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더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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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리 더바논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야구 선수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 여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1966년 드래프트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지명되었으며, 선수 생활 동안 카디널스와 총 4번 계약하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주로 내야수로 활약했으며, 1975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주전 유격수로 뛰며 좋은 타격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고등학교 농구 심판으로 활동했으며, 메이저 리그 외야수 제프 더바논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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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더바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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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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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제리 다바논 |
원어 이름 | Frank Gerald DaVanon |
출생일 | 1945년 8월 21일 |
출생지 | 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드 |
사망일 | 해당사항 없음 |
사망지 | 해당사항 없음 |
신장 | 180cm |
체중 | 79kg |
던지는 손 | 우 |
치는 손 | 우 |
포지션 | 내야수 |
드래프트 | |
드래프트 순위 | 1965년 36라운드 전체 654순위 (휴스턴 애스트로스) |
재지명 | 1966년 1라운드 전체 17순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선수 경력 | |
메이저 리그 데뷔 | 1969년 4월 11일 |
마지막 경기 | 1977년 5월 4일 |
소속 팀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6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9~1970, 1974, 1977) 볼티모어 오리올스 (1971)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73) 휴스턴 애스트로스 (1975~1976) |
통계 | |
타율 | .234 |
홈런 | 3 |
타점 | 50 |
안타 | 117 |
득점 | 73 |
2. 프로 경력
제리 더바논은 1966년 MLB 드래프트 2차에서 카디널스에 1라운드로 지명되었다.[1] 이후 1968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확장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San Diego Padres)에 24번째로 지명되어 1969년 파드리스의 첫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되었고, 4월 11일 대타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1]
시즌 초반 6경기 만에 주전 유격수 라파엘 로블레스가 마이너 리그로 내려가면서 더바논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23경기에서 .145의 저조한 타율을 기록하며 5월 중순 벤치로 밀려났다.[1] 이후 소니 루베르토, 존 시핀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카디널스로 복귀했다.[1]
카디널스 복귀 후 더바논은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너 리그에서 보냈다. 1969년 잔여 시즌과 1970년 대부분을 툴사 오일러스에서 뛰며 메이저 리그에는 27경기 출전에 그쳤다.[1] 1970년 11월 30일, 모 드라보스키와 트레이드되어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했다.[1] 1971년에는 주로 2루수 데이비 존슨과 유격수 마크 벨랭저의 백업으로 활약하며 38경기에서 .235의 타율을 기록했다.
로저 레포즈와 트레이드되어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으로 이적한 1973년, 더바논은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245의 타율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냈다.
1974년, 더바논은 카디널스와 마이너 리그를 오가며 7월에 메이저 리그로 콜업되어 30경기에서 .150의 타율을 기록했다.[1]
1975년, 더바논은 다시 마이너 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으나, 7월 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주전 유격수 로저 메츠거의 부상으로 8월 1일 메이저 리그에 합류했다. 6년 만에 주전 기회를 얻은 더바논은 25경기에서 유격수와 2루수로 뛰며 .274의 타율을 기록했고, 8월 11일에는 해리 파커를 상대로 1969년 이후 첫 메이저 리그 홈런을 쳤다. 시즌 최종 타율은 .278이었다.
1976년, 더바논은 1971년 이후 처음으로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했다. 비록 메츠거와 롭 앤드루스에 밀려 백업 역할에 머물렀지만, 61경기에서 .290의 타율과 20 타점(RBI)으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개리 템플턴, 마이크 타이슨, 돈 케싱어, 마이크 필립스에 밀려 카디널스 벤치에 있던 더바논은 시즌 첫 달 동안 9경기에 출전하여 8번의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고 5월 11일에 방출되었다.[1] 이 트레이드는 한 팀이 동일한 선수와 3번이나 트레이드한 MLB 역사상 유일한 사건이다.
2. 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68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확장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San Diego Padres)에 24번째로 지명되었고, 1969년 파드리스의 첫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1]4월 11일 대타로 파드리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1] 시즌 시작 6경기 만에 파드리스는 주전 유격수 라파엘 로블레스를 마이너 리그로 보냈고, 더바논을 그의 대체자로 지명했다.[1] 하지만 23경기에서 .145의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고, 5월 중순에 벤치 신세가 되었다.[1] 한 경기를 더 뛴 후, 소니 루베르토와 존 시핀을 상대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1]
2. 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차, 2차, 3차, 4차)
더바논은 1966년 MLB 드래프트 2차에서 카디널스에 1라운드로 지명되었다.[1] 이후 1968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확장 드래프트에서 파드리스에 24번째로 지명되었고, 1969년 파드리스의 첫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1969년 시즌 시작 6경기 만에 파드리스는 주전 유격수 라파엘 로블레스를 마이너 리그로 보내고 더바논을 그의 대체자로 지명했지만, 23경기에서 .145의 타율을 기록한 후 5월 중순에 벤치에 앉게 되었다. 한 경기를 더 뛴 후, 소니 루베르토와 존 시핀을 대가로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1]카디널스로 돌아온 더바논은 마이너 리그로 복귀했다. 1969년의 나머지 기간 대부분과 1970년 대부분을 툴사 오일러스에서 보냈으며, 그 기간 동안 27번의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1]
1974년, 더바논은 카디널스와 마이너 리그를 오갔다. 7월에 메이저 리그로 콜업되었고, 카디널스에서 3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50을 기록했다.[1]
1976년, 더바논은 개리 템플턴, 마이크 타이슨, 돈 케싱어, 마이크 필립스에 밀려 카디널스 벤치에 머물렀다. 이 트레이드는 한 팀이 동일한 선수와 3번이나 트레이드한 MLB 역사상 유일한 사건이다. 시즌 첫 달에 그는 단 9경기에 출전했고, 그중 8번의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5월 11일에 방출되었다.[1]
2. 3. 볼티모어 오리올스
제리 더바논은 1970년 11월 30일 모 드라보스키를 상대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트레이드되었다.[1] 1971년 시즌 전체를 메이저 리그 오리올스에서 보냈으며, 주로 2루수 데이비 존슨과 유격수 마크 벨랭저를 백업하는 백업 내야수로 활약했다. 메이저 리그에서 첫 풀 시즌을 보낸 그는 38경기에서 .235의 타율을 기록했다.2. 4.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로저 레포즈를 상대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으로 트레이드되었다. 1973년 대부분을 벤치에서 보냈으며,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245의 타율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냈다.2. 5. 휴스턴 애스트로스
1975년 시즌 더바논은 다시 마이너 리그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7월 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주전 유격수 로저 메츠거가 부상을 당했다. 래리 밀본이 잠시 그 자리를 채웠지만, 더바논은 8월 1일에 소집되었다. 6년 만에 처음으로 주전 자리를 얻은 더바논은 메이저 리그 선수로서 최고의 타격 성적을 기록하며, 8월에 25경기에서 주로 유격수로, 때로는 2루수로 출전하여 .274의 타율을 기록했다. 또한 8월 11일에는 카디널스의 해리 파커를 상대로 1969년 이후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 홈런을 쳤다. 그는 시즌을 .278의 타율로 마쳤다.1976년에는 1971년 이후 처음으로 더바논이 시즌 전체를 메이저 리그에서 보냈다. 비록 그는 여전히 메츠거와 롭 앤드루스에 밀려 백업 역할에 머물렀지만, 61경기에서 .290의 타율과 20 타점(RBI)을 기록하며 거의 모든 지표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고, 이는 그의 이전 최고 기록인 10타점의 두 배였다.
3. 은퇴 후
1977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방출된 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고등학교 농구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외야수 제프 더바논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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