
  • 간사이 연구소: 광양자 과학 연구 시설 및 방사광 과학 연구 센터를 소유. 전자는 X선원이나 레이저 기술 등을 이용하여, 신소재 창생, 미세 가공 및 의학 진단·치료 기술 등에 이용하기 위한 연구를 실시하였다. 후자에서는 대형 방사광 시설(SPring-8)을 이용하여 물리, 화학, 생물학 등의 기초 연구와 물성 연구에서의 물질의 원자 또는 전자 레벨의 구조 해명 등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4. 역대 이사장

재임 기간이름
1956년 ~ 1957년야스카와 다이고로
1957년 ~ 1959년코마가타 사쿠지
1959년 ~ 1964년키쿠치 마사시
1964년 ~ 1968년니와 치카오
1968년 ~ 1978년무나카타 에이지
1978년 ~ 1980년무라타 히로시
1980년 ~ 1986년후지나미 츠네오
1986년 ~ 1992년이하라 요시노리
1992년 ~ 1996년시모무라 쇼조
1996년 ~ 1999년요시카와 준지
1999년 ~ 2001년마츠우라 쇼지로
2001년 ~ 2003년무라카미 켄이치
2003년 ~ 2004년사이토 신조
2004년 ~ 2005년오카자키 토시오


5. 출신 인물


  • 카네코 이사무 (프로그래머)
  • 사이토 테츠오 (제11·12대 환경대신)
  • 사쿠라이 아츠시 (물리학자)
  • 타카기 유타카 (물리학자, 도쿄공업대학 교수, 나고야 대학 교수, 다이도 대학 교수)
  • 타카시마 테츠오 (작가)
  • 타케다 노부오 (공학자, 제5대 운수안전위원회 위원장, 전 도쿄 대학 부학장, 전 도쿄 대학 대학원 신영역창성과학연구과 학과장)
  • 타나카 토시카즈 (초대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장)
  • 하시야 히로시 (화학자, 시마네 대학 명예교수)
  • 사라타 토요시 (제3대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장)

참조

[1] 뉴스 プラズマを封鎖 原研のトーラス1号 基礎実験に成功 中國新聞 1971-07-13
[2] 뉴스 放射能が一時漏れる 中國新聞 1971-07-13
[3] 뉴스 カリフォルニウムを合成 朝日新聞 197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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