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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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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방울은 20세기 초 활동한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명은 임승근이며, 호는 송정이다. 서편제의 명창으로, 춘향가 중 쑥대머리, 호남가 등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라디오 방송 출연 및 음반 제작을 통해 활동했으며, 광복 후에는 한국독립당 당무위원을 역임했다. 1960년 국악상을 받았으며, 1961년 국악예술인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임방울국악제가 개최되고 있으며, 임방울대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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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광주 지하철 광주송정역 안에 있는 국창 임방울 전시관
광주 지하철 송정역 안에 있는 국창 임방울 전시관
본명임승근
원어 이름林芳蔚
출생일1904년 4월 20일
출생지대한제국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송정리
사망일1961년 5월 10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배우자한애순
가족임경학(아버지)
박씨 부인(어머니)
김창환(배다른 고모부)
박기홍(배다른 외숙부)
이날치(사돈댁 아저씨)
한영숙(아랫사돈댁)
황병렬(아랫사돈댁)
한성준(윗사돈댁)
김완선(친척 조카손녀)
직업 및 활동
장르한국 전통 음악
직업판소리 국악인
판소리 작사가
판소리 작곡가
판소리 편곡가
활동 시기1917년 ~ 1961년

2. 생애

서편제의 명창 임방울은 1928년 상경하여 외삼촌 김창환의 소개로 무대에 섰다가 큰 인기를 얻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맛깔스러운 목구성으로 청중을 사로잡았으며, 서편제 중에서도 특히 단계면조에 능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컬럼비아, 빅타 레코드 회사의 전속으로 있으면서 《춘향가》, 《심청가》 등의 전집을 제작했다. 빅터레코드판 《춘향가》 전집과 오케이판 《흥보가》 전집이 현재 남아 있다. 일본에서 취입한 〈쑥대머리〉와 〈호남가〉 음반은 당시 매가 팔렸다고 전해지며, 《춘향가》 중 〈쑥대머리〉가 특히 유명하다. 편곡과 작곡에도 재능이 있어 〈호남가〉와 〈사별가〉를 남겼다.[11]

광복 후 1946년부터 1947년까지 한국독립당 당무위원을 지냈고, 1960년 국악상을 받았다. 같은 해 김제에서 공연하던 중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1961년 5월 10일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는 한국 국악 사상 처음으로 국악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11]

2. 1. 유년 시절과 판소리 입문

임방울의 본명은 '''임승근'''(林承根)이며, 아명은 '''임종규'''(林鍾圭)이고 호는 송정(松汀)이다. 나주 임씨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송정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1동)에서 태어났으며,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면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뒤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도산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에서 성장하였다.[11]

어려서부터 집안이 가난하여 판소리를 배우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고향에서 이재현에게 《춘향가》, 《흥보가》를 배웠고, 공창식, 유성준에게서 다시 배웠다. 유성준에게 《수궁가》, 《적벽가》를 배웠다. 전남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남국일의 경제적 후원을 받아 판소리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2. 2. 명창으로의 성장

임방울은 어려서부터 가세가 빈곤하여 판소리 수도에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고향에서 이재현에게 판소리 《춘향가》, 《흥보가》를 공부하였고 공창식, 유성준 문하에서 다시 닦았다. 유성준에게 《수궁가》, 《적벽가》를 배웠다. 전남의 거상인 남국일에게서 경제적 후원을 얻어 판소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11]

1928년에 상경하여 외숙부 김창환의 소개로 무대에 나갔다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맛있는 목구성으로 청중을 휘어잡은 명창이다. 서편제 중 특히 단계면조에 능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한편, 컬럼비아·빅타 레코드 회사의 전속으로 있으면서 《춘향가》, 《심청가》 등의 전집을 제작하였다. 현재 빅터레코드판 《춘향가》 전집과 오케이판 《흥보가》 전집이 남아 있다. 일본에서 〈쑥대머리〉와 〈호남가〉를 취입한 음반은 당시에 매가 팔렸다고 한다. 《춘향가》 중에서 〈쑥대머리〉가 특히 유명하다. 편곡을 비롯하여 작곡에도 재주가 있었으며, 〈호남가〉와 〈사별가〉를 남겼다.[11]

2. 3. 일제강점기 활동

1928년에 상경하여 외숙부 김창환의 소개로 무대에 나섰다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맛있는 목구성으로 청중을 휘어잡은 명창으로, 서편제 중 특히 단계면조에 능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한편, 컬럼비아·빅타 레코드 회사의 전속으로 있으면서 《춘향가》, 《심청가》 등의 전집을 제작하였다. 현재 빅터레코드판 《춘향가》 전집과 오케이판 《흥보가》 전집이 남아 있다.[11] 일본에서 〈쑥대머리〉와 〈호남가〉를 취입한 음반은 당시에 100만 매가 팔렸다고 한다. 《춘향가》 중에서 〈쑥대머리〉가 특히 유명하다. 편곡을 비롯하여 작곡에도 재주가 있었으며, 〈호남가〉와 〈사별가〉를 남겼다.[11]

2. 4. 광복 이후 활동과 사망

1946년부터 이듬해 1947년까지 한국독립당 당무위원을 지냈고, 1960년 국악상을 받았다.[11] 그해 김제에서 공연하던 중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1961년 5월 10일,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는 한국 국악 사상 처음으로 국악예술인장(國樂藝術人葬)으로 치러졌다.

2. 5. 사후

1997년부터 광주광역시 일원에서 국창 임방울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임방울국악제가 개최되고 있다.[12][13] 광주광역시에는 그의 이름을 딴 임방울대로 (광산구 우산동 상무교차로 ~ 북구 양산동)가 있다.

3. 가족 및 친척 관계

관계이름
아버지임경학(林敬鶴)
어머니박씨 부인(朴氏 夫人)[14]
이복 고모부김창환(金昌煥)[15]
이복 외숙부박기홍(朴基洪)[16]
사돈댁 아저씨이날치(李捺治)[17]
아랫사돈댁한영숙(韓英淑)[18]
아랫사돈댁황병렬(黃炳烈)[19]
윗사돈댁한성준(韓成俊)[20]
친척 조카손녀김완선(金完宣)[21]



임방울의 사위 중 한 명은 가수 김완선의 외숙부이며, 김완선의 외조부는 임방울과 사돈간이자 한국 무용한영숙의 6촌 오빠이다.[1]

3. 1. 주요 친인척

임방울의 사위 중 한 명은 가수 김완선의 외숙부이며, 김완선의 외조부는 임방울과 사돈간이자 한국 무용한영숙의 6촌 오빠이다.[1]

4. 주요 경력

국립국악원 고문을 역임하였다.

5. 임방울 국악제

1997년부터 광주광역시 일원에서 국창 임방울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임방울국악제가 개최되고 있다.[12][13]

5. 1. 국악제 소개

1997년부터 광주광역시 일원에서 국창 임방울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임방울국악제가 개최되고 있다.[12][13]

6. 평가와 의의

(이전 단계에서 원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아 결과물이 없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원문 소스를 제공해주시면 지침에 따라 위키텍스트를 작성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검토 및 수정하여 최종 결과물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참조

[1] 정보
[2] 정보
[3] 정보
[4] 정보
[5] 정보
[6] 정보
[7] 정보
[8] 정보
[9] 정보
[10] 정보
[11] 웹사이트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http://people.aks.ac[...]
[12] 웹인용 우리나라 대표 국악제 '임방울국악제' 20일 개최 http://www.mhns.co.k[...] 2020-05-06
[13] 웹인용 국악 신인 등용문 임방울국악제 열린다 http://www.jndn.com/[...] 2020-05-06
[14] 정보
[15] 정보
[16] 정보
[17] 정보
[18] 정보
[19] 정보
[20] 정보
[21]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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