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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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임용련(任用璉, 1901년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의 서양화가입니다.
생애 및 활동:
- 평안남도 진남포 출생.
- 배재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가담했다가 중국으로 피신, 난징의 진링대학(金陵大學)에서 수학.
- 1922년 '임파'라는 가명으로 미국 유학, 시카고 미술학교와 예일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 1929년 예일대학교 미술대학 장학금으로 유럽에서 미술 연구.
-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서양화가 백남순과 만나 1930년 결혼,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부부.
- 1930년 귀국하여 부부유화가작품전을 개최.
- 1931년부터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미술과 영어 교사로 재직하며 이중섭 등에게 미술을 가르침.
- 광복 후 서울로 이주하여 미군 군정장관 고문, 서울세관장 역임.
- 6.25 전쟁 중 납북되어 생사 불명.
작품 세계:
- 서양화 기법을 바탕으로 한 풍경화와 인물화를 주로 그림.
- 대표작으로 〈에르블레 풍경〉(1930), 〈금강산 풍경〉(1940), 〈십자가의 상〉(1929) 등이 있음.
- 〈에르블레 풍경〉은 파리 근교 에르블레의 신혼집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현존하는 임용련의 작품 3점 중 하나.
- 6.25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작품이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매우 적음.
기타:
- 부인 백남순과의 사이에 7남매를 두었음.
- 백남순은 남편이 납북된 후 생계를 위해 화가의 길을 접었다가,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다시 그림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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