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협회(PRKFA)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에 가입된 북한 축구의 관리 기구이다. 1945년 설립되어 AFC에는 1954년, FIFA에는 1958년에 가입했다. 북한 축구 리그는 1부, 2부, 3부 리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윤종호가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다. 협회는 FIFA 골 프로젝트를 통해 재정 지원을 받았으나, 핵실험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동결되었다. 북한은 유소년 육성에 힘쓰고 있으며, 평양국제축구학교를 설립하여 선수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성과로는 AFC 챌린지컵 우승,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FIFA U-20 여자 월드컵 우승 등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스포츠 행정 기구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 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 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올림픽 위원회이며, 1953년 설립되어 1956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가입을 신청했으나, 1988년 서울 올림픽 보이콧, 2020년 도쿄 올림픽 불참 등으로 여러 차례 올림픽 참가를 거부했고,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참가를 거부하여 IOC로부터 자격 정지를 받았다.
1945년 설립된 스포츠 단체 - 나이지리아 축구 연맹 나이지리아 축구 연맹은 나이지리아의 축구를 관장하며 프로 리그 운영 및 국가대표팀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설립 가능성이 1933년부터 제기되었고 FIFA로부터 자격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을 미치며 대한민국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1945년 설립된 스포츠 단체 - 탄자니아 축구 연맹 탄자니아 축구 연맹은 탄자니아의 축구 리그 시스템과 국가대표팀을 관리하며, 축구 리그 시스템은 프리미어 리그를 최상위 리그로 하여 다양한 하위 리그와 유스 리그로 구성되어 있고, 축구 아카데미 설립과 국립 경기장 운영을 통해 축구 발전과 유소년 선수 육성에 기여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1989년 국제 무대 데뷔 후 AFC 여자 아시안컵 우승 등 주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도핑 문제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현재 FIFA 랭킹 10위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 8강 진출 후 침체기를 겪었으나, 2010년 월드컵 본선 진출과 2026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최종 진출을 통해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으며, 평양 릉라도 5월1일 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종일관 선수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협회(PRKFA)는 연락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팩스 번호 하나만 있었고, 현재는 이메일 주소 하나만 공개하고 있다. FIFA의 제롬 샹파뉴 전임 간부는 "팩스를 보냈습니다. 가끔 답장이 왔습니다"라고 회상했으며, 축구 기자 제임스 피오트르 몽태규는 "10년 가까이" 이메일을 보냈지만 항상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FIFA조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협회가 관장하는 리그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팀들이 참가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4]
2. 1. 리그 구조
북한의 축구 리그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부 축구 리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부 축구 리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아마추어 3부 축구 리그
2. 2. 임원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협회의 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과거 회장으로는 최남균, 림경만 등이 있었다.[5]
이름
직책
출처
윤종호한국어
회장
안송일한국어
부회장
[7]
한은경한국어
2대 부회장
[7][8]
문장홍한국어
3대 부회장
[8]
방광수한국어
4대 부회장
[8]
김장산한국어
사무총장
[7][8]
김철웅한국어
기술이사
[7][8]
윤종수한국어
남자 대표팀 감독
[7]
조송옥한국어
여자 대표팀 감독
[7]
김용철한국어
미디어/홍보 담당자
[7]
장명호한국어
심판 조정관
[9]
3. 역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협회는 1945년에 설립되었다.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는 1954년에, 국제 축구 연맹(FIFA)에는 1958년에 가입했다. 2002년 동아시아 축구 연맹(EAFF) 설립을 위한 회의에 참가를 요청받았으나, 처음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2002년 5월 28일, 서울의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협회를 제외한 동아시아 지역 8개 협회(중국, 대만, 괌, 홍콩, 일본, 한국, 마카오, 몽골)가 모여 동아시아 축구 연맹(EAFF)을 설립하고 동시에 가입했다.[10] 동아시아 축구 연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협회에 계속 참가를 요청했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협회는 참가 의사를 밝혔고, 2002년 8월 13일 EAFF 임시총회에서 가입이 승인되었다(정식 가입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협회가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날).[11]
4. FIFA 축구 발전 프로젝트와의 관계
국제축구연맹(FIFA)의 골 프로젝트(1999~2015년 시행)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협회는 재정 지원을 받았다.[12]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총 6회에 걸쳐 200만 달러를 지원받았으며,[12] 이 지원금은 김일성경기장 인조잔디 교체, 협회 건물 및 선수 합숙소 보수, 평양국제축구학교 건설 등에 사용되었다.[12]
하지만 201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실험으로 인해 FIFA 골 프로젝트가 동결되면서,[14] 평양국제축구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14]
현재는 FIFA 포워드 프로그램을 통해 재정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FIFA 포워드 프로그램은 FIFA 가맹 축구 협회 및 지역 연맹을 대상으로 하는 재정 지원 프로그램으로, 4년 주기로 지원금이 증액된다.
5. 육성 및 강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국가 재정 위기 속에서도 유소년 축구 육성에 집중 투자했다.[15] 그 결과, 2004년부터 각 연령별 아시아 유소년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해외 클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나타났다. J리그 등에서 활약하는 재일 코리안 선수들을 영입하고, 유소년 육성과 해외 리그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하여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본 대회에서는 3전 전패를 기록했다.
2013년부터는 축구 선수 육성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평양국제축구학교를 개교하고,[16][17] 유소년 선수들을 스페인과 이탈리아 클럽 축구 아카데미에 유학 보내는 등 대표팀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18] 이 프로젝트를 통해 최성혁, 한광성 등 세리에 A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배출되었다.[18]
5. 1. 평양국제축구학교
FIFA 골 프로젝트로부터 50만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아 2013년 5월 3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직할시 릉라도에 프랑스 클레르퐁텐 국립연구소를 모델로 한 북한 유일의 축구 아카데미인 평양국제축구학교(Pyongyang International Football School)를 개교했다.[16]
평양국제축구학교의 부지는 12200m2이며, 기숙사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내에는 교사, 기숙사, 복지시설 등 4개 동이 있다. 축구 경기장 4면, 풋살 경기장 4면(실내 경기장 포함) 등 총 8면의 경기장을 갖추고 있으며, 천연잔디와 인조잔디 경기장이 모두 있다.[16] 2016년 11월 25일 기준으로 9세부터 15세까지 2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남녀 비율은 6:4이다.[19]
학제는 초등반(일본의 초등학교에 해당) 5년, 중급중학반(일본의 중학교에 해당) 3년, 고급중학반(일본의 고등학교에 해당) 3년이다.[16] 북한 전역의 9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매년 두 차례 학생을 모집하며, 두 차례의 선발 시험을 통과해야만 입학할 수 있다. 뛰어난 축구 감각을 가진 어린이들을 선발하며, 입학 후에도 시험을 통해 능력이 낮은 10%의 학생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낸다.[17]
기초 과목 학습과 축구 실기가 교육의 중심이다. 지도 교사는 축구 전문가이며, 전 축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팀 선수도 있다. 또한, 해외(주로 유럽) 등에서 우수한 코치와 전문가를 초빙하고 있다. 아울러, 독일 등 해외 축구 영상도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훈련은 전통적인 방식 외에도 학생들이 일렬로 서서 안무를 만들고 음악에 맞춰 볼 기술을 선보이는 훈련도 있다. 이 훈련 영상은 학교 홍보 자료로 사용된다.[14] 또한, 연습 경기를 통해 실전 훈련을 실시하는데, 상대팀은 북한 전국의 실력 있는 2세 이상 연상의 청소년 축구팀이다.[16] 유럽이나 중동 지역으로의 유학 및 단기 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졸업 후에는 주로 북한 축구 리그 1부 최상급 축구 연맹전의 각 체육단 및 축구팀 등에 배치된다. 해외 리그로 이적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5. 2. 해외 유학 및 클럽 입단
북한은 U-15(15세 이하) 세대의 우수 선수들을 유럽과 중동 지역의 축구 아카데미에 유학 보내고 있다. 2013년 10월 말부터 스페인바르셀로나의 후안다시온 마르세에, 2013년 12월 11일부터는 이탈리아 페루자의 인터내셔널 사커 매니지먼트(ISM)에 선수들을 파견했다.[20] 후안다시온 마르세에는 2013년 10월 31일, 이후 북한의 두 번째 세리에 A 선수가 된 한광성을 포함한 당시 10~11세 선수 14명이 1년간 유학했다.[20] 같은 해 12월 11일부터는 ISM에 당시 10~12세 선수 20명이 유학했다.[20]
한광성은 2014년부터 ISM으로 옮겼다. 2017년 7월 13일 기준으로 20~30명 정도의 북한 선수가 ISM에 재학 중이었다.[21]
18세 생일 이후, ISM 재학 북한 선수들은 국제 이적이 가능해져(실제 이적 내정은 18세 생일 한 달 전부터 가능) 해외 클럽과 계약한다.[21] 이 프로젝트 1기생에는 북한 최초의 세리에 A 선수인 최성혁과 두 번째 세리에 A 선수인 한광성 등이 있다.[18]
5. 3. 대표팀 운영
북한 국가대표 선수들은 평일에는 대표팀 감독의 지휘 아래 하루 두 차례 훈련을 한다. 기술, 체력, 전술을 철저하게 연마한다. 주말에는 최상급 축구 연맹전 소속 클럽으로 돌아가 경기를 치른다.[22] 대표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일상적인 훈련을 하므로 팀워크가 잘 맞아 북한 대표팀은 하나의 클럽팀과 같다. 세계적으로는 일상적인 훈련은 소속 클럽에서 하고, 국제 A매치 등의 단기간에 대표팀 훈련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5. 4. 과제
북한 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실전 경험 부족이다. 국내 클럽들은 AFC(아시아축구연맹)가 주최하는 ACL 등의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 대표팀 경기를 제외하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은 국내 1부 리그인 최상급 축구 연맹전뿐이지만, 팀 수가 겨우 11개에 불과하여 경기 수가 적다. 또한 관중도 200~300명 정도에 불과하여 열정적인 응원을 통해 선수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23] 해외 클럽으로 이적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현재 북한 출신으로 해외 클럽에서 뛰는 선수는 U-15 시절부터 해외 유학을 통해 해외 클럽과 계약한 선수들뿐이다.
두 번째 과제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자금난으로 인해 육성 프로젝트의 지속과 국제 이적(해외 이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북한이 두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하자, 스위스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 이에 따라 스위스에 본부를 둔 FIFA(국제축구연맹)도 같은 해 3월 북한을 대상으로 한 FIFA 골 프로젝트[12]를 동결했다. 그 결과, 해당 프로젝트의 자금을 지원받던 평양국제축구학교의 재정이 어려워졌다.[14] 같은 해 5월, ISM에서 피오렌티나 유스팀으로 이적하여 북한 최초의 세리에 A(이탈리아 세리에 A) 선수가 된 최성혁의 급여 대부분을 북한 정부가 가져간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정부가 우려를 표명했다. 같은 해 7월, 그는 이러한 "정치적 문제"로 인해 클럽을 떠났다.[14] 또한 북한의 두 번째 세리에 A 선수인 한광성(칼리아리 현 소속)은 유벤투스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는 계약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에 대한 해외 클럽의 우려 때문이었다.[2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