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조미령 (1929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조미령은 1929년생으로, 아역 연극 배우로 데뷔하여 동양극장에서 활동하다가 1948년 영화 《갈매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55년 영화 《춘향전》의 성춘향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후 《시집가는 날》, 《10대의 반항》, 《마부》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1950~60년대 불세출의 은막 스타로 명성을 얻었다. 1969년 재혼 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연예계를 은퇴했다가, 1981년 영화 《두 아들 2》에 출연하며 일시적으로 복귀했다. 1957년 금룡상 여우주연상, 1958년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으며, 1962년과 1966년 이혼 소송과 사기 피소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마산시 출신 - 오영주 (공무원)
    오영주는 1988년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 주유엔 대표부 차석대사와 외교부 제2차관을 역임하고 2023년 12월 윤석열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 마산시 출신 - 나균안
    롯데 자이언츠 소속 투수 나균안은 마산용마고 시절 유망주로 롯데에 지명되었으나 포수로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투수로 전향, 꾸준한 성장으로 2022년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특례를 받았다.
  • 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김새론
    김새론은 아역 배우로 데뷔하여 영화 《아저씨》로 주목받고 《도희야》, 《눈길》 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나, 2022년 음주운전 사고로 활동에 제약을 받는 대한민국 배우이다.
  • 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조정은 (1996년)
    조정은은 2002년 MBC 드라마 《사랑을 예약하세요》로 데뷔하여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서장금 역을 연기한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1929년 출생 - 찰스 틸리
    찰스 틸리는 미국의 사회학자, 정치학자, 역사학자로, 역사 사회학, 사회 운동, 국가 형성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관계적, 과정 중심적 접근 방식으로 사회과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929년 출생 - 정석모
    경찰 출신 행정가이자 정치인인 정석모는 치안국장, 도지사, 차관, 6선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충청권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정계 은퇴 후에는 건양대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조미령 (1929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출생일1929년 2월 4일
출생지창원시
직업배우
활동 기간1948년~1969년, 1981년

2. 생애

6.25 전쟁 직후, 국도극장 단일관으로 13만 명을 동원하며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영화 《춘향전》에서 성춘향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8] 이 영화는 남편 이철혁이 제작한 작품으로, 전쟁 직후 침체되었던 한국 상업 영화 부활의 계기가 되었다. 조미령은 단아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9] 이후 《시집가는 날》(1956년), 《10대의 반항》(1959년), 《마부》(1961년) 등에 출연하며 1956년부터 1960년대까지 최고의 스타로 명성을 날렸다.[5] 특히 《마부》는 제1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알린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1969년 재미교포 남편과 재혼 후[10] 미국으로 떠나면서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하와이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11] 1981년 조문진 감독의 권유로 영화 《두 아들 2》에 출연하기 위해 12년 만에 일시 귀국하였다.[12][13]

2. 1. 초기 생애 및 연극 활동

일찍이 아역 연극배우로 한국 최초의 연극 상설극장인 서울의 동양극장에서 활동하였는데, 8세 때 연극 《임자 없는 자식들》로 데뷔하였다고 알려져 있다.[5][6] 1939년에 동양극장 전속 공연단체 중 하나인 극단 ‘청춘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하였고, 1943년에는 동양극장 후반기 최대 히트작인 연극 《어머니의 힘》에 출연했다.[5] 20세 때인 1948년, 이규환 감독의 작품 《갈매기》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6] 23세 때, 1934년에 동경유학생들이 조직했던 연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 중심인물 중 한명이자 영화 《갈매기》의 기획을 맡았던 마산 출신 엘리트 연극인인 프로듀서 이철혁과 결혼하였다.[5][7]

2. 2. 영화계 데뷔 및 전성기

1929년 8세 때 연극 《임자 없는 자식들》로 데뷔하였다고 알려져 있다.[5][6] 1939년동양극장 전속 공연단체 중 하나인 극단 ‘청춘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하였고, 1943년에는 동양극장 후반기 최대 히트작인 연극 《어머니의 힘》에 출연했다.[5] 1948년, 20세 때 이규환 감독의 작품 《갈매기》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6]

1955년 23세 때, 1934년에 동경유학생들이 조직했던 연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 중심인물 중 한명이자 영화 《갈매기》의 기획을 맡았던 마산 출신 엘리트 연극인인 프로듀서 이철혁과 결혼하였다.[5][7] 6.25 전쟁 직후인 1955년, 국도극장 단일관으로 13만명을 동원하는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전후최대흥행작 《춘향전》에서 성춘향 역할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8]

춘향전》은 남편인 이철혁이 제작한 영화로 6.25 전쟁 직후 침체되어 있던 한국 상업영화가 부활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는데, 여주인공 성춘향 역할을 맡았던 조미령은 단아하고 청순가련한 이미지로 큰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9] 그 후 영화 《시집가는 날》(이병일 감독·1956년), 《10대의 반항》(김기영 감독·1959년), 《마부》(강대진 감독·1961년) 등에 출연하면서 1956년부터 1960년대까지 불세출의 은막 스타로 명성을 날린다.[5] 그 중, 영화 《마부》는 제1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으면서 서구영화계에 한국영화의 위상을 알린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2. 3. 결혼과 이혼

23세 때인 1934년에 동경 유학생들이 조직했던 연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 중심인물 중 한 명이면서 영화 《갈매기》의 기획을 맡았던 마산 출신 엘리트 연극인인 프로듀서 이철혁과 결혼하였다.[5][7] 1969년 재미교포 남편과 재혼하고[10] 미국으로 떠나면서 연예계에서 은퇴하였다.

2. 4. 은퇴와 미국 생활

1969년 재혼한 재미교포 남편과[10] 함께 미국으로 가면서 연예계에서 은퇴하였다. 미국으로 간 후 하와이에서 평온한 가정을 꾸려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살았다.[11] 1981년 조문진 감독의 권유로 영화 《두 아들 2》에 출연하기 위해 12년 만에 53세의 나이로 일시 귀국하였다.[12][13]

3. 출연 작품

조미령은 1950년대와 196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배우이다. 1955년 춘향전에서 춘향 역으로 데뷔하여, 시집 가는 날(1956)의 이쁜이 역, 노다지(1961)의 웅칠 아내 역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3. 1. 영화

연도제목배역
1955년춘향전춘향
1956년교차로
1956년단종애사
1956년왕자 호동과 낙랑 공주
1956년여성의 적
1956년시집 가는 날이쁜이
1957년여성 전선
1957년배뱅이굿
1957년아리랑
1958년모정
1958년나 혼자만이
1958년사람 팔자 알 수 없다
1958년자유 결혼
1959년결혼 조건
구혼 결사대
나비 부인
10대의 반항
여사장
오 내 고향
이름 없는 별들
자나 깨나
장마루촌의 이발사
1959년청춘 일기
1959년홀쭉이 뚱뚱이 논산 훈련소에 가다
1959년황금의 상처
1959년흥부와 놀부
1960년
경상도 사나이
대지의 어머니
해 떨어지기 전에
아들의 심판
바위고개
이별의 종착역
어느 여교사의 수기
지상의 비극
진주탑
박서방
1960년슬픔은 강물처럼
1960년황혼
1960년무화과
1960년천하태평
1960년내 가슴에 그 노래를
1960년아 백범 김구 선생
1961년마부
노다지웅칠의 아내
격정가
밤은 통곡한다
불효자
사랑이 문을 두드릴 때
사형수의 딸
양산도
에밀레종
역부의 딸
1961년이 순간을 위하여
1961년일편단심
1961년해바라기 가족
1962년감나무골 공서방
견습 부부
골목 안 풍경
구름이 흩어질 때
귀향
그리움은 가슴마다
내일까지는 말하지 마라
대장화홍련전
부라보 청춘
사랑을 다시 하지 않으리
살아있는 그날까지
슬픔은 나에게만
아내를 빼앗긴 사나이
암행어사 박문수
여인천하
1962년여자의 일생
1962년인목대비
1962년임자 없는 나룻배
1962년천하일색 양귀비
1962년하늘이 무너져도
1962년성웅 이순신
1963년아빠 안녕
가야의 집
내 아내가 최고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로맨스 가족
민들레꽃도 봄이면 핀다
사명당
아버지 결혼하세요
애정 300년
여자의 열쇠
재회
1963년죽도록 사랑해서
1963년한양에서 온 성춘향
1963년후라이보이 무전여행기
1964년니가 잘나 일색이냐
도심의 향가
신식 할머니
홀어머니
1964년목단등기
1965년두 아빠
막내딸
무명가의 지배자
밤에 핀 해바라기
비무장지대
여자의 길
울면서 한세상
정경부인
1965년주홍 스카트
1965년채홍사
1966년긴 여로
나운규의 일생
눈물 젖은 왕관
뜬구름아 말 물어보자
사랑보다 강한 것
여자이기 때문에
1966년유정
1966년이혼 상담소
1967년공주님의 짝사랑
공처가 삼대
보은의 기적
안방 마님
1967년역마
1968년
대똘똘이의 모험
로맨스 마마
몽땅 드릴까요
1969년눈 나리는 밤
신세 좀 지자구요
춘원 이광수
1981년두 아들 2



*참고: 전체 목록이 참조되었습니다.[2]

4. 수상

연도수상작품
1957년제2회 금룡상 여우주연상왕자 호동과 낙랑공주[14]
1958년제3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10대의 반항
1959년제3회 국제영화상 우수여자배우상[15]
1960년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조연여우상[16]10대의 반항
1966년제4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1]나운규의 일생


5. 이혼 소송 및 사기 피소

1962년, 여배우 조미령에게 남편 최씨를 빼앗겼다고 최씨의 아내 김씨가 서울지법에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고 연이어 간통 및 폭행혐의 사실을 들어 서울지검에 형사고소를 제기하여 피소되었다.[17][18] 그 해 12월, 피고인 조미령과 최씨가 위자료 60만을 내기로 하면서 화해가 조성되어 지지부진한 위자료 청구소송 및 이혼소송이 일단락되었다.[19] 또한 세 갈래로 얽힌 간통, 폭행치상, 명예훼손 등 고소사건에 대해서도 당사자 세 사람에 대해 정상을 참작하여 서울지검으로부터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20]

1966년 5월 19일에는 부부가 사기죄로 서울 지검에 피소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21] 충무로에 있는 통영공예사 대표 김씨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백화점을 5개 운영한다는 조미령의 남편 최씨가 나전칠기 등을 대신 미국에서 판매해주겠다고 속여 9000USD 어치를 보내게 한 후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21] 그런데, 김씨가 샌프란시스코 주재 총영사관을 통해 최씨의 신원을 조회한 결과 최씨는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지 않으며 일정한 주소도 없이 전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21]

미국 시민권까지 얻고 미국 육군 대위로 제대한 최씨와 1963년에 결혼하여 4살 난 딸을 기르고 있었으나, 1966년에 남편과 함께 사기죄로 기소된 와중에 조미령이 남편 최씨를 상대로 이혼청구소송을 가정법원에 제기한 사실이 알려졌다.[22] 한국에서 직장을 얻지 못한 최씨가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조미령의 집을 300만에 팔고 전처 소생 남매를 데리고 도미해버린 것이다.[22]

1966년 9월, 조미령은 남편 최동원을 상대로 가정법원에 낸 이혼소송에서 승소하였다.[23] 가정법원은 이혼청구 이유인 남편 최씨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미국에 데려가겠다던 약속을 져버렸다는 주장을 인정하여 이혼을 허가하였다.[23]

참조

[1] 웹사이트 http://www.kmdb.or.k[...] Korean Movie Database (KMDb) 2010-02-11
[2] 웹사이트 Cast and Crew DB >Kim Ja-ok >Filmograpies http://www.kmdb.or.k[...] Korean Movie Database (KMDb) 2010-02-11
[3] 뉴스 銀幕의「스타」들은 藝名의「베일」쓰고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1963-08-29
[4] 뉴스 話題의 行方 (3) 愛情波動가신 趙美鈴양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62-12-04
[5] 뉴스 유학파 영화감독-은막의 스타 역경과 사랑 http://www.idomin.co[...] 경남도민일보 2012-09-05
[6] 뉴스 아름답기에 더욱 처절했던 연기 https://news.naver.c[...] 여성동아 2014-04-14
[7] 뉴스 연예수첩 반세기 영화계 23 예술영화의 개막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72-11-23
[8] 뉴스 연예수첩 반세기 영화계 27 활력 불어넣은 춘향전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72-11-29
[9] 뉴스 '춘향' 우리들의 영원한 연인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9-03-08
[10] 뉴스 추억의 스타들 공동출연 화제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92-07-10
[11] 뉴스 해방 후 1대 춘향 출신의 톱스타 조미령 http://interview365.[...] 마이데일리 2008-09-22
[12] 뉴스 조미령 윤정희 영화출연 위해 귀국한다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81-03-20
[13] 뉴스 옛 동료들 조미령 찾아 격려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1-04-29
[14] 뉴스 2회 금룡상 심위 과반득표자 없어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57-01-26
[15] 뉴스 22일에 시상식 제3회 국제영화상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59-03-04
[16] 뉴스 우수영화상 결정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60-09-06
[17] 뉴스 남편 최씨와 여배우 조미령씨 걸어 간통죄로 고소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2-07-12
[18] 뉴스 여우 조미령씨 피소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62-07-04
[19] 뉴스 조양에 불기소처분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62-08-01
[20] 뉴스 조미령양 화해 위자료 50만원 2월에 주기로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2-12-04
[21] 뉴스 조미령씨 부부 피소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66-05-20
[22] 뉴스 조미령양 이혼 소송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6-05-21
[23] 뉴스 돌보지 않는 남편과 여우 조미령씨 이혼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66-09-1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