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전일수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전일수는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투수와 타자로 활동했다. 유신고등학교와 경성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1996년부터 KBO 리그 심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 이민호 (1970년)
    이민호는 1993년부터 1996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에서 선수로 활동한 야구 선수 출신으로, 은퇴 후 KBO 리그 심판으로 활동하며 2011년 1000경기 출장을 달성하고 2013년 KBO 리그 우수심판위원상을 수상했다.
  • 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 나광남
    나광남은 KBO 심판 위원으로, 1994년부터 심판으로 활동하며 2012년 2000경기, 2022년에는 3000경기 출장을 기록했으며, 판정 번복으로 제재를 받기도 했다.
  • 수원북중학교 동문 - 정현 (테니스 선수)
    정현은 대한민국 테니스 선수로, 그랜드 슬램 4강 진출과 세계 랭킹 19위를 기록, 넥스트 제너레이션 ATP 파이널 우승 등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활동을 중단 후 2023년 복귀했다.
  • 수원북중학교 동문 - 박정현 (1969년 7월)
    박정현은 1969년 7월에 태어난 전 야구 선수로, 1988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데뷔하여 신인왕을 수상하고 1990년대 초반 팀의 마운드 삼총사로 활약했으며, KBO 리그 통산 12시즌 동안 65승을 기록했다.
  • 유신고등학교 동문 - 박원석 (1970년)
    박원석은 참여연대 활동과 국회의원 활동을 하였으며, 1990년에 징역형을 선고받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이후 선거에서는 낙선하였다.
  • 유신고등학교 동문 - 강동연
    전라북도 출신 야구 선수 강동연은 롯데 자이언츠 육성 선수로 입단, 두산 베어스에서 1군 데뷔 후 상무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두산 베어스에 복귀, NC 다이노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재 TEAM HIT GYM 관장으로 활동 중이다.
전일수 - [인물]에 관한 문서
선수 정보
선수명전일수 (全日洙)
영어 표기Jeon Il-Soo
국적대한민국
출생지경기도 수원시
생년월일1968년 7월 2일 ()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 입단 정보
프로 입단 년도1991년
드래프트 순위1991년 1차 지명 (태평양 돌핀스)
선수 경력
소속팀태평양 돌핀스 (1991년 ~ 1992년)
LG 트윈스 (1992년 ~ 1995년)
첫 출장KBO / 1991년 4월 7일
잠실 대 LG전 구원
마지막 경기KBO / 1994년 9월 11일
잠실 대 쌍방울전
심판 경력
KBO 심판KBO 심판위원회 위원 (1996년 ~ 2016년)
KBO 심판위원회 팀장 (2017년 ~ 현재)

2. 선수 경력

전일수는 아마추어 시절 뛰어난 투수 유망주였으나, 프로 입단 후 잦은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 야구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어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 1차 지명을 받았으나, 아마추어 시절 혹사로 인한 어깨 부상으로 1992년 웨이버 공시로 방출되었다. 이후 LG 트윈스에서 연습생으로 뛰며 재활 후 투수로 복귀했지만, 1995년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어 방출되었다.[1]

2. 1. 고등학교 및 대학교 시절

전일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전국 32강 진출에 크게 기여할 정도로 뛰어난 투수였다. 3학년이던 1986년에는 8강전에서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결승 3점 홈런을 기록했다. 또한 한일 고교 야구 대회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대학교에 진학한 1987년에는 서울 올림픽 야구를 대비한 아마추어 1차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듬해에는 22이닝 동안 2자책점만을 기록하여 개인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한편, 한미 아마추어 야구 선수권 대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표팀에는 선발되었지만, 두 대회에서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여 1988년 서울 올림픽 야구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2. 2. 태평양 돌핀스 시절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3800만, 연봉 1200만에 입단했다.[2] 그러나 아마추어 시절 혹사로 어깨 부상을 입어 루키 시즌 3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듬해 타자로 전향했다.[2] 1992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로 방출되었는데, 이는 한국 프로 야구 최초의 웨이버 공시에 의한 계약 해제였다.[2]

2. 3. LG 트윈스 시절

태평양 돌핀스에서 방출된 후, LG 트윈스에 연습생으로 입단하여 연봉 1500000KRW을 받았다.[1] 1993년부터 재활을 거쳐 다시 투수로 복귀했다.[1] 1994년 4월 29일 OB 베어스를 상대로 5이닝 무실점 1탈삼진으로 데뷔 첫 선발승을 거두는 등 초반에는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1] 시즌 중반부터는 구원 투수로 더 많이 출전했다.[1] 1994년 시즌 최종 성적은 30경기 출장, 45이닝 20실점(17자책), 25탈삼진, 3승이었다.[1] 1995년에는 1군 출전 기록이 없었고,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어 방출되었다.[1]

3. 야구선수 은퇴 후

1996년부터 KBO 리그 심판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4. 출신 학교

5. 등번호

전일수는 1991년부터 1992년 중도까지 등번호 '14'번을 사용했고, 1992년 중도부터 1995년까지는 '42'번을 사용했다.

참조

[1] 뉴스 https://news.chosun.[...]
[2] 뉴스 <프로야구 화제>-全日洙, 화려한 재기 날개짓 https://sports.news.[...] 연합뉴스 2019-07-2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