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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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막성전은 유재열이 1966년 설립한 종교 단체로, '종말 심판의 피난처'를 표방하며 경기도 과천시 일대에 신도들이 집단 생활을 했다. 유재열은 1969년 11월 1일에 세상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신도들을 모았으나, 1970년 사기 혐의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았다. 1975년 유재열은 구속되었고,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장막성전이 와해되었다. 이후 유재열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장막성전은 이삭교회로 개명되었다. 장막성전은 이만희가 설립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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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신흥 종교 -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이만희를 교주로,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한 종말론적, 메시아적 성격의 종교 단체로, 공격적인 전도 방식과 코로나19 집단 감염 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며 주류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간주된다. - 대한민국의 신흥 종교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1954년 문선명이 설립한 국제적인 신흥 종교 단체로, '원리강론'을 경전으로 하며 문선명을 '참부모'로 믿고, 다양한 논란과 분파 속에서 현재는 문선진이 세계회장직을 맡고 있다. - 기독교계 신흥 종교 -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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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성전 | |
---|---|
기본 정보 | |
![]() | |
설립일 | 1967년 |
설립자 | 유재열 |
유형 | 신흥 종교 |
종교 | 기독교 |
본부 | 대한민국 |
별칭 | 솔로몬 성전, 실로암 교회 |
관련 단체 | 새마을운동본부 |
역사 | |
창립 | 1967년, 유재열에 의해 창립 |
주요 사건 | "계시록의 실상" 주장 박태선의 천부교와 유사한 신앙 형태 새마을운동 참여 |
해체 | 1980년, 재산 헌납 후 해체 |
교리 | |
주요 주장 | 요한계시록의 '실상'을 직접 계시받았다고 주장 14만 4천 명의 선택된 자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 |
논란 및 비판 | |
사회적 문제 | 1970년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킴 강제적인 헌금 요구, 가출 및 이혼 종용 등의 문제 발생 |
관련 인물 | |
주요 인물 | 유재열 (설립자) 이만희 (전도사) 김건남 |
기타 | |
현재 상황 | 1980년 해체 이후, 신도들은 여러 교단으로 흩어짐 일부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으로 흡수됨 |
2. 역사
1960년대 초, 유재열은 부모와 함께 서울 상도동의 호생기도원을 다녔다. 1965년, 유재열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100일 동안 초막에서 양육을 받았다. 이듬해인 1966년, 유재열은 장막성전을 설립했다.[10] 장막성전은 '종말 심판의 피난처'로 알려졌으며,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청계산 저수지 일대에 신도 400가구가 집단생활을 했고, 전국적으로 약 2천 명의 신도가 있었다.[10]
1970년경, 유재열은 이만희 등의 고발로 형사처벌을 받았다.[11][12] 1971년 당시 교세는 약 5천 명에서 7천 명 사이였으며, 신도의 70%가 여성이었고, 40대 중년층이 대부분이었다.[13] 이들 중 95%는 기성 교회와 전도관에서 이탈한 사람들이었고, 학력은 무학 또는 초등학교 졸업 정도였다.[9]
1975년, 유재열은 사기, 산림법 위반,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6] 1심에서는 징역 5년,[7] 2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7] 1980년 신군부 정권에 의해 장막성전이 와해되었다.[11][12] 같은 해 10월, 유재열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목사 자격을 따기 위해 신학대학으로 갔다.[8] 장막성전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삭교회, 희망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2. 1. 호생기도원
1964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상도동(현 동작구) 사자바위에 있던 호생기도원이 장막성전의 모체이다.[2] 유재열은 호생기도원에서 김종규의 영향을 받아 기성 교회를 공격하고, 구약성서 스가랴서 12장 1절을 인용하며 장막성전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3]2. 2. 종말론과 신앙촌
유재열은 1966년 5월 20일부터 1260일이 지난 1969년 11월 1일이 되면[4] 세상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며, 회개하고 구원의 장막에 모여야 멸망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울, 인천, 수원 등 한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4만 4천 명이 모였을 때 종말이 온다고 외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 제한된 수 안에 들어가려고 했다. 모인 사람들은 300여 명이었으며, 이들은 마지막 날을 대비하기 위해 모든 재산을 팔아 바쳤다.[5] 1970년 말 통계에 따르면 장막성전에 입주한 사람은 약 800세대, 5000여 명이었다. 이는 1950년대 한국에서 생긴 신흥 종교인 천부교 신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마을인 신앙촌과 같은 격리 집단이었다.3. 장막성전과 신천지
이만희는 1967년경 장막성전에 입교한 것으로 알려진다.[2] 그는 장막성전의 목사격인 일곱 사자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흩어지자, 장막성전을 탈퇴하였다. 이후 이만희는 장막성전 목자들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고 요한계시록 2-3장의 회개의 편지를 보내며, 장막성전에서 일어난 일들을 증거한다는 의미인 증거장막성전을 만들어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2023년 하반기 기준 40만명 추산) 유재열의 장막성전은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이삭교회, 희망교회로 개종되었다.[8]
4. 비판 및 논란
장막성전은 종말론을 내세워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집단생활을 강요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는다.[5]
4. 1. 사회적 문제
장막성전은 종말론을 내세워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집단생활을 강요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5] 유재열은 1966년 5월 20일부터 1260일이 지난 1969년 11월 1일이 되면 이 세상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며, "회개하고 구원의 막장에 모여라. 이곳만이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라고 주장했다.[4][5] 이러한 주장에 따라 서울, 인천, 수원 등 한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마지막 날을 대비하기 위해 모든 재산을 팔아 바쳤다.[5] 1970년 말에는 약 800세대, 5000여 명이 장막성전에 입주하여 일종의 신앙촌과 같은 격리 집단을 형성했다.[5]1971년 당시 장막성전의 신도는 약 5000명으로, 여성이 약 70%를 차지했고, 40대 중년층이 대부분이었다. 신도의 95%는 기성 교회와 전도관을 이탈한 사람들이었으며, 학력은 무학 또는 초등학교 졸업 정도였다.[9]
1971년 이만희가 유재열을 고소한 후 유재열은 도피했고, 많은 실력자들이 이탈하면서 교세가 꺾였다.[6] 결국 유재열은 1975년 9월 사기, 산림법 위반, 예비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고,[6] 1심에서는 징역 5년,[7] 2심에서는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의 선고를 받았다.[7] 유재열은 석방 후 1980년 10월 미국 이민을 위해 한국을 떠났다.[8]
참조
[1]
웹사이트
https://cult110.info[...]
[2]
서적
キリスト教異端研究
http://www.god4.com/[...]
[3]
웹사이트
ソウル六百年史:幕屋聖殿(イサク教会)
http://seoul600.seou[...]
[4]
뉴스
http://newslibrary.n[...]
1976-02-12
[5]
간행물
韓国キリスト教年鑑
1968
[6]
뉴스
http://dna.naver.com[...]
1975-09-24
[7]
뉴스
http://dna.naver.com[...]
1976-03-01
[8]
서적
キリスト教異端研究
[9]
간행물
韓国キリスト教界、新興宗教の実態
1972
[10]
뉴스
동아일보
https://newslibrary.[...]
1975-04-03
[11]
뉴스
한겨레
http://www.hani.co.k[...]
2020-03-06
[12]
뉴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
2020-03
[13]
간행물
한국기독교계 신흥종교실태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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