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커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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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커제일은 1935년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나 배우, 프로듀서, 감독으로 활동했다. 연극 배우로 경력을 시작하여 1972년 영화 《대부》에서 프레도 콜레오네 역으로 데뷔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컨버세이션》, 《대부 2》, 《뜨거운 오후》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뜨거운 오후》로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1977년 폐암 진단을 받고 1978년 42세의 나이로 사망했지만, 《디어 헌터》에 출연하며 마지막 작품을 남겼다. 그는 알 파치노, 메릴 스트립 등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뛰어난 연기력으로 후배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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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커제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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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존 홀랜드 카잘 |
출생일 | 1935년 8월 12일 |
출생지 | 미국 매사추세츠주 리비어 |
사망일 | 1978년 3월 13일 |
사망지 | 미국 뉴욕주 뉴욕 |
국적 | 미국 |
직업 | 배우 |
교육 | 오벌린 대학교 보스턴 대학교 (BFA) |
활동 기간 | 1959년–1978년 |
파트너 | 메릴 스트립 (1976년–1978년) |
경력 | |
활동 | 1965년: 단편 영화 데뷔 1978년: 사망 |
주요 작품 | 대부 시리즈 뜨거운 오후 디어 헌터 |
기타 | |
로마자 표기 | John Cazale |
2. 초기 생애
커제일은 매사추세츠주 리비어에서 태어났으며,[5] 아버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존 커제일(1897–1957), 어머니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세실리아 홀랜드(1898–1997)였다.[6] 그는 누나 캐서린(1931년 5월 28일 – 2000년 2월 2일)과 남동생 스티븐이 있었다.[7][10] 매사추세츠주 윈체스터에서 성장했으며 윌리엄스타운에 있는 벅스턴 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연극반에 참여했다. 오벌린 대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했고, 피터 카스의 지도를 받으며 보스턴 대학교로 편입했다.[8][9] 10대 시절에는 훗날 《대부》 등에서 함께 출연하게 되는 알 파치노와 친분을 쌓았다.
커제일은 매사추세츠주 리비어에서 태어나 윈체스터에서 성장했다.[5] 벅스턴 학교를 졸업하고 오벌린 대학교와 보스턴 대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했다.[8][9]
3. 경력
이스라엘 호로비츠의 연극 《인디언은 브롱스를 원한다》에 알 파치노와 함께 출연하여 1967-1968년 시즌 오프 브로드웨이 오비상을 수상했다. 호로비츠의 《라인》에서의 연기가 영화 프로듀서 프레드 루스의 눈에 띄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추천되면서 영화 경력의 발판을 마련했다.
1972년, 코폴라 감독의 《대부》에서 프레도 콜레오네 역으로 영화 데뷔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4년에는 코폴라 감독의 《컨버세이션》에 출연했고, 같은 해 《대부 2》에도 출연했다. 1975년, 《뜨거운 오후》에서 다시 파치노와 함께 출연하여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1976년, 뉴욕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상연된 연극 《자에는 자로》에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하며[43] 스트립과의 인연을 시작했고, 이 관계는 1978년 커제일이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44]
3. 1. 연극 경력
존 커제일은 찰스 플레이하우스에서 연극 경력을 시작하여 1959년 ''호텔 파라디소''와 ''우리 읍내''에 출연했다.[10] ''우리 읍내''에서 조지 깁스 역을 맡은 그의 연기를 평론가 장 피에르 프랑켄후이스는 "커제일의 연기는 정말 훌륭하고, 유쾌하며, 감동적이고, 짜릿하다. 우리는 그와 더 많은 장면이 있기를 바랐다. 그는 매우 즐거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그는 최고의 코미디언이다!"라고 평했다.[11] 뉴욕시로 이주하여 배우 활동을 하면서 사진작가로 생계를 유지했다.
1965년, 커제일은 로레인 한스베리의 ''시드니 브루스틴의 창문 속 표지판'' 전국 투어에 참여했다.[14]
스탠다드 오일 오브 뉴욕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 다른 배우 지망생인 알 파치노를 만났다. 1966년, 두 사람은 이스라엘 호로비츠의 연극 ''브롱크스를 원하는 인도인''에 캐스팅되어 코네티컷주 워터포드에 있는 유진 오닐 극장 센터에서 공연했다. 1968년 오프 브로드웨이 아스토 플레이스 극장에서 다시 그 역할을 맡았고, 두 사람 모두 오비상을 받았다.[16][17] 그해 커제일은 호로비츠의 ''라인''에서 돌란 역으로 또 다른 오비상을 받았다.
1969년, 커제일은 롱 워프 극장 컴퍼니에 합류하여 이후 3시즌 동안 ''타르튀프, The Country People, 우리 읍내, 빙산, 너는 가져갈 수 없다''를 포함한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14]
1971년 Theatre De Lys(현재 루실 로르텔 극장)에서 공연된 ''라인''에서 다시 역할을 맡았다.[19]
3. 2. 영화 경력
이스라엘 호로비츠의 연극 『라인』에 출연한 존 커제일의 연기는 영화 프로듀서 프레드 루스의 눈에 띄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추천되었고, 이는 커제일이 영화계에 발을 딛는 계기가 되었다. 1972년 커제일은 영화 대부에서 프레도 콜레오네 역을 맡아 데뷔했으며, 영화는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5년에는 『뜨거운 오후』에 출연하여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1976년, 커제일은 뉴욕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상연된 연극 『자에는 자로』에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했다.[43] 이 연극을 계기로 스트립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커제일이 1978년에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44]
3. 2. 1. 《대부》 시리즈 (1972–1974)
커제일은 대부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프레도 콜레오네 역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말론 브란도는 커제일이 우상으로 여기던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이 영화는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커제일을 비롯한 여러 무명 배우들을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커제일의 연기에 감명을 받아, 이후 자신의 영화 컨버세이션에서 진 해크먼과 함께 출연하는 스탠 역을 그를 위해 썼다.
1974년, 커제일은 대부 2에서 프레도 콜레오네 역으로 다시 출연하여 그의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브루스 프렛츠는 "커제일은 그의 캐릭터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22]
3. 2. 2. 《뜨거운 오후》 (1975)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 ''뜨거운 오후''에서 알 파치노와 다시 함께 출연했다. 이 영화의 각본가 프랭크 피어슨은 "이 영화는 대부에서 친한 친구이자 협력자였던 존 커제일을 포함해 알 파치노가 뉴욕에서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을 많이 기용했다"고 말했다.[23] 그는 살 역을 맡아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드니 루멧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John Cazale is one of my favorite things, there was a great sadness about him. I don't know where it came from. I don't believe in invading the privacy of actors I work with or digging into their heads. But, my God—it's in his every shot, not only in this film, but in ''대부 2'' as well.|존 커제일의 캐스팅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그에게 엄청난 슬픔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나는 함께 일하는 배우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그들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그것이 그의 모든 샷에, 이 영화뿐만 아니라 ''대부 2''에서도 나타난다.영어[24]
3. 3. 연극으로의 복귀
이스라엘 호로비츠의 연극 《인디언은 브롱스를 원한다》에 알 파치노와 함께 출연하여 1967-1968년 시즌 오프 브로드웨이 오비상을 수상했다. 호로비츠의 또 다른 작품 《라인》에서의 연기가 영화 프로듀서 프레드 루스의 눈에 띄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게 추천되면서 영화 출연의 계기가 되었다.
1976년 뉴욕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상연된 연극 《자에는 자로》에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43]하며, 이를 계기로 스트립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여 1978년 커제일이 사망할 때까지 관계를 이어갔다.[44]
3. 3. 1. 퍼블릭 극장 (1975–1976)
커제일은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는 동안에도 연극에 대한 헌신을 이어갔다. 롱 워프 극장 외에도 이스라엘 호로비츠의 여러 연극에 출연했다. 1975년 5월, 알 파치노를 지원하기 위해 찰스 플레이하우스로 돌아와 ''아르투로 우이의 저항 가능한 번영''에 출연했다. 이 작품에 대해 보도한 ''빌리지 보이스''의 로스 웨츠스턴은 커제일에 대해 "오늘날 미국 최고의 배우일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25] 1976년, 커제일과 파치노는 첫 번째 협업 10년 만에 퍼블릭 극장에서 제작한 ''더 로컬 스티그마틱''에 함께 출연하며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췄다.
3. 3. 2. 《자에는 자로》 (1976)
그해 여름, 커제일은 샘 워터스턴과 함께 센트럴 파크의 델라코르테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1976)에 출연했다. 그의 상대역은 최근 예일 드라마 스쿨을 졸업한 메릴 스트립이었다. ''뉴욕 타임스''의 멜 거소는 다음과 같이 썼다. "커제일은, 종종 ''대부''에서처럼 별나고 약한 외부인으로 캐스팅되곤 했는데, 여기서는 조용히 거만한 안젤로로서 더욱 강한 기질을 보여주며, 독수리처럼 덮쳐 미덕을 훼손한다."[2]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커제일과 스트립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여 함께 살기 시작했다. 스트립은 "그 얼간이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했어."라고 말하며 그녀의 공동 출연자의 능력을 유머러스하게 칭찬했다.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정말 훌륭한 판단력, 그렇게 깔끔한 사고력!"[26][27] 이 작품을 계기로 스트립과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그녀와의 관계는 커제일이 1978년에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44]
3. 3. 3. 《아가멤논》 (1977)
커제일의 마지막 무대 출연은 1977년 4월 29일, 비비안 보몬트 극장에서 열린 아가멤논의 주역을 맡은 것이었다. 그는 첫 번째 시연회에만 출연했다. 공연 후 병이 나서 공연에서 하차했으며, 유일한 브로드웨이 공연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폐암 진단을 받았다.[28]
3. 4. 마지막 영화 출연: 《디어 헌터》 (1978)
폐암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존 커제일은 연인 메릴 스트립, 로버트 드 니로, 크리스토퍼 워컨, 존 세비지와 함께 영화 ''디어 헌터''(1978)에 출연했다.[29] 감독 마이클 치미노는 커제일과 스트립의 동의를 얻어 촬영 일정을 조정하여 그의 모든 장면을 먼저 촬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29] 커제일은 자신의 장면을 모두 촬영했지만, 영화 개봉 전에 사망했다.[29]
커제일은 질병으로 인해 보험 가입이 어려워 영화 출연이 불확실했지만, 스트립에 따르면 드 니로가 그의 출연을 위해 비용을 지불했다.[30]
영화 디어 헌터 제작 당시, 그는 이미 폐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29] 제작사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그의 출연에 난색을 표했지만, 커제일의 적극적인 자세와 마이클 치미노 감독,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등의 노력으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당시 커제일과 스트립은 약혼한 사이였다.
이후, 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은 뼈로 전이되었고, 커제일은 1978년 3월 12일 영화 개봉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Death date and age|1935|8|12|1978|3|12영어
4. 사망
커제일은 1977년 폐암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그의 연쇄 흡연 경력과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31] 여러 치료법과 프로토콜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암이 뼈로 전이되면서 급격히 쇠약해졌다. 1978년 3월 13일, 커제일은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곁에는 배우 메릴 스트립이 그가 아픈 동안 내내 함께 있었다. 절친이자 영화 《대부》에서 함께 출연한 알 파치노는 "나는 [스트립]이 존처럼 쇠약해져 가는 사람에게 그토록 헌신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녀가 이 남자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압도적이었다."라고 말했다.[15] 파치노는 나중에 커제일의 재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커제일을 "우리 시대, 어느 시대든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이라고 칭했다.[32]
그의 절친이자 빈번한 협력자였던 이스라엘 호로비츠는 1978년 3월 27일 《더 빌리지 보이스》에 실린 추도문을 썼다. 그는 그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존 커제일은 일생에 한 번 나타나는 존재입니다. 그는 발명품이었고, 작은 완벽함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커제일이 왕과 조언자, 부스와 킨, 지미 딘, 베른하르트, 기트리, 뒤즈, 스타니슬라브스키, 그루초, 베니, 앨런과 함께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토록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는 새로운 곳에서 금세 친구를 사귈 것입니다. 그는 사랑하기 쉬운 사람이었습니다.[33]
커제일은 매사추세츠주 말덴에 있는 홀리 크로스 묘지에 묻혔다.[34]
5. 참여 작품
존 커제일은 영화와 연극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대표적인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분야 | 제목 |
---|---|
영화 | |
연극 |
5. 1. 영화
존 커제일은 1962년 단편 영화 ''The American Way''에 출연하였고, 1968년에는 텔레비전 시리즈 ''N.Y.P.D.''의 "The Peep Freak" 에피소드에 출연하였다. 1972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에서 프레도 콜레오네 역을 맡아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커제일은 친구인 알 파치노와 함께 무명 배우에서 스타덤에 올랐다.1974년에는 코폴라 감독의 컨버세이션에서 스탠 역으로 출연했고, 같은 해 대부 2에도 프레도 콜레오네 역으로 다시 출연했다. 1975년 뜨거운 오후에서 살바토레 나투릴레 역을 맡아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1978년에는 디어 헌터에 스탠 역으로 출연하였으며, 이 영화는 커제일의 사후에 개봉되었다. 1990년 대부 3에는 이전 영화들의 필름 아카이브를 통해 프레도 콜레오네 역으로 등장했다.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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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 대부 | 프레도 콜레오네 | |
1974 | 컨버세이션 | 스탠 | |
1974 | 대부 2 | 프레도 콜레오네 | |
1975 | 뜨거운 오후 | 살바토레 나투릴레 | 골든 글로브상 노미네이트 |
1978 | 디어 헌터 | 스탠 | 사후 개봉 |
1990 | 대부 3 | 프레도 콜레오네 | 필름 아카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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