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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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너선 데미는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나 2017년 사망한 미국의 영화 감독이다. 그는 로저 코먼과 함께 영화 경력을 시작하여, 1974년 《여자 수용소》로 감독 데뷔했다. 1991년 《양들의 침묵》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에는 《필라델피아》를 연출했다. 데미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으며, 《스탑 메이킹 센스》는 최고의 음악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는 또한 정치적 활동에도 참여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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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데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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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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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버트 조너선 데미 |
출생일 | 1944년 2월 22일 |
출생지 | 미국 뉴욕주볼드윈 |
사망일 | 2017년 4월 26일 |
사망지 | 뉴욕 |
국적 | 미국 |
학력 | 플로리다 대학교 |
배우자 | 에벌린 퍼셀(1970년 결혼, 1980년 이혼) 조앤 하워드(1987년 결혼) |
자녀 | 3명 |
친척 | 로버트 W. 캐슬(사촌) 테드 데미(조카) |
직업 | 영화 감독 영화 프로듀서 각본가 |
주요 작품 | |
주요 작품 | 전체 목록 멜빈과 하워드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 레이첼의 결혼 |
수상 | |
아카데미상 | 감독상 1991년 양들의 침묵 |
베를린 국제 영화제 | 은곰상(감독상) 1991년 양들의 침묵 |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 | 감독상 1980년 멜빈과 하워드 1991년 양들의 침묵 |
전미 영화 비평가 협회상 | 다큐멘터리 영화상 1984년 스톱 메이킹 센스 |
블루리본상 | 외국어 작품상 1991년 양들의 침묵 |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2007년 평원으로부터 온 남자 |
2. 초기 생애
조너선 데미는 1944년 2월 22일 뉴욕주 볼드윈에서 홍보 담당 임원이었던 로버트 유진 데미와 도로시 루이스 사이에서 태어났다.[2][3][4] 뉴욕주 록빌 센터와 마이애미에서 성장했으며,[49] 사우스웨스트 마이애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플로리다 대학교에 진학했다.[5] 영화 감독 테드 데미는 그의 조카이다.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수의학을 전공했으나,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껴 중퇴했다.
조너선 데미는 뉴욕주 볼드윈 출신으로,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수의학을 전공했으나 중퇴했다. 대학 시절 영화 평론을 기고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사 홍보 담당자로 일하며 로저 코먼을 만나 영화계에 입문했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코먼 감독 밑에서 일하며, 『붉은 남작』 등에 참여했다.
3. 경력
1974년 『여자 감옥/백주의 폭동』으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분노의 강』(1976) 등 세 편의 영화를 뉴월드 픽처스에서 제작했다. 1980년 『멜빈과 하워드』로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 감독상을 받았다.
1991년에는 『양들의 침묵』으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 감독상과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으며,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까지 5개 부문을 석권한 세 편의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호러 영화로는 유일하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60] 1993년에는 『필라델피아』로 톰 행크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주며 다시 한번 큰 성공을 거두었다.
토킹 헤즈의 라이브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를 비롯한 10편 이상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으며, 특히 『스탑 메이킹 센스』는 역사상 최고의 음악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60] 2007년에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다룬 ''Man from Plains''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바이오그라피 필름상을 받았다.[61]
『양들의 침묵』의 큰 성공 이후, 한때 일회성 감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2008년 『레이첼, 결혼하다』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2017년 4월 26일, 식도암과 심장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60][61]
3. 1. 초기 영화 (1971-1980)
조너선 데미는 경력 초기에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exploitation film) 제작자인 로저 코먼을 위해 일하며 장편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천사는 냉혹하다(Angels Hard as They Come)"(1971)라는 오토바이 영화(이는 "라쇼몽"을 매우 느슨하게 바탕으로 한다)[20]와 "더 핫 박스(The Hot Box)"(1972)의 공동 각본 및 제작을 맡았다. 그런 다음 코먼의 스튜디오인 뉴월드 픽처스에서 "여자 수용소"(1974), "크레이지 마마(Crazy Mama)"(1975), "분노의 산하"(1976)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분노의 산하" 이후, 데미는 파라마운트 픽처스(Paramount Pictures)에서 코미디 영화 "핸들 위드 케어(Handle with Care)"(원제는 "시티즌 밴드(Citizens Band)", 1977)를 연출했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지만,[7] 홍보가 부족했고,[8] 흥행에는 실패했다.[9] 그는 또한 1978년 형사 콜롬보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했다.[10]
데미의 다음 영화인 "멜빈과 하워드"(1980)는 개봉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비평가들의 극찬과 영화제 수상을 통해 주목을 받았으며,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을 받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메리 스틴버겐)과 아카데미 각본상 (보 골드먼)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3. 2. 할리우드 진출과 성공 (1980-1993)
데미는 주요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세 편의 영화 중 하나인 《양들의 침묵》(1991)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18] 친구 후안 수아레스 보타스의 AIDS 투병[19]과 자신의 도덕적 신념[20]에 영감을 받은 데미는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필라델피아》(1993)[21]를 제작했는데,[21] 이 영화는 AIDS 위기[21]를 다룬 최초의 주요 영화 중 하나였으며, 주연 배우인 톰 행크스에게 첫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21] 그는 또한 조카 테드와 함께 영화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최우수 주제가상 수상곡 "필라델피아 거리" 뮤직비디오를 공동 연출했다.[22] 조너선은 두 영화 모두에서 여러 명의 동일한 배우들을 사용했다.
3. 3. 전성기: 《양들의 침묵》과 《필라델피아》 (1991-1993)
1991년, 데미는 토머스 해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양들의 침묵을 감독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포함한 5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1993년에는 필라델피아를 감독하여 또 한 번 큰 성공을 거두었다.
3. 4. 후기 영화 (1998-2017)
3. 5. 다큐멘터리 영화
토킹 헤즈의 라이브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는 역사상 최고의 음악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현재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다.[60] 2007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다룬 ''Man from Plains''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바이오그라피 필름상을 수상했다.[60]
4. 정치적 활동
데미는 다양한 정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81년, 그는 자유주의 옹호 단체인 미국을 위한 사람들(People for the American Way)을 위한 일련의 광고를 제작했다. "달걀(Eggs)",[36] "음악(Music)",[37][38] "스포츠(Sports)"[39]라는 제목의 광고들은 노먼 리어(Norman Lear)가 제작했으며,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캐롤 버넷(Carol Burnett), 골디 혼(Goldie Hawn)이 표현의 자유를 기념하는 내용이었다.[40] 1985년에는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예술가 연합(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을 위한 비디오를 제작했다. 이 단편 영상에는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 루벤 블레이즈(Rubén Blades), 지미 클리프(Jimmy Cliff), 허비 핸콕(Herbie Hancock), 리틀 스티븐(Little Steven), 런-DMC(Run–D.M.C.),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등 여러 국제적인 음악가들이 등장하여 아파르트헤이트 기간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고급 휴양지인 선시티에 대한 불매 운동을 촉구했다. 그의 다큐멘터리 ''하이티, 민주주의를 꿈꾸다(Haiti Dreams of Democracy)''(1988)는 독재 이후 하이티의 민주적 재건 시대를 포착했으며, 그의 다큐멘터리 ''농업 기술자(The Agronomist)''(2008)는 하이티의 언론인이자 인권 운동가인 장 도미니크(Jean Dominique)의 삶을 조명했다. 데미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뉴올리언스 로어 나인스 워드(Lower Ninth Ward)의 재건 노력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나는 캐롤린 파커다(I'm Carolyn Parker)''(2011)에 6년간을 할애했다.
5. 스타일
1986년부터 2004년까지 데미는 영화에서 인물의 감정을 강조하는 클로즈업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클로즈업 스타일은 중요한 순간에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직접 응시하는 것을 포함한다. 데미에 따르면, 이것은 관객을 등장인물의 입장에 놓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결혼식 후에》(2008)부터 데미는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영화 제작 방식을 채택했다.[30][31]
그는 찰스 네이피어, 해리 노스럽, 트레이시 월터, 앤 다우드, 리사게이 해밀턴, 킴벌리 엘리즈, 폴 라자르, 론 보터, 딘 스톡웰, 오바 바바툰데, 테드 레빈, 폴 르 매트, 메리 스틴버겐, 제이슨 로바즈, 스콧 글렌, 그리고 그의 전 프로듀서 로저 코먼을 포함한 여러 조연 배우들을 자주 기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시스터 캐롤, 크리스 아이작, 툰데 아데빔페, 더 필리스, 찰스 아즈나부르, 스티브 스케일스, 플러테이션스, 만노 샤를마뉴, 버니 워렐, 데이비드 요한센, 보우 시아, 큐 라자러스, 릭 스프링필드를 포함한 여러 음악가와 밴드들을 배역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코먼 외에도 데미는 존 세일스, 아녜스 바르다, 조지 A. 로메로, 시드니 루멧, 존 워터스를 포함한 여러 동료 감독들을 카메오로 출연시켰다. 이러한 배우들 중 많은 수가 단 한두 마디의 대사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연 영화에서 오프닝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작가이자 감독인 폴 토마스 앤더슨은 그의 영화에서 데미에게 경의를 표했고,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언급했다. 한 인터뷰에서 앤더슨은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세 명의 영화 제작자를 "조나단 데미, 조나단 데미, 그리고 조나단 데미"라고 농담으로 말했다.[32][33] 알렉산더 페인과 웨스 앤더슨과 같은 다른 감독들도 자신의 작품에서 데미의 클로즈업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34][35]
6. 사생활
데미는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부인 에블린 퍼셀과는 이혼했다.[41] 1987년, 그는 예술가 조앤 하워드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49] 그는 2002년에 사망한 영화 감독 테드 데미의 삼촌이었다.[42] 데미의 사촌은 일부 데미의 영화에 출연했던 성공회 사제 로버트 윌킨슨 캐슬 주니어였다.
데미는 대니 드비토와 리아 펄먼과 함께 오하이오주 오벌린의 아폴로 극장 친구들의 운영 위원회 위원이었다.[43] 2013년, 그는 오벌린으로 돌아와 명예 미술 박사 학위를 받았다.[44]
2009년, 데미는 1977년 성추행 혐의와 관련하여 영화제에 참석하던 중 구금된 감독 로만 폴란스키를 지지하는 서명에 참여했다. 이 서명은 영화제가 작품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상영하는 장소라는 전통을 훼손할 것이며, 중립국을 여행하는 영화 제작자를 체포하는 것은 "아무도 그 영향을 알 수 없는 행동"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주장했다.[45][46]
데미는 특히 헥터 힙폴리트의 작품을 포함한 아이티 미술의 열렬한 수집가이자 애호가였으며, 심지어 "중독"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2014년,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자신의 소장품 중 수천 점을 경매에 부쳤고, 그 대부분은 포르토프랭스의 문화 센터에 기증되었다.[47]
7. 사망
데미는 2017년 4월 26일, 맨해튼 자택에서 식도암과 심장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73세였다.[48][49] 조디 포스터는 데미의 사망 후 발표한 성명에서 "친구이자 멘토를 잃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라며 애도를 표했다.[50]
브래디 코벳은 2018년 영화 ''폭스 럭스''를, 루카 구아다니노는 2018년 영화 ''서스피리아''를, 폴 토머스 앤더슨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2017년 영화 ''팬텀 스레드''를 데미의 명복을 기원하며 헌정했다.[51] 스파이크 리의 2020년 콘서트 영화 ''아메리칸 유토피아''(주연 데이비드 번) 크레딧에 데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음악가 수프얀 스티븐스와 안젤로 드 어거스틴의 앨범 ''어 비기너스 마인드''는 데미에게 헌정되었으며, 그중 한 곡인 "Cimmerian Shade"는 데미를 언급하고 가사 속에 ''양들의 침묵''을 참조하고 있다.
8. 작품 목록
아일랜드 얼라이브 릴리징
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United International Pic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